[책 「1961」을 말하다②] 한국 혁신진영 수난 단면사

책 ‘1961’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대를 재조명한 책이다. ‘다양한 콘텐츠를 책 한 권 안에 담는다’는 젊은 예술가들의 기획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종이책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종이책만이 가지는 고유의 특성을 극대화한 책이다. 이 책은 1961년부터 1967년까지 하태환이 작성한 옥중기록문을 바탕으로 5.16을 이야기한다. 진보적 정치인들에 대한 무고한 구속과 옥중생활, 죽음의 기록을 생생하게 담아냈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소설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민중의소리>는 책 ‘1961’을 출간한 새봄출판사와 함께 ‘책 「1961」을 말하다’를 연재하고 있다.

책 ‘1961’
책 ‘1961’ⓒ기타

7월 초순의 어느 날. 어떤 친구가인가가 기발한 제의를 했다.
“우리가 김 선생을 모시고 모의재판을 받아보자”는 것이었다.
대관절 우리들의 정치행동이 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 된다면 형량은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이고 냉정한 입장에서 재판을 사실심리부터 받아보자는 것이었다.
- <1961> 48쪽

감방 안에 구속된 사람들 중에는 판사 출신도 있고, 대학 교수도 있고, 예전 독립운동가도 있고, 훗날 국회부의장까지 되는 정치인도 있다. 서로 포개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도 없는 아주 작은 공간 안에서 그들은 ‘우리는 지금 왜 여기 있는가.’에 대하여 골몰한다. 5.16이 발발하고 혁신계 정치인들은 영장도 없이 구속되어 죄도 없이 적게는 몇 개월, 많게는 7년간을 구속당했다. ‘혁신계 정치인’이란, 민주사회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정당에 소속되거나 ‘평화통일운동’을 했던 진보적 정치인이나 재야 정치인 또는 학생운동가를 가리킨다. 지금에 와서 그 말이 낯선 이유는 5.16을 계기로 우리 역사에서 완전히 소멸해버린 정치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들 중 일부는 “헌법을 불구로 만들어버린” 이른바 ‘소급법’에 의해 7년 동안 구속당하며 몇 명은 사형당하거나 병으로 인해 옥사하기도 한다. 소급법이란 간단히 말해, 우선 잡아가둬 놓고 그 잡아 가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부러 죄목을 만든 것이다.

어쨌든. 이유 없이 구속되어 있던 그들은 감방 안에서 그들만의 모의재판을 열기로 한다. 절묘하게도 역할을 맡을 배우들도 충분했다. 판사 출신도 있고. 변호사도 있고, 교수와 학생도 있었다. 그들은 판사, 검사, 변호사, 원고, 피고, 배심원까지 서로의 역할에 소홀하지 않으며 모의재판을 시작한다. 물론, 그 장소는 너무 비좁아 똥통 위에서까지 새우잠을 청해야만 하는 감방 안이다.

김판암 변호사의 ‘전원무죄선고’는 우리들을 모두 환호하게 했다. 그날 밤에도, 그 다음날 밤에도 모의 재판에 참여하거나 경청했던 우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모의재판에서 받은 무죄선고는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벌써부터 가족에게로 돌아갈 상상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들은 또다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모의재판은 어디까지나 ‘모의’일 뿐이었다. 우리들의 믿음과 희망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점점 더 암담해지고 있었다.
- <1961> 54쪽

그들만의 모의재판에서 결국 그들은 자신들에게 ‘전원 무죄선고’를 내리며 환호하고 감동하고, 밤에 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책 <1961> 안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 중 한 부분이다.

<1961>은 5.16이 일어난 1961년부터 1968년까지 ‘한국 혁신진영 수난 단면사’를 기록하고 있다. 54년 전에 기록된 실제 역사를 소설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저자 하태환 선생은 “문학적 기지를 흉내낸” 사적인 내용을 철저히 배제하고 역사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육척담장’으로 일컬어지는 교도소 밖으로 이야기를 넓히지 않고, 오로지 교도소 안에 있는 사람들과 사건들에만 집중한다. <1961> 보다 먼저 책으로 묶은 <지우지 못할 이야기>(2013년)에는 저자의 머리말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하나의 ‘옥중수기’이기는 하다. 그러나 단순히 흥미 보위를 일삼거나 문학적인 기지를 흉내낸 기교에 급급하는 따위의 방밥을 지양하고, 보다 더 많은 양의 내용을 담음으로써 명실공히 ‘한국 혁신진영 수난 단면사’가 되게 하고자 내 나름의 온갖 정성을 바쳐보았다.
따라서 우리의 역사가 이제부터 다시 백 년, 이백 년, 혹은 천 년이 르는 뒤에라도 최소한 조국통일 운동과 혁신정치 운동을 하다 ‘소급법’에 의해 투옥. 처형되었다고 하는 이 책의 행심적인 부분만은 읽어볼 가치가 있는 역사적 문헌이 될 수 있도록 하려는 자세와 의욕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과 같이 역사는 사실을 정확무오하게 기술함으로써만 그 속에 생명이 깃드는 것이므로, 저자는 무엇보다 본 것, 들은 것, 수집한 것, 그리고 느낀 것 등을 있는 그대로 공명정대하게 적는 일에 최대의 노력을 쏟았다.

따라서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로 하여금 혁신계 인사들이 ‘소급법’이라는 천하의 악법에 의해서, 집권자가 마음대로 만든 죄의 탈을, 강권에 의해 하는 수 없이 뒤집어쓰고, 정치적 재물로써 장장 만 7년을 옥살이 하였다는 이 원죄와 원옥의 사실을 진상 그대로 알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조국의 민주발전을 위해서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독자들께서는, “만일 너희들이 진실로 원죄에 의한 원옥을 치른 것이라면 국가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마땅히 재심을 청구해서 무죄판결을 받아야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반문이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질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에 대하여 대답하여 두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헌법의 부칙이 우리의 재심을 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헌법의 본문엔 ‘소급법’은 만들 수도 없게 해놓고 부칙에 가서는 “5.16 후 소급법에 의해 처벌한 사실은 이의를 할 수 없다”고 하여, 본문의 조항을 뒤집어버린 조문을 삽입한 것이다.
이는 실로 한 나라의 헌법을 불구로 만든 것으로써 국가 민족의 체면에 관한 중대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 <지우지 못할 이야기> 저자 머리말 중에서

<1961>은 사실만을 쓰려고 했던 저자의 노력에서 조금 더 시야를 넓혀 가족의 이야기를 상상으로 복원하고, 그들(혁신계 정치인)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한 책이다. 54년 전에 비하여 세상이 너무나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한 시대의 억울함에 대하여 좀 더 당당한 자세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도 궁금해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억압되었던 사회에서 벗어나 이제 그 때의 이야기를 문학, 미술, 음악, 연극 등 예술적 욕구로 분출할 수도 있게 되었다. 물론, 5.16을 일으키고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한 독재 권력의 후손이 다시 정권을 잡았고, 현재에도 온갖 부조리한 정치사회적 뉴스가 계속되고 있지만, 어찌되었던 간에 지금은 54년이나 지나버린 2015년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시대의 방식으로 ‘한국 혁신진영 수난 단면사’를 새롭게 증언하고 연구하고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작업의 일환이 바로 책 <196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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