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추천리뷰] 당신도 노예인가요? 영화 ‘아페림!’
지주가 노예의 고환을 자르는 장면 2015 | Romania
지주가 노예의 고환을 자르는 장면 2015 | RomaniaⓒBIFF

건장한 사내였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누구나 안기고 싶은 넓은 어깨, 두둑하고 튼실한 아랫도리를 가진 남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유가 없었다. 은화 몇 푼에 사고 팔리는 노예였다. 지주의 아내는 그가 탐났다. 남편이 채워 주지 못한 쾌락을 완벽하게 느끼고 싶었다.

마님이라고 불리는 그녀는 마굿간에서 일하는 그를 찾아가 추파를 던졌다. 자신의 엉덩이를 노예의 앞섶에 문지르며 짐승이 돼 달라고 구걸했다. 노예는 참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계급장 떼고 한바탕 인간의 동물성에 몸을 맡겼다.

비밀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들의 행각은 곧바로 들통났다. 노예는 죽지 않기 위해 도망쳤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그 사이 마님은 남편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감금됐다. 이 나라 법에 따르면 남편은 아내를 때릴 권리가 있었다.

며칠 뒤 노예는 충직한 순사에게 잡혀 끌려왔다. 지주는 자신이 거느리는 모든 이들을 마당에 불러 놓고 노예의 불알을 잘랐다. 하나도 아닌 좌우 한 쌍을 무참하게 가위질했다. 지주가 생각한 복수는 죽을 때까지 노예가 짊어질 고통이었다. 노예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남성성을 제거하는 것, 다시 말하면 정자를 만들고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하는 고환이 없애 남자로서의 자존감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것이었다. 순사는 노예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지주를 말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지주의 폭력이었다. (모든 동물은 극도의 분노를 느낄 때 상대방의 생식기를 훼손한다고 한다.)

픽션이 아니다. 노예제도가 있던 나라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던 일이다. 노예는 주인에게 인간 이하의 학대와 부림을 받았다. 죽고 사는 일조차 주인의 말 한마디로 결정될 정도였다.

노예의 삶이 비참했다는 것은 말해 무엇하랴. 중요한 것은 한 나라의 찬란한 융성과 귀족의 부귀영화 뒤에는 노예 문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노예 문화는 현실 속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다. 권력과 자본에 종속된 민중의 삶이 이를 투영한다.

영화 <아페림!>은 권력에 짓눌려 주체를 상실한 사람을 노예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라드 주드 감독은 노예가 아닌 평민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평민은 극심한 위압과 공포에 짓눌리면서 돈과 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산다. 심지어 자신을 노예로 사가라고 돈 있는 자에게 무릎을 꿇는다. 노예와 다르지 않다.

관객들도 감독의 질문에서 비껴갈 수 없다. 현재 당신의 모습은 어떠하냐고, 당신도 노예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느냐고 감독은 눈을 흘기며 관객들에게 묻는다.

이 영화는 흑백이다. 거칠고 담백한 흑백 영상은 19세기 동유럽 같은 느낌을 극대화 시킨다. 반면 대사는 기발하고 상황은 유머러스하다. 피식 웃음도 나고, 미간도 찌푸려진다. 블랙코미디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냉소적인 영상으로 현실을 비꼬아 그려낸다.

<아페림!>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감독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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