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식 작가를 가끔 봤다. 그는 항상 조용하게 쉬거나 음악을 들으며 작업에 빠져 있었다. 그와 이따금 마주치면 인사도 나눴고, 드문드문 술 한잔 하자는 얘기도 했던 것 같다.
작업실을 지나치면서 민 작가의 작품들을 힐끗힐끗 쳐다보곤 했다. 선이 날카롭고, 색채가 강렬한 작품이었다. 언뜻 본 그의 그림들은 정형화된 기하학적 추상 같기도 했고, 신조형주의나 구성주의 풍의 구상 혹은 팝아트 같기도 했다. 또 어떤 그림들은 건축의 구조기술과 공간형태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조감도 같은 느낌도 주었다.
갤러리에서 자세하게 본 그의 그림은 달랐다. 작품들은 구상과 추상, 회화와 디자인의 경계에 있었고, 그 안에는 낯설음과 친근함, 환희와 애상, 단순과 복잡이 뒤엉켜 있었다. 또 작가의 시선뿐만 아니라 여러 공간에서 바라본 타자의 시선들이 함께 녹아들어 예술적인 호기심도 유발했다.
다층적 시점이 녹아든 그의 작품은 자연스레 사유의 부피를 부풀렸다. 파격적인 구성과 시원시원한 화면이 주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고도산업화와 대중사회가 수많은 현대인에게 드리운 억압도 생각해보도록 만들었다. 그림의 한복판에서 타인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다.
사람들은 인간을 모두 비슷한 존재라고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생물학적인 면은 차치하더라도 인간이라는 동물이 지향하고 갈구하는 것은 별다르지 않으며, 단순하게 생각하면 자신과 별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아니다. 덩굴진 작목처럼 배꼬여 있는 것이 인간이고 인간사다. 사회구조와 환경, 또 그것의 변화에 따라 인간은 다양한 유형으로 분할된다. 하나의 머리와 하나의 생식기를 가진 한 인간조차 여러 가지 사상과 철학으로 뒤엉켜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대인들은 공통적인 속앓이를 겪고 있다. 이른바 '멘붕'현상이다.
현대인들은 타자 지향형이 돼버렸다. 자신보다 동료나 친구, 또래 등 집단의 눈치를 보고, 집단의 결정에 더욱 많은 영향을 받는다. 또 그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심각한 불안을 겪고 있다. 이것이 강한 사람일수록 멘탈은 쉽게 붕괴되고 만다.
함께 사는 사회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단 자신의 정체성 잃지 않고, 매사를 주체적으로 판단한다면 멘탈이 쉽게 붕괴되는 일은 없을 듯싶다.
민성식 작가의 작품은 공복에 들이킨 알코올처럼 찡했다.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운치와 여유, 지혜를 느낄 수 있었고, 시선과 인식이 교차하면서 나뉘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 완전히 동화되게 만들었다.
민성식&홍원석, 경계를 넘어 '경계인'
원색의 강렬함과 내러티브의 함의성이 다양한 감정의 충돌을 유발시키는 민성식, 홍원석 작가의 <경계인>전이 오는 2월 15일까지 dtc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13년 갤러리포월스에서 열린 이들의 2인전 'Over the Border(경계를 넘어)'전을 한층 발전시켜 풀어낸 것으로 예상된다.
홍원석 작가는 2008년 월간 <말>지와 <민중의소리>에서 소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