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타고 사무쳤다. 아련한 그리움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애틋한 연정이 서정적인 선율과 어우러질 때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가수 이지상이 읊고 부르는 그리움이 어렴풋하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리움 가까이에는 어머니나 자신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있었고, 멀리에는 평화로운 세상과 정의를 향한 그의 바람이 있었다.
노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콧마루가 찡해오는 그리움은 자기 성찰로 이어졌다. 이지상은 ‘당신 모습을 대못처럼 새겨 내 심장을 꾸욱 눌렀지(저물 무렵 중에서)’라며 자신에게서 비롯된 굴레를 속박했고, ‘날이 저문다고 모든 것이 저무는 건 아니니 이 완전하지 못한 세상에 휴식이 되리(황혼 중에서)’라며 마음속 다짐을 나직하게 털어놓았다.
왜 그리움이어야 할까?
가수 이지상의 5집 앨범 <그리움과 연애하다>가 발매됐다. 2006년 4집 앨범 <기억과 상상>을 낸 뒤 딱 10년 만이다. 그동안 그가 무슨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20여 년을 음악인으로 살면서 육중한 행보를 해왔던 일들을 비춰 보면 답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의 세월도 분명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지상은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고단한 세상에 희망과 위로의 씨앗을 뿌리며 살기를 원했고, 평화와 생명의 가치를 노래로 퍼뜨리는 전도사가 되길 자처했다. 지난 2010년 여름부터는 해마다 시베리아 곳곳을 여행하면서 2014년 <스파시바 시베리아>라는 책도 냈다. ‘스파시바’는 러시아어로 ‘고맙습니다’라는 뜻이다.
이지상의 5집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는 ‘그리움’이다. 이 그리움의 무게는 10년의 공백만큼이나 그에겐 간절했던 것 같다. 이지상은 그런 마음을 노래 ‘그리움과 연애하다’로 만들었고, 꼬깃꼬깃하게 접어 숨겨 둔 편지를 조심스럽게 꺼내 읽는 것처럼 ‘너를 잊은 적 없다 한시도 잊은 적 없다 가슴만 졸였었다’라며 진심을 드러냈다.
그리움은 그의 개인사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그리움의 정점에 파고들어 우리 사회의 이야기로 치환했다. 예를 들면 ‘물어보세요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가을엽서 중에서)’로 사랑의 의미를 진지하게 물었고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 만나지만 왜 그들은 왜 우리는 숲이 아닌가(숲 중에서)’로 함께 더불어 살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자성하게 만들었다.
그리움은 마냥 좋은 상상이나 가슴 벅찬 일이 아니다. 그리움은 고통도 수반한다. 그리움을 잠재울 수 없을 때는 눈물과 한숨이 앞서게도 하지만 삶에서 떨쳐내지 말아야 할 것들을 인식하도록 하기 때문에 오늘을 사는 정신을 맑게 한다. 그런 면에서 비춰보면 이지상의 노래는 약이다.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은 통증을 주지만 그 통증을 살펴보고 치유하는 과정을 스스로 경험하도록 만들어, 격렬하고 삭막한 세상을 이겨내도록 한다.
왜 그의 노래는 흡인력이 있을까?
이지상의 목소리는 한층 더 절절해졌다.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에 연연하는 마음이 목소리에서부터 감지됐다. 음색은 그리움으로 넘쳤다. 그는 무겁고 부드러운 저음과 묵직하고 달달한 고음으로 그리워하는 대상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면서 그리움에 동화되게 만들었다. ‘아픈 다리로 평생을 절으시며 없어도 다 사는 방법이 있단다 남의 돈 뺏어 먹고살지는 말아라(울엄마 중에서)’ 또는 ‘왜 그리운 것들은…서성거리다 내게로 오는지(왜 그리운 것들은 중에서)’ 또는 ‘아프단 말도 없이 한번 돌아보지도 않고 조용히 눈감고 자꾸 깊어지기만 하는(10월 단풍 중에서)’ 같은 노랫말로 아련한 향수에 빠져들게 했다.
이지상 노래의 덕목은 진심이다. 이지상은 그윽한 기운과 독특한 감수성으로 청중의 마음을 몽땅 빨아들이는 것 같지만 그 바탕에는 그의 솔직함과 정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에 발매된 5집 앨범도 다르지 않다. 떠나 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알고, 사람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알며, 낮은 곳에 서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생명의 귀중함을 알 수 있겠는가. 생각이나 말만으로 진심은 전해질 수 없다. 그의 새로운 노래들은 끈적끈적하게 귀에 달라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