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를 맛봤다. 농민으로 살아야하는 아픔을 아들에게 더 이상 물려주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서다.
한도숙 시인은 계급보다 농촌의 암담한 현실에 더욱 밀착했다. 아무래도 시인이 농민이어서 그럴 테다. 하지만 시인은 끝내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밥쌀 수입은 안된다’고 외치다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을 끌어안으면서 강요된 농정과 예속을 과감히 거부하라고 부르짖고 말았다.
그의 시를 읽는 것은 가슴에 진 시퍼런 멍울을 터뜨리는 것이다. 농촌의 현실을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그것은 모두가 투쟁의 불씨가 된다.
“읽는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면 저는 시를 쓸 자격이 있는 거로 생각됩니다. (웃음) 고맙고요. 우선 백남기 회장님의 쾌유를 빕니다. 또한 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순간에 자신이 만들어 가려고 했던 세상을 놓쳐버렸어요. 그와 그 가족들의 속 타는 이야기를 우리가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습니까. 이번 일은 그간 진행된 농업말살정책의 속내를 정권이 드러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놓고 무시하지 못하다가, 이젠 까놓고 농사, 농민을 무시하고 경멸 하고 있지 않습니까. 상징적으로라도, 정치적으로라도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공약까지 해놓고 농민을, 그것도 70고령의 순박한 농민을 생명이 위독한 지경으로 내몰고도, 사과나 위로의 말조차도 안하는 정권이 제대로 된 정권입니까? 나라가 아니라는 외침이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죠. 백남기 회장의 일은 이 나라 농사의 영결종천(永結終天)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서 툭툭 털고 일어나야 할텐데...”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행진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 시인은 그의 시집 <딛고선 땅>에서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고도 어떠한 사과나 유감조차 표명하지 않은 정부를 규탄하면서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비는 시를 남겼다.
선한 농민 백남기
백남기는 선한 농민이다
선한 농사만 지었다
악의에 찬 세상을 향해 선한 목소리는
물대포의 요란함으로 잠겨버렸다
벼 한주먹 뿌리면 선한 벼들이 선한 사람들의
명줄이 되듯
세상은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았다
분명히 우리가 빼앗긴다는 분노가 치올라왔다
내 의지는 바람처럼 저 청와대에 들리도록
소리치고 싶었던 것이다
- 시 <참 선한 바람 부는 어느 별에서> 중에서
온몸을 담그다
한도숙 시인의 시집 <딛고선 땅>이 출간됐다. <딛고선 땅>은 <며느리밑씻개>, <개불알풀꽃>에 이은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배농사를 지으면서 팔뚝질을 해대는 투사(?)를, 아니 평소 ‘의장님’이라고 불리던 어른(?)을 시인이라고 얘기하기에는 다소 쑥스럽다. 하지만 그의 시를 읽고 나자 생각이 말끔하게 정리됐다. 가슴이 축축하게 젖고, 저절로 영탄이 쏟아져 나오고, 고단한 현실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는지 골몰하게 되는 것을 보면, 그는 의장님이자 농부이면서 시인이 맞다.
시는 미술로 치면 자화상이다. 시는 은유와 함의, 환유와 중의 등으로 복잡하게 수사되지만 시인의 심상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에 어떤 문학 장르보다 ‘진솔하다’고 할 수 있다.
시집 <딛고선 땅>도 다르지 않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모두 시인이 자신의 삶과 철학을 바탕에 두고 쓴 작품이다. 하지만 그의 시는 여느 시인의 시와는 조금 다르다. 멀찍이 서서 바라보거나 한 발만 살짝 담군 현실이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몸담아 보고, 듣고, 느꼈던 농촌을 그렸다. 게다가 그는 세상이 혼탁하다고 해서 세상을 등지고 살지 않았다. 현실에서 묻고 답을 찾았으며, 그것을 다채로운 시어로 구사했다.
시인이 시집 <딛고선 땅>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일까?
“없어요. 뭘 얘기 하려고 한 것이 아니에요. 요즘 시대 누가 말하면 들어주기나 한답니까? 그것도 시어를 통해서. 전 그냥 기록하고 싶었어요. 내가 살던 시대의 농민과 농사와 그리고 그것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권력과 자본과 세상에 대해 기록하고 싶었던 겁니다. 혹 후대에 분단된 땅의 농사역사를 누가 연구 한다고 하면 그에 의해 내 기록이 참고 될 수 있으려나 해서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통탄하고 분노하며 행동으로 세상을 바구려 했지만 아직 성과는 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결국 승자의 역사가 기록 될 것인데, 승리하지 못한 자의 기록도 남겨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최소한 후대의 역사가들이 균형을 잡고 역사를 써갈 수 있다고 봅니다. 최대한 시어에 이런 역사적 위치를 집어넣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1986년 남미의 우루과이-푼타델에스테에서
미국의 대자본 음모는 시작되었다
튀어나온 뱃소리에 헛웃음 속에
음모의 소리는 묻히고
인류의 희망 새로운 세계질서를 창조한다고 했다
시간이 거듭되고 모임의 반복은
음모의 껍질을 벗고
가난한 나라들의 수탈만이 본질임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 시 <쌀개방 반대 투쟁 백서 1> 중에서
이땅의 현실을 그리다
농사를 짓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시를 짓는 일도 만만치 않다. 시를 쓰려면 풍부한 감성과 사색이 요구된다. 기교로 적어 내려갈 수 있는 글이 아니다. 한도숙 시인의 시가 딱 그렇다. 쌀 한 톨, 사과 한 개, 배추 한 포기도 천금으로 간주하는 고마움과 절실함에서 시는 출발했고, 이런 감정들을 모아모아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어로 창작했다.
그뿐인가. 시인이라면 뭔가에 최선을 다해 행동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시는 읽는 이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그의 시는 분명 마음을 움직였다. 농민의 생존권을 위한 외침이 정치 투쟁의 최전선에 설 수밖에 없는 현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가능한 시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시는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교조적인 글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시인은 시를 쓰면서 기도 막히고, 울분도 토하고, 가슴도 아프고 그랬을 것이다. 읽는 입장에서도 가슴이 먹먹했는데, 창작자의 고통은 말해 무엇하겠나,
“사내자식이 눈물도 참 많다. 여기저기서 그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래도 나도 사내니 울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울음이 나오는 걸 어떡합니까? (노래) 농민가만 불러도 몸이 부르르 떨리고 성명서를 낭독 할 때면 가슴이 메어집니다. 쉽게 흥분하지 않는 냉정한 성정이라고 생각하는데도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분노하거나 환호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시를 쓰면서 기가 막힌 것이 아니라 기가 막히고 울분이 터지니 그것을 시로 남기는 거죠. 어렸을 때부터 세상이 평등하지 못하다고 느꼈고, 특히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런 걸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선지 세상에 대한 분노가, 농정에 대한 분노가 세상을 바꿔보자는 분노로 올라섰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분노가 식지 않고 있고요.”
한도숙 시인은 수백 편의 시를 창작했다. 그중에서 시인의 가슴에 진하게 남아 있는 시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대답은 다소 겸손하게 돌아왔다.
“내 시는 아직 없어요.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가 좋더라고요. 저는 꼭 굳이 들으라 한다면 2006년 전용철 열사 추도시를 들고 싶습니다. 당시 전용철은 바로 나였고 현장에서 피를 흘린 우리농민들이었습니다. 자연히 나의 고통을 ,나의 삶을, 나의 혁명을, 나의 역사를 형상화 할 수 있었으니까요. 전용철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며 우리농민들의 죽음이었던 거죠. 특별히 보령 농민회관 마당에 있는 전용철 추모흉상 아래 시가 각인돼 있어서 더욱 애착이 가는지도 모르지요.”
거친 땅위에
갈라진 손바닥은
누구의 것이더뇨
시린 아스팔트위에
피론 물든 몸뚱인
누구의 것이더뇨
거친 숨 몰아쉬는
조국의 아픔앞에
아름다운 꿈을 꾸던 청년
전용철
식민지 이 땅에 태어나서
뿌리뽑힌 농민으로 살며
수탈의 한 포기 나락을 거두던
거친 손길로 식량의 자주를
외쳐 부르던
순박하고 가난한 그러나
아름다운 농부여!
열사여!
그대 피묻은 옷자락
봄오면 진달래 꽃으로
이 땅 천지에
피어나리라
부디 고이 잠드시라
- 아름다운 농부 전용철 추모시 전문
땅을 딛고 일어서라
젊음은 일흥과 도취에 젖어 살게 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이타적인 젊은이도 있고, 자신도 언젠가는 늙고 병들어 죽는 줄 아는 현명한 젊은이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갈 곳을 잃고 방황하기도 하고, 세상 탓을 하며 한숨만 쉬는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돈도 많이 벌면 좋겠지만 모두 다 그렇게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살면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삶이 어떻게 전개되던지 최선의 것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한도숙 시인은 올해 환갑을 맞았다. 고단한 젊은 시절을 지나 이 땅의 현실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온 날들이었다. 시인이 이 땅의 젊은이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꼭 있을 듯싶다.
“딸아이가 직장에서 죽도록 일하지만 월 80만원 받는 친구가 외롭고 쓸쓸해 한다며 위로해줬다고 해서 한마디 했어요. 위로도 좋지만 그런 구조적인 틀에서 빠져나오는 게 중요한 거 아냐? 닭이 닭장에서 주어지는 먹이에만 집착하면 결국 잡아먹히는 것 아니겠니? 그걸 거부하고 닭장을 부셔버리면 밖으로 나가 먹이를 찾게 되고 자유를 찾게 되는 거 아니겠니? 하고요. 요즘 청년들이 의기소침한 부분이 있어요.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말이 청년들을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힘을 빼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기성세대가 모든 걸 해치워 먹어 버린 상태에서 너희들이 살아갈 구멍은 분명히 있다고 강조하는 건 미안한 이야기죠. 그렇다고 청년들이 살아나갈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기성세대가 살아온 방법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하고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겁니다. 무한경쟁이 아니라 함께 같이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농사도 한 분야지요. 근본으로 돌아가는 삶이 농사입니다. 생명을 만들어가는 농사야 말로 새로운 세대의 화두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민중의소리>독자들을 위한 덕담도 잊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잘 못된 세상이 분명합니다. 뛰어놀며 자라야 하는 어린 아이들이 스스로 학원으로 학교로 다니고 있습니다. 이들이 무얼 배웁니까? 남을 딛고 저 혼자만 올라가서는 걷어차 버리는 무한경쟁을 배웁니다. 무한경쟁은 많은 사람이 상하는 구조입니다. 일회용 종이컵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노동의 신성함이 사라진 사회가 정상일리 없습니다. 정상적인 사회를 희망 한다면 닭 모이를 거부하고 닭장을 뛰쳐나가야 합니다. 모든 억압, 속박과 굴레를 거부해야합니다. 그래야 인간성이 회복되는 올바른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동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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