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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2008년 촛불정국 한복판에 선 사나이, 책 ‘박상표 평전’을 읽고
박상표 평전
박상표 평전ⓒ민중의소리

임은경 기자의 첫 번째 책 <박상표 평전>은 우선 흥미로웠다. 필력과 열정 없이 쓸 수 없는 평전을 처녀작으로 과감하게 써내서 그랬다. 수년간 축적된 ‘글쓰기 숙련’과 끝없이 추적하고 집요하게 고민하는 ‘기자 근성’이 없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이 책은 여느 평전과 다르게 흡인력이 있었다. 한참을 숨죽이며 읽게 만들었다. 한 인물을 향한 묵직한 존경과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면 읽는 이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이 책은 독특한 감수성과 끈적끈적한 집요함으로 무한한 집중력을 선사했다.

<박상표 평전>은 2014년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박 국장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른바 ‘광우병 촛불정국’을 만들어낸 장본인 중 한 명이다. (이 과정은 평전에도 잘 기록돼 있지만) 저자는 박 국장의 일대기를 통째로 상세하게 기록했다. 어렵게 유족을 만나 알게 된 박 국장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과 재협상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던 일까지, 이와 함께 무엇이 그의 삶을 갉아먹고 유린했는지도 조심스럽게 다뤘다.

한 인간의 삶을 글로 옮겨내기란 쉽지 않다. 특히 깊은 슬픔으로 점철된 죽음의 역사를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작업은 부담감과 피로감이 상당하다. 슬픔과 애상에 젖어 떨리는 목소리, 북받쳐 오르는 결별의 아픔과 두꺼운 비애를 글로 묵새기는 시간은 통증 그 자체다. 아마 임은경 기자도 이 책을 위해 많이 앓았을 것이고, 적지 않은 시간 또한 투자했을 듯싶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머리말에서 “타인의 삶의 흔적을 따라가 보는 일은 재미도 있었지만, 그 못지않게 나를 돌아보는 배움의 시간이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박상표 평전>은 머릿속에 쉽게 감겨 들어왔다. 머리말을 읽는 순간부터 박 국장의 인간됨에 대한 기대와 지독한 답답함 같은 감정이 교차하면서 엄습했다. 한마디로 ‘자근자근(박상표의 고향 여수의 사투리로, 머리가 쑤시듯 아픈 느낌)’ 했고, 이런 ‘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기억돼야 한다는 바람이 싹텄다. 가슴에 따뜻한 불씨를 지펴준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를 향한 미안함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고마움 같은 것이 저자의 글 속에서 눈에 보이듯 읽혔다. 형식적으로도 꼭지마다 완결성이 돋보여 어느 부분부터 읽어도 무리가 없었고, 그때 그 시절을 추적해 그려내는 글솜씨는 읽은 사람이 박 국장의 옆에 서 있는 것처럼 가까웠다.

평범한 독자가 아니라 저자를 잘 아는 입장이라 그럴 것이다. 언제나 자기성찰을 통해 일상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반성하려 했던 성격은 글에 진정성을 담았다. 대량생산과 산업화, 기계화에 점점 매몰되는 우리 사회에 가졌던 문제의식은 박 국장의 열정에 진심으로 감화했으며, 여러 매체에서 글을 쓰고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던 경험은 박 국장의 다양한 활동과 관심 분야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다.

아울러 이 책은 평전이라는 다소 딱딱한 형식의 저작이지만 저자의 말투와 감정선이 그대로 느껴져 박 국장의 삶을 섬세하게 훑어 나가도록 도왔다. 좀 더 부드럽고 편안하게 읽히는 평전이 독자들을 위해서는 좋다고 생각한다. 평전이란 쓰는 사람이 만족하는 것보다 읽는 사람이 배우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무감을 갖고 무겁게 기록한 평전 또한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는 무엇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없겠다.

부조리에 대항한 시민과학자 ‘박상표 평전’ 구입하기

<박상표 평전>은 총 12부로 구성돼 있지만 크게 보면 2부분으로 나뉜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이 그 기점이다. 전반부는 박 국장이 각성과 의기를 세운 시절의 이야기다. 수재로 불렸던 어린 시절,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하고 문화유산 답사에 빠졌던 청년기가 이 부분에 해당된다. 후반부에는 경실련과 참여연대를 시작으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에 몸을 담그면서 벌어졌던 수많은 활약상이 기록돼 있다.

시대에 영향을 미쳤던 인물은 범인과는 다른 게 있다. 박 국장의 삶도 왜 그렇게 치열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 책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강직했던 성격과 건강한 비판정신, 지적 탐구욕,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이타심, 일과 공부를 향한 열망이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다소 의외다. 죽음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가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결했다. 수많은 학생과 노동자는 사회 변혁의 디딤돌이 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기업인들은 한강에 몸을 던졌다.

박 국장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박 국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더욱 안타까웠고, 죽음의 원인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는 법도 없었고, 우울증을 앓은 적도 없었고, 생활고로 걱정한 적도 없었고, 늘 의욕과 열정으로 넘쳤던 성품을 아는지라 그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더욱 큰 충격을 안겨줬다.

저자는 유족과 지인의 얘기로 죽음의 원인을 살며시 유추했다. “워낙 강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의 삶이 어떤 원칙에서 벗어난 것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앞으로의 희망이 보이지 않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좌절되거나, 이런 것에서 상처를 받는 사람이다.” 구구절절 들어보면 이내 가슴이 먹먹해지고 마는 이야기다.

저자는 바란다. 이 평전을 통해 수의사이자 시민과학자, 한미 FTA와 광우병 정국의 한복판에 섰던 인물뿐만 아니라 인문학자이자 이타주의자로서의 면모다. 박 국장은 문화유산을 답사하면서도 “노역에 동원됐던 그 시대 백성들의 땀과 눈물을 떠올렸”고 “그가 탐구하던 과거의 역사 속 이야기든 현재의 대한민국이든,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깊은 애정과 연민을 가졌고,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그들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박상표 평전 출판기념회

일시:2016년 2월 26일 금요일 오후 7시
장소:통인동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이동권 기자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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