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나뉜 밭에 파릇파릇한 잔디가 호방하게 펼쳐져 있었다. 각기 다른 품종의 잔디를 식재해 연구하고 실험하는 잔디 시험포지였다.
잔디밭의 상태는 각양각색이었다. 잔디밭에서는 어떤 시기에 잔디를 심어야 가장 적정한지, 잔디를 떠낼 때 어느 정도 깊이로 떠내야하는지, 잔디를 깎을 때 얼마만큼 잘라야 하는지, 실험한 상황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험포지에는 여러 품종의 잔디가 동일한 조건에서 키워지고 있었다. 이곳은 잔디밭 특유의 청량한 기분을 느끼게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잔디의 품질은 떨어져보였다. 관리조차 하지 않아 잡초가 군데군데 자랄 정도였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 수 있었다. 잔디 고유의 특성을 보기 위해 영양제나 제초제를 치지 않아서였다.
시험포지에서 자라는 수많은 잔디 중에서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 잔디가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다른 잔디와 구별될 정도로 알차고 야무진 잔디였다. 손으로 만져보니 스프링 쿠션처럼 탄력이 대단했다. 이 잔디는 삼성식물환경연구소에서 개발한 고품질 잔디 ‘그린에버’였다. 그린에버 개발에 참여한 태현숙 박사는 ‘품종이 우수한 잔디’라며 고개부터 끄덕였다.
“그린에버는 녹색 기간이 늦게까지 지속돼요. 단단하고 촘촘해 잡초나 병해 감염도 많이 줄일 수 있죠. 지금까지 조사한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그린에버는 병해에 강해요. 병이 오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세포벽이 두꺼운 잔디의 특징이 아닐까, 1차 방어벽이 튼튼해서 병원균이 덜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건 좀 더 연구를 해봐야 알 수 있어요. 그린에버를 깔면 제초 비용도 일반 중지(한국형 잔디)의 반밖에 들어가지 않아요. 밀도가 높다 보니까 잡초 발생량도 많지 않고요. 농약 사용량을 절감할 수 있는 친환경 잔디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린에버는 엽 폭도 좁고, 엽 폭이 좁은 잔디 중에서 번식이 좋은 편이에요. 엽 폭이 좁은 잔디는 퀄리티가 높은 그룹의 잔디에 속하죠.”
장성에서 그린에버를 키우는 농민들은 그린에버의 품질이 좋은 것은 인정하지만 제초제에는 약한 측면이 있다고들 말했다. 태현숙 박사에게 의견을 묻자 ‘무조건 농민의 얘기가 맞다.’고 맞장구친다.
“직접 재배한 농민의 말씀이니 당연히 맞죠. 장성중지는 줄기가 굵고, 잎이 넓기 때문에 제초제에 대한 저항성이 높아요. 연구소에서는 그린에버가 중지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은 민감할 수 있어요. 더 강한 잔디를 개발하도록 노력해야겠죠.”
그린에버는 안양중지와 동래고려지의 장점을 모두 지닌 잔디를 보급하기 위해 2015년 처음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첫경험은 늘 불안한 법이다. 농민들은 낯선 품종인 그린에버를 처음 키우면서 반신반의했다. 태현숙 박사는 잔디 재배농가들과 지식을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이 문제를 돌파했다.
“처음에 그린에버가 번식이 잘 되지 않아서 농민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연구소가 실험한 자료를 장성 쪽에 공유해 드렸죠. 농민들이 연구소에서 실험한 사진을 본 다음에 많이 안심을 했어요. 작년에 장성 잔디재배 농가들과 계약하고 서로 신뢰관계가 형성이 되면서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고 있어요.”
삼성식물환경연구소 연구진들은 그린에버를 개발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잔디에 대한 편견과 개발 과정의 특성 때문에 더욱더 힘겨운 시간이었다.
“처음 잔디를 개발할 당시만 해도 잔디의 용도가 묘지, 골프장 정도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잔디를 연구하는 것에 대한 편견이 많았지요. 인터넷도 발달돼 있지 않아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없었고요. 하나하나 찾고, 만들어나가야 되니까 굉장히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지요. 또 잔디는 교배를 하든, 개발을 하든, 발굴을 하든 조그만 개체 하나로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어요. 굉장히 큰 잔디밭이 형성이 돼야 저 잔디가 좋은지 나쁜지 평가할 수 있거든요. 잔디를 선발하더라도 가치를 알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의 투자가 필요했어요.”
태현숙 박사가 바라보는 그린에버의 전망은 밝다. 그린에버가 우리나라 기온 상황에 가장 적합한 잔디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강하다. 전자동 카트가 오가는 통로와 갤러리들이 쉴 수 있도록 놓인 벤치를 둘러싼 연둣빛 잔디밭, 퍼팅을 날리는 골프 그린에 그린에버가 깔릴 날이 멀지 않았다.
“그린에버가 매우 좋다고 생각해서 상품화하려고 해요. 잔디 재배 농가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고요. 그린에버는 양잔디에 비해 농약사용량은 30~50% 줄일 수 있고, 관리비용도 적어요. 우리나라 기후가 온난화가 되고 있어요. 한국 잔디는 고온이 될수록 잘 자라는 특징이 있지만 양잔디는 그런 기온에 굉장히 취약하고, 병도 많이 와요. 생리장애로 잔디가 주저앉기도 하죠. 골프장이 아니더라도 축구장이나 고급 조경지역의 잔디가 기온 변화 때문에 손실을 일으킬 수 있어요. 그린에버가 손실 비용을 줄이는데 많이 기여할 거예요.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 추세니까 앞으로는 훨씬 더 좋아지지 않을까 전망하고 있어요. 새로 조성되는 골프장에 서양잔디 대신 그린에버를 식재하는 게 가장 베스트라고 생각해요. 최근 일부 골프장들이 서양잔디가 관리비용도 많이 들고 한국 기후에도 맞지 않아 퀄리티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교체하고 있어요. 그럴 때 그린에버를 쓰면 좋겠지요. 서양잔디보다 고온에 강하고 추위에 약하니까 따뜻한 지역 위주로 도입하면 좋을 것 같아요.”
태현숙 박사는 오랫동안 잔디를 개발하면서 바람이 생겼다. 농민의 마음을 읽어야만 잔디 산업의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농민들 바람대로 그린에버보다 품질과 성능이 향상된 품종들이 많이 연구돼서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희 연구소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겠고요. 그리고 국가에서 잔디를 연구하는 체계가 확고하게 잡혀있지 않아요. 연구하는 조직이 있긴 하지만 규모가 크지 않고,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죠. 국가에서도 잔디가 농민들에게 꼭 필요한 작물이라는 것을 인정을 하고 정책적인 지원을 많이 해주면 좋겠어요.”
이동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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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삼성식물환경연구소와 그린에버 잔디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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