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는 분명 창작자가 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유저들이 즐겨 보고, 듣는 모든 콘텐츠에는 주인이 있고, 그 주인에게 보람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주인 행세를 통신사와 포탈이 하고 있다. 단순하게 마진을 떼 가는 게 아니라 창작자에게 불리한 시스템을 구축해놓고, 그것이 마치 정상인 냥 딴청을 부리며 자기 주머니만 채우고 있다.
대한민국 IT산업의 발전과 양질의 콘텐츠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고쳐야할 지점들을 요목조목 짚어낸 책이 나왔다.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 당시 국정원의 디지털증거 조작을 밝히고, 세월호에서 인양된 휴대폰과 CCTV를 복구한 바 있는 디지털포렌식전문가, 김인성이 써낸 <창작자의 나라>다.
이 책을 보면 머리가 뒤숭숭해진다. 정부가 ‘IT강국 대한민국’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말들이 무색해진다. 머리가 뒤숭숭해진 이유가 꼭 IT산업이 굴러가고 있는 진실과 마주한 쇼크 때문만은 아니다. 아예 진실을 몰랐다면 ‘그래서’라고 핑계를 대고 말겠지만 알아버렸으니 고쳐야 한다. 그 상당한 중압감이 머리를 짓누른다. 한편으로는 저자의 주장이 현실에 반영되길 바라는 희망도 동시에 솟구친다.
충분히 현실 가능한 제언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희망 사항’에 그치지 않는다. 충분히 우리 사회에 적용해 원천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이다. 단지 결단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어쩌면 자본의 이익 추구에만 힘을 몰아주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던 박근혜 정부에서는 불가능한 일일 수 있었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변곡점에 이른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시사했고, 이 사건이 세간에 던진 충격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밑바탕을 바꿔야한다는 인식이 형성되면 십분 가능한 얘기다.
저자는 어느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겠지만 어느 누구도 깊게 통찰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지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한국에서 창작자로 살아가는 것이 왜 이토록 힘들까?’, ‘창작물을 만들어도 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할까?’, ‘어떻게 하면 한국의 창작자들이 제대로 대우 받을 수 있을까?’ 질문의 답은 의외로 먼 곳에 있지 않다. 이 책의 목차에 ‘재벌, 통신사, 포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부터 저자가 찾은 해답은 감이 잡힌다. 창작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 경제 시스템의 모순 구조에서 파생된 건 아닐까 의문이 들면서 책은 쉽게 쭉 읽힌다.
저자는 질문들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랫동안 거대 기업에 가위눌린 상태로 지내왔다. 이를 테면 저자가 통신사의 횡포에 분노하는 IT 종사자들에게 ‘함께 힘을 합쳐 통신사를 규제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대부분 ‘꿈같은 이야기’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통신사를 절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으로 생각했던 것. 창작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저자가 ‘포털이 검색수익을 분배하게 만들자.’고 제안하자 창작자들은 솔깃해하면서도 실현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한심한 대한민국의 인터넷 현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저자는 취재를 하면 할수록 이 사회의 절망적인 단면을 봤다. 하지만 먹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한 줄기 빛처럼 기적이 찾아왔다. 국정농단을 일삼은 대통령이 탄핵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 저자는 이번에야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책 내용에 대한 불만족도 꿈틀됐다. 저자는 ‘책을 쓰기 시작할 때는 나라가 망해가는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책을 다 쓰고 나니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바뀌었다.’면서 책을 쓸 때는 ‘실현가능성이 없는 이상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검열을 해야 할 정도였으나, 바뀐 세상에서 다시 읽어보니 좀 더 용감한 주장을 펼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소회를 밝힐 정도였다.
저자는 이 책에 쏟아낸 자신의 주장이 약하지 않은지 아쉬움을 표하지만 사실 이 책은 절대로 가볍지 않다. 저자는 ‘재벌, 통신사, 포털들은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수익 잔치를 벌이는데, 창작자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면서 ‘통신사의 횡포를 막아 인터넷 공정성을 회복하고, 포털이 창작자와 콘텐츠 수익을 나누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법과 제도 바꾸는 바탕 제시
<창작자의 나라>는 인터넷의 길목을 장악하고 모든 수익을 빼앗아가고 있는 통신사의 문제점을 파헤친다. 아프리카TV는 망해가고 있는데 왜 유튜브는 해마다 성장하고 있는지, 여태까지 한국의 동영상 업체가 어떻게 망했는지, 통신사가 외국 동영상 업체에게 왜 무제한의 무료 서비스를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면서 망해가는 한국 IT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통신사 국유화가 왜 필요한지 그 명확한 근거를 제시한다.
아울러 이 책은 유료 검색 광고 수익을 검색 기여도에 따라 창작자에게 분배하도록 하는 현실적인 방안도 제시한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인터넷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통신사뿐만 아니라, 창작물로 인한 수익을 뺏어가는 인터넷 포털도 악당인 것은 마찬가지. 콘텐츠가 있기 때문에 포털이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으므로 포털의 광고 수익을 콘텐츠 창작자와 나누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국민이 주권자로서 등극한 새로운 대한민국은 창작자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창작자의 나라는 생산자가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고, 창작자들이 창작 행위에 전념할 수 있는 나라, 다시 말하면 창작자가 단결한다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책은 통신사의 국유화, 광고 수익 분배 문제를 공론화 시켜,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도록 만드는 주춧돌 역할을 할 것이다.

이동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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