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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나와 나의 행복을 찾는 시간, 김욱동 ‘그리스인 조르바’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가 번역한 그리스인 조르바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가 번역한 그리스인 조르바ⓒ민중의소리

“나는 감히 용기를 낼 수 없었다. 한밤중에 말처럼 힝힝거리며 조르바가 나에게 거북이 등처럼 편안한, 신중한 습관의 껍데기를 깨고 멋진 모험을 떠나자고 소리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나는 몸을 떨기만 할 뿐 조금도 마음의 동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의 영혼은 극도의 광기가 -삶의 본질이- 부추기는 행동을 감히 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나는 살면서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카잔차키스가 조르바를 쓰면서 내뱉은 독백 중 한 대목이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현대인을 각성시키는 조르바

김연수 소설가를 만났을 때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조금도 망설임없이 10권의 책 제목을 줄줄 읊었다. 그중 하나가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준다는 것.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사람들의 편애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왔다. 이 책은 1946년 처음 발간될 당시나, 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이나 여전히 전 세계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김연수 소설가의 설명과 다르지 않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원숙한 정신세계란 무엇인지, 현실의 고통과 당당하게 싸울 수 있는 힘은 무엇인지, 나는 과연 나답게,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식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이성과 합리, 질서만을 강조하면서 현실을 외면하고, 또 윤리나 종교처럼 '안정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세워 놓은 모든 장벽'에 자신을 가둬 놓고 살아왔다고 반성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작은 일조차 남의 눈치를 보며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굴레에 갇혀 버리거나 쓸데없는 걱정을 떠안고 사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어떤 사람들은 무형의 형틀에 자신을 묶어 놓고 매질도 서슴지 않는다.

조르바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불행한 일이다. 먹고살기 위해서만 일을 하고, 걱정거리가 있을 때만 술을 마시고, 사람들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하면서 남탓만 하고 살면 자기 삶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런 사람들에게 헛된 불만과 욕망으로 소비했던 시간들을 반추해보는 기회를 준다.

특히 관습적인 성공에만 매몰된 삶은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조르바는 누구나 우러러보는 자리에 오르고, 부를 축적하는 것만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단순하게 즐기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가슴 깊이 느끼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타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가짐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우치게 한다. 과도한 자본주의에 매몰돼 살아가는 우리가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이유다.

김욱동 교수가 내놓은 '그리스인 조르바', 뭐가 다를까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고, 그에 따른 부작용이 서서히 도래할 즈음.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눌 때였다.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를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인문고전이 중요하다고 침을 튀어 가며 강조했다. 스마트폰 안의 세계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걱정이 들었던 것이겠다.

김 교수는 "자칫 잘못하다가는 전 국민이 '디지털 치매'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했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철학, 역사, 과학, 예술, 문학, 종교 등 다양한 지혜가 녹아 있는 인문고전을 통한 내적 성장이 발맞춰지지 않으면 암울한 미래가 도래할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이었다.

최근 김욱동 교수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해 내놓았다. 평소 인문고전을 강조했던 그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행보다.

한편으로는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언제나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해 왔던 김 교수에게도 조르바의 삶은 뭔가 반향이 있었던 듯싶다. 축적된 지식들을 독자들과 공유해 왔던 그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해서 내놓았으니 말이다.

김욱동 교수가 내놓은 ‘그리스인 조르바’는 여태까지 출간된 책과 결이 다르다.

우선 김 교수는 홍정아 번역가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사람은 많지만 끝까지 완독했던 사람은 드물었던 문제'를 해결했다. 맛깔스러운 문체와 현대화로 가독성을 높여 소설로서의 재미를 되찾게 했다.

아울러 잘못된 정보와 실수로 왜곡됐던 ‘조르바의 의미도 재확립’했다. 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에서 출간된 ‘그리스인 조르바’의 번역본은 대부분 1952년 칼 와일드먼의 번역서를 저본으로 삼고 있다. 이 번역본은 그리스어를 프랑스어로, 프랑스어를 다시 영어로 옮긴 것을 번역했기 때문에 축소, 과잉, 오역의 실수가 있었다. 그래서 김 교수는 2014년 출간된 피터 빈의 번역본을 저본으로 삼으면서 와일드먼의 번역본까지 참고했다.

(와일드먼 번역본의 오류를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과 제목이 원작과 다르게 표기돼 현재에 이르렀다. 주인공의 원래 이름은 ‘알렉시스 조르바스’지만 영어 번역본이 출간될 때 '알렉시스 조르바'로 옮겨지면서 '조르바'가 일반화 됐다. 김 교수는 이번에 낸 책 또한 국내 정서을 반영해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제목을 달긴 했지만 그 의미만큼은 세세하게 책에 소개하면서 제대로 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이동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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