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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분노와 선동과 투쟁의 추모시를 새긴다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안화력발전 24살 비정규직 故 김용균님 촛불추모제에서 참석한 시민이 묵념을 하고 있다. <br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안화력발전 24살 비정규직 故 김용균님 촛불추모제에서 참석한 시민이 묵념을 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한 번도 속 썩인 적이 없는 아들, 착한 아들을, 죽였다
스물넷 나이 피 뜨거운 팔팔하고 창창한 우리의 아들을 죽였다
누가 죽였는가 누가 죽였는가라고 이 주검 앞에 깨달으려하지 말고 묻지 말라
깨달을 여지조차 없고 의심할 필요조차 없다. 살인자는 명명백백하노니
아들의 주검 앞에 너도 죽고 나도 죽고 우리 모두 함께 죽었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이 나라도 죽고 세상도 죽었다
자본, 권력, 정권, 정치가 결탁 합세한 살인놀음에 죽임을 당했다

이 마당에 슬픔이 남아 있는가 눈물이 남아 있는가
이 마당에 어인 슬픔과 눈물의 추모시란 말이냐
아아 나의 추모시여 무어라 시를 써야 하느냐
인간이 있고, 인간답고, 삶이 있고, 사랑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자본만 있고, 기계만 있고, 정치만 있고, 그들의 놀음판만, 가득하여
가슴 도려내는 슬픔과 눈물의 추모 시마저 설 자리가 없다
하여 그 자리에 분노와 선동과 투쟁의 추모시를 새긴다

서부발전태안화력발전소 운송설비점검 김용균 비정규직 외주노동자여!
엄마는 아들이 죽임을 당한 곳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살펴보고 말문이 막혔다
감당할 수 없는 작업량과 열악한 환경이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이런 곳에 우리 아들을 맡기다니 이런 곳으로 우리 아들을 보내다니 끔찍했다
이렇게 열악하고 무서운 곳에서 일한다고 생각을 못했다
분탄가루 날리는 좁고 어두운 곳 6킬로미터 구간작업을 혼자서 해야 했다니
그냥 걷는 것도 힘든데 낙탄을 치우며 가야 했다니
좁은 통로 물웅덩이 사이 곡예 하듯 움직여야 했다니
고속 회전체 살인 병기 700m의 기나긴 컨베이어 벨트를 기어서 넘나들었다니

플래시를 켜야 겨우 뿌옇게 보이는 앞 공간
그 안에 머리를 집어넣어 석탄을 꺼내야 하는 곳
벨트에 이물질이 끼었는지 상체를 깊숙이 집어넣어
기계를 살펴보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곳
천장이 낮아 엉금엉금 설설 기어가야 하는 곳
작업복 깃이 벨트에 물리면 빨려 들어가 죽어갈 수밖에 없는 곳
기계의 부속품 소모품이었더란 말이냐
이 노동자가 죽고 나면 저 노동자를 채워 넣고
반복으로 열두 명의 노동자를 죽인 곳

홀로 현장 점검을 위한 순찰 업무를 해야만 했던 너는 외주비정규직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되었다
죽은 시간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
머리는 이쪽에, 몸체는 저쪽에, 등은 갈라져 타 버린 채 벨트에 낀 주검
정규직도 필요 없으니 죽지만 않게 해 달라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라는 피켓을 들고
안전모와 방진마스크를 쓴 인증사진 속 진지한 너의 눈빛!

단호하구나 단호하게 분노하고 선동하는구나
정규직화 해 달랬더니 다수의 경쟁 외주 처 만들어
허울 좋은 가짜 정규직으로 고용하게 하는
외주처간 경쟁을 부추겨 기존의 비정규직 보다
열악한 작업조건과 임금 작업환경으로 내몰아
젊디젊은 생목숨 빼앗아가는
자본, 권력, 정권, 정치에 맞서 투쟁하라!
민주노총이여!
정규직노동자여!
비정규직노동자여!
외주노동자여!
하청노동자여!
시간제노동자여!
변형근로제노동자여!
이 나라 이 땅의 모든 노동자여!
한 몸 되어 함께 투쟁하라!
단결 연대 투쟁하라!
피터지게 투쟁하라!
자본과 권력 정권 정치를 위해
기계에 끼여 피 터져 죽느니
사람다운 세상을 위하여
인간다운 세상을 위하여
차라리 피터지게 투쟁하다 죽자
죽어, 토실토실한 감자알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씨감자가 되자 그 길을 위해 상처를 입자
상처도 혈서를 쓰듯 새끼손가락 하나 깨물어
피만 조금 내는 그러한 조그마한 상처가 아니라 적어도 두서너 번은 성한 몸뚱이 온전히 절단 당하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자상처 입은 몸 미련 없이 푹 썩히어 새싹을 틔우고 새 줄기를 내리고
끝내는 새 감자알을 키워 나가는 감자밭 이랑에 비로소 묻히자 
노동이 더불어 모두 함께 사는 길은 오직 그 길 투쟁뿐이다
라고

단호하게, 분노하고 선동하는구나!

시인약력

정세훈 시인, 인천민예총 이사장 연임
정세훈 시인, 인천민예총 이사장 연임ⓒ민중의소리

정세훈 시인은 1955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했으며, 17세 때부터 20여 년간 소규모 공장을 전전하며 노동자 생활을 하던 중 1989년 '노동해방문학’, 1990년 ‘창작과 비평’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 ‘손 하나로 아름다운 당신’, ‘맑은 하늘을 보면’, ‘저별을 버리지 말아야지’, ‘끝내 술잔을 비우지 못하였습니다’, ‘그 옛날 별들이 생각났다’,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 ‘부평 4공단 여공’, ‘몸의 중심’ 등과 시화집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장편동화집 ‘세상 밖으로 나온 꼬마송사리 큰눈이’, 포엠에세이집 ‘소나기를 머금은 풀꽃향기’ 등을 간행했다.
2018년 노동자 민중들의 아프고 핍진한 삶을 담아 낸 <아프지 말라> 기부금 마련 순회 시화전을 인사동과 충남 홍성, 인천 등에서 가졌다. 시화전에는 52명의 시각 예술가들이 시인의 시로 작업한 시화 56점이 전시됐다. 현재 2019년 2월17일까지 3개월간 부평역사박물관에서 기획전시 중이다.
인천작가회의 회장, 박영근시인시비건립위원회 위원장, 리얼리스트100 상임위원(대표), 한국작가회의 이사, 제주4.3제70주년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 한국민예총 이사장 대행, 소년희망센터건립추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인천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공동준비위원장,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 운영위원, 소년희망센터 운영위원, 위기청소년의좋은친구어게인 이사, 인천민예총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borihanal@hanmail.net

정세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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