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등산할 때 종아리에 힘을 주고 땅을 꾹꾹 밟으며 오르곤 한다. 어지러이 널려 있는 야생화 사이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버릇이다.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피붙이가 없거나 올데갈데 없어 외로운 게 아니다. 가난한 사람에겐 구휼이 필요하듯이 허위허위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타인의 발자국은 힘이 된다.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을 보면서 '저까짓 것쯤은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의지가 샘솟는다. 그렇다. 힘든 게 외로운 거다.
목마른 사람들은 갈증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산다.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는 게 나쁜 것도 아니고, 매사에 충실한 것은 미덕 중 으뜸이다. 그러나 인간성 위에 서지 못하는 삶의 투쟁은 외로움을 부른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인간성도 파괴하고 타인의 삶도 갉아먹는다. 이지상의 노래는 여기에 여지없이 드러냄표를 단다. '새의 날개는 대신 달아주지 않는다.' 나름 해석하자면 세상사는 모두 마음 먹기에 달렸다, 진정한 '열심히'는 '열심히' 이후에 얻어지는 결실에 욕심내지 않아야 한다, 분단조국의 현실은 남북이 자주적 의지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외로움과 마주서게 만드는 뮤지션
가수 이지상의 6집 '나의 늙은 애인아'가 발매됐다. 5집 '그리움과 연애하다' 이후 5년 만이다. 이지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게 없다. 인간과 사랑 그리고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똑같이 6집에 녹여냈다. 다만 달라졌다면 12번의 시베리아 기행을 떠나면서 깊어진 사색이다. 오랫동안 민중과 함께 했던 삶과 시베리아 곳곳을 누비면서 얻은 혜안이 최광림, 박일환, 채광석, 김진경 등의 시와 어우러지며 꽉 찬 50여 분의 서사를 아름다운 목소리로 집대성했다.
이지상의 6집 앨범은 도돌이표 같다. '삶에 낙관을 가지고 역사와 시대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순하고 뜨겁게 늙어 가자'는 격려로 시작해 똑같은 조언으로 귀결한다. 6집 타이틀곡 '나의 늙은 애인아'는 담백하고 힘찬 목소리로 '우리 모두 아름답게 늙어가자'며 용기를 북돋운다. 그 다음 노래 '보드카'로 한껏 흥을 돋우다 자신의 소회와 우리 사회의 회명들을 겹겹이 털어놓는다. 시베리아 여행의 감회부터 4.27 판문점선언의 감격, 제철소 용광로에서 실족한 청년의 이야기, 나와 나의 언약, 통일조국에 대한 염원까지 가슴 절절한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가슴을 가득 적시는 위로를 선사한다. 그리고 다시 타이틀곡 '나의 늙은 애인아'로 이어진다. '삶에 낙관을 가지고 역사와 시대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순하고 뜨겁게 늙어 가자.'
이지상이라는 뮤지션은 외로움과 마주서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등산길에서 보았던 누군가의 발자국처럼 가슴이 다 타버린 사람들에게 그래도 웃음을 띠며 의미있게 살아보자고 힘을 준다. 참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최근 이지상의 6집 '나의 늙은 애인아'와 함께 그가 선사한 감동은 책 '여행자를 위한 에시이 北'이다. 북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도 배울 게 많고, 그곳에 대한 호기심과 그리움을 갖게 만드는 저작이다. 한편으로는 이 책을 보면 인간 이지상의 가슴속에 어떤 소망이 담겨 있는지 금방 눈치채게 된다. 그 소망은 비밀(?)이다. 책으로 만나보길 바란다. (스포일러지만 이 책에서는 그가 노래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이동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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