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10년, 현재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두고 혼란이다.
당초 계획했던 ‘40년 안에 원전 부지를 녹지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은 점차 불가능한 계획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는 심각한 방사성 오염 물질들이 발견되고, 10년간 3000만명을 투입한 제염작업에도 후쿠시마 일대 오염지역이 좀처럼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바뀌지 않으면서다.
일본 내 원자력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제 정부도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리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방사선 피폭 허용 한도를 20배로 높인 뒤 이주민들을 강제로 후쿠시마로 돌려보내고, 하청·도급 업체 직원들을 무리하게 방사성물질 제거 작업에 투입할 게 아니라, 현실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더는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후쿠시마 원전에 쌓인 124만t가량의 ‘오염수’다.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일본 어민들조차 후쿠시마 원전에 쌓인 120만t가량의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출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은 아니지만, 지속해서 언론에 “오는 2022년 여름쯤부터 오염수 방출을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안전비용을 아끼려다가 발생한 사고였음이 분명함에도, 일본은 다시 비용을 이유로 이웃 국가까지 위험에 빠뜨리려는 선택을 하려 한다.
싸다는 이유로 택한 재앙
후쿠시마 원전 폭발
50여 년 전, 도쿄전력(TEPCO)은 후쿠시마 제1원전을 건설하면서 당초 계획을 일부 수정했다. 도쿄전력은 당초 후쿠시마 원전을 해수면으로부터 35m 높이에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이 계획을 해발 10m로 수정했다. 원전 가동을 시작하면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바닷물을 끌어와야 하는데, 지대가 낮으면 바닷물을 끌어오기에 좋고 비용도 훨씬 저렴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2002~2008년 동안 전문가들이 지진·해일이 발생할 수 있고, 최대 15.7m의 해일이 원전을 강타할 수 있다 경고했음에도, 후쿠시마 원전의 해일 예상 설계 높이는 고작 5m였다.
이는 재앙으로 가는 선택이었다.
후쿠시마 지역의 지질은 충적단구(沖積段丘) 층으로, 모래나 자갈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모래와 자갈 사이로 하루에도 약 수백 톤(t)에 이르는 물이 쏟아졌다. 도쿄전력은 바닷물을 끌어다 쓰는데 비용을 아낀 대신, 원전 주변에 우물을 파고 매일 이 물을 퍼내는데 돈을 썼다.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일본 역사상 전례 없던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14m 높이의 해일을 동반했다.
해일은 원전이 있는 후쿠시마현 바닷가를 덮쳤다. 지진으로 전력이 끊기고, 낮은 지대에 설치돼 있던 비상용 발전기까지 바닷물에 침수되면서 원전 내 모든 전기시설이 손상됐다. 전기가 끊기면서 원자로를 식히기 위한 냉각수 펌프는 멈추었다. 치솟는 원자로의 열기에 냉각수가 모두 증발하면서 노심온도가 1200℃까지 상승했다. 열기를 이기지 못한 수백 개의 연료봉이 녹아내렸다. 그러자 엄청난 양의 수소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격납용기는 압력을 이기지 못했다. 압력밥솥이 터지듯 폭발했다. 상상하기 힘든 방사성물질이 대량으로 대기와 바다로 방출됐다.
일본 정부는 폭발이 일어난 뒤에야 추가 원전사고를 막기 위해 수십~수백 톤(t)의 바닷물을 붓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10년 동안 낮은 지대로 흘러들어온 물도 하루에 120t씩 차곡차곡 쌓였다. 모두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오염수’가 됐다. 그렇게 하루에 쌓이는 오염수만 약 170t. 누적된 양만 124만t에 이르렀다.
도쿄전력은 이 오염수를 ‘처리수’라 불렀다.
다핵종(多核種) 제거 설비인 ‘ALPS’(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를 활용해 오염수에 농축된 60여 종의 방사성물질의 농도를 떨어뜨린 물이란 뜻이다.
일본 정부는 이 방식으로 오염수 안에 방사성물질의 농도를 기준치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고, 그렇게 처리한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해도 된다고 여기고 있다. 지난해 11월 20일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는 종로구 대사관에서 한국의 기자들과 만나 “어느 시점에서 (방류를) 시작할지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2022년에는 (저장 탱크가) 채워지고 어려운 상황이 된다”며 “2022년 여름쯤 상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방류 전 주변국 동의를 얻지 않으면 유엔해양법협약 등 국제법에 위반된다는 지적에 “위반되지 않는다”라며, 많은 국가에서 원전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수를 기준치 이하로 걸러서 방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원전 운영 과정에서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사용된 냉각수와 이미 폭발한 원전에서 발생한 전례 없는 양의 오염수를 단순 비교하며, 방출해도 된다는 쪽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숀 버니(Shaun Burnie) 그린피스 독일사무소 수석 원자력 전문가가 작성해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2019년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 2018년 9월 도쿄전력은 ALPS 처리 후 철제 탱크에 저장한 물 89만t 중 약 75만t이 해양 배출 허용 규제치보다 높은 방사성물질을 함유하고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또 당시에 처리수 6만5천t에 포함된 방사성물질 ‘스트론튬90’은 규제치의 100배에 달했고, 일부 저장탱크에서는 규제치의 2만 배에 이르는 농도가 측정됐다고 한다.
스트론튬90은 인체에 들어가면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뼈에 쌓여 골수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방사성핵종이다.
또 아무리 ALPS로 오염수에서 방사성핵종을 걸러낸다고 하더라도, 삼중수소라는 방사성물질은 제거가 힘들다. 오염수나 냉각수에서 제거하기 힘든 탓에, 원자력업계는 이 방사성물질이 인체에 치명적이지 않고 자연계에도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괜찮다고 하지만, 삼중수소는 자연계에 극미량만 존재하면서 스스로 핵분열을 일으키는 방사성물질이다. 자연으로 방출된 이 물질이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구성요소가 되었을 때 일으킬 수 있는 ‘핵종전환’은 방사선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일본은 오염수에 다른 물을 섞어 이 삼중수소 농도를 희석하면 바다에 방류해도 괜찮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후쿠시마 제1원전 3개의 원자로 안에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는 핵연료가 남아있다. 오염수는 이 핵연료와 만나거나, 주변 오염물질과 만나면서 발생하고 있다. 그린피스와 일부 전문가들은 이 오염수를 아무리 ALPS로 정화한다고 하더라도 염분, 물의 화학적 특성, 수온의 변동, 혼탁한 정도 등으로 제대로 걸러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도쿄전력이 외부에 공개하고 있는 처리수의 방사성물질 농도는 매우 일관된 수치를 띄고 있다. 이에, 그린피스는 2019년 보고서에서 수치가 일관될 수 없는 조건에서 일관된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는 도쿄전력의 오염수 처리 보고서 내용을 신뢰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장마리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후쿠시마 오염수는 현재 일본 정부 목표치만큼 희석해도 월성원전에서 배출하는 삼중수소 대비 100배 이상의 삼중수소를 배출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국내 원전 중 가장 많은 종류의 방사성 물질을 배출한 원전 중 하나인 고리1호기의 스트론튬90 배출량 한 해 기준으로 비교한 결과, 후쿠시마 오염수 내 포함된 스트론튬90의 양은 고리1호기가 ‘5만년 동안’ 배출할 질량과 같았다”라고 짚었다.
다시 ‘싸다’는 이유로...두 번째 재앙
120만t 원전 오염수 방류
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려는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싸다는 이유로 원전을 지었고, 싸다는 이유로 해발 10m 지점에 원전을 지어서 폭발사고가 일어났음에도, 일본은 다시 싸다는 이유로 이 대량의 오염수를 방류하려고 한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 방침 가닥이 잡힌 건 2019년 말~2020년 초다.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소위는 2020년 보고서를 내고 ‘해양 방류’와 ‘대기 방출’ 등 두 가지 오염수 처리 방안을 제시하고, 그 중 “해양 방류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지하 매설 방안은 아예 배제됐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해양 방류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한화로 약 350억 원가량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단체들과 국내 과학계는 일본이 지하 매설을 아예 배제한 이유가 비용 때문이라고 강하게 확신하고 있다. 매설은 해양 방류보다 최소 10배 이상, 많게는 70배가량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피스는 이 같은 일본의 결정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지난해 그린피스가 공개한 인터뷰 영상에서, 숀 버니 수석 원자력 전문가는 “오염수를 더 이상 저장할 곳이 없고 2022년이 데드라인이라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말은 거짓말이다. 후쿠시마 원전 부지는 매우 넓고 저장 부지는 충분하다”며 “이는 해양 방류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준비단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도쿄전력이 2020년 2월에 발표한 ‘오염수 처리에 대한 최종 보고서’ 등에서 원전 부지와 바깥에 오염수 추가 저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라며 “그러나 부지 확보를 위한 행정 비용 소모가 많다는 이유로 어렵다고 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 지점을 그대로 용납해선 안 된다. 환경 방사성 오염을 피하기 위해 저장 탱크 보관이라는 대안을 택해야만 한다”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수산업계도 해안 방류를 극구 반대하고 있다. 일본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는 지난해 10월 일본 경제산업성을 방문해 “풍평 피해로 어업의 장래에 괴멸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 ‘방사능 생선’이라는 꼬리표로 모든 국가가 일본에서 잡힌 수산물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다.
‘방사능 생선’에 대한 우려는 우리나라 수산업계도 마찬가지다. 1년이면, 후쿠시마에서 방류한 오염수가 태평양 해류를 따라 한반도 동해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임준택 수협중앙회 회장은 지난해 11월 일본 정부 관계자와의 면담에서 오염수 해양 방출을 절대 수용할 수 없고 해양 방출이 강행될 경우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수산위원회 회원국들과 함께 연대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후쿠시마 수산물은 일본 내에서도 현저히 낮은 가격에 거래가 되는 등 일본 국민조차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일본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우려했던 ‘방사능 생선’이 잡히기도 했다. 후쿠시마현 연구소가 방사성물질 측정을 위해 후쿠시마 신지초 앞바다에서 우럭을 어획해 검사한 결과 치명적 방사성물질 세슘이 1kg당 480Bq(베크렐) 검출됐다. 이는 일본 정부가 정한 일반 식품의 세슘 허용 한계치의 5배쯤 되는 농도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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