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진짜 가족의 모습 찾기, 연극 ‘조립식 가족’

연극 '조립식 가족'ⓒ쉼표스튜디오

공격과 방어, 생채기와 위로, 잔소리와 말싸움, 포용과 경계, 사랑과 증오. 이것들 틈바구니에서 아주 낯익은 풍경이 보였다. 바로 가족이라는 풍경이었다.

가장 날 선 말로 상처를 주지만, 누구보다 내밀한 우울감을 섬세하게 끌어안아 주는 것도 가족이다. 가족은 세상 미운 말로 심장을 폭격하다가도, 세상 둘도 없는 의지처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상처 주고 안아주고, 다시 상처 주고 위로해주는 과정 속에서 연극 '조립식 가족'은 묻는다. "가족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연극 '조립식 가족'은 보육원을 퇴소한 청년들을 통해서 가족의 풍경을 담아낸다. 퇴소 후 30대가 된 모세, 정식, 희정은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설날을 맞이해 정식의 집에 다들 모이게 된다. 여기에 정식과 특별한 관계인 정미도 만나게 된다. 정미는 유부녀다.

이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 주제는 애인, 결혼, 직장, 일상, 추억 등 평범한 이야깃거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하지만 점점 대화를 들을수록 모세, 정식, 희정이 보육원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공백과 결핍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우린 '진짜' 가족을 만들어야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모세에게선 한국 사회가 '정상'이라고 규정해 놓은 가족 부류에 합류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느껴졌다. 모세에게 진짜 가족이란, 결혼해서 애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희정이는 고리타분한 모세의 입장에 "그건 너무 기계적"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희정이 역시 건강하고 건설적인 관계를 꿈꾸면서도, 사랑에 있어서 늘 고배를 마신다. 희정의 사랑은 건강하거나 건설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식이 역시 아픈 다리와 보육원 출신이라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누적된 콤플렉스는 그의 자존감마저 끌어 내렸다. 정식이는 사려 깊고 따뜻한 인물이지만 어딘가 늘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정미 역시 남편에게 벗어나지 못하고 정식에게서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연극 '조립식 가족'ⓒ쉼표스튜디오

이들의 따뜻한 대화와 날 선 말싸움에 유부녀 정미가 끼어들게 되면서 상황은 점점 갈등으로 치닫게 된다. 말이 쏟아지고, 상처가 흘러넘친다. 그것들의 누적은 진짜 '가족'의 얼굴을 그려낸다. 밉고도 사랑스러운 가족의 얼굴이다.

아빠, 엄마, 자녀들. 이것이 한국 사회가 규정해 놓은 '정상' 가족이라면, 네 사람은 정상 가족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정말 그럴까. 정상이란 게 정말 존재하나. 이들은 오히려 통쾌하게 '정상'의 틀을 깬다. 정상과 비정상을 넘어 현실의 얼굴을 보여준다. 희정이의 아픈 과거를 알고 펄펄 뛰는 모세, 학창 시절 정식이를 응원해준 희정이, 정식의 진짜 마음이 알고 싶은 정미, 여느 가족처럼 설날에 떡국 한 그릇 먹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답답한 정식이 등 가족의 진짜 얼굴은 이들의 대화와 상황 속에 있었다.

가족은 규정된 게 아니라, 계속 꾸려가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네 사람은 이미 가족이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것 역시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행복하고 싶은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은 것. 그 정도다.

작품은 보육원 퇴소생들이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제도적 허점도 함께 꼬집는다. 이런 구멍들이 작품 중간중간 분포돼 아픔과 결핍에 함께 공감하도록 만든다.

치열한 말들 속에서 문득문득 코믹 요소가 피어오른다. 상연 중간중간 터지는 웃음에 오히려 코끝이 시큰해진다. '조립식 가족'은 그런 작품이다.

연극은 오는 8월 14일, 15일 양 일간 고양어울림누리 별모래극장에서 볼 수 있다.

연극 '조립식 가족'ⓒ쉼표스튜디오
연극 '조립식 가족'ⓒ연극 '조립식 가족' 포스터
(상단 왼쪽부터:김태영, 민아람, 유도겸, 정태윤 배우)ⓒ창크리에이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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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운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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