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 소장 사망 사건 이후 택배노조에 대한 악의적인 언론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대리점 소장과 노동자를 싸움 붙이는 격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속 택배기사의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결집력을 높이고 있는 택배노조는 보수언론에 의해 어느새 ‘조폭’이 되어 있다. 문제 해결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택배사 대신 부담을 떠안고 있는 대리점은 택배노조라는 ‘조폭’의 피해자로만 왜곡돼 비춰지고 있다. 이처럼 ‘갑’은 쏙 빠지고 ‘을’들만 전쟁터에 내몰린 현실을 다각도로 접근해 본질을 파헤친다.
① 무법천지 택배현장에 노조가 결성된 이후
② 중간에 끼인 ‘대리점’, 알고 보면 대리점도 ‘을’
③ 택배기사 과로사에 침묵하던 조선일보, 노조 때리기만
A – 물건 좀 살살 놓으면 안 되냐 진짜
B – 죄송합니다.
A - 아니, 맨날 뭐가 그렇게 죄송해 XXX야!!
B – 네...
A - 이유가 뭔데! 얘기해봐!!
B - 빨리 서두르려다 보니..
A - 아니 뭘 서둘러 XXX아! 전화 좀 오게 하지 마, 이..
B - 네...
A - XXXX야! 서두르긴 왜 서두르는데!?
B - 이...네...
A - 뭐!!!!?
B - 아니요...하라고 하길래.
A – 근데!!!!?
B – 들어가려고...
A - 뭘 빨리 들어가! XX! XX! 진짜!
B - ...
A - XXXX야!! 거기서만 살살하라고!! 맨날 헤헤헤 하지 말고 XX아!!
B - 네
최근 ‘택배기사 권리찾기 전국모임’ 네이버밴드에 올라온 녹음파일의 일부다.
촉박한 택배 집화 시간 때문에 택배기사 B 씨가 과일상자를 택배차량에 급하게 싣자, 대리점 소장 A 씨가 택배기사에게 전화하여 1분40여초 동안 욕설과 막말을 퍼붓는 내용이다. 첫 마디부터 ‘야’로 시작해, 거의 모든 말의 시작과 끝에 욕설이 붙는다. 하지만 택배기사는 익숙한 듯 별다른 변명 없이 짧게 ‘네’, ‘죄송합니다’라고 답한다. 녹음파일 중간마다 계속 나오는 기계음 ‘삐삐’ 소리는 긴박하게 업무가 처리되고 있는 택배현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있다.
지난 8월 노조의 갑질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대리점 소장의 사건을 계기로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이 앞뒤 내용을 자르고 노조 조합원들의 잘못만 부각하는 기사를 쏟아내자, 일부 택배기사들은 그동안 택배기사들이 당했던 이 같은 갑질 사례를 공유하면서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공유되는 갑질 사례 중에는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전화상으로 해고(계약해지)를 통보하고 평생 괴롭혀 주겠다고 협박하는 대리점 소장이 있는가 하면, 집배송 현황을 알아야 배송 건수 만큼 제대로 지급된 임금인지 알 수 있기에 이를 공유해 달라고 한 택배기사가 요구하자 공개해서 문제없으면 각오하라며 적반하장인 대리점 소장도 있었다. 욕설은 대부분의 녹취록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비교적 조용히 묻힌, 지난해 부산 강서지점에서 유서로 대리점 갑질을 호소하며 숨진 40대 택배기사의 사례도 공유됐다. “사람대접은 받으며 일하고 싶어 용기를 내 노조에 가입했다”는 한 택배기사는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고통보·살해협박 등을 받았다며 “죽고 싶지만, 가족들 생각하며 버티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당 네이버밴드에 가입한 택배기사들은 그동안 일방적이었던 택배현장에 노조가 들어서면서 대리점 소장과 택배기사의 관계가 대등해지고, 불합리한 게 있으면 불합리하다고 말하는 택배기사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언론보도는 그동안 택배기사들이 겪은 내용은 모두 빠지고, 오랜 기간 쌓인 감정이 터져 발생한 사건에서 노조의 잘못만 부각하여 노조 혐오를 키우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진짜 책임이 있는 원청 택배사의 문제는 빠진 채 을(택배기사)과 을(대리점 소장)의 싸움만 조명되고 있는 현실에 깊은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노조 관계자는 해당 대리점 소장 욕설 녹음파일 게시물에 “진짜 문제는 원청의 배차 문제”라며 “이 소장은 원청에 배차 문제에 대해 강하게 말도 못 하면서 택배기사에게 갑질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한탄했다.
※ 관련기사:“쓰레기 같은 XX” 욕설에 부당해고까지...선 넘은 택배대리점 ‘갑질’
노조로 대리점 갑질 개선...신경주대리점 사례
최근 조선일보 등의 기사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전국택배노동조합’(이하, 전국택배노조)은 2020년 12월 두 개의 택배노조가 통합되면서 탄생한 노조다. 2017년 1월 설립된 택배연대노조와 이듬해 2월에 설립된 택배노조가 노조 간 경쟁을 멈추고 통합하면서 만들어졌다. 노조의 시작은 ‘택배기사 권리찾기 전국모임’이었다. 이곳을 통해 고충을 나누던 택배기사들이 힘을 모아서 노조를 결성했다.
노조 결성 이전 대리점과 택배기사는 철저히 갑과 을의 관계였다. 대리점 소장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일해야 했던 택배기사를 보호할 아무런 법적 안전망은 없었다. 택배기사가 개입사업자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과로사를 막기 위해 마련된 지금의 생활물류법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택배현장에 온갖 갑질·차별·욕설, 과로사가 만연해도 택배기사는 묵묵히 일만 해야 했다. 무엇보다 노조 결성 이전에는 소장이 마음대로 택배수수료(월급)를 조정하고, 택배기사 생존과 직결된 배송 구역을 변경해도, 택배기사는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아무런 수단이 없었다.
변화는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발생했다. 노조가 생기고 대리점 소장도 바뀌면서 환경이 개선된 신경주대리점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C 택배기사가 배송 업무를 하다가 계단에서 굴러 팔이 부러졌는데, 당시 문제의 D 신경주대리점 소장은 C 택배기사에게 쉬는 날짜만큼 기존 택배수수료(일종의 월급)보다 2~3배 높은 대체택배차량 비용을 내라고 했다. 보통의 대리점의 경우, 택배기사에게 일이 생기면 대리점 소장이 해당 구역 배송을 대신하고, D 소장이 대신하지 못하는 구역은 일부를 동료들이 나누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다. 하지만 D 소장은 모든 책임을 다친 택배기사에게 전가했다. 일도 못 하고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에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의 월급보다 2~3배 높은 비용을 대리점에 내야 했던 것이다.
또 해당 대리점에는 여성 택배기사도 있었는데, D 소장은 이 택배기사가 다른 택배기사보다 편한 곳 위주로 배송을 하고 있다며 택배수수료를 깎았다. 택배기사들끼리 서로 배려해 가며 나눈 담당 구역을 악용해 택배기사의 월급을 갈취한 것이다.
김광석 전국택배노조 대구경북지부장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리점 운영하는 분들은 택배기사들이 배송으로 버는 택배수수료에서 보통 15%에서 일부 많게는 30%까지 떼어갑니다. 조선시대 ‘마름’ 역할을 하는 셈이죠. 그런데 당시 대리점 소장은 ‘내가 있기에 너희 택배기사가 있다’는 마인드였어요. 주는 대로 받으라는 거였죠.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에게는 수수료를 좀 덜 떼어가고, 눈 밖에 난 사람에게서는 더 많이 떼어갔어요. 배송 수량을 확인할 수 있는 전산도 다 막아 놓고 있었고요.”
택배기사가 택배를 배송하여 받아야 하는 택배수수료를 원청인 택배사가 직접 택배기사에게 지급하는 형태가 아니라 대리점 소장을 통해 지급하는 형태에다가 법의 안전망까지 없으니, 이 같은 갑질 대리점 소장까지 생겼던 것이다. 이 문제의 소장은 대리점에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잠깐 얼굴만 비추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매달 1천만 원 상당의 순수익을 거둬갔다고 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고자 해당 대리점의 택배기사들은 노조에 가입했고, D 대리점 소장은 그동안 쌓여온 각종 문제가 겹쳐 결국 본사에 의해 계약이 해지되면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이후 신경주대리점은 점차 안정세를 찾아갔다고 한다.
“과로사를 막자”
‘해고 택배기사’인 김태완 전국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이 노조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열악한 노동 환경 탓이었다.
김 부위원장은 노조 설립 이전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떠올렸다. “너무 힘들었죠. 레일도 설치돼 있지 않아서, 아침마다 저희 택배기사들이 설치하고 해체하는 일을 했어요. 분류인력도 없으니 저희가 했죠. 지붕이 없으니 비가 다 들이치고 눈발이 날렸어요. 난로가 있긴 했는데, 기름이 없다며 무시했고, 폭염에 선풍기 하나 설치해주지 않았죠. 아무리 개선을 요구해도 나 몰라라 배 째라는 식이었어요.”
특히 문제가 된 건 심각한 과로였다.
2015~2016년경 CJ가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인력을 대폭 줄였다. 모든 것을 택배기사들에게 전가하는 식이었다. 이 때문에 택배기사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녹초가 될 때까지 ‘공짜노동’인 물품 분류작업을 하고, 오후 늦게서야 본래 업무인 배송을 시작했다. 그럼 새벽까지 일해도 일을 마칠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김 부위원장이 있는 대리점을 중심으로 택배기사들은 정오까지 물품 하차가 끝나지 않더라도 일단 배송을 나가는 단체행동을 강행했다.
이 같은 택배기사들의 단체행동은 노조 결성의 계기가 됐다. 또 잇따르는 택배기사의 과로사를 줄이기 위한 운동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현재 노조는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부상시키고, 관련 법 제정 운동을 벌이는 등 과로사 문제를 해소해 가고 있다.
하지만 노조 결성과 단체행동을 주도한 김 부위원장은 일자리를 잃었다. 당시 원청인 택배사가 본보기로 이 대리점을 통째로 폐점시켜 버리면서다.
김 부위원장은 여전히 복직이 안 된 상태다. 대리점 폐점은 사실상 원청인 택배사가 주도한 일이고, 대리점 자체가 폐점된 상태이기에 복직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김 부위원장은, 이 문제를 원청인 CJ대한통운과 직접 교섭할 수 있는 날이 되면 풀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택배사가 노조를 교섭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김 부위원장의 해고 문제 해결은 요원한 상황이다. 택배사는 “택배기사는 대리점과 계약관계에 있지 택배사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며 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을들의 싸움 부추기는 원청
노조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여러 갈등과 사건이 발생하고 있긴 해도, 갑질 문제가 개선되고 과로사 문제가 해소되는 과정을 보면, 전국택배노조가 생겨난 이후 택배현장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과 이를 통해 노조에 대한 혐오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사실 노조와 대리점소장들 간 갈등의 책임은 원청인 택배사에 있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그동안 택배사들은 택배기사들이 분류인력 확충 등 현장 개선을 요구하면, 대리점에서 알아서 하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이에 대항해 노조가 파업 등 단체행동을 벌이면, 택배사는 대체인력을 이용해 원청 손해를 최소화하며 그 피해를 전부 대리점과 택배기사에게 전가해왔다. 대리점 소장들을 방패막이 삼아 멀찍이서 을들(택배기사와 대리점소장)의 싸움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최근 전국택배노조가 대리점 소장 사망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할 때 원청 택배사의 책임을 강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노조는 지난 2일 자체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고인이 원청 택배사 관계자의 요구로 대리점 포기각서를 제출한 정황, 해당 원청 택배사 관계자의 통화 음성파일 등을 공개하며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에는 원청 택배사의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노조는 사회적 대화 및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이 같은 택배산업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습이다. 어렵게 성사된 사회적 합의는 무력화되고, 그에 따른 현장의 갈등과 피해는 을들에게 전가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택배현장 갈등, 구조적 문제서 기인”
조선왕조 ‘지주-마름-소작농’ 같아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16일 기자회견에서 “지금의 택배현장에서의 많은 갈등은 택배산업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것”이라며 “따라서 사회적 합의의 제대로 된 이행을 점검하고, 현장의 갈등을 올바른 방향으로 조정·해결하기 위한 택배사-대리점-노조 3자 회동을 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박석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택배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조선왕조 시대 ‘지주-마름-소작농’ 체계에 비유한다. ‘택배사-대리점-택배기사’ 구조는 땅을 가진 지주가 중간착취자 마름을 두어 소작농이 거두어들인 농사 결과를 마름과 함께 별다른 제한 없이 수탈하는 체계와 같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개혁 없이는 불필요한 갈등이 현장에서 계속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전국택배노조 조합원은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의 공격적인 언론보도가 쏟아졌지만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조합원이 300명 더 늘어 현재 7천 명을 넘어섰다. 이에 대해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은 “물론 노조의 잘못도 있겠지만, 다수의 택배기사들은 대리점주에 의해 자행되는 갑질 문제도 몸소 느끼고 있는 것”이라며 “일부 대리점주가 이번 사태를 악용하여 훨씬 심한 갑질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저항·반작용인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민중의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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