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지난 설에 이어 추석 명절을 맞아 경제 역사에서 벌어졌던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다섯 건의 경제 역사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수에즈 운하의 패권을 다투다 _ 수에즈 전쟁
② 구아노가 남미를 초토화하다 _ 새똥 쟁탈전
③ 사실은 세금을 내기 싫었던 거였다 _ 미국의 독립
④ 노예 해방은 전쟁의 원인이 아니었다 _ 미국 남북전쟁
⑤ 주식회사의 출발로 촉발된 바다의 패권 다툼 _ 영란 전쟁
1970년대와 1980년대, 나이 어린 조카가 “삼촌은 군대 어디 다녀왔어?”라고 물으면 허세 쩌는 삼촌 중에 “내가 이래봬도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야”라며 허풍을 떠는 사람이 있었다. 놀란 조카가 “와,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어? 무슨 부대에서 전쟁 했어?”라고 물으면 삼촌은 “어, 내가 바로 그 전설의 베트남 스키부대 출신이지”라고 답을 했다.
이 헛소리가 널리 퍼지면서 ‘베트남 스키부대’라는 말이 한때 대유행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누군가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면 신문에 “베트남 스키부대 같은 소리”라는 비유가 나오곤 한다.
이까지 읽고도 ‘베트남 스키부대가 왜 이상한 거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좀 문제가 있다! 베트남은 열대 국가여서 스키부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때 “베트남 스키부대는 사하라 잠수부대, 몽골 해군 특수부대, 시베리아 정글 특수부대와 함께 세계 4대 특수부대다”라는 허접한 농담이 나돌기도 했다. 베트남에 스키부대가 있을 리 없듯이 사하라 사막에 잠수부대가 있을 리 없고, 시베리아 눈 덮인 초원에 정글 특수부대가 있을 까닭도 없다.
단, 누가 만든 농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중 몽골 해군 특수부대는 잘못 끼워 넣었다. 내륙국가로 바다가 전혀 없는 몽골에 왜 해군 특수부대가 있겠느냐는 취지에서 나온 농담인 것 같은데, 놀랍게도 몽골에는 해군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해군이라고 해봐야 호수에 배 한 척 띄워 놓은 정도고 병력도 7명뿐이지만 어쨌든 해군은 해군이다. 1997년 민영화되기는 했는데, 여전히 해군이라는 이름으로 호수에서 관광객을 나르고 있다(응?).
몽골 해군처럼 바다가 없는데도 운영되는 해군을 ‘내륙 해군’이라고 부른다. 대부분 작은 규모로 운영되지만 남미의 내륙국가인 볼리비아의 해군은 다르다. 볼리비아 해군은 무려 173척이나 되는 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도 없는데 이 많은 배를 어디에 두고 있을까? 볼리비아 해군 선박 대부분은 안데스 산맥의 티티카카 호수에 주둔한다.
해군 숫자도 5,000명에 육박한다. 심지어 볼리비아에는 해병대도 있다. 게다가 이 해병대는 남미에서 최강의 전력을 자랑한다. 마약 소탕 작전에도 여러 번 투입돼 실전 경험도 매우 풍부하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볼리비아가 매년 3월 23일을 ‘바다의 날(El Dia del Mar)’로 지정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지만 볼리비아는 페루, 브라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칠레에 둘러싸인 내륙국이다. 이 나라 어디를 가도 바다를 만날 수 없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는 해군도 있고, 해병대도 있고, 바다의 날도 있다. 도대체 이 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새똥, 인류의 희망으로 떠오르다
볼리비아가 애초부터 내륙국이었던 것은 아니다. 볼리비아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남아메리카 대륙 서쪽에 안토파가스타라는 바다와 인접한 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안토파가스타에는 은과 초석 같은 광물이 가득 매장돼 있었다. 넓은 바다는 아니었지만 볼리비아는 어쨌든 바다를 보유했고 이곳을 통해 태평양을 향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안토파가스타에서 대량의 구아노가 발견된 것이 문제였다. 구아노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새똥’이다. 가마우지 등 바닷새 종류의 똥이 쌓여 축적된 무더기를 말한다. 동굴에서 발견되는 박쥐의 똥도 구아노라고 부른다. 물론 박쥐는 새가 아니지만 배설물로 분류할 때에는 새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19세기 이 새똥의 놀라운 가치가 새롭게 발견됐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유럽에서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반면 식량 생산량이 인구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해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런데 구아노를 비료로 사용하면 농업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사실 이는 남미의 원주민인 잉카인들이 오래 전부터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유럽인들이 이를 흉내 낸 뒤 놀라운 효과를 경험하자 구아노를 천연비료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야흐로 새똥이 굶어죽는 인류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셈이다.
19세기 중반부터 남미의 새똥은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해변에 구아노 퇴적물로만 이뤄진 섬들을 잔뜩 보유한 볼리비아와 페루, 칠레는 그야말로 로또를 맞았다. 섬을 개발해 새똥을 팔아 거금을 벌어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돈이 있는 곳에 분쟁이 생기는 법. 볼리비아는 엄청난 새똥 섬을 보유한 안토파가스타 지역의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원체 가난한 나라여서 이곳을 제대로 개발할 자금과 인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볼리비아는 새똥 섬 개발을 위해 이웃 칠레를 끌어들였다. 칠레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이곳을 개발하는 대신, 칠레 기업들에게는 25년 동안 세금을 받지 않고 새똥을 채굴할 수 있는 혜택을 약속한 것이다. 안토파가스타에 쌓인 막대한 구아노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칠레에게 볼리비아의 제안은 달콤한 것이었다. 칠레는 주저 없이 기업들을 보내 새똥 섬을 개발했다.
새똥 전쟁의 패자, 바다를 잃다
그런데 정작 개발이 이뤄지자 투자를 제안했던 볼리비아의 생각이 바뀌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자기들이 필요해서 먼저 손을 내밀었던 볼리비아는 정작 새똥 섬이 그럴싸하게 개발되자 태도를 돌변했다.
1876년 볼리비아 정부는 새똥 섬과 초석 광산 등 주요 자원들을 모조리 국유화했다. 그리고 볼리비아 정부는 “새똥 섬과 광산은 이제 볼리비아 정부 소유니 칠레 기업들도 이를 사용하려면 세금을 내라”고 강요했다.
25년 동안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약속을 믿었던 칠레 기업들에게는 날벼락이었다. 칠레 기업들이 세금을 거부하자 볼리비아 정부는 칠레 기업의 재산을 몰수했다.
칠레는 이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었다. 기껏 돈과 인력을 들여 그 지역을 개발했더니 볼리비아가 이를 냉큼 가로챘기 때문이었다. 1879년 2월 14일, 마침내 칠레군이 안토파가스타로 진격했다. 볼리비아는 형제 국가였던 페루와 군사 동맹을 맺고 칠레에 맞섰다.
외형상 칠레가 볼리비아를 먼저 침공한 모습이었지만, 원인을 제공한 쪽은 약속을 어긴 볼리비아였다. 칠레 vs 볼리비아-페루 동맹군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 새똥을 두고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을 벌였다.
겉보기에 이 전쟁은 칠레에게 무모한 도전이었다. 당시 페루는 8,000여 명, 볼리비아는 3,000여 명의 병력을 보유했다. 반면 칠레의 병력은 고작 2,500명 수준이었다. 게다가 페루와 볼리비아는 동맹까지 맺은 상태였다. 병력 규모만으로도 4대 1의 열세였던 칠레가 무엇을 믿고 과감하게 선제공격을 가했을까?
당시 칠레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유럽 국가들의 지원이었다. 원래 볼리비아와 페루는 새똥 섬을 국유화한 뒤 이를 유럽에 비싸게 팔아치울 심산이었다. 새똥 비료의 엄청난 효력을 확인한 유럽 국가들은 당시 구아노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구아노 가격 폭등을 우려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페루와 볼리비아의 자원 국유화에 맞서는 칠레를 돕기로 약속했다. 칠레는 이를 믿고 볼리비아로 진격한 것이다.
예상대로 전세는 칠레의 일방적 우세였다. 전쟁 초기 페루 해군이 잠깐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이후 칠레는 일방적으로 두 나라를 몰아붙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칠레 병력의 훈련까지 도왔다. 볼리비아는 일찌감치 내륙으로 쫓겨났고, 그보다 더 오래 버텼던 페루 역시 연전연패해 수도 리마를 잃었다.
이후 볼리비아-페루 동맹의 산발적 저항이 이어졌지만 유럽의 지원을 등에 업은 칠레를 이길 수는 없었다. 1883년 볼리비아-페루 동맹이 마침내 항복을 선언하며 새똥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졌던 이 엽기적인 전쟁은 4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 전쟁의 패배로 볼리비아는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바다 안토파가스타를 잃고 내륙국으로 전락했다. 볼리비아가 아직도 해군을 운영하며 바다의 날을 만들어 바다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년 바다의 날이 되면 볼리비아 국민들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한다. 그 피켓에는 보통 “칠레 대통령님. 우리의 바다를 돌려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모두를 불행으로 내몬 새똥
그렇다면 전쟁에서 승리한 칠레는 행복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전쟁 배상금으로 2,000만 페소의 금화를 챙겼고 새똥과 천연자원이 풍부한 새 영토도 얻었다. 하지만 이후 칠레도 페루나 볼리비아처럼 자원의 국유화를 선언했고, 자원 가격 급등을 우려한 영국과 미국은 칠레의 반란군을 지원해 정부를 무너뜨렸다.
이후 미국 등 선진국은 칠레의 내정에 계속 개입했다. 칠레가 미국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날 기미만 보이면 미국은 즉각 칠레의 반란군을 지원해 쿠데타를 일으켜 반미(反美) 성향의 정부를 제거해버렸다.
게다가 구아노를 대체할 새로운 화학 비료가 개발되면서 새똥의 가치도 급락했다. 새똥이 촉발한 전쟁의 결말은 패전국 볼리비아와 페루는 물론 승전국 칠레까지 극심한 혼란에 빠지는 비극으로 마무리됐다.
이 세 나라가 벌인 전쟁의 정식 이름은 태평양 전쟁(War of the Pacific)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Pacific War)과는 영문 이름이 다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전쟁의 이름을 ‘새똥 전쟁’ 혹은 ‘구아노 전쟁’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이 전쟁에서 천연자원인 구아노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인류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지하자원이나 천연자원만을 두고 나라끼리 총을 들이댄 현대 전쟁은 이 전쟁이 최초였다. 그래서 태평양 전쟁은 ‘현대 인류 최초의 자원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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