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굴뚝 없는 발전소부터 이동식 충전소까지…수소경제 어디까지 왔나

화학공장 가스에서 수소 뽑아내 전력 발전 연료로 사용…탄소 제로 발전은 ‘아직’
대형 모델에서 두각 보이는 수소 모빌리티…충전 인프라 효율성 확대 기술 개발 추진

충남 서산시 대산읍에는 연간 16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만들어내는 발전소가 있다. 석탄을 땐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굴뚝은 보이지 않는다. 방사선 유출을 막기 위한 돔 천장의 원자로 격납 건물도 없다. 대신 컨테이너처럼 생긴 철제 네모 박스가 3층으로 겹겹이 쌓여있다.

여긴 수소 발전소다. 수소와 산소의 화학작용으로 전력을 생산한다. 발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등 환경오염 물질이 배출되지 않는다. 대산 수소 발전소는 지난해 6월부터 본격 운행을 시작해 인근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수소 사회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이미 시작됐다.

대산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 시설ⓒ뉴스1

컨테이너 같아 보이는 철제 박스는 연료전지라고 부른다. 수소와 산소의 화학작용을 유도하는 발전소의 핵심 시설이다.

한국은 발전용 연료전지 시장 선두주자로 평가된다. 2019년 기준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시장 점유율은 약 48% 수준으로 추산된다. 발전소에 들어가는 연료전지는 두산퓨얼셀이 만들었다.

성장 가능성도 크다. 세계 발전용 연료전지 시장 규모는 2017년 670MW에서 2030년 25.4GW(2만 5,400MW)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수소는 탄소 배출을 최소화할 대체에너지로서 평가된다. 국제 사회는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혁명 시기 대비 1.5°C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데 합의를 모은 가운데, 수소가 탄소 배출 저감에 상당한 영향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맥켄지는 2050년 수소가 세계 에너지 수요의 18%를 담당할 것으로 분석했다. 수소경제 시장 규모는 연 2조 5천억 달러(3천조원)로 내다봤다.

대산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 전경ⓒ두산퓨얼셀
대산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에는 두산퓨얼셀이 개발한 발전용 수소 연료전지 114대가 설치됐다.ⓒ두산퓨얼셀

배출 제로 ‘그린 수소’…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이 징검다리 역할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수소 발전은 탄소 배출 저감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는 못하고 있다.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를 돌리려면 연료로 쓸 수소가 필요한데, 수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된다.

대산 수소 발전소는 약 2km 떨어진 한화토탈의 석유화학 공장에서 수소를 조달한다. 화학 연료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가스에서 수소를 뽑아낸다. 가스에 고온의 열처리를 가해 수소를 분리한다. 이를 부생수소라 한다. 현재 한국의 연간 수소 생산량 약 190만톤 중 60%가 부생수소로 알려졌다.

나머지 40%는 추출수소다. 액화석유가스(LPG) 또는 액화천연가스(LNG)에서 고압의 수증기 분해를 거쳐 수소를 추출한다. 가스 성질을 바꾼다는 의미에서 개질수소라고도 이른다.

부생수소와 개질수소는 ‘청정수소’가 아니다. 열처리와 수증기 분해 등 수소 추출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된다. 이들 수소 생산 방식은 ‘그레이 수소’로 불린다.

한 단계 진보한 방식이 ‘블루 수소’다. 수소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가 대기 중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모아둔다.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기술을 통해 그레이 수소 생산에 따른 탄소 배출을 막을 수 있다. 포집한 이산화탄소는 1km 이상 지하 암석층에 주입해 봉인하거나, 수요가 있는 정유시설 등에 판매한다. 정유사는 석유 채굴 과정에서 압력을 높이는 용도로 이산화탄소를 사용한다.

CCUS 기술은 청정수소 생산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9월 발간한 ‘에너지기술 전망’ 보고서에서 CCUS 기술 없이는 온실가스 배출량 제로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대규모 탄소를 배출하는 발전소와 중공업 분야에서 단기간에 화석 연료를 수소로 전환하기 어려운 가운데, CCUS 기술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다는 설명이다.

‘그린 수소’는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수소 생산 방식이다. 물에서 수소를 전기분해하는 수전해 기술이 활용된다. 그린 수소는 수전해에 사용되는 전기를 태양광·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공급받는다. 그린 수소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전 세계 수소 생산량 약 7천만톤 가운데 그린 수소 비중은 1%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한국은 재생에너지 발전량 확보가 난관이다. 수전해에 필요한 재생에너지 전력은 잉여전력을 활용해야 하는데 한국은 재생에너지 발전량 자체가 적어 잉여전력이 없다.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도 문제다. 한국은 좁은 면적과 불규칙한 일조량 탓에 태양광 에너지 생산에 유리한 환경이 아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는 사우디와 호주 등에 비해 10배가량 비싸다.

정부의 그린 수소 확대 방안도 수전해 기술 확보와 해외 생산 방안을 포괄하고 있다. 해외 생산 거점을 구축해 안정적인 가격으로 수소를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수소 생산 방식에 따른 분류ⓒ수소융합얼라이언스

소규모 설비로 에너지 효율성 강점…연료 운반도 용이

수소 발전 강점은 친환경성뿐만이 아니다. 소규모 설비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에너지 효율성도 장점으로 꼽힌다.

대산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 총 부지는 2만㎡(약 6천평)이다. 화력발전소는 1기당 부지가 수십만㎡에 이른다. 1MW당 평균 면적 기준으로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는 180㎡, 화력발전소는 815㎡다.

수소 발전소는 소요 면적이 작아 구축이 용이하다. 전기가 필요한 곳에서 직접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수소 발전소 구축 용이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현대모비스의 ‘수소 비상 발전시스템’이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2019년부터 충북 충주 소재 수소 연료전지 공장에 수소 비상 발전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해당 발전시스템은 수소전기차 넥쏘에 탑재되는 수소 연료전지 5개를 병렬로 연결해 구성했다. 연료전지 용량은 450kW급으로, 대산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를 110분의 1 수준으로 축소한 수준이다. 수요에 맞게 설비 규모를 조절할 수 있는 수소 발전의 특성이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수소 발전소는 전력 효율성도 우수하다. 발전소에서 수요처로 전력을 보내기 위한 송전탑과 송전선로 등이 수반되지 않아 전력 손실이 적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2014~2018년 5년간 전력 수송 과정에서 발생한 전력 손실 비용은 총 8조원을 웃돈다.

수소 발전은 에너지 운반도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대산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는 지하에 매설된 수송관을 따라 시간당 3톤의 수소가 기체 상태로 운반된다. 전력을 직접 옮기려면 송전 시설을 깔거나 무거운 배터리를 실어날라야 한다.

수소 운반 효율성은 재생에너지의 수출입 활성화로 이어진다. 가령 사우디에서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수입할 수는 없지만, 재생에너지로 만든 수소는 선적을 통해 들여올 수 있다. 해외에서 생산한 수소를 수입한다는 정부 계획도 수소 운반이 용이하기에 가능하다.

수소는 액화하면 운반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액화수소 부피는 기체 수소 대비 800분의 1에 불과해 대규모 운반이 가능하다.

다만, 수소를 액화하려면 영하 253도까지 온도를 낮춰야 한다. 운반 과정에서 액화 온도를 유지해야 해,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

액화수소 대안으로 제시되는 게 암모니아다. 수소와 질소로 이뤄진 암모니아는 영하 30도에서 액화돼 수소보다 온도 유지가 수월하다.

암모니아가 수소 운반을 위한 최적의 형태라고 단정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암모니아에서 수소를 뽑아내는 과정이 뒤따른다. 분해 설비를 갖춰야 하고, 분해 과정에서 전력도 쓰인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액화수소와 암모니아 운반선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 운반선은 LNG 등 기존 연료를 사용하지만, 향후에는 수소 동력선 개발도 추진할 계획이다.

현대모비스의 ‘수소 비상 발전시스템’ⓒ현대모비스

발전 전략 구체화하는 수소 모빌리티…충전 인프라 과제 극복 움직임도

수소 에너지는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시장을 형성해가고 있다. 수소차는 상용차에서 전기차 대비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중량이 큰 상용차로 장거리 운행을 하기 위한 전력량을 갖추려면 전기차 배터리 용량이 커져야 하는데, 배터리 무게가 늘면서 운행 효율이 떨어진다. 수소차에 탑재되는 수소 탱크는 전기차 배터리보다 가볍고, 비교적 적은 중량 추가만으로 수소 용량과 전력량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최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수소 모빌리티+쇼’에 차려진 현대차그룹 부스에서도 수소차는 대형 모델에 집중됐다. 전시장에 승용차는 한 대였고, 대다수는 상용차, 대형 트레일러, 열차였다.

전시장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5천㎡ 규모 부스에서 수소 모빌리티 전략 청사진을 제시한 현대차그룹은 ‘e-보기(Bogie)’라 명명한 신개념 운송 수단을 공개했다. e-보기는 바퀴가 달린 차대 형태로, 수소를 연료로 움직인다. e-보기는 목적에 다양한 형태로 활용할 수 있다. e-보기 두 개에 컨테이너 트레일러를 얹으면 대형 물류 운송차가 된다. 컨테이너 아래쪽 두 개의 e-보기 사이에는 수소 탱크가 탑재된다. 1회 충전으로 1천km 이상 주행할 수 있도록 개발하고 있다. e-보기에 비행 드론과 소방용 방수총을 올리면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은 지난해 양산에 돌입해 현재까지 스위스에 40대 이상이 수출됐다. 1회 충전으로 400km를 달린다. 지난 7월에는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이 스위스에서 종합 누적거리 100만km를 돌파했다. 동급 디젤이 1km당 0.63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가정할 때, 지난 11개월간 스위스 전역에서 약 630톤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저감한 효과를 거뒀다고 현대차는 설명했다.

현대로템은 수소전기트램(열차)을 개발하고 있다. 트램은 지상에 깔린 철로를 따라 운행한다. 주로 유럽에서 대중적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기존 트램은 전력을 공급하는 전기선을 구축해야 한다. 수소전기트램은 수소 탱크와 연료전지를 탑재해 별도의 전기선이 필요 없다. 트램 운영을 위한 인프라 구축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수소전기트램은 울산시에서 2023년 시운전을 거쳐 2027년 상용화될 예정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동식 수소 충전 시스템 상용화도 준비 중이다.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에 충전 시설을 갖춰놓고 장소를 옮겨가며 수소차를 충전하는 방식이다. 수소를 저장하는 탱크, 수소 온도 상승을 방지하기 위한 냉각기, 수소를 수소차에 주입하는 충전기로 구성된다. 탱크에 저장하는 수소 용량을 늘리기 위한 수소 압축기도 탑재돼 있다. 탱크에는 넥소 20~25대를 충전할 수 있는 양의 수소가 저장된다.

수소는 현대제철이 충남 당진제철소 인근 수소 공장에서 생산한 부생수소로 조달한다. 쇳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한다. 현대제철 수소 공장에서는 연간 3,500톤의 부생수소가 생산된다.

‘수소 모빌리티+쇼’에 전시된 현대차의 ‘트레일러 드론’. e-보기 두 개에 컨테이너 트레일러를 얹은 대형 물류 운송차다.ⓒ민중의소리
‘수소 모빌리티+쇼’에 전시된 현대차의 ‘레스큐 드론’. e-보기에 비행 드론과 소방용 방수총을 얹었다.ⓒ민중의소리
‘수소 모빌리티+쇼’에 전시된 현대차의 ‘수소 트램’ⓒ민중의소리
현대차그룹이 개발한 이동식 수소 충전소 ‘H 무빙 스테이션’ⓒ현대차그룹

충전 인프라는 수소차 활성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현재 전국에 설치된 수소 충전기는 100여대에 불과하다. 전기차 충전기 14만대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비용 문제가 가장 크다. 승용차용 수소 충전소 1곳을 세우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30억원이다. 상용차용 충전소는 비용이 2배로 뛴다. 전기차 충전소는 완속 경우 수십만원에서 1천만원 이하, 급속 충전기는 3천만원 수준이다.

전기차 충전소는 기존 전력망을 사용하지만, 수소 충전소는 수소를 트레일러로 실어야 한다. 수송관을 구축하는 방식도 가능하나, 초기 비용이 커 충전소는 대부분 트레일러 운송 방식으로 조달한다. 또한, 수소 탱크와 압축기 등 설비가 복잡해 구축 비용이 많이 든다.

국내 수소 충전소 시장 점유율 40%가량을 차지하며 1위를 달리는 효성중공업은 액화수소를 통해 충전소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효성중공업은 최근 울산시 용연 산업단지 내 효성화학 공장 부지에 액화수소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가동은 2023년 예정이다. 액화수소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생수소는 효성화학 공장에서 받는다. 액화수소는 효성중공업이 앞으로 구축한 약 30개의 액화수소 충전소에 공급된다. 일반적으로 트레일러 한 대로 운반할 수 있는 기체수소는 약 200kg인데, 액화수소는 3,500kg까지 실을 수 있다. 운반 용량이 대폭 늘어나면서 충전소 운영 비용이 절감된다.

한편, 업계는 수소 발전과 모빌리티 등 생태계 구축을 위해 협력에 나섰다. 현대차·SK·포스코 등 15개 회원사로 구성된 수소기업협의체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이 지난 8일 출범했다. 서밋은 공급·수요·인프라 영역의 다양한 기업 간 협력을 도모한다. 앞서 현대차·SK·포스코·한화·효성 등 5개 그룹 주도로 2030년까지 수소 생산-유통·저장-활용 등 수소 경제 전 분야에 43조 4천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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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무 기자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