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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만원 아끼자고 여수 실습생 사지로 내몰았나

“스포츠 아닌 산업기사 영역”…홍 군 납벨트 무게도 경력·신체에 맞지 않아

따개비 제거 작업(자료사진)ⓒ유튜브 캡처

고 홍정운 군은 물에 잠긴 요트 밑 부분을 정비하다가 사망했다. 물속에서 요트 하부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작업이다. 전문 잠수사도 2인1조 원칙을 지켜가며 하는 고난도다. 사고 당시 홍 군이 착용한 장비도 경력과 신체 조건에 맞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9일 <민중의소리> 취재를 종합하면, 홍 군이 지난 6일 작업한 수중 따개비 제거는 국가공인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갖춰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요트를 장기간 수중에 정박해놓으면 따개비가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따개비는 암초나 배 밑에 붙어사는 갑각류의 부착생물이다. 따개비를 장기간 방치하면 운항에 문제가 생긴다. 무게가 늘어 요트 속도가 느려진다. 따개비에 해초류 등이 엉켜 무게가 점점 불어난다. 운항 속도가 25노트 되는 스피드 요트는 속도가 좀 줄어도 큰 문제가 없지만, 5노트급 요트는 2노트만 속도가 느려져도 영향이 크다. 홍 씨가 사고를 당한 S해양레저의 원목 요트는 최대 속도가 7노트다.

통상적인 따개비 제거 작업 주기는 1년에 1~2번 정도다. S해양레저는 지난해 원목 요트를 중고로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개비를 제거할 시기가 되자 홍 군이 작업하게 된 것이다.

잠수사들은 따개비 제거 작업이 상당한 숙련도를 요한다고 설명한다. 레저 차원의 스쿠버 다이빙 수준이 아니다. 민간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이 아닌,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발급하는 잠수기능사나 잠수산업기사를 보유한 전문가 영역이다.

홍 군은 국가공인 자격을 소지하지 않았다. 민간 자격증도 없었던 것으로 해경은 추정하고 있다.

남해에서 스쿠버 다이빙 교육을 하는 ㄱ 씨(40대·전문잠수사 경력 13년)는 “스포츠 다이빙 자격증에도 숙련도에 따라 여러 단계가 있다”면서도 “따개비 제거 등 선체 하부 정비 작업은 잠수산업기사를 보유한 전문가가 한다”고 말했다.

수중 작업을 하려면 상당한 체력을 갖춰야 한다. 산소통을 메고 물에 들어가도 20분 정도하고 뭍으로 올라와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작업해야 한다. 그만큼 호흡에 무리가 간다는 얘기다. 또한, 수중에서 물살을 이겨내고 끌칼로 따개비를 긁어내려면 근력도 있어야 한다.

ㄱ 씨는 “잠수 경험이 없는 고등학생에게 시킨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혀를 내둘렀다.

수중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ㄴ 씨(50대·전문잠수사 경력 31년)는 “따개비 제거 작업은 잠수 횟수가 적어도 100회 이상은 돼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홍 군은 적정한 장비도 착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고 당시 홍 군이 차고 있던 납벨트는 12kg이다. 납벨트는 부력을 이겨내고 물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착용한다. 문제는 납벨트 무게가 홍 군 체격에 비해 무거웠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바다에서 잠수할 때 납벨트는 몸무게의 10%로 한다. 홍 군 몸무게는 70kg 정도다. 납 무게는 7kg 수준이었어야 한다.

수심이 비교적 낮은 곳에서 수중 작업을 할 때는 부력이 더 강해 레저 다이빙을 할 때보다 납 무게를 늘려야 해 10kg 이상을 차기도 한다. 다만, 이는 전문가일 때 얘기다. ㄴ 씨는 “미숙련자가 12kg 무게를 견디기는 버거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8일 사고를 재현한 해경 구조대원들은 홍 군이 착용한 납벨트를 멘 채로 산소통을 제거하자마자 순식간에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홍 군은 물에서 납벨트를 해체하기 전 산소통을 벗었다가 가라앉았다. 기본적인 장비 해체 교육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과도한 납벨트 무게로 인해 익사했다.

홍성운 군이 작업 중 사고를 당한 S해양레저의 원목 요트.ⓒ민중의소리
여수시 이순신 마리나 내 기둥에 붙어 있는 따개비들. 홍정운 군은 요트 하부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기 위해 수중 작업을 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민중의소리

전문가도 절대 사수하는 2인1조, 무시됐다…육상 작업 시설 미비 지적도

따개비 제거는 전문가도 2인1조 수칙을 반드시 지켜가며 수행하는 작업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에도 명시된 내용이다. 한 명에게 문제가 생겨도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작업을 맡긴 선주는 비용 절감을 위해 1명이 작업해주길 바라지만, 잠수사는 2인1조 원칙을 최소한의 안전 보장 장치로 여기고 1인 작업을 거부한다고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전문가도 절대 사수하는 원칙인데, 홍 군을 보호해주지는 못했다. ㄴ 씨는 “선주는 1명이 하라고 하는데, 우리는 둘이서 한다고 버틴다”며 “목숨이 걸린 문제니까”라고 말했다.

잠수사를 고용해 따개비 제거 작업할 때 비용은 1인당 20~40만원이다. 2인1조 원칙을 지키면 40~80만원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S해양레저 사장이 돈을 아끼기 위해 홍 군을 위험 작업에 떠민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인다.

S해양레저는 7톤급 원목 요트와 13톤급 크루즈 요트를 운영한다. 요트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세업체다. 홍 군 유족과 친구들에 따르면, 홍 군은 지난 5~6월부터 S해양레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새로 들인 원목 요트 리모델링를 했다. 내부 청소부터 신나로 페인트를 지우고 녹을 제거하는 일까지 고단한 일과를 견뎠다. 하루 노동 시간이 10시간을 넘었다.

실습 과정에서도 고강도·장시간 노동이 이어졌다. 아침 8시 30분에 출근한 홍 군은 야간 요트 운항이 있는 날이면 저녁 8시가 돼서야 퇴근했다. 백신 접종을 받은 날에도 불려갔다. 홍 군 친구 A 양은 “(백신 맞은 날 끝나고) 힘들어 한 거 같다”고 전했다.

여수시 이순신 마리나에 배치된 선박 인양 크레인.ⓒ민중의소리
여수시 이순신 마리나에 배치된 선박 인양 크레인.ⓒ민중의소리

S해양레저가 요트를 세워둔 여수시 이순신 마리나(정박지) 이용 선주들은 구조적인 문제도 지적한다. 배를 마리나 내 육지 선박장에 올려 따개비를 제거하면 안전한데, 여수시가 금지하고 있어 수중 작업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여수시는 지난해 이순신 마리나 운영 위탁 업체에 마리나 내 따개비 제거 작업 금지 공문을 보냈다. 인근 주민 민원에 따른 조치다. 따개비를 떼어내면 선박 도장이 벗겨지면서 폐기물이 발생하고, 따개비가 부패하면서 악취가 난다는 게 주된 민원 내용이었다. 금지령 이전에는 마리나에 배치된 크레인으로 배를 인양해 뭍에서 작업이 이뤄졌지만, 현재는 육지 작업이 통제된 상태다.

선주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수상 계류장에서 잠수 작업을 하거나, 조선소에 배를 맡기는 수가 있다. 조선소를 이용하려면 비용이 크다. 마리나 이용 선주는 200만원 정도가 든다고 전했다. 여수시는 조선소에서 작업하면 된다고 하지만, 돈을 아끼려면 수중 작업을 해야 한다. 잠수에 숙련된 선주는 본인이 직접 작업을 하고, 아닌 경우 잠수사를 고용한다. 현재는 마리나 측이 수중 작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통제하지 않고 있다고 선주들은 말했다. 한 선주는 “이번 사고에는 업체 사장의 문제도 있지만, 육상 작업을 막아놓은 배경도 있다”며 “수중 작업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여수시는 육상 작업 시설을 마련할 계획이다. 여수시 관계자는 “지난해 시설을 구축하려 했지만, 코로나19에 따른 예산 사용이 늘어 무산됐다”며 “2022년도 예산에 시설 구축 비용을 반영해 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여수시 이순신 마리나에 걸린 따개비 작업 금지 플랜카드.ⓒ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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