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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실습생 친구들 “이제 막 꿈을 찾았다고 했는데...”

[인터뷰] 고 홍정운 군 친구들 “고등학생도 아는 걸 어른들은 왜 못 지키나”

홍성운 군이 작업 중 사고를 당한 S해양레저의 원목 요트ⓒ민중의소리

"정운이가 바다를 진짜 많이 좋아했는데 바다에서 그렇게 되니까 이제 바다가 다르게 느껴져요. 앞으로 요트는 타지도 못할 것 같고···. 저에게서 많은 게 바뀐 것 같아요."

지난 6일 전남 여수에서 현장실습 중 숨진 특성화고 학생 고(故) 홍정운 군의 친구들은 홍 군의 죽음이 앞으로의 생각과 삶이 바뀔 만큼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홍 군의 친구들은 빈소를 3일 내내 지키고, 발인 후에는 홍 군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는 기자회견과 촛불추모제에 나서며 홍 군을 추모했다.

8일 저녁 사고현장인 여수 웅천 마리나 요트장 앞에서 열린 촛불추모제가 끝난 뒤 '민중의소리'와 만난 홍 군의 친구들은 저마다 홍 군과의 추억과 그리움을 털어놨다.

친구들이 기억하는 홍 군은 말이 없고 속이 깊은 친구였다. 힘든 것이 있어도 잘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삭이던 홍 군과 속내를 털어놓고 지냈다던 같은 학교 차은이 양은 "정운이가 힘든 걸 표출하지 않고 혼자 힘들어할 때 위로해주면서 정말 친해졌어요"라며 "남에게 피해주는 걸 정말 싫어해서 혼자 삭히는 성격"이라고 추억했다.

차 양은 "2학년 때 정운이가 다른 친구들은 자격증 몇 개씩 가지고 있을 때 자기는 하나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모르겠다'면서 힘들어하더라고요. 제가 괜찮다고 위로해주다가 그 이후로 많이 친해졌죠"라고 홍 군과의 첫 인연을 기억했다.

말이 많지 않았던 홍 군은 친구들의 기억 속에선 교실 한쪽에 쪼그려 앉아 핸드폰 게임을 하던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씨익 웃거나 엉뚱한 행동으로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한 학년에 30명 남짓, 전교생이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학교에서 홍 군과 사이가 나빴던 사람은 없었다고 친구들은 기억했다. 같은 학과 친구인 오지훈 군은 "정운이하면 그 '빙구' 같은 웃음이 제일 먼저 기억나요"라면서 고개를 떨궜다.

장래를 고민하며 힘들어하던 홍 군은 현장실습을 시작하면서 꿈이 생겼다. 바로 요트사업에 대한 꿈이었다. 홍 군은 사망하기 직전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을 따기도 했다. 차 양은 "현장실습 전까지 정운이는 뭘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일주일 전에 다른 친구에게 목표가 생겼다고, 요트 관리하는 사람이 돼서 돈을 많이 벌어서 하루종일 놀겠다고 했다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현장실습 열심히 하고, 소형선박조종면허도 딴다고 했는데, 이제 곧 시험도 있는데···. 이제 막 목표가 생겼는데 이렇게 가버린 게 제일 안타까워요"라고 붉어진 눈가를 만지작거렸다.

목표가 생긴 홍 군은 실습에 열심이었다. 덕분에 홍 군이 사망하기 전 최근까지 친구들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차 양은 "최근에 얼굴도 못 봤다는 게 너무 마음에 걸려요"라면서 "(홍 군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이상 못 보니까···. 지금 생각하면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만났어야 하는데···. (사고) 당일에 전화 한 통이라도 할 걸 하고 모든 게 다 후회돼요"라고 말했다.

홍 군은 이제 막 생긴 자신의 목표를 사장이 도와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고 친구들은 입을 모았다. 홍 군과 중학교서부터 5년간 같은 학교 친구로 지낸 이재욱 군은 "일이 힘들다고 투덜거리긴 했는데 정운이 말을 들어보면 사장을 믿는 것처럼 말했어요"라면서 "사장이 자격증도 따게 해준다. 다른 자격증도 도와줄 것 같다면서 사장을 믿었는데, 그 사장 때문에 그렇게···"라고 말을 채 잇지 못했다.

홍 군이 믿었던 사장은 잠수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에게 산소통과 납벨트를 짊어지고 물속으로 들어가 요트 바닥의 조개를 제거하도록 했다. 학교와 맺은 현장실습협약서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물에 들어가기를 무서워했던 홍 군은 결국 사장의 말에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는 나오지 못했다.

현장실습을 나갔던 홍정운 군이 사용한 잠수 장비들ⓒ제공 : 홍군 유족

친구들은 홍 군이 자신이 믿었던 사장의 지시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것에 분노했다. 오지훈 군은 "정운이가 물 속으로 빠지는 것을 봤으면서 자기(사장)가 먼저 들어가지도 못하고 옆에 있던 요트 선장들한테 구해달라고 했다는 거 잖아요"라며 "자기가 먼저 물 속으로 들어가서 구하지도 못할 거면서, 사장 자신이 고용한 사람에 대한 책임도 안 지고 있다는 게 너무 분하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군은 운동도 잘하고, 바다도 좋아했지만 물 속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꺼렸다. 잠수교육 과정에서 5m 깊이의 수영장에 들어갔다가 트라우마가 생겼기 때문이다. 홍 군의 사정을 아는 친구들은 홍 군이 물에 들어가기 직전 망설임과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욱 군은 "저도 물을 무서워해요. 제가 사고 현장을 가보니 저는 절대 못 들어갈 것 같았어요. 정운이도 저랑 똑같이 포기하고 싶었을 거에요. 힘들어 했다는 게 느껴져요"라며 "거절도 못하는 정운이가 '못하겠다'고 말할까 말까 정말 많이 망설였을 것 같아요"라고 당시 홍 군의 심정을 짐작했다.

이어 "지금 생각하면 수영도 못하는 애한테 끈이라도 주고 물속으로 보냈다면 이렇게까진 안 됐을 텐데···."라고 한숨을 쉬었다.

홍 군은 두려움 속에서도 물속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이번 사건을 보면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러나 홍 군과 같은 실습생 처지에 놓인 친구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홍 군과 함께 선도부 활동을 했던 이민주 양은 "업체는 돈을 주는 입장이니까 사장이 강요를 굳이 안했더라도 그런 식으로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라면서 "정운이 입장에서는 또 거기에 취업을 해야 하니까 잘 보여야 하기도 했을 거고···. 그걸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라고 말했다.

"물을 무서워하던 정운이...'못해요'라고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장난인 줄로만 알았던 홍 군의 사망 소식은 실제로 빈소가 차려져서야 친구들에게 현실으로 다가왔다. 친구들은 삼일장 내내 빈소를 지키면서 눈물과 그리움으로 홍 군과 작별했다.

차은이 양은 "뭘 하든 간에 다 정운이 생각이 나요. 버스에서 옆자리 같이 타고 등교하던 게 생각나고, 교실 책상에 엎드려서 핸드폰 게임하던 게 생각나고,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걷던 게 생각나고···. 모든 게 정운이 생각밖에 안 나서 계속 울면서 있었어요"라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눈물을 눈매를 만지며 막았다.

몇몇 친구들은 홍 군을 마지막으로 만나는 입관식까지 유가족과 함께했다. 차 양도 입관식에서 몇주만에 홍 군과 재회했다. 몇주전까지만 해도 전화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제 홍 군은 좁은 관에 누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 양은 "왜 정운이가 여기 누워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라면서 "살아있을 때는 손도 제대로 잡지 못했는데, 이제는 차갑고 딱딱해진 손이라도 놓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홍 군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했다.

이어 "물 속에 오래 있어서인지 원래는 홀쭉했던 정운이 얼굴이 조금 퉁퉁해진 게 마음이 아프고 보기 힘들었어요"라면서 테이블만 바라봤다.

홍 군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지켰던 친구들은 8일 발인이 끝나자마자 홍 군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는 기자회견에 나섰다. 차 양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홍 군이 어떤 친구였는지, 홍 군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전했다.

차 양은 "기자회견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발언하고 싶다고 했어요. 정운이가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요. 이제는 하고 싶어도 정운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오지훈 군도 "정운이가 억울한 게 있으면 최대한 풀 수 있게 도와줄 생각이에요. 그게 정운이를 편하게 보내주는 일인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민주 양도 "지금도 억울한 죽음이 왜 정운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라고 기자회견에 나선 마음을 설명했다.

여수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진상규명 대책위원회와 사망한 홍 군의 친구들이 8일 오전 여수 웅천 마리나요트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전교조 전남지부

친구들은 어른들의 욕심과 부주의로 기본적인 것조차 지키지 않았던 것이 홍 군이 어이없는 죽음을 맞은 원인이라고 말했다.

차 양은 "현장실습협약서에 있던 것처럼 정해진 일만 하기로 한 건데 그것도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저도 스킨스쿠버 자격증이 있는데 고등학생도 아는 걸 사장은 모르고 기본적인 사항을 안 지키다 보니 결국 큰 사고가 난 것 같아요"라고 지적했다.

'왜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않았을까' 이어진 질문에 이재욱 군은 "아직 학생이라 그런 거 같아요. 어리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요"라고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으로 친구들은 학교와 교육청을 향해 조금만 더 자신들을 살펴봐달라고 호소했다. 이 군은 "학교에서는 취업담당관 선생님들이 실습현장에 자주 와서 살펴봐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어요. 교욱부에서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어요"라고 아쉬운 마음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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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 김백겸 기자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