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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은 CT, 비정규직은 X-ray” 석탄가루 날리는데 건강검진 차별하는 석탄공사

[검은 노동, 검은 눈물①] 사양산업 핑계로 비정규직 건강 문제도 손 놓은 에너지 공기업

강원도 삼척시 도계광업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선탄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진보당

온몸이 새까매질 정도로 분진이 많이 나는 곳에서 일을 하는 탄광노동자들에게 필수적인 건강검진을 두고 대한석탄공사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해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건강검진 차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석탄공사는 정부의 공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에는 나 몰라라 하고 있는 형국이다.

똑같이 분진 덮치는데...건강검진 차별

14일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 석탄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석탄공사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건강검진 지원비를 30만원씩 지원한다. 현장직에겐 연 1회, 사무직에겐 2년 1회에 한해서다.

올해 석탄공사 도계광업소(강원도 삼척 도계읍)에서 실시한 2개 병원의 건강검진 항목을 보면, 기본으로 혈액검사 및 소변검사, 초음파검사를 실시하며, 혈액3종, 골밀도검사, 흉부CT, 갑상선초음파 등 특별 검사도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다.

그 외 추가 검사는 본인 부담으로 받을 수 있는데, 일부는 할인이 적용되며 가족도 같은 가격이 적용된다. 석탄공사는 “사소별로 여러 병원의 제안서를 받아서 그 중 2개 정도의 병원을 선정한다”며 “검진 세부항목은 연도별, 사소별, 병원별로 다를 수 있으나 대동소이하다”고 설명했다.

탄광노동자는 완치가 불가능한 직업병인 ‘진폐증’의 위험을 늘 안고 살고 있다. 진폐증은 석탄가루가 폐세포에 붙은 뒤 폐를 굳게 만드는 질병이다. 탄광노동자들에 대한 정밀한 건강검진이 특히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도계광업소에서 일하는 석탄공사 하청업체 비정규직의 건강검진은 정규직의 건강검진에 비해 부실하다. 정규직이 받고 있는 건강검진 지원금을 비정규직은 따로 받지 못하면서다.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석탄공사지회에 따르면 도계광업소 정규직이 지정병원에서 여러 가지 CT 검사를 받을 때, 하청업체 비정규직은 이동식 차량에서 약식으로 X-ray(엑스레이) 등 기초적인 일반검사만 받는다. 정규직과 똑같은 석탄가루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검진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도계광업소에서 돌과 탄을 분리하는 ‘선탄’ 작업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작업장 내 분진이 기준치 이상으로 나온 것으로 측정되자, 건강검진 때 한번만 찍던 X-ray를 그나마 지난해부터 두 번씩 찍었다고 한다.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CT 등) 특수촬영을 우리는 한 번도 안 해봤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위험하고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다가 골병이 들고 있었다. 도계광업소에서 올해 8년차 선탄원인 김모(50대)씨는 2년 전 각혈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최근 병원에서 폐종괴 진단을 받고 이달 수술을 앞두고 있다.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민중의소리

정규직은 식대와 입갱수당 받고, 비정규직은 없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은 건강검진에 그치지 않는다. 비정규직은 임금에서도 차별을 겪고 있었다.

노조에 따르면 석탄공사 정규직은 건강검진 지원금뿐만 아니라 기본급 3%의 위험수당, 그리고 휴가수당, 특수직무수당, 연료보조비, 중식보조비, 생산성향상독려비, 성과급, 문화여가비, 경조비 및 유족위로금, 상여금, 교통비 등을 받고 있지만 비정규직은 이를 받지 못하고 있다. 민중의소리가 노조로부터 받은 비정규직 급여명세서들을 보면 각종 수당은커녕 통상적으로 임금과 함께 받는 ‘식비’조차 없는 경우가 있었다.

노조는 석탄공사가 도급업체 입찰 과정에서 제시하는 ‘비정규직 직종별 1인당 원가설계서’에 애초 식비를 비롯한 각종 수당이 포함돼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엔 직무수당, 연장근로수당, 휴일수당 등 기본급 수준만 명시돼 있다.

송주화 석탄공사지회장은 “실제 급여명세서에 ‘식대’가 포함돼 있는 경우도, 하청업체가 원청에서 받은 인건비를 쪼개서 명목상 넣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선탄원인 황계인 영보기업분회 사무국장은 “똑같이 도시락을 싸와서 점심을 먹는데, 석탄공사 정규직은 식대를 받고 하청업체 비정규직은 식대를 못 받고 있는 셈”이라며 “명절에 똑같이 쉬어도 정규직은 유급, 비정규직은 무급”이라고 전했다. 심지어 5월 1일 노동절에도 정규직은 유급, 비정규직은 무급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석탄공사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올해 8월 급여명세서. 입갱수당 외에는 대한석탄공사 정규직이 받는 각종 수당은 포함되지 않았다.ⓒ공공연대노조

정규직이 모두 받고 있는 기본급 15%의 입갱수당과 분진수당도 비정규직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입갱수당은 말 그대로 갱 안에 들어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받는 수당이다. 분진수당은 갱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분진이 많이 발생하는 곳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받는 수당이다.

노조에 따르면 정규직은 현장직의 경우 입갱수당 또는 분진수당을 모두 받지만, 비정규직은 직무에 따라 선별 지급된다. 이 역시 석탄공사의 임금 설계 탓이다.

원가설계서를 보면 ‘공차청소’와 ‘티플러’(광차에서 석탄을 쏟아내는 장치) 작업을 하는 비정규직은 ‘특수근로수당’이라고 하는 입갱수당을 받지 않도록 돼있다. 이에 대해 석탄공사 관계자는 “갱외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라며 “갱내에서 일하거나 분진이 발생하는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분들에게는 직영과 협력업체 모두 지급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송 지회장은 “티플러는 갱내에서 하는 일이다. 티플러 옆에서 공차청소도 같이 하는 것이다”며 ‘갱외’ 작업이라는 석탄공사의 해명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석탄공사 정규직은 현장 노동자면 직접부든 간접부든 누구나 입갱수당과 분진수당을 받지만, 비정규직은 현장에서 일하더라도 분진이 정말 심각하게 나는 곳에서 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받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석탄공사가 하청업체로 일을 넘기면서 노동자들의 임금도 대폭 삭감됐다고 입을 모았다. 여기에 수당도 거의 받지 못하다 보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최저임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선탄원인 양금옥 영보기업분회장은 “10년을 일해도 처음 들어왔을 때와 같은 임금 수준”이라며 “그런데 일은 (인력 감축 등으로 인해) 10년 전보다 더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우리가 석탄공사에 다닌다고 하면 좋겠다고 하는데 말이 석탄공사이지 민간회사보다도 처우가 뒤떨어진다”며 ‘막노동’이나 다름없다고 한탄했다.

민간기업인 경도광업소에서 30년 넘게 일하다가 현재 석탄공사 하청업체에서 운탄 작업을 하고 있는 박모(60대)씨도 “명색이 ‘석탄공사’ 아닌가. 그래서 뭔가 잘 돼 있겠구나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영 아니다. ‘공사’가 아니라 그야말로 ‘하청’이다”라고 비판했다.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의 갱구ⓒ민중의소리

하청업체와 선 긋는 석탄공사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건 정규직과 다르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1989년 정부의 석탄합리화 정책에 따라 1991년부터는 광업소 업무를 외주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한석탄공사가 운영하는 3개 광업소(도계·장성·화순)는 정규직 인력을 대폭 축소했다. 그 결과, 작년 기준으로 하청 비정규직(868명)이 정규직(848명)보다 많아졌다고 양이원영 의원이 석탄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나와있다. 정규직이 하던 일을 비정규직이 그대로 이어받아서 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작업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얼굴을 맞대고 같이 일하고 있다. 심지어 정규직이 할 일을 비정규직이 같이 하고 있다는 말도 노동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그러다가 산재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광차 수리를 담당하는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인원이 부족해서 광차 수리하기에도 바쁜데 직영에서 하라는 일도 많이 한다”며 “사실상 직영과 저희가 동일하게 일을 하는데 임금 등에서는 눈에 띄게 차이가 나니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앞서 2018년 12월 도계광업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석탄공사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석탄공사가 산재 및 근로기준법상 책임을 피하려고 위장도급을 해왔으며, 하청노동자와 석탄공사가 근로자와 사용자의 관계에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이에 대법원은 석탄공사가 하청노동자에 대한 처우를 정규직과 차별해선 안 된다고 판결했다.

소송을 낸 이들은 도계광업소 협력업체에 고용돼 길게는 20년 이상 적게는 3년간 일한 노동자들로, 석탄공사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탄광에서 채탄 작업을 해왔다. 1년 단위로 도급업체의 입찰이 이뤄졌지만, 업체가 변경돼도 하청노동자 대다수는 고용이 승계돼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 도계광업소에서 운탄, 선탄, 광차수리 등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면서 동일 업무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석탄공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 시정 요구에 ‘하청업체 일’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석탄공사 관계자는 건강검진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가 부담하는 것이라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는 하청업체 사업주가 부담해야 할 문제라며, 석탄공사의 지원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사 사정상 (예산을) 반영을 못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양이원영 의원은 “탈석탄으로 인해 석탄산업의 사양산업화는 갈 수 밖에 없는 길이다”며 “이런 전환의 시기에 사양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여차별도 서러운데, 기본적인 건강권과 노동환경까지 차별하는 일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을 함께 책임지는 구조가 돼야 한다. 공기업인 석탄공사가 회사를 키워 온 노동자를 책임지고 ‘공정한 전환’을 주도해야 새로운 기회도 생겨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송 지회장은 “노동 환경을 개선해야 하는데 협력업체 사장은 입찰할 때 매년 인건비만 (석탄공사에게) 받아서 들어온다. 그래서 돈이 없어서 개선할 수 없다고 한다”며 “결국 원청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계광업소의 한 하청업체 사장도 “원청에 문제 제기할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진보당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석탄공사의 열악한 노동실태와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고발하는 진정서를 냈다. 아직 답은 오지 않았다. 도계광업소 비정규직 노동 현장을 직접 방문했던 진보당 김재연 대표는 “다른 곳도 아니고 공공기관이 하청업체 뒤에 숨어서 20년 넘게 일 해온 노동자들의 처우를 나 몰라라 하면서 책임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알아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석탄공사 광업소 하청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서도 제외된 상태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산업수요·정부 정책 변화에 따라 기능조정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를 정규직 전환 예외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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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