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를 보면서 ‘이 분이 웃기려고 정치를 시작하셨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이런 목적으로 정치를 시작했다면 그는 성공했다. 그것도 대성공이다.
예를 들어 손바닥 왕(王)자 논란 때 “손가락 위주로 씻어서 안 지워진 것 같다”는 해명은 진짜 압권 아닌가? 도대체 손을 씻을 때 왜 손가락만 씻고 손바닥은 안 씻는단 말인가?
성차별, 인종차별은 들어봤어도 손바닥 차별은 정말 처음 들어봤다. 나는 모든 종류의 차별에 단호히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는 윤석열 씨의 차별받는 손바닥과 연대해 손가락에 맞서 싸워야 하나? 뭐 이런 그로테스크한 상황이 다 있단 말인가?
그런데 지난주초에 열린 국민의힘 대선 후보 제주 TV 토론에서 윤 후보는 나를 또 한 번 크게 웃겼다. 손바닥 차별이 순수 개그(!)였다면 이번 개그는 경제학이 가미된(?) 학문적 개그다. 그 개그를 잠시 회고해보자.
▶ 유승민:윤석열 후보님의 복지 정책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뭡니까?
▶ 윤석열:복지라는 게 굉장히 포괄적이긴 한데 저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아주 어려운 사람에게 두툼하게 해주자. 그리고 복지를 규모의 경제라든지, 보편복지로 할 만한 것들을 사회 서비스로 해 가지고 복지 자체에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주는···.
▶ 유승민:복지에 방금 ‘규모의 경제’라고 그러셨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 윤석열: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이런 거죠.
▶ 유승민:복지에 무슨 규모의 경제가 있습니까?
나는 이 ‘규모의 경제’ 대목에서 육성으로 터졌다. 복지에 규모의 경제를? 이건 또 무슨 무식한 소리인가? 복지에 규모의 경제를 붙이면 이론적으로 엄청난 코미디가 된다. 질문을 한 유승민 후보는 그 대목을 그냥 넘어가던데, 나는 그것도 이상했다. 유 후보는 경제학 박사다. 경제학 박사가 보기에 저게 안 웃긴가? 난 웃겨서 거의 뒤로 넘어갈 뻔 했는데?
규모의 경제란?
이게 얼마나 웃긴 이야기인지 확인하기 위해 규모의 경제가 무엇인지부터 정리해보자. 규모의 경제란 생산요소의 투입을 늘릴수록 생산량이 생산 비용보다 더 커지는 현상을 뜻한다.
이 말도 어려우니 조금 쉽게 예를 들어보자. 연필 공장에서 하루에 연필을 100자루 만드는 데 1만 원이 든다고 치자. 흑연도 필요하고, 나무도 필요하고, 기계도 필요하고, 노동자에게 월급도 줘야 할 테니 이 정도 돈이 든다.
그러다가 연필이 잘 팔려서 공장에서 연필 생산량을 늘리기로 했다. 이랬더니 하루에 드는 비용이 갑절인 2만 원으로 늘었다. 이것을 “생산요소 투입을 늘렸다”고 말한다. 이때 생산되는 연필 숫자가 200자루면 계산이 쉽다. 100자루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1만 원, 200자루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2만 원이니까 아무 문제가 없는 거다.
그런데 비용을 2만 원으로 늘렸더니 생산되는 연필이 250자루가 된다면 어떨까? 무척 신이 나지 않겠나? 2만 원을 투입하면 200자루가 생산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생산량이 예상보다 50자루나 더 늘어났으니 말이다. 바로 이런 경우를 규모의 경제라고 부른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생산요소 투입을 늘릴수록 효율성이 좋아져서 그렇다. 100자루를 만드나 250자루를 만드나 공장에서 내야 하는 월세는 똑같다. 또 기계를 더 빨리 돌렸더니 노동자들이 일을 더욱 효율적으로 하는 효과도 생길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일의 양이 많아지면 효율성이 높아져 투입한 비용에 비해 생산량이 더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작정 생산요소 투입을 늘리는 게 좋은 걸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생산요소 투입을 늘렸는데 거꾸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도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필 공장 사장님이 욕심을 부려 “이제부터 생산량을 10배로 늘리겠다”라며 투자비용을 10만 원으로 늘렸다고 해보자.
하지만 기대와 달리, 비용은 10배로 늘었는데 연필 생산량은 100자루에서 800자루로 8배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자 기계가 고장이 나고, 새롭게 추가로 투입된 노동자들의 손발도 맞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생산요소 투입을 늘릴수록 효율성이 되레 낮아지는 경우를 ‘규모의 불(不)경제’라고 부른다.
복지가 규모의 경제라면 벌어지는 일들
이 차이를 아는 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규모의 경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규모의 불경제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규모의 경제보다 규모의 불경제가 적용되는 분야가 더 많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이를 좀 어려운 말로 “경제학에서 한계생산이 체감하기 때문에 수확체감을 원칙으로 삼고 수확체증을 예외로 삼는다”라고 표현한다(이런 어려운 말은 당연히 몰라도 좋다).
그래서 특정 분야에서 규모의 경제를 적용하려면, 그 분야는 생산요소 투입을 늘릴수록 효율이 증대한다는 사실을 먼저 입증해야 한다. 그게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후보의 말처럼 복지에 규모의 경제를 적용해보자. 윤 후보 말은 “복지의 규모를 늘리면 훨씬 효율적이다” 뭐 이런 뜻이 된다. 그런데 첫째, 이런 사고방식은 출발 자체가 틀렸다. 복지는 효율성을 지표로 측정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왕 정부가 쓰는 돈, 효율적으로 쓰면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이 효율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복지의 근본 철학이 훼손된다. 예를 들어 “빈곤 노인을 돕는 일에 돈을 100원을 쓰면 120원의 효과나 나타날까, 안 나타날까?” 뭐 이런 걸 따지는 게 복지의 근본 이념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둘째, 만약 복지에 규모의 경제가 적용된다면 우리나라는 복지 지출을 무조건 계속 늘려야 한다. 왜냐하면 규모의 경제라는 말 자체가 “생산요소의 투입을 늘릴수록 결과가 더 효율적이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가 윤석열 후보의 이야기를 듣고 뒤로 뒤집어질 뻔 했던 대목이 이거였다. 윤석열 후보님, 진짜 이런 이야기를 한 겁니까? 복지는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분야이니 복지를 계속 늘려야 해요? 아주 진보적인 후보 납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런 뜻으로 이런 말을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보편복지도 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 당 대표는 “작은 정부가 최고야”라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고. 그런 정당에 속한 대선 예비 후보가 복지를 무작정 늘리자는 데 동의할 리가 있나?
그렇다면 윤 후보는 “복지는 줄여야 하는데, 복지는 규모의 경제가 적용된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뜻이다. 이 말을 한 번 더 풀이하면 “복지는 줄여야 하는데, 또 복지는 늘려야 효율적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이게 도대체 뭔 말이냐? 혹시 정법스님이 이렇게 헛갈리게 말하라고 시켰냐?
규모의 경제가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 모를 수 있는데, 그 모르는 지식을 국가 정책에 막 갖다 붙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윤석열 후보, 당신이 대통령이 돼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에게 “복지는 줄이되, 규모의 경제를 활용하라”고 한번 지시해보라. 그 공무원들은 대번에 ‘복지를 늘리라는 거야, 줄이라는 거야?’라며 헛갈려 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무식함을 국가 정책에 갖다 대면 안 되는 것이다.
“단순한 말 실수다”라고 퉁을 칠 생각은 말라. 내가 보기에 실수가 아닐 뿐더러(실수가 아니라 그냥 무식한 거임), 설혹 실수였다 해도 용납이 안 된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정책에 대해 남기는 말 한 마디는 그 국가 경제 정책의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복지에 규모의 경제를 적용하겠다”고 해놓고, 나중에 “그건 말 실수였어요”라고 퉁을 치면 그게 넘어가지는 일인가?
아무튼 이분은 참 다양한 방면에서 사람을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코로나로 우울한 판에 한바탕 크게 웃게 해 준 건 고마운데, 당신이 대통령이 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다. 대통령이 웃기는 자리가 아니고서야 어찌 그 자리에 당신이 앉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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