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노동자 열전⑩] 25년 경력 타워크레인 노동자 박미성 “60m 높이에 몸살 겪으며 배웠어요”

여성 차별 없는 일터 찾아 방직공장, 탱크로리 운전 거쳐 타워크레인 기사 되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노란 철탑,
내가 딛고 서 있는 지반의 무게와
대립하는 의지의 팽팽한 균형
그 너머로
봄이 빠르게 오고 있다”
- 고경숙, 시 ‘타워크레인’ 중에서

지반의 무게를 이기며 하늘로 오르는 건 그 자체로 도전이다. 모든 무게를 이기고 그녀는 매일 하늘로 오른다. 25년 넘게 매일 아파트 20층 높이가 넘는 60m 고공으로 향한다.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 기사로 있는 박미성 건설노조 부위원장을 지난 10월 26일 서울 영등포 대림동 건설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타워크레인 조종실에서 작업 중인 박미성 건설노조 부위원장ⓒ박미성 부위원장 제공

“올라가는 데만 10분 정도 걸려요. 한번 올라가면 점심 먹을 때 잠깐 내려오는 것 빼면, 종일 공중에서 일해요. 높은 데서 혼자 일하니까 작업 지시는 신호수를 통해 무전기로 받아요. 요청이 오면 자재를 필요한 곳에 내려줍니다. 처음 일 배울 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하면 할수록 경력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아요. 처음엔 자신감만 컸지 요령은 없었거든요.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져야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고, 제가 잘해야 아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어요.”

1992년 기중기 자격증 취득
버스회사에서 일하며 쉬는 날
도제식으로 배워 1996년부터 현장에

그녀는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일을 하고 싶어서” 타워크레인 기사가 됐다. 그녀는 20대를 방직공장 노동자로 보냈다. “인천에서 방직회사에 다녔어요. 이십 대 초반부터 계속 일했는데, 남녀 차별이 심했어요. 임금은 물론 진급에서도 차이가 났어요. 1980년대 공장 분위기는 억압적이었고, 노동조합도 어용이었어요. 불합리한 것들도 많았고, 정말 답답했고,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차별 없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장을 그만뒀어요.”

공장을 나와 그녀는 각종 자격증을 취득했다. 대형면허부터 굴삭기, 트레일러 등 건설현장에 필요한 중장비 자격증을 땄다. 1992년엔 기중기 자격증을 취득했다. 2007년부터 법이 바뀌어 타워크레인 관련 자격증이 따로 생겼지만, 당시엔 기중기 자격증을 가지고, 타워크레인도 조종할 수 있었다.

타워크레인 조종실에 오르는 박미성 부위원장. 계단을 올라 가는 시간만해도 10분이 넘게 걸리고, 한번 올라가면 점심시간을 빼곤 퇴근 때까지 못내려온다.ⓒ박미성 부위원장 제공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다 탱크로리 운전을 하게 됐어요. 여성도 동등한 대접을 받을 거란 기대로 시작했지만, 당시 남성들은 80만 원을 받았는데 저는 여성이란 이유로 60만 원 밖에 못 받았어요. 일하던 주유소 사장님에게 이야기했는데, 소용이 없었어요. 그래서 버스회사로 옮겼어요. 버스회사에선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일하다 타워크레인에 도전했어요. 아무래도 버스는 교대근무여서 힘들었어요. 타워크레인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일하니깐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적거든요. 기중기 자격증을 가지고, 도제식으로 타워크레인을 공부해 현장에 투입되던 시절이었어요. 버스회사에서 격일로 일하면서 쉬는 날 배웠어요.”

“타워 위에는 화장실이 없어요.
참아야 해요. 그래서 물조차 맘대로
마시기 어려워요.”

하지만, 배우는 과정은 쉽진 않았다. 버스 운전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타워크레인을 배워야 하는 육체적 피로도 컸지만, 무엇보다 처음 힘들었던 건 높이가 주는 공포를 이겨내는 것이었다. 지금은 매일 아무렇지 않게 오르는 길이지만, 일을 배우던 당시엔 한발 떼는 것조차 힘겨웠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정말 무섭더라구요. 일을 배우면서 크게 몸살을 서너 번 겪었어요. 하지만, ‘나에겐 물러설 자리가 없다’는 각오로 배웠어요.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높이가 익숙해졌어요.”

그렇게 몇 개월 동안 공포를 이겨가며 기술을 익혔고, 1996년부터 타워크레인으로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높이에 적응하더라도 종일 1평 남짓한 공간에 갇혀있어야 하는 현실은 힘들다. 높은 곳에 홀로 떨어져 일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대화할 상대도 없는 철저한 혼자다. 땅과 떨어져 있기에 생리현상조차 조절해야 하는 고역이 뒤따른다. “타워 위에는 화장실이 없어요. 참아야 해요. 그래서 물조차 맘대로 마시기 어려워요.”

타워크레인 조종실에 있는 박미성 부위원장.ⓒ박미성 부위원장 제공

아울러 타워크레인은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작업이다. 조그만 실수에도 큰 사고를 당할 수 있다. 타워크레인을 움직이는 기사뿐 아니라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도 위협받을 수 있기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래에서 작업하는 분들과 무전이 잘 안 맞거나 돌풍이 불면 아찔한 상황이 많이 일어나요. 그래서 집중, 또 집중해요. 위에선 작은 사고여도 아래에선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아무래도 빨리빨리 일을 서두르다 보면 사고가 납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상당수 타워크레인 사고도 그런 이유로 일어나요. 그래도 지금은 현장 분위기가 많이 나아져서, 재촉하는 일은 예전보다 적어요. 늘 긴장하지만, 그래도 저는 일을 즐기면서 해요. 제가 건축자재를 일하는 이들에게, 잘 전달할 때 보람이 커요. 재미있어요.”

“360도 주변을 보면서
아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건축물이 지어지는 과정도 살펴요.
무엇보다 풍경이 좋아요.
타워크레인이 가진 장점 가운데 하나에요.”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늘 집중해야 하지만, 가끔은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할 때가 있고, 그때 타워크레인 조종석은 멋진 전망대로 변신한다. 높이에 익숙해지고, 경력이 쌓이면서 쉬는 시간이면 타워크레인 밖 풍경을 즐긴다. 가장 높은 곳에서 일하는 그녀는 현장에서 누구보다 멀리 본다. 앞서 계절을 보고, 빨리 시간을 느낀다.

“제 취미 가운데 하나가 높은 타워 위에서 주변을 바라보는 거예요. 360도 주변을 보면서 아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건축물이 지어지는 과정도 살펴요. 무엇보다 풍경이 좋아요. 특히 평택 지역 공사할 때 바라보는 풍경은 일품이에요. 옆으로 안성천이 흐르고, 드넓게 펼쳐진 평야가 너무 아름다워요. 봄이 오는 풍경과 바람에 일렁이는 벼의 움직임까지 아름다운 절경이에요. 해마다 현장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타워크레인이 가진 장점 가운데 하나에요.”

건설노조 가입 직후인 2006년 열린 집회에 참석한 박미성 조합원(사진 중간 왼쪽)ⓒ박미성 부위원장 제공

그녀는 1세대 여성 타워크레인 기사라고 할 수 있다. 여성 타워크레인 기사가 국내에 최초로 등장한 게 1990년이었고, 그녀가 일을 시작한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여성 기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 여성 타워크레인 조종사라는 이유만으로 방송에 나오거나, 신문에 보도될 정도로 드물었다. 예전보다 늘어나긴 했지만, 지금도 여성 타워크레인 기사는 많지 않다. 건설노조 소속 타워크레인 노동자들 가운데 여성의 비율도 5%를 넘지 않는다. 그녀는 “일하면서 임금 등에 있어 차별은 없다”고 했다.

이렇게 건축현장에서 남녀가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힘이자 배경은 건설노조다. 차별이 싫어 평등한 일자리를 찾아 타워크레인 기사가 된 그녀이기에 건설노조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든든한 뒷배가 되고 있다.

“노조에 소속돼 있으면 남녀 간에 차이가 없어요. 노조를 통해서 단체협약을 맺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하지만, 비조합원들의 경우 아직 차별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여성이면 일거리를 찾기도 어렵고, 돈도 조금 주는 경우가 있다고 해요. 사장이 정해주는 대로 받아야 하니 불합리해도 뭐라고 말하기 힘들거든요. 저도 처음엔 비조합원이었어요. 그렇게 차별도 받아보고, 일거리가 안정적이지 않고, 많이 옮겨 다니는 등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런데, 노동조합에 가입한 뒤로는 보호받고 있어요.”

2006년 건설노조 가입
“안도감이 생겼어요.
저도 기댈 곳이 만들어진 거예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큰 힘이 돼요.”

그녀가 노동조합에 가입한 건 지난 2006년이었다. 경기도 화성지역에서 일할 때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가입을 권유했다. 노조에 가입한 뒤 가장 큰 장점은 내 편이 생겼다는 것이다. “안도감이 생겼어요. 저도 기댈 곳이 만들어진 거예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큰 힘이 돼요. 타워크레인 임대사들이 기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는데, 노조에 가입하면서부터 그런 압력이 사라졌어요.”

2019년 11월 30일 열린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함께한 박미성 부위원장(오른쪽).ⓒ건설노조

노동조합은 그녀에게 세상을 더욱 넓게 바라볼 수 있는 눈과 함께 함께 싸우는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해줬다. 지난 10월 20일 있었던 민주노총 총파업에 건설 노동자들도 하루 일당을 포기하고 함께 했다. “많이 달라졌어요. 노조 하기 전에는 나 하나 먹고 사는데만 급급했는데, 노조를 하면서 주위를 바라보게 됐어요. 주변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도 가지게 됐어요. 길을 가다가 집회나 시위가 있으면,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는지 관심 깊게 지켜보기도 합니다.”

“여성의 비율은 늘었어도,
아직 건설현장은 여성이 일할 수 있도록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노조에서 중앙과 지역을 오가며 활동해온 그녀는 지난 2019년부터 건설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와 함께 건설노조 활동을 하는 이영철 건설노조 위원장은 “타워크레인 기사인 박 부위원장은 항상 저를 만나면 일하는 현장 이야기를 하십니다. 목수팀, 철근팀, 그곳의 팀장이나 작업반장들이 팀원들과 안전하게 일하는지, 휴게시간을 지켜 쉬면서 일하는지. 유난히 폭염이 많았던 올여름엔 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그늘 한 점 없는 곳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을 에어컨이 돌고 있는 타워크레인 위에서 내려다볼 때면 ‘너무나 안타까웠다’고 하시면서 ‘노조가 더 열심히 현장의 조건을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타워크레인 기사가 목수, 철근공들의 안전이나 노동조건까지 걱정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박 부위원장님은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을 느끼게 하는 분”이라고 칭찬했다.

유일한 여성 부위원장인 그녀는 건설현장이 여성들도 일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성 건설노동자 비율은 10% 정도예요. 특별한 기술을 가지지 못해 현장에서 보조 업무를 하는 여성들까지 포함하면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겁니다. 하지만, 여성들의 비율은 늘었어도, 아직 건설현장은 여성들이 일할 수 있도록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2020년 11월 18일. 건설노조가 '건설현장 여성노동자 권리찾기 프로젝트' 행사를 가졌다. 양성평등 제도개선 국회토론회에 앞서 국회 앞에서 박미성 부위원장.ⓒ건설노조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여성위원회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 노동자가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들기 위해 국회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이들은 “건설현장은 다수의 남성 노동자들과 소수의 여성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으나 건설산업은 남성들만의 산업으로 인식되었다. 2019년 통계청 기준으로 건설업 전체 노동자는 약 200만 명이다 이중 여성은 약 20만 명으로 10%를 차지하고 있다. 10%의 여성 건설노동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 임금, 직무 등에서 차별을 받는 것이 현실”이라며 “화장실, 탈의실, 휴게실 등 부족한 편의시설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을 거부당하고 업무와 무관한 일을 지시받거나 임금을 차별받고 교육훈련의 기회도 공평하게 제공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 화장실·샤워실 없는 현장 88.5%
여성 탈의실 없는 현장 72.5%
안전모, 안전화, 작업복 등 여성 규격 없어

지난 2019년 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이 여성 건설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용 화장실·샤워실이 없는 현장이 88.5%였고, 여성용 탈의실이 없는 현장도 72.5%에 달했다. “코로나 때문에 손을 자주 씻으라고 강조하는데, 현장엔 수도조차 안 나오는 간이 화장실뿐이고, 그나마 여자 화장실은 찾기 힘들어요.”

화장실 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에서 안전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안전모, 안전화, 작업복 등도 여성들의 사이즈나 체형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자신의 머리보다 커서 쉽게 벗겨지는 안전모와 너무 커서 깔창을 세 개 깔고, 양말을 두 개 신고 신어야 하는 안전화에 이르기까지 불편한 게 많다. 그리고, 이런 안전 장구의 불편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여성 노동자들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장에 여자화장실을 설치하는 등 환경을 개선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어요. 이야기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아요. 한번 바뀌어도 다시 이야기하지 않으면 금방 원래대로 돌아가요. 그래서 계속 싸워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법제화 하는 수밖에 없다고 봐요. 아울러 여성용 안전 장구도 법제화 해서 공급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기술을 배울 기회가 없고,
일할 수 있는 현장을 잘 몰라
일하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이런 일과 현장이 있다는 것도
계속 알릴 거예요.”

아울러 여성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건설현장이 되기 위해선 다른 무엇보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고 그녀는 믿는다. 여전히 현장에선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 “남편이 뭐 하는 데 이런 데 나와서 일하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여성을 기술직이 아닌 보조 노동자 정도로 취급하는 분위기도 있다. 성희롱, 성폭력 등의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1월 발표한 ‘여성 건설 근로자 취업 현황과 정책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건설 노동자(507명 대상 조사) 가운데 26.4%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했다. 그 가운데 10회 이상 성희롱을 당했다고 밝힌 비율도 34.3%에 이르렀다. 76.9%가 작업 현장에서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했고, 가해자는 작업반장, 동료, 하청 관리자, 원청 관리자 등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응답자의 56.2%는 일을 그만둔 경험이 있다고 답했는데 그 가운데 절반가량인 47.7%가 ‘건설현장의 빈번한 성희롱·성차별’을 이유로 꼽았다.

건설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박미성 건설노조 부위원장ⓒ민중의소리

건설노조가 그나마 여성 건설노동자들을 지키는 버팀목이 되고 있지만, 노조 안에서도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는 이들도 있다. 건설현장의 성평등을 위해선 노동조합이 우선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녀는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여성위원회와 함께 노력하고 있다. 이영철 건설노조 위원장은 “건설현장이 아직은 여성들이 일하기 만만치 않아요. 여성 조합원들이 노조에서 활동하는 것도 녹록하지 않습니다. 무의식중에 여성의 권리가 무시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의견을 나누는 자세로 상대에게 여성의 권리가 노조 안에서부터 지켜져야 한다고 우리를 일깨워줍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녀는 여성 노동자들이 건설현장에서 제대로 기술을 배워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사업에도 관심이 많다. “기술을 배울 기회가 없고, 일할 수 있는 현장을 잘 몰라 일하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이런 일과 현장이 있다는 것도 계속 알릴 거예요.”

그녀는 건설현장에서 새롭게 일하기 시작한 후배 여성 노동자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며 일했으면 해요. 어려움이 있어도 끈질긴 자세로 싸우겠다는 의지가 중요해요. 누가 대신 싸워줄 수도, 대신 일해줄 수도 없는 거거든요. 그런 마음으로 솔직하게 일을 대해야 오래 일할 수 있습니다.”

“건장한 사람만 일할 수 있는
현장이 되어선 안 됩니다.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도
건설자재 경량화가 꼭 필요해요.”

최근 건설현장은 여성뿐 아니라 청년 노동자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건설노조에서도 앞장서서 여성 노동자와 청년 노동자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등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 현장은 여전히 여성은 물론 청년 노동자들이 일하기 쉬운 환경이 아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건축자재의 경량화가 시급하다고 그녀는 지적했다. 각종 건축자재의 규격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여성 노동자가 일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여성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건설노동자 모두의 건강을 위한 문제이기도 하다. 청년 노동자들도 건설현장이라고 하면 기술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건장한 체격을 가진 이들만이 일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자재 경량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폼’이 대표적인 자재다. 알루미늄 재질의 형틀인 알폼은 건물의 벽체, 계단, 천장을 만드는 기초가 된다. 그 가운데 아파트 벽을 만드는데 가장 많이 쓰이는 알폼은 가로 0.6m, 세로 2.4m이며 무게가 30kg에 달한다. 알폼을 나르고, 설치하는 작업 모두 사람의 손으로 이뤄지는데, 크기와 무게 때문에 힘센 건설노동자들도 힘겨워하고, 꺼리는 작업이다. “건장한 사람만 일할 수 있는 현장이 되어선 안 됩니다.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도 경량화가 꼭 필요해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폐지하자구요?
출근해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자가 해마다 수백 명이 넘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분들 주변엔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이 없나봐요”

또한, 모두가 일할 수 있는 건설현장을 만들기 위해선 안전도 중요하다. 건설노조는 지난 10월 19일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건설노조 10.20 총파업 기자회견’에서 “건설노동자가 죽고 있다. 오늘도 하루 2명 건설노동자는 예고된 죽음을 맞는다. 떨어져 죽고, 자재에 맞아 죽고, 끼어서 죽고, 감전돼 죽는다. 시민도 재해를 입는다. 건설현장을 지나다 사고를 당한다”며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사람 살리는 총파업에 나선다”고 선언했다.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지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 동안 건설현장에서 작업 중에 사망한 사람은 5,720명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6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녀는 “기업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사고를 막을 수 없어요. 계속 죽습니다”라고 경고했다.

타워크레인 위에 있는 박미성 부위원장ⓒ박미성 부위원장 제공

하지만, 중대한 재해로 노동자들이 사망했을 때 기업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에서 제외하고, 공무원 처벌 규정 삭제, 경영책임자 의무의 간접 의무화 등으로 누더기가 되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내년 시행을 앞두고 이마저도 개악 또는 폐지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는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킨다면서 폐지를 공약했고, 윤석열 후보도 경영진을 직접 사법처리하는 문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녀는 이런 주장에 대해 “통계만 봐도 노동자들의 죽음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텐데 기업경쟁력 운운하는 건 결국 사람 목숨보다 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아니에요. 출근해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자가 해마다 수백 명이 넘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분들 주변엔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이 없나봐요”라고 꼬집었다.

“지난 20일 총파업을 보며
다시 생각했어요.
세상을 바꾸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것을.
저도 끝까지 함께 싸울 겁니다.”

그녀는 얼마 뒤면 건설노조 부위원장직에서 내려온다. 하지만, 부위원장 임기를 마친 뒤에도 여성 건설노동자들과 현장의 문제를 챙기며 꾸준히 목소리를 낼 생각이다. 정년도 이제 몇 년 남지 않았고, 정년 이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아직 세우진 않았지만, 젊은 시절부터 꿈꿔왔던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앞으로도 힘을 쏟고 싶다고 했다.

“저는 아이가 없어요. 전두환 시절 공장을 다니며 억압과 차별을 온몸으로 겪었어요. 그래서 혼자서도 벅차다는 생각에 아이를 낳을 생각은 못 했어요. 차별 없는 일터를 찾아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따고, 현장에서 일했습니다. 노조를 만나면서 힘을 얻었구요. 젊은 세대들에게도 학교에서 노조에 대해 가르치고, 알려줬으면 해요. 알아야 다치지 않고, 빼앗기지 않고 일할 수 있거든요. 그래야 모두가 같이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지난 20일 총파업을 보며 다시 생각했어요. 세상을 바꾸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것을. 저도 끝까지 함께 싸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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