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금기’ 속 여성 연대기에 살과 뼈를 붙인 ‘당곰 이야기’

창작집단푸른수염의 안정민 연출가가 쓰고 연출한 ‘당곰 이야기’

판소리극 '당곰 이야기'ⓒ창작집단푸른수염

여성은 여성의 몸을 어떻게 이해해 왔을까. 가깝고도 먼 연대기를 살펴봤을 때, 여성은 감춰진 몸을 미덕으로 여겨왔던 것 같다. 오히려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짧은 치마는 안 되고, 다리는 오므려 앉아야 했다. 그런 세계가 됐을 때 여성의 몸은 검은 봉지에 쌓인 생리대처럼 더욱더 베일에 싸이게 됐다. 심지어 여성 자신 조차 자신의 몸을 모르는 상태가 됐다.

창작집단푸른수염의 안정민 연출가가 쓰고 연출한 '당곰 이야기'는 남성 중심의 신화와 역사를 해체하고 여성 신화를 새롭게 써나간다. 한국 신화 중 하나인 삼신할매(당곰)를 통해서다. 당곰은 자신의 아랫도리를 내려다보고, 콕콕 건드려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건드림을 느껴보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당곰은 자신의 구멍을 탐구하고 모험도 감행한다. 그리고 자신의 구멍에 맞는 남자를 적극적으로 찾기도 한다.

앞서 안정민 연출가는 연극 '달걀의 일'을 통해서 여성 영웅 신화를 그려낸 바 있다. '달걀의 일'은 무덤 속에서 수상한 문서를 발견하고 오랜 전설에 의문을 갖게 되는 민채의 이야기를 담았다. 해당 무대를 통해서 안 연출가는 말하면 안 되는 것으로 여겨져 왔던 '여성의 금기'를 과감히 무대 위에 꺼내 보였다. '달걀의 일'이 현실 위에 그린 여성 서사라면 '당곰 이야기'는 신화 위에 그린 여성 서사다.

다만, 안 연출가는 '당곰 이야기'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더 적극적으로 쏟아낸다. 어찌 보면 더욱더 직설적이다. 극 중 극 형태로 들어선 '관객과의 대화'를 봐도 알 수 있다. 사회자와 함께 등장한 안정민 연출가는 관객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판소리극 '당곰 이야기'ⓒ창작집단푸른수염

"서양 신화 속에서 여성들은 섹스를 통해서 사랑을 뺏기거나, 섹스 때문에 엄청난 노여움을 받거나, 버려지거나 그러더라고요? 그게 제가 서양 문화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유 같아요. 서양 문화에서 섹스는 여성에게 참 폭력적입니다. 한국은 전혀, 전혀, 절대로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당곰이라는 여신은 섹스 자체에요. 왜냐면 그 사람이 직접 섹스를 만들었으니까요."

이것 만이 다가 아니다. 90분이라는 상연 시간 동안 '당곰 이야기'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몸을 이해한 후 더 많은 사랑을 찾고 싶어 하는 당곰의 몸과 몸에 관한 권리, 세 아이를 임신한 당곰에게 주어진 출산과 임신 중지권, 밥도 잘 먹고 술도 잘 먹는 당곰 자체의 존재감, 당곰의 갈비뼈로 탄생한 아담 등 동등하게 빛나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무대를 타고 피어오른다.

'금기' 속에 감춰져 있던 여성의 연대기는 무대 위에서 때론 불편하고 뾰족뾰족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여성의 몸을 억누르고 감춰왔던 억겁의 시간 때문이자, 무대 위에서 암묵적으로 금기됐던 오랜 분위기 때문이다. 오히려 봉인이 풀리고 시간이 흐를 수록 무대 위엔 웃음소리와 박수 소리가 당곰을 응원했다. 당곰도 우리 시대의 당곰들에게 에너지를 전달했다.

당곰의 대사들은 때론 매섭고 때론 꿈처럼 몽롱하다. 여기에 민요, 판소리, 힙합, 랩, 그림자극이 멋진 옷이 되어 말들을 수식한다. 동시에 가야금이 가세하여 무대를 부드럽게 끌어안는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전통 동화로 둔갑하여 눈이 즐겁다. 귀도 신명난다.

지난 26일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막을 올린 '당곰 이야기'는 지난 30일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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