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위의 정부, 기재부가 ‘폐기한’ 골목상권 지원책

[2022 더 왼쪽으로] 이젠 기재부 해체다①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83% 삭감, 기재부가 폐기한 것은 예산만이 아니었다

[2022 더 왼쪽으로] 이젠 기재부 해체다

대통령선거가 4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돼야 한다’는 이유보다 ‘누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유독 넘쳐나는 요즘이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 등으로 평가절하 된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민중의소리는 이번 대선이 한국 사회가 더 진보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2022 더 왼쪽으로’는 대선에서 주목할 만한 진보적 대안을 조명해보는 기획이다. 연말까지 몇 차례에 걸쳐 독자들에게 전할 의제와 주장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

첫번째 기획으로 ‘이젠 기재부 해체다’ 시리즈를 5개의 기사로 보도한다.

① 정부 위의 정부, 기재부가 ‘폐기한’ 골목상권 지원책
② 경제부시장=기재부 출신…예산에 멱살잡힌 지방 분권
③ 국회 쥐락펴락 기재부, 예산 선물 보따리엔 뭐가 들었나
④ ‘기재부의 나라’ 드러낸 문재인 정부 다섯 장면
⑤ 기재부 해체, 그 오래된 미래…김대중




기획재정부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삭감률이 83.3%에 달한다. 사실상 정책 폐기다. 충격적인 삭감률도 문제지만, 과정이 더 심각하다. 과정을 따라가면, 기재부 예산권 독점 폐해가 드러난다. 기재부는 정책 폐기 권한이 없다. 국민 누구도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당당했고 오히려 국회와 국민에게 자신들의 결정을 받아들이라 강요한다.

기재부가 하달하는 ‘예산지침서’
12월까지 이어지는 예산 프로세스의 시작



지난 3월 31일, A4용지 크기 386페이지 두툼한 책자가 각 부처에 하달됐다. ‘2022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 줄여서 예산지침서다. 작성 주체는 기획재정부다. 맨 첫 장엔 제목보다 큰 글씨로 ‘기획재정부’라고 적혔다.

각 기관 인건비, 업무추진비, 특수활동비 등 기본경비에서부터, 일자리·연구개발·IT·환경·토목공사 등 정부가 내년도 추진할 사업 예산을 어떻게 짤지 촘촘하게 규정했다.

‘총사업비 50억원 초과 국제행사는 기재부 장관과 사전 협의된 전문연구기관 타당성 조사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거나 ‘국립대학 시설은 입학자원 감소, 대학 구조조정 필요성 등을 고려해 신규사업을 원천적으로 억제’하라는 등의 지침이다. 대부분 지침은 ‘삭감’을 요구한다.

예산지침서 하달은 다음해 예산 편성 작업이 본격 시작됐음을 뜻한다. 대개 3월 말 지침서가 하달된다. 각 부처는 지침에 따라 사업 예산을 추정하고, 추정 예산을 담은 요구서를 기획재정부에 보낸다. 기재부는 예산요구서가 지침에 따라 작성됐는지 검토·협의한 뒤, 9월 말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는 정부 예산을 심의하고, 그해 12월 최종 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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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대폭 삭감’ 지침...반발한 행안부



기재부가 하달한 예산지침서 183페이지를 보면 ‘한시지출 사업’ 항목이 있다. ‘코로나 위기 대응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증액된 사업의 적정수준이 무엇인지 전면(zero-base) 재검토해 예산을 요구’하라는 게 골자다. 지역사랑상품권 사업 등 소비회복 프로그램을 콕 짚어 ‘전면 재검토’ 예시로 들었다. 한시적으로 실시한 지역사랑상품권 사업 예산을 축소하라는 뜻이다.

지역상품권 담당인 행정안전부는 기재부 지침에 동의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상황이 내년에 더 나아지리란 보장이 없었다. 더구나 현장에서 호평을 얻고 있는 지역상품권 예산 삭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기재부 지침대로 사업을 ‘전면 재검토’ 하더라도 삭감이 아닌 증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행안부는 2021년보다 4천억원 가량 많은 1조4,402억원을 예산신청서에 적었다.

예산편성지침


기재부가 무시한 것들
1) 광역단체 현장 의견과 수치들



기재부와 행안부 입장차는 컸다.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다. 민중의소리가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확보한 자료를 보면 두 기관은 지난 4월을 시작으로 매달 한 차례씩 공식 미팅을 하고 예산을 협의했다. 첫번째, 두번째 미팅은 담당 실무자끼리 가졌고 이후 실무 책임자, 책임자인 실장과 국장, 최근에는 차관까지 나서 예산 증액을 설득했다.

기재부와 협의했던 행안부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발생한 소상공인 피해가 내년에 정상화할 것이라고 볼 증거는 지금도 없다. 직접 혜택을 받는 소상공인은 물론 이용자인 국민들과 지자체 모두 만족하는 사업 예산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최초 요구한 1조4천억원 수준의 예산을 한번도 낮추지 않았다.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던 지난 7월, 행안부는 추가 자료를 기재부에 제출했다. 핵심은 광역단체로부터 취합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수요 현황이었다. 17개 광역단체를 집계한 결과 수요는 전년 대비 28.9% 늘었다. 행안부는 이를 근거로 증액이 필요하다 주장했다.

17개 광역단체는 현장 요구를 근거로 수요를 예측했다. 광주광역시는 매월 지역상품권 발행량을 근거로 삼았다. 상품권 발행량은 올해 1월 745억원이었던 것이 매월 꾸준히 증가해 5월엔 1천억원을 넘었다. 9월엔 1600억원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불과 8개월만에 발행량은 2배 이상 증가했다. 광주시는 이를 근거로 내년 지역상품권 발행 예상액을 올해보다 2조원 많은 12조원으로 추산했다. 대전광역시는 상품권 결제자 숫자를 근거로 삼았다. 지난 1월 31만명이던 결제자는 8월 44만명으로 늘었다. 1인당 상품권 사용 금액도 꾸준히 30만원대를 유지했다.

현장에서 지역사랑상품권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자체가 상품권 발행량을 늘렸다고 해도, 수요자인 시민들이 구매하지 않으면 결제자 숫자나 1인당 상품권 사용액이 늘어날 수 없다. 공급과 수요가 탄탄한 정책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재부는 이를 무시했다. 자신들 지침대로 삭감을 고집했다. 결과는 기재부 완승이었다. 지난 9월, 기재부가 통보한 지역상품권 예산은 2,40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행정안전부가 요구한 1조4,402억원에서 83.3%가 삭감된 결과였다.

기재부가 무시한 것들
2) 주무부처, 그리고 국민들



5~10% 내외의 예산 삭감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예산 낭비, 비효율 견제 측면에서 기재부의 권한이자 의무다.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83.3% 삭감은 단순한 예산 감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업을 폐기한다는 의지가 읽힌다.

기재부는 지역상품권 정책의 의미와 효과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한국 자영업자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구조적인 경쟁 격화로 자영업자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은 이미 국민적 합의를 이뤘다. 최근 5년여간, 지역상품권은 자영업자에 대한 중요 정책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유통 재벌 대기업에 밀리고 모바일·온라인 홍수에 치인 자영업자를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기재부의 말대로 ‘한시적 사업이니 없애야 한다’는 논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는 2018년부터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인 ‘소상공인·영세 중소기업 지원대책’의 일환으로 상품권 발행을 적극 권장해왔다. 2020년에는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국가적 시책 사업이 됐다.

지역사랑상품권은 발행 지역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지역 내 소비가 촉진된다.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전국 신용카드 사용액 51.7%가 서울에 집중된 반면, 지역사랑상품권과 마찬가지 형태로 사용을 제한한 긴급재난지원금은 전체 사용액 중 20.6%만 서울에서 사용됐다. 나머지 소비는 지역상권으로 돌아갔다.

서울시 서대문구 한 전통시장 모습 (자료사진)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때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다. 지난 9월 소득 상위 12%를 제외하고 나머지 국민에게 지원금이 지급됐다. 이 기간 이마트 등 대형마트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9% 이상 대폭 감소했다. 추석 대목이라 감소 폭은 더 컸다. 유통업계에선 감소 폭 만큼의 소비가 지역 상권으로 갔다고 보고 있다. 대형마트가 가져갈 이득을 지역 상권이 가져간 것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지역상품권 도입 이후 역내 자영업자 매출은 지난해 10월 기준, 월평균 87만원이 증가했다.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이 익숙한 소비자들은 다소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할인으로 소비자 불편을 보상한다. 5~10%를 할인받는다. 10만원짜리 상품권을 9만원에 살 수 있다. 할인된 1만원은 중앙과 지방 정부가 6:4 혹은 8:2로 각각 부담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어려운 지역 상권을 직접 보조하는 형태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중앙 정부가 지역 경제를 직접 보조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논쟁이 있다. 전 국민이 낸 세금이 특정 지역에 갇히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문제 제기다.

전문가들의 소모적 논쟁과 무관하게, 여론은 우호적이다. 상품권 사업 확대는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은 바가 크다. 대기업보다는 지역 상권을 도와야 한다는 국민이 더 많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10월 지역상품권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 71%는 정책 취지에 적극 공감하고 있다. 지역상품권을 이용하는 이유를 묻자(복수응답) ‘소비자와 사업자가 상생할 수 있는 지역경제 활성화 등 도입 목적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36.5%,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영세 상인들을 도울 수 있는 간편한 방식’이라고 답한 비율이 35.1%였다. 두 답변 비율을 합하면 71.6%로 단순히 ‘할인이 좋아서 사용한다’고 응답한 비율 (71.1%)를 근소한 차이로 넘어선다. 국민들은 ‘물건값 깎아주니 상품권 쓴다’는 단순 논리를 넘어 ‘지역 살리는 착한 소비’의 연대와 협동 정신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기재부가 삭감한 것이 단순한 예산이었을까. 지역상품권으로 취약 계층인 골목상권,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정책 취지가 무색해졌다. 정책 취지에 동의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상품권을 구매한 국민들 의사가 무시당했다. 우리 국민 누구도 기재부에 지역사랑상품권 사업을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준 적 없지만, 기재부는 “한시적 사업이니 재검토해야 한다”는 자신들 주장을 관철했고, 예산 83%가 삭감됐다.

기재부가 무시한 것들
3) 분권, 그리고 지역 경제



예산 삭감으로 논란이 일자, 기재부는 “올해는 지역에도 돈이 많다”는 식의 논리를 내세웠다. 어불성설이자 “이 나라는 기재부의 나라”라고 자인하는 것 같아 보인다.

중앙정부가 지방에 내려주는 돈을 교부금이라고 한다. 법은 지방에서 필요한 재원이 부족하지 않도록 일부 세금에서 교부금을 만들고 이를 지방정부에 교부하도록 규정한다. 홍남기 부총리는 국회에서 “추가 교부금이 대폭 늘어나 지자체에도 상품권 발행 예산 충당 여력이 있지 않겠느냐 판단했다”고 말했다.

중앙에서 받은 교부금을 어디에 쓸지 정하는 것은 지방정부 권한이다. 교부금에는 ‘어디 어디에 쓸 돈’이라는 꼬리표가 없다. 지방정부가 스스로 세운 사업 계획에 들어간다. 홍 부총리는 ‘지자체에 교부금이 많이 내려가니 지역 예산으로 상품권을 발행하라’는 지침을 내린 셈이다.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지방교부세는 지자체가 지역환경에 맞게 꼭 필요한 곳에 써야할 돈”이라며 “기재부가 지역사랑상품권을 소상공인에게 지원되는 소멸형태의 재원으로 생각하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 꼴”이라고 말했다.

지역 경제 현실에 대한 책임감 문제도 있다. 경제부총리는 단순히 예산 낭비를 막아 국가 재정을 책임지는 자리가 아니다. 더욱 넓은 시각으로 국가 경제 전체를 바라봐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를 구분하며 지역사랑상품권은 지역 사무라는 점을 에둘러 강조하고 있다. 그는 “지역 상황이 안 좋아 3년간 한시적으로 중앙정부가 도와준 것이고 이제 정상화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멸’을 우려하는 지역을 활성화 할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한다.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10여년 뒤, 인구 절벽을 맞는 한국 경제부총리 시각치고는 지나치게 편협하다”며 “우리보다 앞서 인구고령화를 맞은 일본 대장성(우리의 기재부)이 지역 살리기를 두번째 중요한 국가 시책으로 삼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서울 시내 한 상점에 붙은 폐점 알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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