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함을 거부할 권리 학교에서 가르쳐라”
“학교에서 노동교육 제도화하라!”
“2022 개정 국가교육과정 총론에 노동교육 명시하라!“
“여수 실습생 故 홍정운 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11월 7일 전남 여수에서 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홍정운 군의 친구들과 특성화고 졸업생과 재학생 등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홍 군이 생전에 좋아했던 ‘밤 하늘의 별을’과 ‘오래된 노래’를 개사한 노래를 부르며 이러한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외쳤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과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가 주최한 이날 행진에서 홍 군의 친구인 김기웅(18) 군은 “정운이랑 웃고 떠들던 교실, 기숙사 방, 용접실이 허전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그래도 저희는 정운이와의 추억을 평생 잊지 않고 살 것”이라며 “현장실습 폐지를 원하지 않는다. 저희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특성화고 학생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현장실습 폐지가 아니라 안전한 현장실습을 만들어 이런 사고가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꿈을 펼칠 수 있게 개선해 달라”고 말했다.
“예전처럼 돈이 없거나
공부를 못해서 특성화고에
진학하는 건 아니에요.
요즘 청년들은 본인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특성화고에 진학해요.”
특성화고 학생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장실습’은 노동자로서 보람과 전망을 배우고 체험하는 과정이기보다는 불합리한 노동에 침묵하고, 참고 견디라고 강요받는 현장이 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학생이 다치고, 죽어 갔다. 특성화고에 진학할 땐 푸른 꿈을 꾸었지만, 졸업한 뒤 이들은 ‘고졸’이라는 학력 차별의 낙인이 찍힌 채 저임금 노동을 강요받는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경기도에 있는 농업계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6년이 된 노동자 송주연도 그런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홍 군을 위한 추모행진에 함께했다. 2015년 2월 농업계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지금은 식품 관련 회사에서 무역업무를 하는 그는 “학력 편견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특성화고 학생들이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18일 그를 만나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6년 넘게 노동자로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특성화고를 진학한 건 원래 조경과 자연환경에 관심이 많았고 가족들도 농업 관련 직종에서 일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소중한 학창시절을 공부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고, 관심 있는 분야를 빨리 배우고 싶었기에 특성화고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농업계열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부모님이 농업 관련 일을 해보셔서 힘든 걸 잘 아셨거든요. 그래도, 제가 의지를 보여주니깐 흔쾌히 동의해주셨어요.”
송주연은 지난 2012년 3월 농업계 특성화고 조경과에 입학했다. 2011년 기업은행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특성화고 출신 신입직원을 만난 자리에서 “나도 특성화고 출신이다. 우리 사회가 독일 등 선진국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도록 많은 일자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발언하는 등 당시만 해도 특성화고 출신들의 전망이 밝다고 여겨지던 시기였다.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성적 때문에 특성화고(실업계고)에 지원하던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였다. “예전처럼 돈이 없거나 공부를 못해서 특성화고에 진학하는 건 아니에요. 요즘 청년들은 본인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특성화고에 진학해요.”
‘스카우트’ 프로그램 출연
입사 위한 최종 면접 갔지만,
“여성은 안 뽑는다” 통보…
입사하려던 회사선
아이디어만 빼앗아 상품 제작도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에 스스로 선택했던 학교생활은 재미있었다. 조경을 주전공하고, 식품을 부전공으로 배웠다.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도 커졌다. 하지만, 졸업과 사회진출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그가 마주했던 현실은 불합리 그 자체였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던 2014년 KBS 방송의 ‘스카우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일도 그런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꿈의 기업 입사 프로젝트’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KBS1TV에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방영된 ‘스카우트’는 특성화고 재학생 출연자를 경쟁을 통해 기업에 취업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2012년엔 이명박 대통령이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는 등 이명박 정부의 특성화고 육성정책과 맞물려 주목받았다. 송주연도 많은 기대를 하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당시 조경 관련 공공기관에서 사람을 뽑았어요. 경쟁해서 최종 면접에 6명에 제가 들어갔어요. 그런데 PD가 갑자기 여성은 안 뽑는다고 알려왔어요. 남성 지원자들만 결국 최종 면접에 올랐어요. 지원을 받을 땐 그런 이야기가 없었거든요. 방송엔 장기자랑 같은 내용도 나갔는데, 여성 출연자 위주로 편집됐어요. 이미 남성 지원자만 뽑을 거라고 결정하고서, 여성들은 방송용 들러리처럼 세워진 거예요.”
조경업체 채용공고엔 남녀 구분 없이 몇 명이라고 나오지만, 실제론 여성은 뽑지 않는다. 그가 다닌 학교의 조경과 교사 가운데도 여성은 한 명뿐이었다. 그는 “여자가 현장에서 삽이라도 제대로 들겠냐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거든요”라고 말했다. 여성 차별의 현실을 그는 ‘스카우트’ 프로그램을 통해 졸업하기도 전에 마주해야 했던 셈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입사에 떨어진 것도 충격이었는데, 그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입사를 위해 제출했던 디자인과 거의 똑같은 제품이 그 회사에서 출시된 걸 보았을 땐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저는 안 뽑고, 제품 아이디어만 가져간 게 분해서 본사에 항의했어요. 한참이 지나 제가 만들기 전부터 자신들이 개발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당시 면접 과정에선 제품과 관련해 회사 측에서 칭찬했고, 당시 출연했던 회사 관계자들도 자신들의 제품과 비슷하다거나 하는 반응은 전혀 없었거든요. 그냥 아무런 조치 없이 미안하게 됐다고 하면서 넘어가 버렸어요. 방송국도, 회사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어요.”
그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식품계열 전공은 식품회사 연구개발 부서에서도 일하는 경우가 있어요. 아는 친구가 식품 전공인데, KBS ‘스카우트’ 프로그램을 통해서 식품 관련 중견기업에 연구개발직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일 시작한 지 한두 달 만에 연구개발 업무에서 매장 업무로 바꼈어요. 매장을 돌며 홀서빙을 하다 회의감이 들어서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대학에 진학했어요. 그 회사는 스카우트 출연 때만 빼고 모든 취업공고가 다 대졸자로 나갔어요. 저도 그랬고, 회사 이미지 메이킹에 특성화고생이 동원됐던 거죠.”
3주 동안 현장실습했지만
한 푼도 못 받아…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어중간한 신분으로
보호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거예요.”
고3 시절 나갔던 현장실습도 또 다른 불합리를 경험하는 과정이었다. 송주연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조경업체에서 숙식하면서 실습을 했다. 3주 동안 일했지만, 해당 업체에선 숙박만 제공해줬을 뿐 임금은 단 한 푼도 주지 않았다. “돈을 주지 않아도 그게 잘못인지도 몰랐어요. 졸업하려면 현장실습이 필수이기 때문에 심지어는 돈을 주고 실습에 나서는 경우까지 있었거든요. 필수로 했으면 교육부나 학교 차원에서 실습할 곳을 보장하고, 관리 감독을 해야 하는 데 안 하고 있어요.”
이런 일은 특성화고 출신이라면 누구나 경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천에 있는 회계 관련 특성화고에서 디자인 전공을 하고, 올해 졸업한 이인영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전공과 무관한 반도체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해야만 했다. 디자인 회사에서 현장실습을 구하는 건 너무 힘들었고, 졸업을 위해 하는 수 없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전공과 무관한 직장으로 실습을 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인영은 “각자 알아서 실습할 회사를 찾아야 하고, 그나마 나가도 근로계약이 아닌, 표준협약서만 작성하기 때문에 노동자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이고 배우는 거니깐 돈은 덜 줘도 되고, 회사에선 다쳐도 책임지지 않으려 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현장실습 도중 학생들이 사고를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2016년 실습했던 회사에서 계속 근무하던 김 군이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보수하다 사망했고, 2017년엔 제주에 있는 음료 공장에서 이민호 군이 사망했다. 올해에도 전남 여수에서 홍정운 군이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따라는 지시를 받고 잠수 작업 도중에 사망했다. 교육부가 지난 2020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 동안 현장실습생은 총 53건의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공식 발표가 이 정도니 보고되지 않은 사고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상업계열은 현장에서 다칠 위험이 적은데, 기계를 다루는 공업계열이나 농업계열은 사고 위험이 커요. 농기계를 운전하다 사고를 당한 선배, 친구들도 많이 봤어요. 이번 여수 홍정우 군 사건은 사장이 관광 업무 보던 학생에게 시켜선 안 되는 잠수 업무를 강요해서 생긴 사고에요. 그런 부당한 지시에도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따를 수밖에 없어요.”
디자인 전공이지만, 반도체 공장에서 실습을 했던 이인영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반도체 공장에서 오븐 관련 작업을 했는데, 현장에선 안전수칙은 아무렇지 않게 무시됐다. “오븐으로 구워서 반도체 사이에 용액이 들어가 굳게 하는 작업을 했어요. 작업 온도가 200도까지 올라가요. 30~40분 식히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일찍 문을 열고 식혀서 불과 5분 뒤에 꺼내오라고 시켜요. 원래는 기다려야 열리는데 사수 선배가 가진 키로 문을 열고 시키는 거예요. 현장에선 원래 그렇게 일한다고 하는데, 위험해요. 다들 화상 때문에 손끝이 반복적으로 데어서 파여있고, 저도 화상을 많이 입었어요.”
이렇게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지만, 실습 전에 제대로 안전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사고가 날 때마다 교육부 등에선 전수조사를 약속하며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송주연은 “늘 말뿐이고, 이후 달라진 건 없었어요. 늘 사고는 반복됐습니다. 누구도 학생들을 보호하지 않아요.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어중간한 신분으로 보호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거예요”라고 지적했다.
강원 지역 특성화고 상업계 학과를 2019년에 졸업한 박모 씨가 겪은 일은 현장실습생의 이런 문제를 잘 보여준다. 박 씨는 3학년 때 기업이 원하는 교육과정을 개발․훈련시켜 졸업 후 해당 기업에 취업시키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취업맞춤반’에서 전기기능사를 공부했지만, 정작 현장실습은 IT 업체에서 했다. 결국 전공도, 취업맞춤반도, 현장실습도 다 따로따로였던 셈이다. 더구나 박씨가 취업한 회사에선 교육을 빌미로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다.
박 씨는 “3개월 정도 일 했어요. 아침 11시 출근해서, 새벽 5시에 퇴근했어요. 실습생에겐 야간에 일을 못 시키게 되어 있지만, 회사에선 일한 게 아니라 회사에 남아 공부한 것이라고 하면서 넘어갔어요. 급여도 제대로 못 받았어요. 한 달만 급여를 받고, 두달 동안은 회사가 어렵다고 해 받지 못하다가 결국 회사가 부도가 났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씨는 밀린 월급을 청구할 수 없었고, 아직 정식 취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실업수당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박 씨는 졸업 뒤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다 대학에 진학했다.
“제가 나온 조경과는
취업 자리가 없어서
정규직은 찾기 힘들어요.
상당수가 골프장 필드 관리로 가는데,
계절별로 잠깐씩 일하는 계약직이에요.”
특성화고 출신 학생들은 이렇게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착취를 경험한다. 송주연은 이렇게 말했다. “사회로 나가는 과정을 배우는 순간부터 학생들이 느끼고 만나는 현실은 불합리의 연속이에요. 현장실습 회사를 그만두면 다른 현장을 알아봐야 하고, 내게 불이익이 생길 게 뻔하니깐, 말하지 못하고, 불합리에 맞서지 못하고, 바꾸지 못한 채 순응하는 법부터 배우는 거예요.”
학교 밖으로 나오면서 이런 현실은 더욱 가혹해졌다. 송주연이 마주한 현실도 그러했다. 유망하다고 여겨졌던 장밋빛 미래는 졸업과 함께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실업계고를 특성화고로 전환하면서 2011년 25%, 2012년 37%, 2013년 60% 등 취업률 목표치를 제시하는 등 취업률 높이기에 혈안이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마구잡이 실습파견 등이 문제가 됐고, 양질의 일자리가 아닌 저임금 일자리 양산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더구나 몇몇 특성화고에선 아르바이트까지 취업률에 포함하는 등 ‘뻥튀기’한 취업률을 학생 모집 수단으로 활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특성화고 출신을 뽑는 기업은 해마다 줄어들었고, 전공을 살려 사회에 진출하는 건 쉽지 않았다.
“제가 졸업할 당시엔 우리 학교 졸업생 가운데 9할이 진학을 했어요. 취업이 어려웠거든요. 이명박 대통령이 특성화고 활성화를 외치면서 특성화고 졸업생을 많이 뽑았어요. 그래서 공기업 가는 이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제가 졸업할 즈음부턴 특성화고 출신을 잘 안 뽑았어요. 취업한 친구들 가운데 대기업, 공기업은 거의 없었어요. 중소기업에 취업해도 제대로 대접받긴 힘들어요. 남자 졸업생들 가운데는 군대를 갔다 와도 일자리를 보장해준다는 말을 믿고 취업했는데, 막상 군대에서 돌아오니 자리가 없어져서 퇴사하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나온 조경과는 취업 자리가 없어서 정규직은 찾기 힘들어요. 상당수가 골프장 필드 관리로 가는데, 계절별로 잠깐씩 일하는 계약직이에요.”
“이직을 생각하는 순간부터
스트레스를 받아요.
학력 무관이나, 고졸을 뽑는
회사가 별로 없거든요.
특성화고 졸업생이 지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장도 모집 기준이 ‘19세부터 40세’인 경우가 많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가 어렵다 보니 특성화고 졸업생들은 졸업 이후 취업을 위해 다시 자격증을 따는 경우가 많다. 송주연도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1년 간 조경 관련 공공기관 시험을 준비한 뒤 식품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뒤 결국 세무회계 프로그램 관련 자격증 따서 지금 다니는 직장에 취업했다. 그의 친구들도 요양보호사, 병원코디네이터 등 자격증 취득해 취업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격증조차도 고졸 노동자에겐 또 다른 학력의 장벽이 되고 있다. 취업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한데, 제대로 된 자격증은 고졸자가 따기 힘들기 때문이다. “고졸이 볼 수 있는 자격증 시험은 기능사밖에 없어요. 산업기사는 전문대를 나와야 하고, 기사는 대학을 나와야 가능해요. 고졸이 더 나은 자격증을 따려면 경력을 쌓아야 하는데, 기능사 자격증으론 취업하기 힘들다 보니 아르바이트나,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단순한 일밖에 하지 못해요. 특성화고 학생에게도 학력을 요구하는 상황이니 대학을 많이 선택해요. 졸업생들이 재취업에 한계를 느끼고 늦은 나이지만 대학에 가려고 하는 이들이 많아요. 방통대라도 진학하려고 고민하는 이들이 많아요.”
삶 속에서도 학력의 벽은 늘 그를 괴롭힌다. 지금 직장을 다니는 덴 학력이 별문제가 안 되지만, 이직을 고민하고 있어 걱정이 크다. “학력 무관이나, 고졸을 뽑는 회사가 별로 없어요. 전에 제가 일하는 걸 보고 스카우트 제의를 했던 회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회사 채용공고를 보니깐 대졸자 또는 예정자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제안했던 사장님께 저 고졸인데, 괜찮겠냐고 하니 이후에 말을 안 하셔요.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무슨 과 나왔냐고 묻는데, 특성화고 조경과 출신이라고 매번 말하는 것도 스트레스예요.”
“노동교육을 못 받고 취업해요.
그러니깐 주휴 수당을 못 받아도
문제인지 모르고,
근로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도 몰라요.”
취업과 학력의 벽을 마주했던 그는 졸업을 앞둔 특성화고 후배들과 만날 때마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면 진학을 하라고 권유한다. 기성세대들은 너무 쉽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말하지만, 시작이 잘못되면 그 현실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후배들을 만나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없으면 졸업 뒤에 관련한 학과로 진학을 하라고 추천해요. 처음부터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고 일하지 못하면 계속 힘들어요. 좋지 않은 대우를 받고, 심지어는 최저 임금도 못 받아요. 그런 곳에선 아무리 경력을 쌓아도 더 나은 직장으로 옮겨 가기도 힘들어요. 더구나 노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틀린 것도 맞는 줄 알고 살 수밖에 없어요.”
특성화고 출신 어린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노동교육을 받지 못했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하지 못한 채 노동현장에 내몰린다. “노동교육을 못 받고 취업해요. 그러니깐 주휴 수당을 못 받아도 문제인지 모르고, 근로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도 몰라요. 그러니 초과근무를 해도 모르고 넘어가요. 연차도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해서 받지 못하고, 수당도 못 받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배운 적도 없고, 경험도 없으니깐 당하는 거죠.”
일을 시작하기 위해선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근로계약서의 존재조차 모르는 청년노동자가 많다. 근로계약서를 쓰고, 읽어본 노동자들도 이와 관련해 부당한 부분을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지금 다니는 회사 근로계약서에 ‘하절기’, ‘동절기’ 근무시간이 달라요. 그런데 요즘은 ‘동절기’인데도 똑같이 근무해요. 추가 수당을 주는 것도 아닌데요. 이런 부분을 근로계약서 보고 지적하면 요사이 어려워서 그런다며 이해해 달라고 하고 넘어가요. 그러다보니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어요.”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졸업 6년차 노동자인 그도 이러한데 다른 청년노동자의 처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특성화고 학생이
제대로 된 노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시간 얼마 없지만,
내년 과정에 필수로 들어갈 수 있게
노력할 겁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선 학교에서 노동교육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7일 열린 홍정운 군 추모행진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나왔던 요구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동인권 교육 의무화’였다.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가 특성화고노조와 함께 이날 행진을 주최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162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든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는 이번에 발표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노동교육이 반영될 수 있도록 문재인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노동인권 교육 의무화’를 공약으로 밝힌 바 있다. 특성화고노조 교육국장으로 활동하는 송주연은 “특성화고 학생이 제대로 된 노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시간 얼마 없지만, 내년 과정에 필수로 들어갈 수 있게 노력할 겁니다. 특성화고 학생 대상으로 만든 노동교육 책자가 있어요. 그걸 통해 좀 더 노동 현실을 알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라고 포부를 밝혔다.
송주연이 특성화고노조 활동을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2018년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 활동을 하던 선배 등과 함께 노조를 만들었고, 첫해부터 집행부를 맡아 일했다. “학생 때부터 노동조합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오히려 뉴스를 통해 노동조합을 접하면 강한 이미지 때문에 조금은 두려워했어요. 하지만 사회에 나가 불평등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면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정말 청년에게 필요한 건
안전하면서도 안정적인 일자리예요”
그는 청년을 위한다며 쏟아지는 각종 대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가 ‘청년내일채움공제’다. ‘청년내일채움공제’는 미취업 청년(만15세 이상 34세 이하)의 중소기업 유입을 촉진하고, 청년 근로자의 장기근속과 자산 형성을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지난 2016년 도입된 제도다. 2년 형, 3년 형 등이 있는데, 2년형의 경우 5인 이상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이 2년간 300만 원을 적립하면, 정부가 600만 원, 기업이 300만 원을 공동 적립하여 만기 시 1,200만 원의 목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을 옮기면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오히려 족쇄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도 3년형에 가입했어요. 그런데 불합리한 부분이 많아요. 현대판 노예라고 해도 다를 바 없을 정도예요. 이직이 까다롭다 보니 제도에 발목 잡혀 쉽게 옮길 수가 없어요. 이런 게 오히려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불합리한 부분을 강요하는 족쇄가 돼요. 일정 기간 노동자를 그 기업에 묶어두는 수단처럼 쓰여요. 그래서 상당수 노동자가 그 기간이 끝나면 이직을 해요.”
송주연도 ‘청년내일채움공제’가 끝나면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생각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너무 몸도, 마음도 상해서 정비 시간을 가진 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려고 해요. 지금 회사에서 무역 관련 업무를 하는데, 좀 더 깊게 하고 싶어서 중국어를 공부할 거예요. 앞으로 무역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요.”
송주연은 특성화고 졸업한 지 6년 만에 먼 길을 돌고 돌아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조금은 찾은 것 같다. 송주연이 그러했듯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든 청년노동자들은 자신이 갈 길을 찾기 위해 지금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최근 대선을 앞두고 각 당 후보들은 20·30세대 표심을 잡기 위해 각종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청년노동자가 사회로 나가면서 만나는 불평등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한 약속은 찾아보기 힘들다. 저출산 고령화가 사회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그렇게 귀한 청년노동자에겐 저임금 비정규 일자리만 넘쳐날 뿐이다. 청년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청년에게 필요한 건 안전하면서도 안정적인 일자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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