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52조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국민의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직업선택의 자유’는 비장애인들에게만 주어진 권리다. 장애인들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좁다. 장애인 대부분은 단순한 작업을 하는 직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 장애인에게 ‘직업선택의 자유’는 그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전체 장애인 가운데 일하는 장애인은 1/3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와 통계청이 장애인 관련 통계를 수집·정리해 발표한 자료인 ‘2020 통계로 보는 장애인의 삶’을 보면 장애인 취업률은 34.9%로 전체 인구 취업률 60.7%의 절반에 그쳤다. 연령별로는 40대의 취업률이 58.4%로 가장 높고, 30대(53.4%), 50대(53.2%), 30세 미만(30.6%) 순이다. 한창 일할 수 있는 30대와 40대 취업률도 50%를 약간 넘는 수준인 것이다. 그나마도 저소득 단순 업무가 대부분이다 보니 2020년 기준 장애인 가구의 평균소득은 4천153만 원으로 전체 가구 평균소득 5천828만 원의 71.3%에 불과하다. 더구나 전년 대비 소득 증가율이 장애인 가구 0.1%, 전체 가구 2.2%로 더욱 격차가 커지고 있다.
취업률, 대학진학률, 가구소득 등 비장애인과 비교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 뒤처진 장애인들의 삶
지난 3일 뇌성마비 장애인 정한석을 만났다. 그는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그와 인터뷰를 한 3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이었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뒤 사회복지 공무원을 꿈꾸다 장애인이란 이유로 좌절을 겪고, 17년째 마트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그의 삶은 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그를 만나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2005년에 홈플러스 금천점에 장애인 특별채용으로 입사했어요.”
정한석이 마트 노동자로 일을 시작한 건 마흔 살 때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은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태어난 그에겐 숙명일지 모른다. 늦은 취업이었지만, 대한민국 장애인 취업률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는 ‘운이 좋은’ 장애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장애인이 일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비장애인에겐 당연한 것이 장애인에겐 ‘운’으로 여겨지는 건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이 어떤지 잘 보여준다.
정한석은 1985년 대학에 입학했다. 그가 대학에 진학하던 당시만 해도 장애인들의 대학진학은 통계를 말하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얼마 되지 않았다. 대학진학은커녕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고등학교, 중학교 교육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2017년 자료에 의하면 장애인 대학졸업자 비율은 15.1%로 비장애인 41.7%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2020년 장애인의 대학진학률은 16.6%로 비장애인 대학진학률 72.5%와 비교하면 4배 넘는 차이가 난다. 장애인 대학진학률이 소폭 상승했지만, 그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장애가 있으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요, 장애아 부모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제 부모님들은 ‘넌 대학을 가야 한다. 남들보다 몸이 불편하니깐 더 배워야 한다’고 말했어요. 몸 쓰는 일을 하는 게 어렵다고 여기셔서 이른바 ‘펜대 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던 거죠. 지금 생각하니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던 부모님들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닙니다.”
사회복지 공무원 시험 합격했지만, 장애인이란 이유로 면접에서 탈락 “제가 6년 동안 공을 들였던 꿈이 물거품이 된 겁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대학진학은 의지와 열정만으론 불가능하다. 그가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보행에 비교적 불편이 없는 뇌성마비 6급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 모른다. 많은 장애인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대학에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지난 8월엔 진주교대에서 장애인 전형 과정에 중증장애를 지닌 특정 학생을 떨어뜨리기 위해 성적까지 조작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필기는 합격했는데, 면접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대학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없다는 게 이유예요. 시설이 없으면 시설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설은 안 만들고, 학생을 안 받는 선택을 해요. 대학에 합격해도 학교에 통학하고,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고, 강의를 듣는 과정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하지만, 힘들게 공부하고 졸업을 하면 더욱 단단한 현실의 벽을 만난다. 정한석도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장애인에게 놓인 현실의 벽을 뼈저리게 느꼈다. 행정학을 전공한 그는 1991년 평택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동방사회복지회’에 입사했다. “첫 직장이었어요. 그곳에서 거기를 5년 동안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사회복지 공무원을 꿈꿨어요. 복지회를 그만두고 1년 동안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어요. 그리고, 사회복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시험에 합격했는데, 결국 장애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제가 뇌성마비 장애와 함께 청각장애도 있어요. 소리를 잘 못 듣기 때문에 보청기를 쓰고, 늘 대화할 때면 상대 가까이에서 집중해서 들어요.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닌데, 아마도 면접에서 이런 부분 때문에 떨어진 것 같아요. 제가 6년 동안 공을 들였던 꿈이 물거품이 된 겁니다.”
당시엔 사회복지 업무가 아무래도 대민 업무가 많으니 자신이 가진 장애가 걸림돌이 됐을 것이라 여기며 그냥 이해하고 넘겼지만, 지금 돌아보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사회복지 공무원 임용에서 탈락하면서 취업의 꿈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1993년 결혼을 해 당장 일할 자리가 필요했던 그가 시작한 일은 자판기 사업이었다.
“취업하고 싶어도 일자리 찾기가 어려웠어요. 저같이 비교적 경증인 6급 장애인의 현실이 이런데, 1~2급 등 중증 장애인은 말할 필요도 없죠.”
“취업하고 싶어도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요. 공장에서 일하려면 뇌성마비 때문에 손 떨림이 있어서 작업할 수 있는 분야기 한정돼 있어요. 장애인들도 공부하면 다양한 직종에 진출해 사회에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토대가 없어요. 미국이나 유럽 등에선 장애인들도 의사가 되고, 교수가 되는데 우리나라에선 손으로 꼽을 정도로 드물어요. 장애인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같이 비교적 경증인 6급 장애인의 현실이 이런데, 1~2급 등 중증 장애인은 말할 필요도 없죠.”
장애인의 업무적 능력과 관련한 편견은 뿌리 깊다. 지난 2006년엔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열린 토론에서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오세훈 후보(현 서울시장)가 장애인 관련 정책 질문을 받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장애인 자활사업이다. 즉 장애인들이 생산한 제품이 조금 질적으로 떨어지더라도 우선 구매해서 쓸 수 있도록 해 장애인들이 자활 의지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 제가 가진 구상”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장애인을 위한 발언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엔 ‘장애인이 생산한 물품은 질이 낮다’는 편견이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장애인단체 등에선 오 후보의 발언을 비판하며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생산성과 능률만 강조하니까 장애인 노동자는 근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일을 못 한다고 여기는 거예요.”
“장애인은 일을 못 한다는 사회적 선입견과 편견이 무서워요. 솔직히 저도 일정 부분은 인정해요. 속도로 비교하면 비장애인과 비교해 조금 부족한 게 사실이거든요. 하지만, 속도가 느릴 뿐 제대로 해낼 수 있고, 심지어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근로 능력이 떨어진다고 여겨요. 자본주의 사회에선 생산성과 능률만 강조하니까 장애인 노동자는 근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일을 못 한다고 여기는 거예요. 속도와 효율성만 따지는 민간 부문에선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순 있다고 해도 공공부문도 그러면 안 되잖아요. 아예 장애인은 배척하고, 배제해요. 우리 사회가 일하는 속도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변할 수 있을 거예요.”
속도만 강조하면 노동자들은 위험해진다. 속도가 느려진다고 안전장치를 끄고 위험한 작업에 내몰린다. 그러다 질병을 얻고, 다치는 사고를 당한다. 노동부 통계로 지난해 사고를 당한 노동자는 9만2천383명이다. 질병에 걸린 노동자도 1만5천996명에 이른다. 이렇게 한 해 동안 다치거나 병든 노동자는 11만 명 가까이 된다. 비장애인 노동자도 속도 경쟁에 내몰리며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장애를 얻는 순간 근로 능력을 상실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노동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장애인 노동자를 향한 선입견은 장애인 고용을 위한 법적 장치조차 무용지물로 만든다. 법적으로 장애인 고용을 보장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장애인 고용의무제를 통해 국가·지방자치단체와 50명 이상 공공기관·민간기업 사업주에게 장애인을 일정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하고 준수하지 못하면 부담금을 납부해야 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가 및 지자체, 공공기관은 3.4%, 민간은 3.1%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지키는 회사는 드물다. 그가 일하는 홈플러스 금천점도 정규직 직원이 200명이 넘어서 최소 6명 이상은 장애인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데, 현재 장애인 직원은 그를 포함해 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부담금 납부로 해결하고 있다.
유명무실한 장애인 고용의무제 “부담금 내고 만다는 생각하는 기업이 많아요. 국가와 지자체도 안 지키는데, 민간에 강제한다고 지키겠어요.”
“부담금을 내고 만다는 생각이에요.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도 어기는 경우가 많아요. 대기업이 그런 경우가 많구요. 중소기업은 장애인 고용 지원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많아요. 정부가 장애인 고용을 조사할 때만 채용했다가 조사가 끝나고 퇴직시키기도 하고 지원금만 받고 해고하기도 해요. 하지만, 국가와 지자체도 안 지키는데, 민간에 강제한다고 지키겠어요. 제발 공공 영역만이라도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어요.”
이런 현실을 알기에 사회복지 공무원이 되기 위해 6년을 투자한 뒤 만났던 벽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자판기 사업을 통해 돈도 좀 벌었기에 취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멈출 순 없었다. 늦은 나이였지만, 그는 2005년 홈플러스 금천점에 입사했다. 그는 “학생운동, 장애인운동 했는데, 이대로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애인에게 놓인 여러 장벽을 부수고자 취업에 도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장애인에겐 너무나 평범한 일상일지도 모를 것들이 장애인에겐 도전이 되고, 고난을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되곤 한다. 이런 현실은 장애인들이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우리의 사회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정한석은 ‘스탁 컨트롤’(Stock control)이라 불리는 재고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점포에 트레일러가 오면 물건을 내려 창고에 배열하고 재고 조사해서 관리하는 업무다. 그는 “큰 단위로 포장돼 들어온 물건을 해체해 매장에 진열되기 전까지 처리하는 작업이에요. 말은 재고 관리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까대기’ 업무에요. 작은 물류센터라고 보시면 됩니다.”
17년 째 이어진 재고정리 업무 “속도만 조금 느릴 뿐 작업엔 지장이 없어요.”
‘까대기’는 화물차에 실린 물건을 분류해 싣는 업무를 뜻하는 택배업계 은어다. 무거운 물건을 손으로 직접 나르는 고된 노동이다. 때문에 ‘까대기’ 아르바이트는 도망자가 속출하는 이른바 ‘전설의 알바’로 불린다. 장애가 있는 그가 그런 작업이 가능할지 의문이었지만, 그는 “속도만 조금 느릴 뿐 작업엔 지장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고 관리 업무 특성상 근골격계질환을 만성질환으로 안고 사는 경우가 많고, 정한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래 일하다 보니 허리와 목에 디스크가 생겼어요. 그래서 산업재해 판정을 받았고, 지금도 일하면서 치료받고 있어요.”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즐긴다. 함께 모여서 일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함께 일하다 보면 행복지수가 높아진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함께 일하기 좋아하는 그는 동료들의 추천으로 지난 2013년 7월 홈플러스 노동조합 서울 금천지회장(당시엔 지부장)을 맡았다.
“그해 3월에 홈플러스 노동조합이 처음으로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직원들에게 결성 사실을 알리는 문제가 갔고, 많은 직원이 가입했어요. 금천점에선 제가 3번째로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그렇게 가입자들이 조금씩 늘어나다 27명이 됐고, 몰래 모여서 노조 결성을 논의했어요. 그 자리에서 동료들에게 추천을 받아 초대 지회장에 선출됐어요. 3년 동안 대표자로 일하면서 조합원도 27명에서 100여 명으로 늘어났어요, 지금은 조합원이 120여 명 됩니다.”
2013년 홈플러스노조 금천지회 초대 지회장에 선출되다… “잘 듣지 못하는 저의 장애가 노조 활동에 있어 장점이 됐어요. 잘 안 들리기 때문에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홈플러스노동조합(현재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은 결성 이후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왔다. 올해에도 지점 폐업·매각 중단과 고용보장 등을 요구하며 삭발과 파업 등 다양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계속되는 투쟁은 내부의 단결을 높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다양한 어려움으로 노조를 떠나는 이들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금천지회에선 그렇게 흔들리는 조합원들을 지키며 함께 싸워왔다는 걸 그는 큰 자부심으로 여긴다. 그렇게 된 건 투쟁을 알차게 준비했고, 자신의 장점을 잘 활용한 덕분이라고 그는 믿는다.
“사측에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법적인 검토를 충분히 해서 회사에서 아무 변명을 하지 못하도록 했어요. 그렇게 투쟁하다 보니 승리를 경험하는 일들이 많았어요. 아울러 잘 듣지 못하는 저의 장애가 장점이 됐다고 생각해요. 잘 안 들리기 때문에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의식적으로 집중해서 듣게 돼요. 마트 노동자 가운데 여성들이 많은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애환을 나누면서 공감대가 커졌어요. 그리고 조합원에게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제가 꼭 챙겼어요. 항상 전화로 안부도 묻고요. 그렇게 신경을 쓰면 조직이 아무리 힘들어도 떠나지 않아요.”
그는 현재 마트노조 서울본부에서 산업안전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주로 산업재해와 관련한 상담업무다. 그 자신이 산재를 직접 당해 봤기에 누구보다 그 사정을 잘 알고, 대학에서 행정학과를 다녀서 인사행정에도 익숙하기에 동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바뀌는 산업재해 관련 규정이나 법규, 사례 등도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제가 있는 금천지회의 경우 18명이 산재신청을 했는데, 1명 빼고 다 승인됐어요. 함께 일하는 동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보람이 큽니다.”
17년 동안 일했지만, 임금은 제자리걸음 “직장생활 5년 차인 큰딸이 저보다 훨씬 많이 받아요. 솔직히 ‘쪽’팔리기도 해요.”
정한석은 올해로 홈플러스에서 일한 지 17년 차에 접어들었다. 숙련된 노동자인 그의 급여는 여전히 200만 원에 채 미치지 못한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이 통상적으로 받는 급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그는 수많은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이들과 비교하면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다가도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마트 노동자 대우가 그런 것도 있지만, 장애인 노동자들의 현실은 대부분 이러하다.
“장애인들에게 임금인상이란 없다고 보면 됩니다. 경력이 쌓여도 늘 그대로예요. 일하다 다른 곳으로 옮겨도,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해도 경력을 인정받기 힘들어요. 언제나 밑바닥인 거죠. 저도 늘 임금이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어서 최저임금 인상률 정도만 올라갑니다. 직장생활 5년 차인 큰딸이 저보다 훨씬 많이 받아요. 솔직히 ‘쪽’팔리기도 해요.”
장애인들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대부분 저임금이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임금을 적게 주는 게 당연시된다. 그나마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 그는 선택받은 장애인 노동자일지 모른다. 심지어 많은 장애인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고 일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장애인에게 최저임금 이하로 임금을 지급하는 건 불법이 아니다. 현행 최저임금법 제7조는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이나 ‘그 밖에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겐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에 따르면 이 규정에 따라 합법적으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 노동자가 지난해 기준으로 9천60명에 달한다고 한다.
시혜적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장애인 복지 “장애인에게 라면은 줘도, 일자리는 안주는 거예요.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지 않고, 시혜적 지원만 해요.”
“심지어는 육체노동을 하는 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작업을 빠르게 해도 임금은 더 적게 줘요.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이런 현실을 만날 때마다 장애인들은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현실에선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으니까요. 이런 현실을 고쳐야 하는데 쉽진 않네요.”
이런 장애인들의 현실을 포함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는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에 나섰다. 그리고, 1987년 6월항쟁 이후 사회적 욕구가 분출되면서 많은 단체가 만들어질 때 여러 장애인단체도 생겨났고, 1990년부터 ‘뇌성마비 연구회’라는 작은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장애인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이른바 관변 장애인단체가 장애인들의 현실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는 장애인 사단법인 단체에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해 장애인 관련 사업을 진행한다.
“정부 보조금 지원을 받아 장애인에게 전달하는 걸 마치 사업처럼 진행해요. 말은 복지라고 하지만 철저히 시혜적인 관점이에요. 장애인에게 라면은 줘도, 일자리는 안주는 거예요.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지 않고, 시혜적 지원만 해요. 거기에 장애인을 위한 이동권, 학습권 등 다양한 권리는 보장되지 않고, 일자리도 찾을 수 없으니 시설에만 묶여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장애인들이 탈시설을 요구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정부에서 직접 장애인 지원사업을 책임지고, 장애인들이 자립해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장애인들의 현실을 바꾸려고 목소리를 내지만, 정치권은 묵묵부답이다. 조금씩 변화가 있지만, 변화의 속도는 너무나 더디다. 때론 지금은 어렵다면서 장애인들의 생존을 위한 당연한 권리와 이미 약속했던 장애인 공약들을 기약 없이 미루기도 한다. 그와 인터뷰를 진행한 3일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아 시위를 벌였다. 이날 통과된 내년도 정부 예산에선 장애인단체 등이 요구했던 많은 예산이 기재부 반대를 이유로 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장애인 공약들도 미흡하거나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채택한 Δ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Δ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 Δ부양의무자기준 폐지 Δ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 등은 관련 예산조차 반영되지 않았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조금 느려도 이해할 수 있고, 속도를 강요하지 않고, 노동자와 장애인이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를 꿈꿉니다.”
정한석은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1년 전부터 진보당 서울시당 장애인위원회 활동도 시작했다.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적 목소리도 직접 내고, 장애인들의 정치 사회적으로 요구를 담아 투쟁에도 나서고 있다. 장애인 당원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바꿔야 할 문제가 너무나 많음을 새삼 깨닫고 있다.
“직업 재활 교육도 문제에요. 직업 재활은 장애인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기 위해선 중요한 과정인데,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어요. 장애인들도 일할 능력이 충분한데 허송세월만 하다가 다시 시설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일해야 시설에서 나와 생활인이 될 수 있는데, 장애인 복지가 애초에 그런 방향이 아니라, 수용하고, 가두는 쪽으로 설계돼 있어요.”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은 철저하게 사회적 비용에 근거한 자본주의적 관점이다. 장애인 인권이나 장애인들의 생활보장은 안중에 없다. 장애인이 시설을 떠나 사회로 나오면 장애인을 위한 교통 시설 투자 등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장애인들을 시설에 가두는 게 더 이득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신경을 쓸 일도 줄어든다.
“흔히 공동체를 말하고, 함께 산다고 말하지만, 우리 사회 공동체 속에 장애인의 자리는 없는 것 같아요. 장애인이 사회 속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여유가 있다면 사회가 조금은 따뜻해질 겁니다. 사회가 성숙하고, 발전하려면 소외되는 이들이 없이 모두의 행복과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합니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고,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고, 일해도 저임금에 시달리며, 제대로 교통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고, 마음대로 다닐 수조차 없는 게 장애인들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비장애인들이 2021년을 살아가는 지금 장애인들의 시대는 1980년대 혹은 그 이전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이란 이유로 역사 발전, 사회 발전의 혜택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그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근본적인 사회시스템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싸우는 게 자신의 꿈이자 계획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노동이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그러려면 사회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자본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어요. 조금 느려도 이해할 수 있고, 속도를 강요하지 않고, 노동자와 장애인이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를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