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설 「주피터」 낸 이동권 기자 “위로보다 고뇌가 필요하다”

주한미군 주둔 77년 공과를 묻다

장편소설 주피터 표지ⓒ기타

주피터. 묘한 소설이다.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이 하나의 세계에서 얽혀 만담한다. 기자 출신 작가가 써서 그럴 게다. 작가는 우연이라는 단어를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 세계를 사건사고가 서로 얽힌 하나의 집합체로 보고 필연에 매달린다.

“기사는 본질적으로 사건사고의 상관성을 밝히는 글이다. 인과관계 없이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없었다. 저 농민은 왜 농촌을 떠났는가, 저 노동자는 왜 죽었는가 들여다보면 다 얽힌 이유가 있었다. 주피터에서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도 사실은 하나의 이야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가 뒤섞여 하나의 인간 세계를 구성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어떻게든 서로 영향을 미친다. 내가 정의롭게 살아야 사회도 평화롭다. 그렇지 않으면 폭력과 혼란이 판친다. 가장 비근한 예가 바로 전쟁이다.”

소설 주피터는 자상하지 않다. 밭을 매다 발견된 여섯 구의 유골과 서울에서 귀촌한 여자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사고를 버무려 사색의 실마리만 던진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직설적으로 까발려버린다. 요즘 작가들이 건네는 그 흔한 위로 같은 것에도 건성이다. 냉담한 어조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계속 건드리며 질문을 던진다. 참으로 고약한 텍스트다.

“위로보다 고뇌가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모두 편하고 풍요로운 것만 지향하지 않는가. 우리 사회는 삶을 다원적으로 보는 것을 터부시한다. 이것이 옳은 삶이다, 교과서처럼 하나만 정답이라고 여기며 사는 사람이 많다. 거기에서 벗어나면 혹독하고 모질게 손가락질한다. 심지어 가난한 사람에게도 곁눈질한다. 마치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삶도 그런데 정치는 오죽하겠는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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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은 미군이 점령군으로 이 땅에 들어온 지 77년 되는 해

소설 주피터의 주제 의식은 강렬하다. 과거,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거리에서 외쳤던 구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작가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정확하게 읽힌다. ‘반미’다.

1960년대부터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반미소설이 다수 발표됐다. 미소 이념 갈등의 희생자로 한반도를 묘사한 최인훈의 <광장>을 비롯해 외세에 아첨하며 부와 명예를 좇는 삶을 야유한 신인철의 <꺼삐딴 리>, 미국 문화에 거부감을 드러내며 친미주의를 비꼰 정연희의 <바람 타는 깃발>, 미군의 총격으로 파괴된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유주현의 <임진강>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하근찬의 <왕릉과 주둔군>, 정한숙의 <어느 동네에서 울린 종소리>, 오영수의 <안나의 유서>, 박순녀의 <엘리제 초> 등이 있다.

미국을 가장 노골적으로 비판한 소설은 아마도 1965년에 발표된 남정현의 <분지>일 것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미군에 강간당해 미쳐 죽은 어머니와 미군의 첩으로 살며 학대당한 누이동생의 복수를 하는 이야기다. 소설 속 주인공은 끝내 한국을 ‘똥으로 된 땅’이라고 울부짖는다. 민중을 위해 일하거나 헌신하지 않아도 반공이나 친미를 외치면 애국자가 돼버리는 천박한 한국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소설 <분지>의 주제 의식은 현재도 유효하다.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레드 콤플렉스가 기승이다.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면서 용공 공세를 펼치는 세력이 건재하다. 왜 그런가? 인간이 빠져서다. 그 어떤 이념도 인간을 넘어설 수 없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인간 존중이라 할 수 있다. 그걸 안다면 생각이 다르다고 공격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수구꼴통 소리를 듣는 거다.”

어쩌면 소설 주피터도 ‘반미소설’이라고 규정하면 그렇게 볼 수 있다. 작가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미군의 민간인학살 사건과 2015년 오산 미군기지에 벌어진 생화학무기 실험을 현실로 소환해 주한미군 주둔 77년의 공과를 묻는다. 이 소설에서 곁가지 문젯거리로 건드린 계급의 대립과 갈등, 어려운 한국 농촌사회의 현실도 그 근원에는 미국이 똬리를 틀고 있다.

작가는 소설 주피터가 우리가 흔히 통칭하는 ‘반미소설’로 불리는 걸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런 류의 소설 중 하나로 불리는 걸 더욱 반긴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억눌린 표현의 자유를 해소하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일제강점기 이후 뒤틀린 국가 주권이 제자리를 찾길 바라는 마음이다.

“1950년 9월 8일 미군은 점령군으로 이 땅에 들어왔다. 그동안 잔혹한 미군 범죄가 이어지고, 기지 환경오염이 심각해져도 소용없었다. 미군 장갑차에 효순이 미선이가 죽고, 한반도 전역에서 생화학무기 실험이 버젓이 벌어져도 손대지 못했다. 불평등한 주한미군 주둔군 지위협정(SOFA) 때문이다. SOFA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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