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운영하면서 국고보조금을 부정 수령한 혐의로 기소된 윤미향 무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서울시 담당 공무원들이 검사 측 증인으로 나왔지만, 오히려 윤 의원 측에 유리한 증언을 잇따라 내놨다.
그러자 검사가 법정에서 반복되는 질문으로 증인을 몰아세우는 모습을 보였고, 변호인이 “취조하는 것 아니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또한 증인 중 한 명은 검찰조사에서 윤 의원 측에 불리한 진술을 한 배경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분명히 알고 한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당시 학예사 상근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결정적 증언 나오자...검찰, 격양된 목소리로 질문
윤 의원 측 변호사 “증인 취조하는 것인가” 항의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문병찬)는 17일 서부지법 303호 법정에서 윤 의원 등의 보조금관리법 위반, 사기 등 혐의에 관한 6차 공판을 진행했다. 윤 의원 등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로 일하던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운영하며 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부터 총 3억 원가량의 국고보조금 등을 부정 수령한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공판에는 검사 측 증인으로 2013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서울시에 박물관등록 신청할 당시 해당 업무를 수행했던 서울시 공무원 A 씨가 나왔다. 지난달 26일 공판에 나왔던 서울시 공무원 C 씨는 2020년부터 박물관 등록 및 보조금 지급 업무를 담당하던 이였기에 과거 어떤 절차 및 기준으로 박물관 등록 및 보조금 지급이 이루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반면, 이날 공판에 나온 A 씨는 직접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등록 신청을 받고 현장실사를 나갔던 공무원으로 핵심 쟁점에 대해 답변을 해줄 수 있는 증인이었다.
이날 증인 A 씨의 법정 진술 중에서는 혐의가 있다고 본 검찰의 입장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내용이 있었다.
보조금관리법 위반, 사기 혐의와 관련한 공판에서는 ‘윤 의원 측이 2013년경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등록 신청할 당시 박물관등록 요건인 학예사 보유 조건을 충족하고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윤 의원 측은 2013년 박물관 등록 당시 학예사 1명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학예사가 되어주겠다고 동의했고 관련 서류를 갖추어 박물관 등록 절차를 진행한 바 있기에 학예사 보유 요건을 갖췄다는 입장이다. 반면 검찰은 ‘학예사를 보유했다’는 것은 ‘상근 학예사를 두었다’는 의미로 보고 윤 의원 측이 상근하지 않는 학예사를 상근하는 것처럼 속이고 박물관등록을 완료한 뒤 각종 보조금을 부정 수급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A 씨는 “학예사의 상근 여부는 (박물관등록에) 결정적인 사안이 아니었다”라고 증언했다. 판사가 재차 증인의 답변 취지를 확인하고자 한 질문에서도, A 씨는 “(학예사) 상근 여부가 핵심적인 사안이었다면 문체부에서도 지침이 내려왔을 것이고, 서류 요건에서도 (4대 보험 가입 여부 등 상근 관련) 증빙서류도 별도로 있어야 할 것이고, 박물관 현지조사에서도 심사위원들이 그 부분에 관해 확인 작업을 했을 것”이라며, 당시 상근 여부를 확인하라는 문체부 지침 등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제출된 이력서 등으로 학예사 보유 여부만 확인됐으면, 박물관등록 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했다는 말로 풀이된다.
A 씨의 증언은 지난달 26일 공판에서 변호인 측이 제시한 문화체육관광부의 2017년 ‘박물관 및 미술관 등록업무 지침’과도 연결된다. 이 지침에서 학예사가 박물관 상근자인지 아닌지 평가 항목은 ‘정량 평가지표(최소요건)’ 사안이 아닌 ‘정성평가 보완’ 사안이었다. 4대 보험 내역 등 상근여부 확인 자료는 정성평가 보완 기준요건에만 적혀 있었고, 최소요건 사안에는 단지 “학예사 1명 이상”이라고만 적혀 있다. 학예사가 상근인지 비상근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확보만 되면 박물관등록 최소요건은 충족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또 국내 어떤 법과 시행령에도 박물관등록 요건으로 “상근하는 학예사가 있어야 한다”는 명시적 규정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A 씨의 증언이 나오자, 검사들은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여 쏟아냈다. 상근과 보유의 의미를 아느냐는 질문을 하는가 하면, 다소 격양된 언성으로 “증인! 증인이 박물관 등록업무 하려고 이 현지조사(서류) 작성한 거 맞죠?”라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이에, 윤 의원 측 변호인이 “취조하는 것 같다”라고 항의하는 장면도 나왔다.
판사도 반복적인 질문이 과한 것 같다며 검찰의 심문을 제지했다.
다만, A 씨는 ‘학예사 보유’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와 관련해 다소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아르바이트 또는 간혹 자문을 받는 식이면 보유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취지로 말했다.
또 박물관등록 심사 과정에서 A 씨가 작성한 현지조사서류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학예사가 상근하고 있다고 기재한 것과 관련해, A 씨는 “임의대로 작성한 것은 아니다. 전화 등을 통해 물어보고 기재한 것 같다”라고 답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임의로 기재했을 것 같지는 않고, 물어봐서 기재한 것 같다는 취지의 답변이다. 해당 서류는 A 씨가 박물관등록 업무를 맡기 전부터 사용하던 것으로 ‘전문 직원 확보 여부’를 기재하게 돼 있고 구체적인 항목으로는 △ 학예사 확보 여부 △ 학예사 상근 여부 등으로 나누어 기재토록 하고 있다.
“불법”이라고 했던 또 다른 공무원
“검사 질문 내용 토대로 답변한 것”
이날 공판에는 2020년 사립박물관 보조금 지급 관련한 업무를 담당했던 서울시 공무원 B 씨도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검찰조사 과정에서 한 진술은 정확한 법적 판단 또는 자문을 받아서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또 일부 윤 의원 측에 불리하게 적용되는 진술과 관련해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고 말한 게 아니라고 답했다.
B 씨는 검찰 측 심문에서 ‘윤 의원 측이 학예사를 마치 있는 것처럼 속이고 박물관 등록 신청을 했다’고 전제한 뒤 “학예사가 없는 것을 알았다면 보조금 지급을 하지 않고 등록을 취소할 수 있도록 권한 있는 사람에게 알려주던가, 누가 봐도 명백히 등록이 무효면 바로 배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 의원 측 변호인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운영 중 학예사가 부재했던 상황을 보조금 사업 현장실사 심사위원들이 알고 있었다’는 심사 자료를 제시하자, B 씨는 “다른 학예사 채용 때까지 구제 기간이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에 변호인이 ‘일시적으로 학예사가 없다는 이유로 보조금 지급을 취소한 경우를 아느냐’고 한 질문에 B 씨는 “없다”고 답했다.
또 B 씨는 “박물관 등록 신청 시 학예사가 반드시 상근하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법률자문 등 근거로 진술한 것이냐’는 변호인 질문에 “아니다. 내 생각을 말한 것”이라고 답했다. ‘상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조금 지급을 하지 않거나 환수한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다”고 답했다.
B 씨는 검찰조사에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박물관등록 신청 과정에서 명백한 불법이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과 관련해서도 ‘당시 학예사가 어떤 식으로 정대협에 합류하여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답한 것인가’라고 묻는 변호인 측 질문에 “박물관에 근무하지도 않는데 (근무하는 것처럼 속였다) 그런 기억이 나서 불법이라고 답했던 거 같다”라고 답했고, ‘그런 기억이 학예사에게 직접 들은 얘기인가, 아니면 언론보도 내용인가’ 질문에 “검사의 질문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라고 답했다.
한편, 오는 24일은 1심 재판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일에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박물관등록 당시 학예사가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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