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림으로 세상읽기] 그리움을 가득 담은 즐거운 편지

해가 바뀌기 전부터 지금까지 새해 안부를 묻는 카드를 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이름을 기억해 안부를 묻고 좋은 한 해가 되라는 덕담은 늘 고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카드나 몇 줄의 문장에서 상대의 숨결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세상이 변한 지 한참이지만, 여전히 직접 쓴 글에 대한 미련이 크기 때문입니다. 펜을 들고 손으로 직접 편지를 썼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시는지요?

편지를 쓰는 남자 Man Writing a Letter 1665 oil on canvas 52.5cm x 40.2cm ⓒ국립 아일랜드 미술관

흰색 리넨 셔츠 위에 검은색 재킷을 입은 남자가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탁자에 깔린 페르시아 산 양탄자와 그 위에 놓인 은으로 된 필기구를 위한 통은 그림 속 남자의 부유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벽에는 비둘기가 조각된 액자가 걸려 있고 벽과 거실 바닥이 만나는 곳은 푸른색 도자기로 유명한 네덜란드 델프트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네덜란드 황금 시대의 부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지요.

열린 창문 안쪽으로는 지구본이 보이는데 당시 상황을 염두에 두면 이 남자의 직업은 상인이거나 과학자이겠지만 상인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여인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남자가 쓰는 편지는 누구에게 보내는 어떤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이 작품을 그린 가브리엘 메취 (Gabriël Metsu)는 네덜란드 레이덴에서 출생한 화가로 정물화, 역사화, 초상화 그리고 풍속화로 유명했던 화가였습니다. 특히 한 가지 주제나 한 가지 기법을 고집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화를 꾀한 것으로도 기억할만한 화가인데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와 작품의 구성이 비슷하지만, 당대에는 페르메이르보다 오히려 더 인기가 좋았던 화가라고 기록은 전하고 있습니다.

편지를 읽는 여인 Woman Reading a Letter 1665 onc 52.5x40.2 ⓒ국립 아일랜드 미술관

푸른색 커튼이 있는 창가에 앉아 여인이 편지를 읽고 있습니다. 비싼 담비 가죽이 달린 노란색 상의와 복숭아색 치마가 은은한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벗어 놓은 신발과 치마에는 금박 장식이 더해졌습니다. 앞서 보았던 편지를 쓰는 남자만큼 부유한 환경입니다.

이마가 훤칠한 것은 당시 유행하던 미인들의 조건 중 하나였지요. 무릎에 올려놓은 붉고 푸른색의 자수 방석과 옆에 있는 바느질 광주리를 보니 여인은 편지를 읽기 위해 잠시 하던 일을 멈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읽고 있는 편지가 ‘러브레터’라는 암시이겠지요.

하녀를 보고 있는 스패니얼 강아지는 충성과 배우자에 대한 정절의 상징입니다. 하녀가 들고 있는 통에는 큐피드의 화살이 그려져 있는데 그녀가 들고 있는 편지 봉투에 적힌 이름이 수상합니다. 봉투에는 ‘메취’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작품을 그린 화가의 이름 아닌가요? 그렇다면 화가가 모델에게 편지를 쓴 것일까요, 아니면 이 작품을 제작한 자신의 서명인 것일까요?

하녀가 커튼을 치우자 벽에 걸린 그림이 보입니다.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혹시 그림 속 여인과 편지를 보낸 사람의 관계가 혼돈 속에 있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여인의 연인이 바다에 있다는 뜻일까요?

이 작품은 ‘편지를 쓰는 남자’와 한 쌍으로 그려진 작품이고 아주 비싼 가격에 팔렸습니다. 편지를 쓰고 받았으니 이야기도 서로 통하는 작품이 되겠지요.

새해 많은 결심을 합니다. 저는 새해부터 좋아하는 시를 필사하고 있습니다. 펜을 사용하는 대신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다 보니 이러다가 펜을 쥐는 법도 잊어버리는 것 아닐까 싶었거든요. 다시 예전처럼 익숙해지면 편지도 쓸 계획입니다. 각오치고는 너무 소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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