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신비로운 겨울 세계의 환대와 어울림

사공의 EP [Here, mr.reindeer]

사공의 EP ‘Here, mr.reindeer’ ⓒ서울모처층간소음

싱어송라이터 사공은 자신의 새 EP [Here, mr.reindeer]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번 생에서 하고 싶은 음악만 하다 보면 가난을 면치 못하겠다’, ‘사후에도 재조명 받을 수 있을 만한 그런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되자’ 등의 생각들, 제 마음의 일부를 투영한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한 사람의 마을 속 삶을 담은 쓸쓸한 겨울 앨범을 만들었습니다‘’라고. [떠돌이 음악가 순록 아저씨를 받아준 마을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써온 곡들이 사후에 마을 사람들에 의해 발견된다]라고.

[여기 순록 아저씨]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중편소설 같은 EP의 수록곡은 총 다섯 곡이다. 그 중 세 곡은 연주곡이고, 두 곡에서만 노래한다. 사공은 이번 음반에서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음악을 들려준다. 음반을 듣다 보면 실제로 순록이 있는 나라, 가령 캐나다나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아이슬란드에서 온 노래를 듣고 있는 것만 같다.

세계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와도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세상에서 이국적이라는 표현은 너무 고루한 표현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이질적인 사운드, 한국적이지 않은 질감을 구축하는 사공의 방법론과 그 사운드가 선사하는 여운이 사공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부인할 수 없다.

사공 (Sagong) - Here, mr.reindeer 앨범 전곡 듣기

음악이건, 소설이건, 영화이건 대부분의 예술 작품은 하나의 이야기이고 하나의 세계이다. 이미 알고 있는 감각과 사건을 재현하기도 하고, 알지 못했던 감각과 사건을 경험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사공의 음반처럼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초대하기도 한다. 사실 그 세계를 경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몰라도 세상은 돌아간다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음악과 예술은 그 무용해 보이는 일의 가치를 계속 찾아내기 위한 질문일지 모른다.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라거나, 공감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신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고, 이런 경험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알고 있는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도피할 수 있다고 우겨보고 싶다. 그 후 우리가 제각각 어디로 향하게 되고,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는지는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사공은 다섯 곡을 직접 쓰고 편곡하고 연주했다. 첫 곡 ‘pixie dance’에서부터 발이 푹푹 빠지는 눈세계로 떠난다. 어쿠스틱 기타의 경쾌한 리듬감과 건반의 은근한 울림은 신비로운 세계에서 날아온 초대장일 뿐 아니라, 그 세계의 환대와 어울림처럼 펼쳐진다.

소박하고 영롱한 여운은 두 번째 곡 ‘겨울의 노래’로 이어진다. 도드라진 멜로디를 반복해 연주하고, 모닥불처럼 따스하게 노래하는 덕분에, 특히나 소박하고 동화적인 여운을 불어넣는 관악기 연주 덕분에 ‘겨울의 노래’는 이전의 다른 노래들과 명확하게 구별되는 다른 세계의 겨울 노래가 되었다.

따스한 겨울의 공기는 연주곡 ‘계신 곳’으로 편안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사공이 직조한 신비로운 겨울 세계의 감각은 다린과 함께 노래한 ‘유령궁전’에서 쓸쓸한 아름다움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왈츠 리듬 아래 흐르는 연주와 노래는 지금 사공의 노래를 들어야 할 이유를 노래만으로 설득해 낼 만큼 매혹적이다. 에필로그 같은 연주곡 ‘눈내려라’는 창밖을 열면 눈이 내리고 있을 것만 같은 여운을 남기며 음반을 마무리한다.

이제 곧 우리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겨울, 순록이 사라진 겨울을 맞이해야 할지 모른다. 물론 그 때가 되어도 우리의 상상력은 다른 세계로의 도피를 꿈꿀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사공의 노래는 옛 낭만의 증거처럼 젖어 흐를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음반을 듣고 또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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