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명숙 칼럼] ‘멸공 인증’은 표현의 자유가 될 수 없다

'멸공'은 표현의 자유 아닌 증오 선동...윤석열 후보 주장과 달리 표현의 자유 저해해

재벌이 시작한 '멸공' 혐오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정치권 인사들이 있어 우려스럽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멸공' 메시지를 자신의 SNS에 올리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사며 동조했다. 윤 후보만이 아니었다. 국민의힘 소속 여러 정치인이 소위 ‘멸공 챌린지’에 나서며 증오 선동에 동참했다.

헌법에 명시된 인권을 존중해야 할 대선 후보 등 정치인들이 증오 선동을 한 것은 민주주의를 뒤로 돌리는 일이다. 이들의 행위가 실수가 아니고 의도된 것이란 점에서 사태는 심각하다. 이에 대해 우려와 비판이 일자 윤 후보는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이 헌법 질서를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누구나가 의사 표현의 자유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멸공'은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하는 일인가.

정용진 부회장 SNS 게시글 ⓒ출처 : 정용진 부회장 SNS

멸공은 국제 사회가 반대하는 '증오 선동'일 뿐 

당연히 '아니다'. 멸공(滅共)은 ‘공산주의 또는 공산주의자를 없애자’는 뜻으로 ‘반공’과는 다르다. 사상이 다른 사람은 제거해도 된다는 의미이니, 학살을 부추기는 증오 선동이라 할 수 있다. 공산주의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인식의 바탕엔, 극단적 형태의 혐오와 폭력이 깔려있다. 그러니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말하듯 '위트'나 '익살'로 보고 넘어갈 수 없다.  

과거 '멸공'이 횡행하던 한국 사회에서는, ‘빨갱이 사냥’이라는 이름 하에 수많은 인권 침해와 학살이 벌어졌다. 국가는 보도연맹이나 5.18 광주민주화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학살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이나 집권 세력의 정적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고문하고 죽이는 등 국가폭력을 행사했다.

'멸공'은 단체나 개인 등 반정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심지어 서북청년단 같은 단체는 멸공을 내세워 민간인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이들의 만행은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된 후 이뤄진 진상조사를 통해 국가폭력으로 인정됐다. 

이러한 끔찍한 역사를 안다면 ‘멸공 챌린지’를 할 수 없다.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는 행동이다. 그 뿐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과거의 망령을 소환하려 드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한 일이다.

국제인권기준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무조건 인정하지는 않는다.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경험했듯, 전쟁 선동이나 증오 선동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끔찍한 사태를 불러온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약칭 유엔 자유권 규약) 20조에서도 모든 표현을 용인하고 있지는 않다.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이 될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증오의 고취’는 금지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정보의 자유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국제 인권 기구 ARTICLE 19는 ‘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캄덴 원칙’ 4장에서 모든 국가가 차별, 적대감, 폭력 선동(증오 발언)을 담은 민족적, 인종적, 종교적 증오를 옹호하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여기서의 '증오'와 '적대감'은 표적 집단을 향한 격렬하고 무분별한 치욕, 적의, 혐오를 뜻한다. 

멸공 챌린지는 언어 유희의 형태로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무분별한 적대심을 고취시킨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비판을 회피하기 쉬운 방식이다. 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사면서 조롱하는 듯한 태도로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은 없애도 된다'는 무시무시한 메시지를 흘린다. 정치인들이 ‘멸공’이란 표현을 SNS에서 버젓이 쓰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에게 나쁜 신호를 준다. 적대나 증오선동을 해도 괜찮은 일로 여기게 만들 뿐 아니라, 한편으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불안에 떨게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인스타그램 캡쳐

멸공은 표현·사상의 자유를 위축시켜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사상과 생각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멸공'은 윤 후보의 주장과는 달리 표현이나 사상의 자유를 저해한다. 다양한 의견을 듣기보다는 특정 입장을 배제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할 수 없도록 해 공론장의 기능을 변질시킨다. 어떤 사상을 가진 사람들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 다른 사상에 대한 편견과 일부 사상에 대한 맹신을 증폭시키는 부정적 효과가 있다.

한국 사회는 이미 2014년 일베와 서북청년단의 활동을 통해 이를 목격한 바 있다. 그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조롱하고 사드에 반대하는 성주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일을 생각해보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선 '멸공' 뿐만 아니라, 반공(反共) 이데올로기도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수단이 됐다.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다는 명목으로 구속하고 처벌하는 일이 독재정권 시기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유엔자유권위원회 등 국제인권기구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수차례 권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21세기에 정치인들이 멸공챌린지를 하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일각에서는 현재 벌어지는 멸공챌린지를 '극우 보수층의 표를 얻기 위한 대선 득표전략'으로 분석 하기도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더 심각한 문제다. 혐오로 표를 얻은 정치가 지향하는 사회는, 존중과 공존이 아닌 배제로 점철된 획일화된 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시민들이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정용진 부회장과 관련된 업종이나 상품에 대한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다. 민주주의로 단련된 시민들이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가진 재벌과 정치인들의 증오 선동에 쉽게 넘어가거나 굴복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증오 선동에 혐오로 응수하지 않고 대중적 저항 행동으로 맞선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 불매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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