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단내나는 삶] 성숙함과 유치함 사이에서

자료 사진 ⓒ민중의소리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에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았다고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권선징악’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가 신앙생활 초기에 가졌던 하느님의 인상은 착한 이에게 상을 주고, 악한 이는 벌하시는 분이었다. 이런 하느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히 살피시는 무서운 분이었다. 나는 그런 하느님으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서 착한 것이란 찾아볼 수 없었기에 늘 어디론가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숨었다 하더라도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히 살피시는 하느님의 눈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신앙 생활이 어떤 면에서 매우 불편하기도 했다. 이런 나에게 성경은 단순히 윤리 교과서 정도로 다가오기도 했다.

나는 수도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마태 5,45)는 말씀 속 모습으로 하느님을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가 가르쳐주는 ‘권선징악’이 유치해 보이기도 하지만, 교육적 차원에서 인간이 악과 싸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많은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권선징악’ 차원의 법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안전 규정이 지켜지지 않아
고압전류에 감전돼 세상을 떠난 고 김다운 씨


우리 사회에서 ‘권선징악’의 학습이 더없이 필요한 현장은 아마도 참사가 반복돼 일어나는 노동 현장일 것 같다. 지난 3일 ‘MBC 뉴스’는 전봇대에 올라 전기 작업을 하던 중 고압 전류에 감전돼 사투를 벌이다 사망한 김다운 씨에 대한 뉴스를 전했다. 故 김다운 씨는 한국전력의 하청업체에 속한 전기 노동자였다.

그는 지난해 11월 5일 전봇대에 올라 인근 신축 오피스텔에 전기를 연결하는 작업을 하던 중 22,900볼트의 고압 전류에 감전되어 몸의 40%에 3도 이상의 화상을 입고 사경을 헤맸다. 결국 사고 발생 19일째인 11월 24일 패혈증 쇼크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대체 언제쯤 이런 안타까운 죽음이 뉴스에서 사라질까요?”라고 시작 멘트를 하는 앵커에게서 안타까움과 분노의 마음이 담긴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고 김다운 전기 노동자 산재사망 추모 기자회견 ⓒ민중의소리

이 사고는 안전 수칙을 무시해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었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한다.  김다운 씨는 그날 안전모와 추락방지용 안전줄을 허리에 차고 면장갑을 끼고 전신주에 올랐다가 사고를 당했다.

한국전력의 안전 규정에 따르면 고층 작업현장에서의 전기 공사는 작업자를 태우는 절연이 되는 바구니 모양의 장비가 있는 활선차(고소절연작업차)를 쓰도록 하고 있다. 전신주의 전기 작업도 마찬가지로 이 활선차를 사용한다. 작업자는 활선차를 타고 작업을 하므로 장갑만 끼고 고압선을 만져도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또 작업자는 반드시 2인 1조로 작업을 해야 한다. 2인 1조로 작업하게 되면 안전 점검 절차가 강화될 뿐 아니라 재해 발생 시 전기를 차단하는 등의 방법으로 2차 재해를 방지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 김다운 씨는 활선차가 아닌 일반 소형트럭을 타고 출동하였고, 혼자 작업을 했으며 심지어 그는 절연 장갑이 아닌 일반 면장갑을 끼고 있었다. 안전 규정이 지켜졌다면 그는 치명적인 산업재해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보도 6일 만에 재발 방지 대책 발표한 한국 전력
이미 지난 2016년 비슷한 대책 내놓아
지켜지지 않는 규정과 반복되는 재해


한국전력은 지난 9일 ‘사후약방문’ 식으로 재발 방지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이미 2016년에 ‘배전활선작업 공법’ 자료를 내놓았다. 당시에도 ‘안전 최우선’ 원칙을 밝힌 바 있지만, 안전 규정은 다시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이런 끔찍한 산업재해의 반복으로 이어졌다. 한국전력의 자료에 의하면 2016년부터 김다운 씨를 포함해 감전으로 숨진 노동자는 모두 47명에 이른다. 숨진 노동자들 가운데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하청업체 직원들이었다.(한겨레신문 1월 10일.) 다름 아닌 ‘위험의 외주화’다.

문제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음에도 산업재해가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선을 권하기 위한 교육적 차원의 징벌이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애써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참사는 이렇게 반복된다.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의 죽음
이로 인해 만들어진 '김용균 법' 기대엔 못 미쳐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50인 미만은 3년 유예'


지난 2018년 12월 11일, 한국서부발전의 사업장인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한국발전기술의 계약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낙탄 제거 작업을 하다가 연료 공급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이후 소위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개정되었지만 정작 발전소 노동자들은 보호받을 수 없는 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입법되었다.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기업과 사업주에게 징벌적으로 책임을 물음으로써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다.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CJ ENM에서 일하다 숨진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의 30일 가까운 단식 끝에 이 법안이 2021년 1월 8일 제정되었고, 2022년 1월 27일 자로 발효된다.

내가 김용균이다 100일 투쟁 선포 ⓒ김철수 기자


그러나 이 법은 5인 미만의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50인 미만의 사업장은 3년 후에 적용하게 해 제안한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상태로 제정되었다. 왜냐하면 전체 사업체 중 5인 미만이 79.8%, 50인 미만이 98.8%에 이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향후 3년 간 처벌 받을 사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법과 제도를 올바로 개선해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권선징악’이 가능하고 참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함께 살기 위해서 이웃의 존재를
존중하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마태 19,19)
얼마나 단순한 진리인가?


그러나 나는 ‘권선징악’의 문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권선징악’적 법 체계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한동안의 재해는 막을 수는 있겠지만, 기업가들은 또다시 이를 회피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즉 ‘권선징악’은 사람을 미성숙하게 만들어 위선적으로 행동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위선적인 행동은 위악적인 뻔뻔스러운 행동보다는 훨씬 낫긴 하다.

그런데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인간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사는 존재다. 함께 살기 위해서 이웃의 존재를 존중하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마태 19,19) 얼마나 단순한 진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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