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대우조선·현대중공업 합병 불허, 커지는 산은·청와대 책임론

홀로서기 내몰린 대우조선해양, 전문가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억지로 밀어붙이다 이 지경"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불허했다. 3년 전 합병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 된 상황에서 이를 원점으로 뒤집는 결정이 나왔다.

후폭풍이 클 전망이다. 무리하게 민영화를 추진했던 산업은행과 심사 통과를 공언했던 정부의 책임이 커 보인다. 잘못된 민영화 강행으로 대우조선해양은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다. 경쟁업체에 영업비밀을 모두 넘겨줬다가 돌려받은 꼴이다. 홀로서기는 물론, 새로운 주인 찾기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EU 경쟁 당국은 13일(한국시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불허한다고 발표했다. EU는 두 기업의 결합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과점)를 형성해 시장에서의 경쟁을 저해한다고 판단했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전문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계는 지난해 11월 기준 전 세계 대형 LNG선 발주량 92%를 싹쓸이했다. 이중 현대중공업(32척)과 대우조선해양(15척)의 수주 물량은 60%를 훌쩍 넘어선다.

조선업계와 학계에선 두 회사의 점유율이 높다는 점에 주목해 왔다. 선박 주요 발주처 중 하나인 EU는 물론 일본 등 조선업 경쟁국의 승인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EU의 불승인으로 업계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한국경쟁법학회 이황 회장(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런 결과를 대부분 예측하고 있었다. 너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문제를 산업은행과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대우조선해양 ⓒ출처 : 대우조선해양


커지는 산은·정부 책임론



산업은행과 조선업 정책의 컨트롤 타워인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에 투입한 수조원대 공적자금 회수에만 지나치게 몰두해 있었고, 이런 논리에 부화뇌동한 산업부 등 정책 관련자들의 잘못된 판단에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정책 실수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영화가 대우조선의 근본적 정상화”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EU의 불승인 결정이 내려진 직후, 산업부와 외교부, 금융위원회 등 정책 당국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최대주주 및 채권단은 공동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했다. 공동 참고자료는 “EU 판단이 아쉽다. 하지만 파급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자료는 “대우조선의 근본적 정상화는 ‘민간 주인찾기’라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최종 결정권자인 청와대 무능력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 결정 당시 한국 경쟁 당국 수장이었던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한국 기업을 키우기 위한 결론을 내려도 다른 국가에서 승인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면서 “외국 경쟁 당국에서 우리 판단을 참고할 수 있는 수준의 결론을 가장 먼저 내놓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두 기업 결합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그 사이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영전했다가 부동산 관련 문제로 자진 사퇴했다. 


원치 않은 홀로서기 내몰린 대우조선해양

전문가들 "교훈 얻어야"

대우조선은 원치 않던 홀로서기에 내몰린 꼴이다. 대우조선은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주도로 동종업 경쟁자에게 경영권을 빼앗겼다. 이 과정에서 대우조선의 영업비밀들은 고스란히 현대중공업과 공유됐다. 현대중공업 측은 대우조선의 ‘독립경영’을 보장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정부 역시 자율 독립 경영체제를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업계에선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 의문을 제기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아직 인수 절차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딜 클로징’은 시간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했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인수 대상인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외부에 공언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중간지주 성격의 한국조선해양을 설립하고 한국조선 밑에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조선업 계열사를 수직으로 편재한다는 방안을 발표한바 있다.

EU와 일본, 한국 등 경쟁 당국의 합병 승인을 모두 따내면 이후 대우조선해양 유상증자에 참여, 1조5천억원을 현금으로 투입하고 대신 신설한 중간지주 한국조선해양 주식을 산업은행에 넘겨주는 것이 거래의 골자였다. EU의 불허로 현대중공업그룹 입장에선 1조5천억원 이상의 자금을 다른 곳으로 쓸 수 있게 됐다.

반면 대우조선은 경쟁사에 영업비밀을 사실상 모두 넘겨준 뒤, 홀로서기에 나서야 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주인 찾기가 쉽겠냐”고 우려했다. 경영 불확실성에 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논란을 의식한 듯, 정부 당국은 ‘공동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대우조선이 정상적으로 수주·조업할 수 있도록 선수금보증 등 기존 금융지원을 ‘22년 말까지 이미 연장했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부 설명은 3년 전, 현대중공업과의 ‘딜 조건’에 가깝다. 2조9천억원 규모의 한도 대출을 2023년까지 연장하고, 1조8천억원 규모의 대출 상환을 유예하는 한편, 수출입은행 등이 보유한 영구채 이자율을 1%로 제공하는 등의 내용이다. EU의 불허에 따라 발생한 경영 차질은 “조만간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는 원론적 설명에 그쳤다.

조선업 관계자는 “최근 업황이 좋아졌으니 망정이지, 2016년 처럼 불황에 이런 상황을 맞았다면 후폭풍이 엄청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은 “산업은행의 비전문적이고 이동걸 회장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한국의 조선산업을 몰락의 길로 내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황 교수는 “누군가 책임을 지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두 회사의 합병 문제를 ‘공적자금 회수’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는지 돌아보고 재발하지 않도록 전례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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