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멸공’이 신앙인 극우개신교의 칼날이 향하는 곳

멸공 글을 인스타에 올려 논란을 부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구입하며 멸공인증에 나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기타

철 지난 ‘멸공’ 구호가 논란이다. 정용진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통해 ‘멸공’ 논란이 일기 시작했고, 이후 윤석열, 나경원, 김병욱, 김진태 등 보수 성향의 정치인들이 멸공 인증을 하면서 더욱 논란이 커졌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한술 더 떠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멸공과 반공은 한때의 인증샷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고 철 지난 구호도 아니다. 반공은 국시”라며 “멸공의 횃불을 들고 서울에서 시작된, 자유와 진리의 파도는 결국 평양을 뒤덮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멸공’에 이어 ‘주적은 북한’이라는 글을 14일 페이스북에 올리며 색깔론에 불을 계속 지폈다.

이들의 ‘멸공’ 구호를 단순한 시대착오적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멸공’과 ‘반공’의 구호가 예사롭지만은 않은 것은, 그것이 단순한 구호가 아닌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종교’이자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흘러간 옛 노래처럼 사라진 것으로 보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나 질기고 강하게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기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멸공’ 논란을 벌인 이들 가운데
황교안, 정용진, 나경원, 김진태 등이 대다수가
개신교 신자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지배가 가능하도록, 사상적 종교적 배경을 마련해준 중심엔 극우개신교가 있었다. ‘멸공’과 ‘반공’으로 무장한 채 독재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한 극우개신교는 권력의 위기마다 그들을 도왔다. ‘멸공’과 ‘반공’을 기독교 신앙의 최고 원리로 삼으며 교인들을 극우정치의 전위대로 키워온 이들이다. 이번에 ‘멸공’ 논란을 벌인 이들 가운데 황교안, 정용진, 나경원, 김진태 등이 대다수가 개신교 신자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페이스북에 지난 14일 올린 글 ⓒ페이스북 캡쳐

올 3월 치러지는 대선을 앞두고 극우 또는 보수 성향 목사들의 설교 속에 부쩍 ‘공산주의’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지난 2일 열린 거제고현교회 주일예배에서 임현수 선교사는 “하나님이 김정은이라는 몽둥이로 우리 한 번 치시면요. 피눈물보다 더 고통스러운 날이 와요. 캄보디아 이야기가, 킬링필드가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에요. 월남의 보트피플 수천만 명 나온 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에요”라며 교인들에게 반공 강연을 했다.

오정현 사랑의교회 담임목사도 같은 날 열린 사랑의교회 주일예배에서 “3월 9일 대선을 앞에 놓고 아주 희한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경제위기, 정치위기, 남북관계 위기, 환경의 위기, 중국의 위기 수많은 위기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우리 한국교회 5개 주적 이야기했지요. 첫째는 뭐냐 공산주의, 두번째로는 이단들, 세번째는 극단적 이슬람, 네번째는 안티기독교, 다섯번째는 잘못된 차별금지법. 이런 것들이 우리 앞에 있을 거예요”라며 공산주의가 한국교회 제1의 주적이라고 주장했다.

광주 안디옥교회 박영우 목사는 지난 5일 수요예배, 6일 새벽예배, 7일 새벽예배 등을 통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공산주의자”라며 “이재명을 지지하면 지옥 간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노골적인 선거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멸공’과 ‘반공’을 신앙으로 삼은
남한의 보수개신교


그리고, 이런 발언들은 보수 또는 극우성향의 권력 출현을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런 정치적 목적에 종교적 의미를 덧씌워 극우정치의 세력화는 물론 자신들의 세력 확장까지 꿈꾸는 것이다. 극우성향의 교회연합기관인 한국교회연합회는 지난해 11월 공개적으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그런 의도를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당시는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이 끝나지 않아 후보조차 확정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멸공’과 ‘반공’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건 남한 개신교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원래 한국 개신교 교회는 해방 이전까지 평양을 중심으로 오늘날 북한 지역에 많이 있었다. 북한 지역에 있던 교회와 목사들은 해방 이후 남북한 정권 수립 과정에서 대거 남쪽으로 내려왔고, 이들은 남한 개신교의 주축이 됐다. 이들이 해방공간에서 겪은 경험에 미국 중심의 보수적 개신교 전통이 수입돼 덧붙여지면서 ‘멸공’과 ‘반공’을 신앙과 동일시하는 분위기까지 생겨났다.

1980년대 서울대신국민학교 어린이회가 운동장 안에 세운 반공탑에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반공 표어판을 내 걸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북에서 내려온 개신교 목사들은 설교를 통해 반공을 독려했다. 최근까지도 ‘멸공’이나 ‘승공’을 구호 또는 단체명으로 내건 극우성향의 개신교 교단이나 이단 종파들이 활동할 정도로 극우개신교와 ‘멸공’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이들은 공산주의는 악마이고, 공산주의와 싸우고, 빨갱이를 죽이는 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종교적 행위라고 믿었다. 70여 년 전에 ‘멸공’과 ‘반공’을 종교와 신앙으로 삼았던 극우개신교 세력의 주도로 수많은 목숨이 죽어간 ‘제주 4.3’의 비극이 벌어진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악마이고, 공산주의와 싸우고,
빨갱이를 죽이는 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종교적 행위라고 믿었던 극우적 개신교 신자들


영락교회를 세운 한경직 목사는 한국교회의 반공사랑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가 해방 직후 한 설교를 보면 당시 개신교에게 ‘멸공’과 ‘반공’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 수 있다. 한 목사는 1946년 ‘기독교와 정치’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신자의 사명은 여기에 있습니다. 천고에 빛나는 진리를 파악한 우리가 철저한 사상 교화 운동에 나서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강연회나 토론회를 개최하고, 잡지나 소책자를 발간하는 등 기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국으로 이 운동을 추진시켜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독교인은 잠잠합니다. 최선의 정치 이념이 우리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 퇴영적(退靈的)입니까? 좀 더 주도성을 가집시다. 십자가를 가지고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을 합시다. 전후(戰後)에 각국의 기독교 민주당이 일어나 주도성을 가지고 활발히 움직이는 것을 보시오! 일어나 일합시다!”라며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한다. 한 목사의 이런 설교는 그해 11월 설립된 서북청년단에 영락교회 청년들이 참여하도록 이끄는 계기가 됐다. 서북청년단은 1948년 제주4.3 학살에 가담한 주역들이다.

한 목사는 이어 1947년에 한 ‘기독교와 공산주의’라는 설교에서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발표한 공산당 선언 첫 구절은 이런 말로 시작합니다. ‘한 괴물이 유럽을 횡행하고 있다. 곧 공산주의란 괴물이다.’ 저들의 말 그대로 공산주의이야 말로 일대 괴물입니다. 이 괴물이 지금 삼천리강산에 횡행하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 괴물을 벨 자 누구입니까? 이 사상이야말로 묵시록에 있는 붉은 용입니다. 이 용을 멸할 자 누구입니까?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한 목사는 공산주의를 괴물이라고 지칭하며 그 괴물과 싸울 것을 설교를 통해 독려한 것이다.

고 한경직 목사 ⓒ뉴시스

제주 4.3항쟁 초기 진압 책임자로 개신교인이었던 조병옥 경무부장은 1948년 4월 20일 서울 경무부경찰 공보실이 발행한 ‘총선거와 좌익의 몰락’이라는 책자를 통해 “이제 세계(世界)는 조직된 공산주의(共産主義) 악도(惡徒)의 도량(跳梁)을 막기 위하야 일어나 조직하고 있다 그것은 유엔이오, 미 영 불 중의 동심협력(同心協力)이요, 로마 왕법(法王)의 명령(命令)이다. 이제 파괴되려는 인류의 문명을 유지하기 위하야 반공세력(防共勢力)이 나날이 결속(結束)되고 있다. 저 사탄의 진영(陣營)이 순순히 굴복하면 몰라도 여전히 그의 악을 계속(繼續)한다면 그들이 무저갱으로 전락하는 운명의 날이 멀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북에서 내려온 개신교인들에게 있어 ‘반공’은 단순히 사상이 아니라 요한계시록의 ‘붉은 용’과 ‘사탄’을 비롯한 악마 세력과의 전쟁이다. 때문에, 빨갱이 낙인을 찍으면 가차 없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좌익 전력자를 전향시킨다는 명목으로 보도연맹 결성을 주도하는 등 평안남도 출신 공안검사로 유명했던 오제도 검사와 제주 토벌대 출신인 채명신 장군, 이세호 장군이 영락교회에서 장로를 지낸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독재정권 하에서 반공집회를 통해
독재권력의 든든한 뒷배가 된 극우개신교


한국전쟁 이후 독재정권 하에서 극우개신교는 반공집회를 통해 독재권력의 든든한 뒷배가 되었다. 아시아기독교반공대회, 세계기독교반공대회 등 국제행사를 개최했고, 기독교반공협회와 기독교반공교육협회 등 다양한 반공단체를 조직하는 등 반공여론 확산을 통해 박정희 정권에 힘을 실었다.

지난 1974년 7월 12일 청와대에서 박정희는 개신교 등 종교단체가 앞장서 만든 반공연맹 임원과 시도지부장 등과 만난 자리에서 6월 25일에 전국에서 반공대회를 연 것을 칭찬했다. 그러자 당시 반공연맹 임원을 맡은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는 “저희 교회에서도 그날 반공 예배를 보았습니다”라고 말했고, 박정희는 웃음을 보이면서 “종교 그 자체가 반공 그 자체가 아니겠느냐”며 “신앙을 가진다는 것이 바로 반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당시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1975년 5월26일 경향신문. 대한구국선교단 소속 목회자들의 군사훈련 퇴소식에 참석해 목사들을격려하는 박근혜 ⓒ경향신문 캡쳐

‘반공’을 매개로 한 박정희 대통령과 극우개신교의 야합엔 최태민 목사도 끼어있었다. 최태민 목사는 국정농단 사건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최순실의 아버지다. 그는 개신교 군소교단인 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에서 지난 1975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2016년 당시 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 총회장이던 전기영 목사는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당시에는 목사 안수를 쉽게 주던 때였다. 기도원 갔다 온 사람들에게도 30만 원, 50만 원에 줄 정도였다. 너무나 잘못된 것이다. 당시 최씨도 돈을 주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교단 설립자 목사로부터 들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최태민 목사는 돈을 받고 안수를 받자마자 그해 4월 대한구국선교단을 창설했고, 6월엔 구국십자군을 만들었다. 구국십자군은 반공주의를 앞세우며 목회자와 세례교인을 대상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고, 전국을 돌면서 구국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1975년 6월 21일 배재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구국십자군 창군식’에는 구국선교단 명예총재인 박근혜도 참여했다. 박근혜 명예총재는 “굳센 신앙으로 나라를 지키는 일이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길”이라며,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나라와 민족, 자유세계를 지키는 초석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고, 이후 최태민 총재와 함께 구국십자군을 사열했다다.

구국십자군 등이 전국을 돌면서 벌인 기도회와 군사훈련 등엔 당시 주류 교단의 목사들이 상당수 함께 했다. 단순히 참여한 정도가 아니라, 집회를 이끌거나, 고위직을 맡는 등 적극 가담한 경우가 많았다. 당시 신문 보도에 의하면 예장통합 강신명 목사와 예장합동 최 훈 목사, 감리교 박장원 목사 등이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에 함께했다. 이들은 당시 개신교계에서 이름 높은 목회자들이었다. 최태민 목사의 신앙은 ‘반공’과 ‘멸공’ 구호 아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75년 열린 ‘나라를 위한 기독교 연합 기도회’ ⓒ기타

독재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평신도들을 동원해 대규모 기도회를 열며 정권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 민주화의 열풍이 불던 1987년, 전두환 정권에 맞서 많은 시민이 민주화를 외치며 투쟁하던 이 시기 정권이 위기를 맞자 그해 10월 3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선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대성회’가 열렸다. 민주화 열풍의 시기를 ‘북한의 테러 위협과 학생 시위, 노동 쟁의로 분열과 대립’의 시기로 규정하며 신도들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 한국개신교단협의회 등이 주축이 돼서 열린 기도회에선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 극동방송 사장인 김장환 목사 등이 단상에 올랐다. 100만 명이 넘는 개신교 신자들이 함께한 기도회에선 공산집단의 붉은 마수의 흉계를 경계하고, 정치인 근로자 학생 모두의 자성을 촉구하는 등 4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친미주의와 반공주의가 우리 사회의 시민종교
역할을 했다. 식민지 엘리트들이 선호하고
익숙하게 여겼던 반공주의는
영미식의 ‘자유주의적 반공주의’가 아니라
파시즘 국가들의 ‘국가주의적 반공주의’였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극우개신교의 구호와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반공과 ‘멸공’은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지나며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중심 논리였다. ‘반공’과 ‘멸공’은 루소가 말한 ‘시민종교’에 가깝다. ‘시민종교’(Civil Religion)란 한 사회를 통합하고 도덕적으로 결속시키며, 그 구성원들에게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정체성을 제공하는, 폭넓게 공유되고 합의된 가치와 신념 체계, 그리고 이와 연관된 상징·신화·의례·실천·장소들의 체계를 통칭한다. 강인철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는 책 ‘시민종교의 탄생’에서 친미주의와 반공주의가 우리 사회의 시민종교로 역할을 했다면서 식민지엘리트들이 선호하고 익숙하게 여겼던 반공주의는 영미식의 ‘자유주의적 반공주의’가 아니라 파시즘 국가들의 ‘국가주의적 반공주의’였다고 말했다.

보수종교단체 '나는 공산주의가 싫어요' ⓒ임화영 기자

강 교수는 이런 이유로 전쟁 후 한국 반공주의에 내장된 국가주의적 잠재력과 충동이 전면화하면서 시민종교의 (자유)민주주의 차원은 결정적으로 약화되었고, 4·19혁명이 죽어가던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되살려놓았지만, 군사쿠데타는 이 흐름은 재차 반전시켜버렸다고 주장했다. 선민-국민-반국민-비국민의 4층 체계로 구성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신(新)신분제’가 위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전쟁의 일상화’와 ‘일상의 전장화’가 빠르게 진척되었다는 것이다.

‘멸공’의 칼날은 다른 이가 아닌
우리나라 국민을 향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할 때 최근 극우 성향 정치인과 경제인의 멸공 인증샷과 극우개신교가 설교를 빌미로 ‘멸공’을 내건 선거운동은 이런 ‘반공’을 중심으로 한 시민종교의 부활을 시도하는 것이다. 반공이 국시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건 1961년이다. 박정희는 1961년 5월 16일 쿠데타 이후 발표한 혁명 공약을 통해 “군사혁명위원회는 첫째, 반공을 國是(국시)의 제1義(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공법이 제정됐고, 철거반원을 향해 ‘김일성보다 더한 놈들’ 운운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는 등 막걸리 반공법이란 주장도 나왔다. 모든 상품에 반공을 강조하는 문구를 넣도록 했고, 아이들이 먹는 과자에도 “북괴도발 못막으면 자유잃고 노예된다”는 등의 반공 구호가 들어갔다. ‘멸공’을 외치는 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바로 이런 세상이다.

‘반공이 국시(國是)’라는 황교안의 발언은 그들이 꿈꾸는 세상의 청사진을 잘 보여준다. 황교안은 ‘반공이 국시’라는 주장을 하며 “저는 대한민국을 공산주의 세력들로부터 지키는 공안검사로 30년 가까이 근무했다. 제가 법무부 장관일 때 통합진보당(통진당)을 해산시켰다. 정말 보람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멸공’의 칼날은 이렇게 다른 이가 아닌 우리나라 국민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을 1948년 제주, 1980년 광주 등에서의 수많은 역사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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