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이제 예전과 같으면서도 다른 루시드폴

루시드폴의 음반 [Dancing With Water]에 깃든 자연과 사유

루시드폴의 음반 'Dancing With Water' ⓒ안테나

[Dancing With Water]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가 루시드폴의 음반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 음반 같은 일렉트로닉 음반, 이 음반 같은 앰비언트 음악은 이미 꾸준히 선을 보였다. 더 훌륭한 음반이나 더 개성 넘치는 음반을 거명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클래식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에 맞춰 가만가만 노래하던 루시드폴, 병약하리 만큼 예민했던 초창기 미선이와 루시드폴을 기억하는 이들 모두에게 이 음반은 퍽 낯설 것이다. 이 음반에서 루시드폴은 잠시도 노래하지 않는다. 그저 소리를 조합하고 연결하고 변형할 뿐이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변화는 아니다. 루시드폴은 2019년에 발표한 음반 [너와 나]와 지난 해 9월에 내놓은 캠페인송 음반 [Listen To Pain]에서 이미 노이즈 음악에 가까운 일렉트로닉 사운드 스케이프를 선보였다. 농사를 짓다가 손가락을 다치고, 오랫동안 기타를 잡지 못하면서 음악을 만드는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한다.

돌아보면 1998년 미선이 1집 이후 벌써 24년이 지났다. 그동안 내놓은 정규음반만 해도 10장이 넘는다. 그새 팀의 이름이 바뀌고, 음악의 정서가 바뀌고, 함께 한 연주자들도 바뀌었다. 어쩌면 이 변화 역시 우연이지만 필연일지 모른다.

루시드폴 Lucid Fall - ‘Dancing With Water I’

[물과 함께 춤을]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음반에는 네 곡의 음악이 담겼다. 자연의 수많은 반복을 담았다는 음반은 루시드폴이 매일 물 속을 걸으며 떠올린 사유의 파동이다. 이 곡들은 루시드폴이 기록한 자연의 재현일 수도 있고, 모방일 수도 있다. 또한, 자연이 자신에게 건네준 자장이거나 자신이 감지한 교감의 기록일 수도 있다.

하루가 다르게 테크놀로지가 바뀌는 세상임에도 온전히 해명하거나 분석할 수 없는 자연은 여전히 수많은 영감과 질문을 던진다. 기껏해야 인스타그램에 자연의 풍경을 찍어 올리기 급급한 현대인이지만 자연은 여전히 우리를 압도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연의 운동과 변화를 꾸준히 지켜보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연은 스쳐가는 찰나의 인상으로 남을 뿐이다. 이 음반은 루시드폴이 제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거나, 다른 이들과 똑같지 않은 일과로 살아가기 때문에 비로소 채록할 수 있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1978년에 태어난 로즈((Rhodes Mark I)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등을 활용해 만든 음악은 느리고 고요하다. 첫 번째 곡 ‘Dancing With Water I‘의 명징한 루프가 흔들리듯 퍼지고, 다른 루프들과 만나 어울릴 때, 그리고 신시사이저가 그 울림을 감쌀 때, 우리는 물처럼 유영하게 된다. 그것이 물의 본질이거나 자연의 본질 가운데 하나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 Dancing With Water II‘에서도 우리는 떨어진 물방울이 또 다른 파동으로 이어지듯 번지는 소리의 연결을 위해 침묵하게 된다. 처음의 울림과는 달라지는 소리들은 계속 영롱하게 반짝인다. 순간순간 반짝일 뿐 반복하거나 재현할 수 없는 소리들은 대동소이해 보이지만 한 번도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자연을 닮았다. 요란하지 않고 시끌벅적하지도 않지만 광대무변한 자연에 대한 루시드폴의 송가라 해도 그닥 틀리지 않은 노래들은 결국 천천히 부피를 키우며 자연의 실체에 범접한다. 이번 음반을 미니멀한 소리의 조합이나 루시드폴식 음풍농월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이다. 이 또한 진지한 성찰의 기록이라는 증거이다.

루시드폴 Lucid Fall - ‘Moment In Love’

그리고 루시드폴이 신시사이저와 진귤나무와 함께 즉흥연주로 협연했다는 ‘Moment in Love’는 자연의 기록을 음악으로 변환한 곡이다. 악기만 바꾼 것이 아니라 작법마저 바꾼 곡은 인간의 발화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자연의 발화로서의 음악, 양자가 함께 완성하는 음악의 가능성을 탐지한다. 인간이 만물을 지배하고 결정하며, 자연은 그저 지배와 수탈의 대상이라는 인간중심적 합리주의에서 탈주한 것처럼 보이는 곡은, 그러므로 이 대화와 교감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게 한다. 음반의 수록곡 가운데 가장 풍성한 메타포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곡의 드라마는 루시드폴의 새로운 작법에 귀를 기울여야 할 충분한 이유이다. 씨앗으로부터 꽃까지, 꽃으로부터 열매까지, 아니 그 이전의 머언 먼 생명의 역사를 들려주는 것만 같은 곡 앞에서 루시드폴은 무릎을 꿇고 귀를 열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마지막 곡 ‘Fledglings’은 루시드폴의 과수원을 찾아오는 포크레인 소리와 어린 새 소리를 교차시키고 그 위에 음악을 얹는다. 이것은 그의 저항이자 치유일 뿐 아니라 기록이자 인내일 것이다. 그의 사과이거나 미안함, 또는 소박한 연대가 아닐 리 없다. 새들은 듣지 못한다 해도 사람은 들을 것이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알 것이다. 루시드폴은 예전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기사 원소스 보기

더보기

기사 리뷰 보기

  • 첫번째 리뷰를 작성해 보세요.

더보기

관련 기사

  • 등록된 관련 기사가 없습니다.

민중의 소리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전달되고, 기자후원은 해당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 하기

이번달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후원액은 0 입니다.

기사 원소스 보기

더보기

기사 리뷰 보기

  • 등록된 기사 리뷰가 없습니다.

더보기

관련 기사

  • 등록된 관련 기사가 없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