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업자를 위해 주민을 죽이고 집을 부수는 케냐 경찰들

철거 후 폐허가 된 케냐 나이로비 빈민촌 무쿠루 ⓒ사진=자코뱅

편집자주

역동적인 도시로 유명한 케냐 나이로비. 250만 명이 살고 있는 이곳에는 반짝이는 고층 빌딩과 고층 아파트들이 도심을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나이로비가 급작스럽게 팽창하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강제 철거와 그것으로 볼 수 있는 빈부의 격차를 다룬 자코뱅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Kenyan Police Have Committed Murder on Behalf of Property Developers


에반스 무티스야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가장 큰 빈민가 중 하나인 무쿠루 크와 느젠가(무쿠루) 길가의 의자에 몸을 구부리고 앉아 있다. 15살 소년의 머리가 그의 손바닥에 무겁게 놓여 있다.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는 일주일이 넘도록 총상을 치료하려고 병원에 다녔다. 지난 12월 27일의 일이었다. 연말이라 나이로비 시민들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해변으로 여행갈 때 무쿠루 크 주민들은 케냐 경찰이 쏘는 실탄을 선물 받았다. 무티스야를 포함한 수십 가정이 10월에 시작된 대대적인 철거로 무너진 집들의 폐허 위에 천막을 치고 살고 있다. 거대한 천막촌이 만들어졌다. 정부가 최소한 1만3천여채의 집과 기업, 학교 건물을 밀어버렸고 7만6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긴장감은 12월 27일 경찰의 발포로 정점에 이르렀다. 무티스야는 한 임시 텐트에 있다가 최루탄 가스가 텐트 안으로 들어오자 얼굴을 씻기 위해 거리에 있는 물탱크로 달려갔다. 그때였다. 경찰이 이 소년의 등에 총을 쐈다. 총알은 그의 허리를 통과해 배를 뚫고 나갔다. 아드레날린 덕이었을까. 그는 쫓아오는 경찰을 피해 달리다가 다른 주민들이 도와주기 위해 자기를 에워쌀 때 비로소 쓰러졌다. 퇴원 후에도 무티스야는 통증에 시달렸다. 앞으로도 뒤로도 누울 수가 없을 정도다. 그래도 무티스야는 목숨을 건졌다. 다른 수십 명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하지만 그날 숨진 사람도 있었다. 두 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무쿠루에서의 철거와 퇴거로 나이로비의 급속한 팽창과 관련된 역사적 부정과 부패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빈민촌 개발은 나이로비 부자들에게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줬지만 나이로비 시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빈민들에게는 극심한 폭력만 안겨줬다.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무티스야는 천천히 일어나면서 “정부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우리 집을 파괴했고 다시 와서 우리를 쐈다. 이 정부가 존재하지 않으면 케냐 사람들은 훨씬 좋을 것이다. 정부가 우리를 내버려뒀으면 좋겠다”고 했다.

모든 것이 파괴됐다

철거로 폐허가 된 케냐 나이로비 무쿠루 ⓒ사진=자코뱅

정부가 처음으로 철거에 나선 건 10월 10일이었다. 철거 계획을 발표한지 이틀 만이었다. 불도저들이 무장한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큰길을 따라 30미터 폭의 땅을 정리했다. 중국의 투자로 새로운 고속도로를 짓기 위해서였다.

도심에서 약 11키로미터 떨어진 무쿠루는 나이로비의 공업지대와 국제공항 사이에 있다. 새 고속도로는 국제공항과 도심을 연결하고, 그 주변은 고급 주택가로 개발될 예정이다. 새 고속도로에는 1달러에서 15달러의 통행료를 받는 고가 구역도 있다. 무루쿠 주민들은 무료로 그곳에 살거나 13달러의 월세만 냈는데 말이다.

부자들의 도로로 불리며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던 새 고속도로는 나이로비에서 불평등이 심해지고 엘리트 중심으로 개발이 이뤄지고 있음을 부각시켰다. 나이로비 시민의 13.5%만 자가용이 있다. 그러나 부자들의 눈에는 볼썽사납지만 가난한 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미니버스 ‘마타투스’는 새 고속도로에서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쿠루 주민들은 30미터 폭의 땅을 평화롭게 내어주기로 결정했었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불과 몇 주 후 고위관료들과 민간 개발업자들이 손잡고 근처에 있는 3만6천여 평도 철거하기로 했다. 그곳은 바로 천막촌이었다.

주민들은 11월 초에 갑자기 들이닥친 철거대원에 맞서 3일간 싸웠다. 수백 명의 경찰이 그들에게 물대포를 쏘았고, 수천 명의 집이 사라졌다. 집에서 물건을 꺼내오려던 주민 하나는 불도저에 깔려 죽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더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경찰은 동영상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핸드폰을 빼앗아 불도저 아래에 던져 버렸다. 언론은 철거 시작 1주일 만에 나타났다. 철거는 그렇게 3주간 이어졌다.

라마드한 자르소의 가족은 1972년부터 같은 집에서 살았다. 케냐법에 따르면 누군가가 퇴거명령을 받지 않고 아무런 방해 없이 한 곳에 12년 동안 살면 그곳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법원은 빈민촌 주민들에게 이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 때가 많다.

총맞은 곳을 보여주는 케냐 빈민촌 주민 ⓒ사진=자코뱅

무쿠루 주민이라면 그 곳이 자르소의 집이라는 걸 다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집에서 태어나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았고, 지금은 그 곳에서 두 아이와 임신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주로 양철판으로 집을 만들어 약 266달러의 월세를 받으며 산다. 그는 무너진 자기 집을 보며 “돈을 좀 모으고 있었다. 그래서 콘크리트로 더 좋은 집들을 만들 계획이었다”고 했다.

얼핏 봐도 자르소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철거가 너무 급작스럽게 이뤄져 소지품을 하나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이 평생 일군 것, 내가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것도 단 하루만에”라며 괴로워했다.

자르소는 이제 44달러 월세를 내며 근처에서 산다. 두 살 많은 형은 철거당한 날부터 한 번도 못 봤다. 철거 이후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모든 것을 잃은 형제가 서로를 만나러 갈 차비가 없기 때문이다.

자르소는 “이 세상에 태어난 그대로 살고 있다. 아무것도 없이 말이다. 나는 새 고속도로를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이용해 삶을 망가뜨렸다. 우리는 그들의 안중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내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 그러고도 아무런 느낌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나를 죽이려 했다”며 소매를 올리고 경찰이 12월에 천막촌 주민들에게 발포했을 때 총알이 스쳐간 흉터를 보여줬다.

역사적 불의

철거 후 무쿠루에 만들어진 천막촌 ⓒ사진=자코뱅

무쿠라는 1950년대에 나이로비의 다른 빈민촌처럼 공유지에 만들어져 흑인 입주가 금지 구역에 사는 백인과 동양인들을 위해 저렴하게 노동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1963년 독립 이후 도시화의 가속화로 빈민촌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20년 만에 세 배가 됐다. 흑인 입주 금지 구역은 사라졌지만 빈민촌과 다른 지역 간의 극심한 권력 격차는 변함이 없었다.

지금도 나이로비 인구의 70%가 주거지역의 단 5%를 차지하는 빈민촌에 살고 있다. 그곳에는 부식된 양철판 집이 태반이고 상하수도나 전기가 없다. 그런데 무쿠루에서 몇 분만 가면 녹음이 우거진 교외지역이 나온다. 나무들 사이를 뚫고 반짝이는 고층 아파트들이 있는 교외지역이다.

이 공유지를 둘러싸고 부패는 독립 이후 수십 년간 만연했다. 케냐 정치 엘리트의 일부는 공유지를 불법으로 차지하고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그러다가 그들이 돈을 갚지 못하면 은행이 그 땅을 인수했다. 텐트촌이 있는 곳도 그런 땅이다. 하지만 철거민의 변호인 니콜라스 오라고가 받은 공문서에는 은행이 인수하기 전의 모든 기록이 삭제돼 있다.

1970년대에 국영은행이 이 땅을 공업용 화학제품과 비료를 만드는 오비트화학에 인수했다. 오비트화학은 그때부터 30년 동안 주민들을 그곳에서 내쫓기 위해 법정 소송을 벌였으나 성과가 없었다. 그래서 오비트화학은 이 땅을 1천300필지로 나눠서 개인에게 판매했다. 물론 무쿠라 주민들은 이와 관련해 그 어떤 사실도 통보받지 못했다. 개인 소유주들이 새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는 것을 기회로 삼아 강제 철거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새 고속도로를 위해 집들을 철거하고 만든 30미터 폭의 땅 ⓒ사진=자코뱅

이들의 뒤에는 정부가 있다. 나이로비시 표시가 찍혀 있는 불도저와 건설장비들, 그리고 수백 명의 경찰이 출동했다. 오라고 변호사는 “정부 자산을 동원할 수 있는 고위관료들이 연루돼 있다. 이들이 이곳을 개발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오라고 변호사는 새 땅주인 이름 100개를 알아냈다고 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고층 아파트를 지으려고 하는 나이로비의 개발업자라고 한다.

나이로비시의 장비 담당자 칸게테 투쿠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대기 발령됐으나 이후 다른 보직으로 승진했다고 한다. 한편 나이로비시경의 철거 담당 아우구스틴 느툼비와 내무부의 철거 담당 제임스 키안다는 이곳에 개인적인 이익이 얽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철거를 중지하라는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무시하고 철거가 계속 이어진 것으로 보면 더 고위급 인사들도 연루된 것으로 보인다.

나이로비의 시 경계 내에 있는 이곳의 땅값이 엄청나게 높아서 개발업자들이 무쿠루를 눈독들인지 오래다. 무쿠루의 땅값은 1에이커(약 1224평) 당 약 220만 달러이다. 이는 나이로비시의 최고 호화구역 땅값보다 높은 가격으로, 현재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3만6천여 평의 가치가 6억6천500만 달러에 이른다는 얘기다.

빈민촌에서 주민들이 강제로 쫓겨나는 건 나이로비에서 꽤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인도주의적 위기를 불러일으킬 만큼 이렇게 대대적으로 집이 강제 철거되는 건 그렇지 않다. 무쿠루도 새로 개발된 아파트 지역 근처에 있는 빈민촌들과 마찬가지로 몇 번이나 철거를 당한 적이 있었다. 2020년에는 카리오반기 빈민촌에서 수천 명이 쫓겨났는데 대부분이 싱글맘과 아이들이었다. 당시 토지문서를 가진 이들도 모두 쫓겨났다. 그곳에는 하수처리장이 들어섰다.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의 친척들이 기획 중이었던 부촌을 위해서 말이다.

계속되는 위협

철거로 집을 잃은 미누 크이 ⓒ사진=자코뱅

크이는 자기네 집이 3주간 이어진 철거를 피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자고 있었는데 운 좋게 사촌이 달려와 깨워줘서 몇 가지 물건은 들고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철거 막판에 부모님과 오빠와 함께 살던 집이 불도저로 부숴진 것이다. 침대보와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네모난 천막들이 무너진 집들의 잔해 위에 있다. 전통주 ‘창아’를 팔던 가족들은 고객들을 위해 원래 살던 곳에 천막을 쳤다.

크이의 가족은 이제 흩어져 살고 있다. 집이 부숴지기 전에는 월세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두 군데에 22달러의 월세를 내야 한다. 크이는 “생활이 달라졌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모르는 이웃이 없었다. 모두가 한 가족 같았다. 집만 부숴진 게 아니다. 우리의 사회 네트워크와 안전망도 모두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59세의 매리 카티케는 1999년부터 살던 집이 부숴졌을 때 작은 매트리스 하나와 주방도구 몇 가지만 들고 나올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세 아이, 세 명의 손자 손녀와 함께 그 곳에 살았다. 크이와 마찬가지로 카티케도 흩어진 가족과 떨어져 월세를 몇 군데에 내야 한다. 어린 아이들은 철거 이후 학교를 못 다니고 있다. 학비로 쓸 돈으로 월세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케티케는 “모두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그 집에서 20여 년을 살았기 때문에 어떻게 이 일을 수습할지 모르겠다. 밤에 잠도 잘 못 잔다. 불도저들이 다시 와서 여기를 모두 철거할까봐 말이다”라며 한숨 쉬었다. 이 두려움이 근거가 없지 않다. 주민들이 힘껏 싸우지 않았다면 무쿠루 전체가 철거됐을 것이다. 주민들은 이 곳을 떠나지 않고 있고 모든 힘을 다해 부패로 점철된 나이로비의 개발 계획에 맞서고 있다.

철거로 집을 잃은 카티케 ⓒ사진=자코뱅

난민촌을 연상케 하는 천막촌에는 많은 여성과 어린이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초조하고 배고프고 겁에 질린 모습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무쿠루 전체를 철거해 철조망을 치고 무단 침입하는 모든 자들에게 소송을 걸려는 개발업자들의 계획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프리다 므웬데(32)는 폐허 위의 천막들 사이에 있는 소파에 2개월 된 아이를 안고 앉아 있다. 아이가 8명이나 되는 므웨덴은 철거 당시 병원에서 출산 중이었다. 그 이후 천막촌에서 살고 있는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고, 철거 이후 남편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 그녀는 “먹을 것을 살 돈도, 월세를 낼 돈도 없다. 남편은 이 모든 걸 감당하는 게 버거웠던 것 같다. 이제 나 혼자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므웬데는 “여러 가지 얘기 때문에 무섭다. 밤마다 우리를 쫓아낼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 사람들이 손도끼를 들고 와서 천막에 불을 지르고 부자들을 위해 좋은 건물들을 짓는다는 소문이 돈다”고 했다.

케냐타 대통령은 1월 6일 무쿠루에서 이뤄지는 철거와 퇴거가 “배려심 없고 불필요하다”며 쫓겨난 주민들이 다시 돌아와 다시 자리 잡는 것을 지원하고 무쿠루의 정상화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철거로 집과 남편을 잃은 프리다 므웬데 ⓒ사진=자코뱅

그로부터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새벽 2시였다. 약 20명의 경찰이 잠입해 천막을 철거하려 했다. 하지만 정부를 믿지 않는 무쿠루 주민들은 준비가 돼 있었다. 철거 이후 젊은이들이 순번을 정해 순찰을 계속 돌았다. 주민들이 찍은 동영상에는 사람들이 점점 몰려와 소리를 지르며 경찰을 왔음을 알렸다. 무쿠루 주민들은 그날 밤에 돌을 던져 경찰을 내쫓았다. 그 이튿날 바닥에 떨어진 신분증이 하나 발견됐다. 철거를 총괄하는 내무부 최고위급의 신분증이었다. 이제 아무도 정부를 믿지 않는다.

35세의 조사이야 카리우키는 자기 천막을 보여줬다. 좁디 좁은 그곳에는 작은 매트리스 하나만 놓여 있었다. 카리우키는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봐라. 나는 여기서 28년을 살았는데 철거 당시 시장에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아무것도 꺼내오지를 못했다. 이 매트리스와 이불은 적십자사가 준 것”이라고 했다.

7개월 아기의 엄마인 카리우키는 “정부는 절대로 우리를 도와줄 것 같지 않다”며 “정부가 철거에 관여해 우리 삶을 파괴시켰다. 그리고는 이제 와서 우리를 돕겠다고 한다. 여기 무쿠루에는 우리의 정부가 없다. 우리의 신만 있을 뿐이다. 우리를 도와줄 이는 신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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