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품 거치대가 없는 화장실에서 목과 어깨 사이에 휴대폰을 끼우고 생리대를 비닐에 돌돌 말다가 휴대폰을 떨어트려 액정이 와장창 깨지는 일이 있었어요. 순간 ‘생리대를 휴지처럼 변기에 버렸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생리기간마다 화장실 ‘위생용품 처리함’에 생리대를 비닐에 돌돌 말아 버리는 번거로움은 여성들의 일상이다. 국내 스타트업 어라운드바디는 이런 여성들의 불편함에 대안을 제시했다.
2019년 설립된 스타트업 어라운드바디의 생리대 ‘지혜(JIHE)’는 비닐과 부직포 없이 펄프 소재로 만든 생리대다. 직접 연구·개발한 수용성 펄프와 천연 기름막 코팅을 한 종이 소재로 물에서 98% 분해돼 변기에 바로 버릴 수 있다.
‘물에 녹는 생리대’ 왜 필요할까
어라운드바디가 주목받은 이유는 편의성 때문만이 아니다. 천연 펄프 소재로 만들어 자연분해 되는 친환경 제품이라는 점에서도 기존 일회용 생리대의 문제점을 풀어냈다.
기존 일회용 생리대는 90% 이상이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졌다. 버려진 일회용 생리대는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환경오염을 고려해 면 생리대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매번 세탁해서 쓰기란 번거로운 일이다. 여성의 평생 생리 기간은 평균 40년, 1년 평균 65일 정도다. 평생 사용하는 일회용 생리대만 1만 6천여개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성들은 생리주기 때마다 하루 6~7개의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고 버린다. 1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생리대 쓰레기는 3만2,400t 가량으로 알려졌다.
어라운드바디 김지연 대표(35)는 환경을 생각하는 여성들은 일회용 생리대를 버리며 가책을 느낀다고 짚었다. 그는 “환경을 해롭게 만들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위생용품만큼은 대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비닐쓰레기를 만들어왔다”라며 “‘사람이 우주에 갈 수 있게 됐는데, 비닐 없는 생리대는 왜 못 만들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라고 제품 개발 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휴대전화는 매장에서 다 비교할 수 있지 않나. 또 삐삐부터 폴더폰, 스마트폰으로 변천 과정을 거쳤는데, 생리대는 10년 전 쓰던 것과 지금과 똑같이 생겼다”라며 “로켓을 만든 역사와 일회용 생리대 패드가 생겨난 시점이 비슷하다. 40년 전과 지금의 생리대는 별반 다르지 않다. 아무도 개발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고 ‘그럼 누군가 하면 되는 거네’라는 생각에 창업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일반 생리대는 변기에 버리면 막히기 일쑤다. 플라스틱 비닐층, 부직포 등의 합성섬유가 배수관을 막기 때문이다. 반면 생리대 ‘지혜’는 변기에 넣어 버리면 물에 서서히 풀어진다. 합성섬유와 비닐 대신 ‘펄프’ 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펄프는 종이를 만들기 위해 나무 등 섬유 식물에서 뽑아낸 재료다.
펄프는 흡습성과 통기성이 우수했다. 그러나 문제는 생리혈이 새는 걸 막아주는 방수층이었다.
김 대표는 “제지공학과 연구 논문을 찾아보고 천연 방식으로 방수력을 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교수들을 찾아가서 만났다”라며 “강원대 제지공학과 유정용 교수와 연이 닿아 연구진들과 소재 개발에 착수해 3년만에 제품 생산까지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생리대는 ‘커버층-흡수층-방수층’을 겹쳐 만든다. 어라운드바디의 생리대 ‘지혜’의 커버층은 100% 천연 펄프 탑시트, 흡수층은 순수 펄프만을 사용해 만들었다. 문제가 된 방수층은 신소재 ‘엄브렐론’(Umbrellon)을 사용했다. 엄프렐론은 비닐처럼 방수 효과를 내면서도 자연분해가 가능한 소재다. 해당 원단에 물을 부으면 일반 종이처럼 바로 스며들지 않고 물방울이 원단 위에 그대로 유지된다.
어라운드바디 '에코 페이퍼라이너' 제품 사진 ⓒ어라운드바디 제공
어라운드바디의 ‘지혜’는 팬티라이너 ‘에코 페이퍼라이너’, 패드 생리대 ‘플러셔블 생리대’, 질염’을 유발하는 가드넬라, 트리코모나스, 칸디다 균 등의 항균 효과가 있는 ‘항균 생리대’ 등 총 3종으로 구성돼 있다. 세 제품 모두 변기에 버릴 수 있게 엄블렐론 소재와 천연 펄프를 적용했다. 그중 ‘에코 페이퍼라이너’와 ‘플러셔블 생리대’는 FDA 제품 등록을 마쳤다. SGS 안전성 테스트도 통과했다. 천연 펄프 소재는 CTP 플러셔블 인증을 받았다.
현재 ’에코 페이퍼라이너’는 팬티라이너 제품으로 국내에서 판매 중이다. ‘플러셔블 생리대’는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심사를 받고 있어 사전 예약만 받고 있다. ‘항균 생리대’는 최근 개발이 끝난 제품으로 아직 판매하고 있지 않다.
이들 제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모두 김 대표의 문제 의식에서 시작됐다. 그는 “‘생리대에 비닐, 부직포가 들어가야 할까’라는 물음에서 에코 페이퍼라이너가 처음 나왔다. 그다음에는 ‘휴지처럼 다 쓰고 변기에 바로 버릴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 플러셔블 생리대를 개발했다. ‘생리대도 적극적인 기능을 할 수 없을까’라는 고민에 여성의 70%가 가지고 있는 질염균에 항균효과가 있는 소재를 적용해 최근 개발을 마쳤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 개선할 부분은 남아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에코 페이퍼라이너’의 제품 후기를 살펴보면 시중에 판매하는 제품보다 뻣뻣하다는 내용이 다수 제기됐다. 김 대표는 “제품 사용감을 개선하고 있다. 이상적인 제품이 100점이라면 현재는 60~70점 정도라고 보고 있다. 제품이 태어난 것에 의의를 두고 소비자들의 불편한 지점을 연구개발에 녹여서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라며 “뻣뻣한 사용감은 비닐이나 부직포가 가진 장점과 대비되는 지점이다”라고 말했다.
‘에코 페이퍼라이너’는 기존 팬티라이너 제품에 비해 높은 가격대로 구성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에코 페이퍼라이너 제품 21개입 한 상자의 소비자가격은 5,900원이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팬티라이너 제품의 40개입 한 상자 가격이 3천원대인 걸 고려하면 거의 2배인 셈이다.
김 대표는 “시장 전체 가격에서 중고가에 속한다. 싸지는 않다”면서 “소비자들이 이 제품에 들어가는 기술 투자에 대한 가치를 체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년 만에 제품 개발에만 15~16억원 정도가 들어갔다. 이건 비싼 제품이고, 값진 제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자사몰에서 구입하면 할인혜택이 대부분 들어가기 때문에 소비자가격보다 저렴하게 사실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 어라운드바디 생리대 쇼룸 ⓒ민중의소리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생리대…“알고 쓰자”
어라운드바디는 서울 연희동에서 ’생리대 쇼룸’을 운영 중이다. 쇼룸에서는 기존 생리대 제품에 어떤 소재가 들어가는지, 생리대는 어떻게 구성돼있는지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또 직접 어라운드바디 생리대를 물에 넣어보는 공간도 마련했다.
쇼룸에는 기존 생리대의 단면을 전시해 방문객들이 직접 만지고, 볼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한다. 김 대표는 “기존 생리대는 제품 겉면에는 면, 부직포, 비닐 등 소재를 쓰고, 그 안에 생리혈을 흡수하는 흡수체 가루와 방수기능의 화학섬유를 층층이 쌓는다. 그 사이에는 접착제를 스프레이로 층마다 뿌려 여성의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창업 시점부터 생리대 전용 쇼룸을 계획했다. 그는 “쇼룸은 목표 과업 중 하나였다. 화장품도 성분을 밝히고 누군가 설명하니 성분을 따져 사는 게 문화로 자리 잡힌 것처럼, 시간은 걸리겠지만 생리대도 소재와 성분을 말하는 게 자연스러울 때가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추후에는 생리에 대한 교육도 이 공간에서 실시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생리 큐레이팅 회사와 정기적으로 쇼룸에서 생리 교육을 진행하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탐폰, 생리대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생리대 작동 원리나 성분도 알려줄 계획이다. 성인 클래스도 연다”라고 전했다.
어라운드바디의 최종 목표는 여성의 몸 건강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몸 건강에 이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어라운드바디는 생리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회사다. 생리대를 연구개발 제품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연구개발을 3년 정도 했으니, 그 결실을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고 해외에서도 판매를 확대하고 싶다”라고 올해 다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