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일반

[에너지 딜레마 ①] ‘원전 최강국’이란 허상

윤석열의 공허한 외침 “탈원전 백지화 원전 최강국 건설”

윤석열 원전 공약 발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페이스북

“탈원전 백지화 원전 최강국 건설”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다투는 유력 대권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월 2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는 주요 공약·입장 발표 직전, 페이스북에 이 같은 문구를 띄우고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 “주적은 북한” 등에 이어 이번에는 “원전 최강국 건설”이었다. ‘최강국’이란 단어에서는 어떤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최근 에너지 전환 관련 공약을 잇달아 발표했다. 종합하면 원전을 기저 발전으로 활용하되 석탄화력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어떻게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한·미 원자력 동맹’, ‘탈원전 폐기’, ‘원전 확대’ 등 대부분 원전 관련 공약이었다. 그는 공약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도 “깨끗하고 안전한 효율적인 원자력 발전 이외에 대안은 없다”라며, 탈원전은 “망하자는 얘기”라고 강변했다.

꾸준히 가격이 하락한 태양광 ⓒOur World in Data

원전 제로, 재생에너지 확대 향하는 국가들
점점...저렴해지는 재생에너지, 비싸지는 원전


한국의 유력 대선 후보가 “원전 최강국”을 외치는 지금, 전 세계는 어떻게 탄소중립을 준비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주요 국가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효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모순적이게도 윤 후보가 “원자력 동맹을 맺겠다”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워싱턴·하와이 주 등은 2045년까지 전력소비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 뿐만 아니라, 미국은 발전사업자에게 총발전량의 일정비율을 재생에너지로 하도록 하는 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RPS) 등 각종 제도를 통해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고 있다. 원전 없이 재생에너지로만 미국의 총 에너지 수요를 맞추는 로드맵이 제시되는 등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지난해 12월 저명한 학자인 마크 제이콥스 스탠퍼드대학 교수는 날씨 변화에 따른 재생에너지의 약점을 보완하는 몇 가지 방안만으로 초장시간 배터리 기술 없이 100% 재생에너지 시스템이 가능하다고 로드맵을 발표했다.

가까운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이후 에너지 정책을 전면 재검토했다. 대부분의 원전 가동을 중단시키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키우고 있으며, 2018년에는 재생에너지를 주력 에너지로 삼는 에너지기본계획을 세웠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이 발간한 ‘2020 신재생에너지 백서’에 따르면, 원전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도 2015년 원전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 비율을 확대하는 에너지전환법을 마련했으며, 과도한 원전 의존도를 2025년까지 크게 낮추는 목표를 설정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 프랑스는 유럽연합(EU)에서 원전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원전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루고자 애쓰고 있다.

그런데 왜 많고 많은 발전원 중 재생에너지일까?

점점 저렴해지는 재생에너지, 점점 비싸지는 원전 ⓒOur World in Data

가장 주된 이유로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꼽힌다. 2009년부터 2019년 사이 발전원별 비용을 보면, 태양광 발전 비용은 89%나 저렴해졌다. 같은 기간 풍력 발전 비용도 70%가량 내렸다. 반면, 원전의 발전 비용은 26% 높아졌다. 운용비용도 적고 연료비용도 지불할 필요가 없으며 무궁무진한 재생에너지는 기술개발로 날마다 가격이 내려가고 있는 반면, 원전은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발전 비용이 꾸준히 비싸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석탄화력발전의 빈자리를 재생에너지로 채우되 가능하면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은 원전까지 줄이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원전업계의 희망이라 할 수 있는 ‘소형 모듈형 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 SMR)도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우선 언제 상용화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데모 버전을 보기까지 10년 정도가 걸릴 것이고 상용화는 205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앨리슨 맥팔레인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 전 의장은 미국 국제관계 평론잡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원자력은 기후 변화에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글에서 “개발하는 데 긴 시간과 기존 원자력보다 경제적으로 만들기 위한 환경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라며 “기존 발전소와 건설 중인 발전소의 동향을 고려하더라도 원자력은 향후 10년 이상 기후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힘들다”라고 전망했다.

한수원에 따르면, 소형 원자로는 주요 원자로 기기들을 하나의 압력용기 안에 설치된 것으로 대형배관 파단사고를 근원적으로 제거했다. ⓒ한국수력원자력

국내 기업과 환경단체,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에너지전환포럼’도 지난해 7월 SMR에 대해 “투자가치가 없다”고 평가 절하한 바 있다. 포럼은 분산형 전원을 표방하는 SMR이 각 지역에 산발적으로 입지할 경우 테러 및 안전사고 위험이 커지고, 발전 단가 역시 기존 대형원전보다 비쌀 수밖에 없기에 “SMR이 설 자리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봤다. 또 대선을 앞두고 국내 원전 관련주가 높아지는 현상에 대해서도 “대선 영향 때문이지, 투자할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경제성을 상실하고, 재생에너지와 양립하기 힘든 원전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하긴 힘들다”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이 같은 추세만 보면, 원전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보다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확대할지 논의하는 게 더 미래지향적이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원전을 늘려야 하냐 말아야 하느냐 싸움에 뒤엉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 세계 에너지 전환 흐름에서 뒤처지는 형국이다. 국내 언론도 대선을 앞두고 탈원전 정책에 찬성하느냐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하고, ‘원전을 줄여야 한다’보다 ‘늘려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는 보도를 쏟아내기 바쁘다. 심지어 시작도 안 한 탈원전으로 “전기세가 급등했다”는 가짜뉴스가 포털을 잠식한다. 원전 발전량은 탈원전을 공약했던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기 전 2016년(2만3116MW)보다 2020년(2만3250MW)에 더 늘었는데도, 가짜뉴스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생산할 뿐이다.

공약에서 드러나는 원전의 한계


윤석열 후보의 공약을 보더라도 원전의 한계를 엿볼 수 있다.

원전 최강국을 건설하겠다는 윤 후보의 공약을 보면 구호에 비해 내용이 공허하다. 공약 발표 현장에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두고 “초법적 비이성적 정책”이라고 맹렬하게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공약은 “원전 30%를 유지하면서 SMR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 정도가 전부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원전 발전량이 29%인 점을 고려하면, 가능하면 현상 유지를 하겠다는 공약이다. 지난해 12월 29일 공약 발표 현장에서도, 그는 “원전을 더 확대한다는 것이 아니고, 신한울 3·4호기 (공사 착수가) 중단된 거니까, 계속 진행하겠다는 것이고, 사용허가 기간이 만료된 원전은 안전성 검토를 통해 재사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해 7월 6일 대전 유성구 한 호프집에서 ‘문재인 정권 탈원전 4년의 역설-멀어진 탄소중립과 에너지 자립’을 주제로 열린 만민토론회에 참석해 원자력 문구가 쓰여 있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 2021.07.06. ⓒ뉴시스

윤 후보의 원전 공약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존 정부 정책과 여당 후보의 공약과도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지난해 초 수출용 SMR 기술개발 추진 계획을 보고한 바 있고, 혁신형 SMR 기술개발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당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캠프도 미래 대비 차원에서 SMR 개발은 계속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차이가 있다면 문재인·이재명은 기존의 원전을 계속 사용하되 재생에너지 확대가 긍정적이면 수명을 다한 원전은 되도록 수명연장 없이 폐쇄한다는 입장이고, 윤석열은 재생에너지 확대 여부와 관계없이 안정성에 문제가 없으면 수명을 연장하겠다는 입장이다.

윤 후보가 현 정부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도, 차별성 있는 공약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원전을 우리나라에 더 짓자고 말하기 힘든 현 상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토에 세워진 원전은 총 26기(영구 정지된 2기 포함)다. 여기다 건설 중이거나 시험운전 중인 원전까지 합하면 30기에 이른다. 이는 단위면적당 원전밀집도로 따지면 전 세계에서 압도적인 1위를 자랑한다. 좁은 땅에 빽빽하게 원전을 세워놓은 것이다.

진짜 문제는 원전의 숫자가 아니다. 원전을 운영하다 보면 핵폐기물이 나오는데, 이를 보관할 수 있는 임시시설이 점점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

전국 원전 발전설비 용량 및 발전량 ⓒ에너지정보문화제단

핵폐기물에는 다양한 방사성 핵종이 포함돼 있어, 오랜 시간 강한 방사선을 방출한다. 이 중에는 핵폭탄에 쓰이는 플루토늄과 같은 원소도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물질이 안전한 수준으로 농도가 낮아지기까지는 10만 년이 걸린다. 이 물질들을 지하 깊은 곳에 영구히 처분해야 하는데, 영구 처분할 땅이 마땅치 않다. 지난 정부에서도 이 문제는 시한폭탄이었다. 다음 정부로 미루고 미루다가,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서야 관련법을 만들고 기존 시설이 있는 부지에 영구저장시설을 만드는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자, 원전 인근 지역 16개 지자체가 강하게 반발하는 등 큰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전기는 수도권에서 사용하는데 왜 지자체 주민들이 위험한 핵폐기물을 떠안고 살아야 하냐는 것이다.

부지를 선정하고 원전을 건설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을 새로 건설하자고 해도, 당장 수출위주경제를 위협하는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는 상황에서 원전은 적합한 대안이 되기 힘든 이유다.

필요할 때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유연한 운영이 어렵다는 점도 원전의 한계로 지적된다.

당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석탄을 줄이고, 이 빈자리를 원전으로 다 채울 수 없으니, 빠르게 설비를 늘릴 수 있는 재생에너지로 대체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원전은 유연하지 못한 탓에 재생에너지와 양립하기 어렵다. 날씨의 영향을 받는 재생에너지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전기 생산이 충분할 때 꺼뒀다가 부족할 때 킬 수 있는 발전원이 필요한데, 원전은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발전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원전은 예상치 못한 불시중지로 에너지 수요를 불안케 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이 한국수력원자력(주)으로부터 받은 원전 각 호기별 가동중지 내역을 보면, 2021년 2월부터 7월까지 총 8번의 원전 불시정지가 발생한 바 있다. 화재 발생으로 인한 터빈정지, 해양생물 취수구 유입에 따른 터빈정지 등이 원인이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자료사진 ⓒ뉴시스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공약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에너지 전환은 어쩔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다.

그런데 유력 대선후보란 이는 “탈원전 폐지”, “원전 최강국 건설” 등의 공허한 구호를 외칠 뿐이다. “화석연료 발전 비중을 현행 60%대에서 40%대로 줄이겠다”는 말뿐이다. 이는 현 정부에서 이미 2030년까지 목표로 설정한 계획이다. 화석연료 40% 달성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의 비약적인 확대가 어쩔 수 없는 조건이지만, 윤 후보의 공약에서는 어떻게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는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공약 보도자료나 기자회견을 찾아봐도 관련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 공약을 묻는 질의에도 마찬가지다. 1월 20일 윤석열 대선캠프 에너지 공약 담당자는 에너지 전환 정책 관련 기자와의 질의응답에서 “재생에너지는 우리나라 여건에 맞는 방식으로 확대해 나간다”라며 계획입지 태양광, 영농 태양광이 그 예라고 설명했다. 이는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정책 중 하나다.

환경운동연합이 4명의 대선후보에게 제안한 정책 ‘전력부문 재생에너지 목표 상향 2030년 발전량 40%’에 대해서도, 윤 후보만 “반대” 입장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찬성”이었고, 안철수 국민의힘 후보는 “보류” 입장을 밝혔다.

환경운동연합이 1월 27일 “윤 후보는 대안도 없이 앵무새처럼 ‘탈원전 백지화’만 외친다”고 비꼰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오합지졸 엉망진창 기후정책을 정비하여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 입장을 재확인하고, 구체적인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마련을 통해 실효적 기후위기 극복 대안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기사 리뷰 보기

  • 첫번째 리뷰를 작성해 보세요.

더보기

관련 기사

  • 등록된 관련 기사가 없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