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다 이같이 되물었다. ‘RE100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질문을 듣지 못했다는 듯 “네?”, “다시 한 번” 등의 말로 반문하다 결국 RE100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실토했다.
그는 기후·환경 친화적 녹색 사업 분류 체계인 ‘택소노미’ 관련한 질의에도 “EU 뭐라는 거는 들어본 적 없다”라며 질문자를 당혹케 했다. 기후·환경·재생에너지·원전과 관련한 중요 이슈의 핵심 키워드들을 모른다고 고백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해 특별히 집중해야 할 가치가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이어갔다. “신재생 부문은 다른 이런 데이터나 디지털, 바이오에 비해 떨어진다”
탈원전을 반대하며 ‘원전 최강국’을 건설하겠다고 하는 윤 후보가 밀접한 관련을 가진 기후·환경에 대해 철학과 지식을 전혀 갖추지 못했음을 드러낸 대목이었다. 그는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이념에 경도된 정책” “엉터리 철학”이라고 비난하지만, 오히려 그의 친원전 정책이 현실을 검토한 결과가 아니라 ‘묻지마’임을 보여준 것이다.
위협받는 수출위주 경제 RE100, 탄소국경세... 틈새공약 나선 원전산업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줄임말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충당하겠다는 국제 캠페인이다. 이미 애플, 구글, 메타(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GM, BMW, 레고, 인텔, 에어비앤비, 샤넬, 나이키, 스타벅스, H&M 등 340여 개 세계 유수 기업이 이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SK그룹, 아모레퍼시픽,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기업도 참여하고 있다.
이제 이 거대 기업들과 거래하는 기업들도 RE100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으로 흘러간다.
계속 동문서답하는 윤석열 후보에게 이재명 후보가 RE100이 무엇인지 설명하며 언급한 탄소국경세 또한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수입품 가운데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로, 유럽연합(EU)이 이 제도를 2023년부터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도 이 제도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한국무역협회(KITA)는 국내 수출기업의 우려를 담은 의견서를 EU 측에 제출하고, 정부에도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석탄 의존도가 높은 데다 제조업 수출 기반 경제구조여서 국제사회가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경우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타격이 현격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 30일 발간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보고서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과 한국의 대응방안’에 따르면, 탄소국경세가 도입될 경우 우리나라는 1.9%의 관세율을 적용받는 것과 동일한 비용을 감당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국제사회의 정세 변화는 ‘기후변화로 생물종 내 다양성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해외 연구결과’, ‘2021년 미국과 캐나다 서부를 불태운 폭염이 기후변화가 아니면 불가능한 재난이라는 과학자들의 분석 논문’ 등을 보지 않더라도, 탄소중립이 시급한 과제라는 것을 체감케 한다.
그만큼 RE100, 택소노미 등은 대통령 후보라면 몰라서는 안 될 주요 쟁점인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위기를 기회 삼아 침체기를 겪던 원전업계가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다른 나라처럼 원전 비중을 줄이던 원전 종주국 프랑스가 다시 원전 투자를 강화하고 있고, 프랑스와 일부 동유럽 국가들이 EU에 원전을 EU 택소노미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요구하더니, 결국 요구를 관철시켰다. 전 세계 원전업계가 “원전은 친환경적”이라는 주장과 로비를 끊임없이 펼친 결과다.
한국에서도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거세지더니 문재인 정부의 힘이 빠지기 시작한 정권 말부터 힘을 얻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반발하다 어느새 보수의 아이콘이자 유력 대권후보가 된 윤석열 후보의 캠프에 핵공학자들이 합류하고, 그 핵공학자가 에너지 전환 정책 담당자가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여론의 변화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이 40년 된 노후 원전인 고리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 참여해 ‘탈원전’를 선포했다.
탈원전 정책 선포 배경에는 2011년 발생해 지금도 전 지구적 골칫거리인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지진으로부터 한국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님을 분명히 알려준 5.8 규모의 경주지진, 크고 작은 국내 원전 사고 및 논란, 세월호 참사에 따른 안전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 등이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여론조사에서는 56.1%가 원전 증설을 반대했다. 심지어 응답자 중 45.2%는 원전 축소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감수할 수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2013년 환경운동연합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추진했던 여론조사 결과였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원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게 나타난다. 지난해 12월 매일경제와 MBN이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 ‘원자력발전 정책이 나아갈 방향’과 관련해 “현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답변이 37.2%였다. “원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36.5%에 달했다. 반면,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21.0%에 그쳤다.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은 여전히 사람이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어 수습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10년 사이에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것이다.
끊임없는 반복적 가짜뉴스 ① 가짜뉴스로 재생에너지 공격
이 같은 변화에는 에너지 전환 이슈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나온 가짜뉴스와 탈원전을 흠집 내기 위해 본질을 왜곡하는 언론보도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석탄과 원전의 대안으로 제시된 재생에너지를 공격하는 가짜뉴스가 쏟아졌다. “태양광 패널 전자파가 인체에 해를 일으킨다”, “태양광 패널은 중금속 범벅이다”, “태양광 패널 세척제가 독성물질이다”, “태양광 패널 빛 반사로 공군 조종사를 위협한다” 등이 대표적이다.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 ‘뉴스톱’(NEWSTOF)은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취재 지원을 받아 각종 소문과 검증 안 된 언론보도들의 사실관계를 밝힌 바 있다.
2012년 한국전파학회지에 게재된 ‘태양광발전소 전자파 환경 조사연구’를 보면, 태양광 발전소 주변 전자파를 측정한 결과 가장 강한 자기장이 발생한 곳에서의 자기장 세기는 WHO 권고기준의 20%에도 미치지 않을 정도로 미약했다. “패널 전자파가 인체에 해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국내 보급 태양광 폐패널 4종에서 납 등 7가지 중금속의 용출 정도는 모두 지정폐기물 기준 미만이었다는 2018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태양광 폐패널의 관리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을 보더라도, “패널이 중금속 범벅”이라는 주장 또한 사실이 아니다.
2019년 10월 조선일보는 ‘주한미군 “새만금 태양광, 비행작전에 지장”’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는데, 이 또한 가짜뉴스였다. 2015년 6월 한국태양광발전학회 분야별 기술현황과 동향리뷰에 기재된 논문 ‘태양광발전시스템 고장과 민원 발생 유형’을 보면, 태양광 모듈에서 발생하는 반사율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물의 외장 유리 또는 비닐하우스 보다 훨씬 적다.
태양광 모듈 세척은 별도 약품 없이 수돗물로 하기 때문에 독성물질이라는 주장 또한 악의적인 루머였다.
끊임없는 반복적 가짜뉴스 ② 가짜뉴스로 탈원전 공격
“탈원전으로 전기료가 급등했다”는 언론보도나 정치권 주장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 또한 가짜뉴스다. 한국수력원자력 발전원별 현황을 보면 원전 발전설비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도 정체하거나 증가하는 추세고, 발전량 또한 2017-2018년 잠시 줄었다가 2019-2020년에는 다시 늘어 2016년과 비슷해졌다. 원전이 발전설비 또는 발전량이 줄어서 전기세가 오른 게 아니라는 뜻이다. 전기료 상승은 국제유가 및 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연료비 인상이 원인이다. 2020년부터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후보는 지난달 13일 탈원전 백지화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가 4월 전기료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졸속으로 밀어붙인 탈원전 정책으로 발생한 한국전력의 적자와 부채의 책임을 회피하고 전기료 인상의 짐을 국민께 떠넘기려는 것”이라고 호도했다.
또 윤 후보는 지난해 12월 29일 신한울 3·4호기 공사 착수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는) 경제성을 조작하여 월성1호기를 조기폐쇄했다”라고 주장했다.
월성1호기 가동중단은 경제성 외에 안전성과 지역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지 경제성만을 놓고 가동중단을 결정한 게 아니다. 정책 검증 논란의 감사원도 감사 보고서에 이 사실을 분명히 적시했다. 당시 감사원장이었던 최재형이 윤석열 캠프에 합류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윤 후보도 모를 리 없다.
무엇보다 1970년대 기술로 1983년에 준공된 월성1호기는 2012년에 이미 한차례 수명연장을 한 노후 원전으로, 고농도 삼중수소 고인물 발견 등 원인 파악이 힘든 문제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월성원전 삼중수소 민간조사단’이 지난해 월성1호기 부지를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새롭게 발견됐다. 1997년 보수공사 때 오염수 누수를 막는 차수막을 절단했다가 제대로 보강하지 않은 채 방치됐던 점, 2012년 공사 때 남측 차수막 7곳이 파손된 점, 사용후핵연료저장수조 남측면 균열 등이다.
또 지난해 9월 10일 조사단 보고서를 보면, 사용후핵연료저장수조 바닥은 부식에 취약한 에폭시로 마감돼 있으면서도 수십 년 간 사용후핵연료 때문에 보수를 한 차례도 하지 못한 상태여서 누수량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용후핵연료저장수조 주변 토양·물 시료에서는 발견되어선 안 되는 방사성핵종 세슘(Cs-137)이 검출되기도 했다.
묻지마 친원전, 괜찮을까
일각에서 가짜뉴스를 반복해서 제기하는 이유는, “원전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쏟기 위함으로 보인다. 윤석열 후보 또한 공약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깨끗하고 안전하며 효율적인 원자력 발전 이외에 대안이 없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3일 토론에서도 윤석열 후보는 원자력발전 등으로 RE100에 대응하면 된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정작 급격하게 줄여야 하는 석탄발전소를 대신할 원전을 어디에다 지을 수 있을지 등에 대해서는 “그거는 뭐 여기서 제가”라며 답변을 피하기 바빴다.
총 발전량의 3분의 2를 원전에 의존하는 프랑스 등의 요구로 EU가 결국 지난 2일 원자력 발전에 대한 투자를 환경 친화적 사업으로 분류했지만, 국토가 넓고 인구밀집도도 낮은 유럽국가들과 우리나라의 상황이 같다고 보긴 어렵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단위면적당 월전밀집도는 압도적인 1위를 자랑한다. 또 원전을 운영하다 보면 핵폐기물이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이를 보관할 수 있는 임시시설까지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 EU도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계획이 세워진 원전 투자만 녹색 사업으로 분류한다는 입장이다.
윤 후보가 대안인 것처럼 언급한 ‘파이로 프로세싱’(pyroprocessing, 사용후핵연료 처리 기술 중 하나)은 우리나라에서도 연구하고 있지만, 언제 상용화가 가능할지 불확실한 기술이다. 이는 1960년부터 제안된 기술로, 우리나라에서 약 20년 동안 약 8000억 원의 예산을 쏟아부어 개발하다가 2018년 핵확산성 우려 등으로 중단됐다. 그러다 에너지 전환 논의 과정에서 최근 연구가 재개됐다.
에너지 전환 방식을 결정할 2022년 대선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과학적인 논의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를 방해하는 가짜뉴스가 대선판에도 나타나 건전한 논의를 방해한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