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진보정당 대선후보 토론회. 왼쪽 진보당 김재연 대선후보, 오른쪽 노동당 이백윤 대선후보. ⓒ유튜브 캡처
'노동조합을 하라고 권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진보당 김재연 대선후보와 '사회주의를 쟁취해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노동당 이백윤 대선후보의 양자 토론이 9일 처음으로 열렸다. 두 후보는 체제 전환에 한 목소리를 내면서 정책 노선에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구체적인 해법을 두고는 일부 다른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김 후보와 이 후보는 이날 서울 중구 정도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열린 '진보정당 대선후보 정책토론회'에 참석했다. 민주노총은 대선공동대응기구에 참여했던 진보정당의 대선후보들을 토론회에 초청했는데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는 응하지 않으면서 김 후보와 이 후보의 양자 토론으로 진행됐다.
토론에 앞서 진행된 정견발표에서 김 후보는 "진보단결의 기준은 '노동중심성'이 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 하라고 권하는 대통령이, 노동자를 정치의 주인으로 모시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했다.
김 후보는 ▲기간제법・파견법 폐지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 ▲최저시급 1만 5천원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전국민노동법 ▲국가고용책임제 실시 ▲토지공개념 도입을 통한 부유세 대폭강화 ▲대학까지 무상교육 및 현행 입시제도 폐지 ▲에너지 공공성 실현 ▲N번방 방지법, 생활동반자법 제정 ▲돌봄을 총괄하는 '돌봄부' 신설 ▲'슈퍼리치' 부유세 신설 및 코로나19부채 탕감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이 후보는 "청년·여성·노인 빈곤과 임금·자산 불평등의 원인은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며 "소수 재벌과 불로소득자를 위한 경제를 모든 사회 구성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경제로 바꾸지 않는 한 불평등한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후보는 사회주의 대전환의 첫 단계로 '사회주의 1000 비상경제' 공약을 제시하면서 ▲경제 절반 공공경제 재편을 통한 기간산업과 재벌자본 국유화 ▲국가투자은행 설립 ▲국가책임 일자리 1000만개 ▲공공임대주택 1000만호 ▲기후정의 1000인 위원회와 기후총파업으로 기후정의 실현 등을 약속했다.
민주노총 가맹노조의 요구에 적극 공감 표한 김재연·이백윤
토론의 첫 질문은 대선 정국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연금 개혁에 관한 것이었다.
전국공무원노조는 '2022년부터 효력이 발생하는 공무원 소득 공백자에 대한 연금 수급 시기 개시연령 연장 유보 부칙 신설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공무원의 정년은 60세인데 공무원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은 65세라서 5년 동안 연금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두 후보는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공감을 표했다.
이 후보는 "당연히 연금 공백을 지워야 하는 정책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고, 김 후보는 "2019년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서 대안을 마련했는데 정부와 국회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며 "명백한 국가 책임"이라고 꼬집었다.
두 후보는 공무원연금을 둘러싸고 잘못된 논란이 일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공무원이나 교직원, 군인 등이 받는 연금을 특수직역연금이라고 하는데 이런 연금에 대해 '철밥통 아니냐'는 식으로 공격적인 여론이 형성디고 일부 정치인이 이에 편승하고 있다"며 "그런데 특수직역연금의 정신을 보자면 국가와 국민, 노동자 민중에 봉사했기 때문에 연금이란 방식으로 일정 정도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무원연금이 몇 년 뒤에 고갈될 것이니까 지금부터 대책 세워야 한다, 공무원연금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특수직역연금의) 그 가치 인정하지 않고 여기에 시장논리를 들이미는 것"이라며 "특수직역연금이 부족하다면 국가재정으로 충당해야 한다. 그 액수를 계산해보면 얼마 되지 않는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도 "공무원연금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이슈를 자꾸 띄우고 있는데, 당사자들이 들으면 '만만한게 공무원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며 "공무원연금제도에 대한 국민적 오해가 깔려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진보당은 직업공무원제 목적과 성격에 부합하게 현행 공무원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본다"며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제도를 국가가 책임지는 연금 제도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후보는 '코로나 비상시기에 국가 역할 확대를 위해 공무원 증원이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 공무원 150만 명을 증원해야 한다'는 공무원노조의 요구에도 적극 공감했다. 이 후보는 "저는 오히려 200만 정도로 확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김 후보도 "150만 증원은 물론이고 OECD 평균 수준 이상으로 공무원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국금속노조가 답변을 요청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후위기산업정책에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해선 노동자에게 피해가 전가되면 안 된다는 데에 두 후보가 공감했다. 다만 김 후보는 노동 중심으로의 전환을, 이 후보는 국가산업으로의 전환을 보다 강조했다.
김 후보는 "오늘 기후위기의 주범은 환경과 생태를 파괴하면서 이윤을 추구한 재벌대기업이 분명하다"며 "그런데 이들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노동자 민중에게 기휘위기와 산업전환의 고통을 그대로 전가시키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노동자 민중이 산업 전환의 주인이 돼야 하고, 노동자 민중의 이익을 기준으로 산업 전환이 단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재벌주도의 기후위기 극복이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인데, 김 후보의 말처럼 공공주도성 확보해야 한다"며 "실제로 재벌주도 정책으로 인한 피해가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현재 상태를 준전시상태로 인식하고 그것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재벌대기업 국유화 뿐만 아니라 약 1000개 정도 되는 부품사까지 국유화하면 '국민차'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가가 책임지는 기후위기 대응,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만들어내겠다"고 주장했다.
'먹튀(먹고 튀다)' 논란이 일고 있는 사모펀드의 규제를 요구하는 전국서비스노조의 질의에도 두 후보는 비슷한 인식을 드러냈다. 김 후보는 "사모펀드 투자 보호법은 있는데 사모펀드에 따른 노동자 보호법은 없다. 이게 나라인가 싶다"며 "지난해 민주노총에서 투기자본 규제 법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는데 진보당도 적극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 역시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하거나 고용 줄일 때 고강도 규제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통제를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평가된 돌봄노동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에 대해서도 두 후보는 "돌봄국가 책임제를 전면 실현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에 대해서는 두 후보 모두 반대했다.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노조할 권리 등을 노동법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와 함께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기본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불평등 해소를 위한 교육개혁 방향을 묻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질문에는 두 후보 모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자격고사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김 후보는 국공립대 평준화와 대학교육 무상화를 주장했고, 이 후보는 "모두 공영대학으로 만들어서 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연·이백윤이 생각하는 진보단결 그리고 노조혐오 극복 방안
이어진 후보 간 상호토론에선 보다 날카로운 질문과 답변이 오고가면서 각 후보의 특성이 드러났다.
먼저 이 후보는 김 후보에게 "경제공약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경제 시스템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내용을 공약집에서 보기가 어렵다"며 "독점에 대한 규제를 통해 시장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인지 아니면 경제구조 자체를 전면적 혁신하자는 취지인지, 또한 민간경제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재벌에 대해서는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질문했다.
이에 김 후보는 "(이 후보의 공약과 비교해보면) 사회주의 타이틀을 전면적으로 내건 것을 제외하곤 맥락적으로 많은 유사점이 있다"고 답했다. 이어 김 후보는 "경제위기 상황이 도래했을 때 이를 잘 방어하기 위한 태세가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체제 전환을 지금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공공성을 강화하고, 특히 은행을 포함한 국유화를 단행할 때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탄소세뿐만 아니라 법인세와 슈퍼리치 부유세까지 실행하는 국가 중심의 경제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이 후보는 "김 후보는 경제위기를 미리 예비하는 차원으로 얘기했는데, 저는 지금이 경제위기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경제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시장을 그대로 놔둔다면 어떤 처방도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건 익히 잘 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경제를 어떻게든 재구조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김 후보의 일자리 공약이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의 일자리 공약인 '전국민 일자리 보장제도'와 어떻게 다른지도 물었다. 이 후보는 '전국민일자리보장제도'에 대해 "보수정권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후보는 "심 후보의 공약을 세부적으로 잘 몰라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진보당의 공약은) 문재인 정부가 시행하는 일자리 제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일시적 일자리가 아니다"라며 "청년일자리보장제를 함께 얘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시간 단축으로 생기는 최소 200만 개의 일자리와 돌봄 부문 국가책임제로 110만 개의 일자리가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후보는 "진보 정치가 말하는 일자리 정책은 과감하고 획기적이어야 한다. 최소한 중위소득을 보장하는 일자리여야 하고, 일시적인 일자리에 그쳐서도 안 된다"며 "전체적으로 20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있는데 최소한 절반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규율하는 일자리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는 진보진영의 단결을 강조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대선공동대응기구를 추진했지만 (후보단일화를) 성사하지 못했다.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 110만 조합원들과 민중의 힘을 결집하기 위한 진보단결을 여기서 중단해선 안 된다"며 "진보단결의 성과적 추진을 위해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이 후보는 "신뢰회복"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후보단일화 방안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은 '불신'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다. 이 후보는 "하나로 합치자, 뭉치자는 말은 좋지만 불신이 어디서 기인했고 어떻게 극복할지를 함께 논의해야 하고 그것이 공동실천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간 차이보다 진보정당간 차이가 더 크다면서 각자 역할을 하다가 선거 때 공동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칠레나 그리스, 베네수엘라 등에서 좌파진보정당은 다양한 실천을 함께 했다"며 "선거 때 선거연합정당이란 방식을 통해 공동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정당법이 가로막고 있다. 이를 극복하는 투쟁을 벌이자고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후보는 "진보정치 단결을 위해서 신뢰회복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한다"고 호응했다. 이를 위해 김 후보는 '노동'을 중심에 두고 뭉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는 "진보정치라는 말이 많이 오염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무엇이 진보정치냐'고 묻는다"며 "노동중심을 확고히 세우는 걸 (이번 대선후보) 단일화 추진 과정에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 중심성으로 진보단결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는 기득권 보수양당이 민주노총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면서 "노조 혐오와 노조 배제 정치를 어떻게 진단하고 타개할 방도는 무엇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이 후보는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청년들을 보면 밤새 편의점에서 최저임금 받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침에 퇴근해서 민주노총을 욕하는 댓글을 다는 현실"이라며 "이것을 근본적으로 극복해나가는 방안은 이 삶을 개선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그래서 국가책임제 같은 방식을 우리가 제기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후보는 이를 전면에 내세우고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념 지형을 더 넓혀야 한다며 "그리고 우리가 사회주의를 내걸고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후보의 해법은 달랐다. 그는 노조 조직율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후보는 얼마 전 스타벅스 직원들이 '차량시위'를 하면서도 노조를 만들지 않겠다고 밝혔던 점을 언급하면서 "고용형태가 다양화되면서 노조를 통해서 나의 권리를 주장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럴 때 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로 44일째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있는데 대오를 흩뜨리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건 노조 중심으로 단결해 싸울 때 현실을 타개할 수 있다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런 경험을 만들려면 먼저 손을 내밀고 (노조를) 조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외 외교통일 문제도 거론됐다. 이 후보는 "북한의 핵무기를 어떻게 없앨 수 있느냐",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김 후보가 공약했는데 그게 효력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 후보는 "핵 없는 사회, 한반도 비핵화는 변함없는 우리의 목표"라며 남북정상 간에도 합의한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다만 합의가 지켜지지 않고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게 현재 위기 상황의 원인"이라며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핵미사일 중단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미수교까지 진전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 후보는 "협정은 자체 구속력이 없고 미국을 위시해서 엿바꿔먹듯 협정을 파기한 역사가 많다"며 "핵무기(핵발전소) 폐기와 함께 평화조약을 동시에 체결하고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