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택배 기사들은 CJ대한통운 본사를 점거했다

택배노조 “CJ대한통운 대화에 나서라”... 강경 투쟁 예고

택배노조 점거농성장 앞에 모인 택배노조원들 ⓒ민중의소리


10일 저녁 시청역 9번 출구 인근. 추위는 한풀 꺾였지만, 해가 지자 불어오는 바람이 매서웠다. 양복 차림의 직장인들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평범한 퇴근 시간 풍경 사이로 낯선 함성이 들렸다.

“이재현 나와라”

서소문동 CJ대한통운 본사 앞 골목길에 두터운 점퍼에 노동조합 조끼를 겹쳐 입은 수백명의 택배기사가 모여 있었다. 머리엔 단결·투쟁이고 적힌 붉은 띠를 둘렀다. 굳게 내려진 건물 셔터 안쪽으로 더 많은 택배기사가 진을 쳤다. 주위엔 CJ대한통운이 고용한 경비와 경찰 병력이 둘러쳐 있었다.

CJ대한통운 로비 점거농성 중인 택배노동자 ⓒ민중의소리


“CJ대한통운과 대리점, 언론까지 ‘명분 없는 총파업을 철회하라’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정말 파업을 중단하고 싶은 건 우리에요. 점거농성을 하게 된 것도 파업을 끝내고 싶은 간절함 때문입니다”

CJ대한통운 시흥터미널에서 택배기사로 근무하는 신모(50·남)씨를 농성장에서 만났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파업을 끝내고 싶다. 열한살 딸이 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혼자 벌어 네 가족이 먹고 살았다. 파업을 시작하면서 막막해 졌다. 그들의 파업은 이날로 45일째를 맞았다. 신씨는 “가족들한테 미안하기만 하죠”라고 말했다.

‘사회적 대타협’이라더니 바뀐 게 없었다. 택배기사 노동시간 단축은 말 뿐이었다. 새벽에 출근해 밤 늦게까지 일하는 중노동은 여전했다. 회사는 분류인력을 투입했지만, 일손이 부족했다. 1~2시간씩 돕지 않으면 배송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택배 기사가 대리점에 따지면 ‘원청이 분류인력 비용을 덜 주는데 어쩌라는 말이냐’고 한다. CJ대한통운은 ‘돈을 주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국토부는 지난달 1일부터 21일까지 총 25개 택배 터미널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했다. 점검지 25개소엔 분류인력이 전부 투입됐지만, 택배기사가 완전히 분류작업에서 배제된 곳은 7개소(28%)에 불과했다. 절반 가량(12개소, 48%)에서 택배기사가 일부 분류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사람을 구하지 못해 택배기사에게 분류 작업을 시키고 비용을 지급하는 곳도 6개소(24%)나 됐다. 이런 결과를 두고 국토부는 “사회적 합의를 양호하게 이행하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정 위원장은 “국토부가 CJ대한통운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CJ대한통운 점거농성 중인 택배노조 ⓒ민중의소리


사회적합의 부정하는 CJ대한통운 표준계약서... “노조 없던 시절로 회귀 안돼”
“대화 나올 때까지 내 발로 나갈 일 없다”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이 표준계약서에 끼워 넣은 부속합의서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부속합의서엔 사회적합의에 반하는 독소조항들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민중의소리>가 택배 대리점과 택배 기사 사이에 맺은 부속합의서를 살펴본 결과 문제점이 여러 곳 발견됐다. 사회적 합의는 주 60시간을 명문화하고 있지만, 부속합의서엔 이런저런 조건을 달려 사실상 60시간 이상 노동을 강제하고 있었다.

CJ대한통운 부속합의서 제4조 1항은 “택배사업자 또는 고객으로부터 집화 요청을 받은 날 이내에 상품을 집화하여 택배사업자에게 인도하고, 택배사업자로부터 상품을 인수한 날 이내에 고객에게 배송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이른바 당일배송 원칙이다. 현장에선 노동시간 단축보다 ‘당일배송 원칙’이 우선한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농성장에서 만난 안산터미널 택배기사 오모(55)씨는 “사회적합의를 통해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막자고 했지만, 당일배송 원칙, 주6일제 원칙 등의 독소조항을 담아 사실상 사회적합의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 경기·광주터미널에서 택배기사로 일하는 이모(50)씨는 “5년 전 노조가 없던 때로 돌아가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린 5년 전 그때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CJ대한통운은 자기들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굳게 닫힌 셔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신씨는 “딸에게 미안하다. 올해 11살인 딸이 ‘다치지만 말고 돌아오라’고 말했는데, 지금도 딸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면서도 “살고 싶어서 왔다. CJ대한통운이 대화에 나오기 전까지 내 발로 나갈 일은 없다”고 말했다.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CJ대한통운 점거농성장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 택배노조원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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