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발표된 CJ대한통운의 4분기 실적에서 택배요금은 1분기 대비 227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CJ대한통운이 주장한 140원은 물론이고, 노동조합이 추정한 170원까지 훌쩍 뛰어넘은 수치다”
지난 10일 전국택배노조는 43일째 이어져 온 총파업을 끝내기 위해 CJ대한통운 본사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그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CJ대한통운이 대화에 나서라는 것이다.
작년 6월 정부와 택배사업자, 종사자, 소비자 화주 등이 참여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사회적 합의기구)’가 최종 합의안을 도출했다. 택배기사 과로사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분류작업을 개선하고, 고용·산재 보험 가입을 통해 택배기사의 처우를 개선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당시 사회적 합의기구는 연구용역을 통해 합의안 이행을 위해 약 170원의 택배비 인상 요인이 있다고 판단했다. 택배비를 올려 택배 노동자들의 작업환경과 처우 개선에 쓰라는 의미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노조가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 왔지만, 정작 CJ대한통운 대화 자체를 거부하며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결국 노조는 CJ대한통운이 대화에 나서도록 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점거농성을 선택했다.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열린 CJ대한통운 본사 점거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02.10. ⓒ뉴시스
140원 올렸다던 CJ대한통운, 알고보니 227원 인상 “택배기사 처우개선에 일부라도 쓰자는 게 그렇게 죄냐”
14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택배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CJ대한통운이 (연간 인상한 택배요금) 227원 중 76원만 노동자 처우개선에 사용하고 나머지 151원을 자신들의 이윤으로 가져가고 있었다”고 분노했다.
진 위원장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올린 택배요금 인상분은 택배기사 처우개선에 최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하지만 CJ대한통운은 오히려 택배비 인상을 통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이 같은 사실이 CJ대한통운의 공시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택배노조와 CJ대한통운은 인상된 택배비가 어디에 얼마만큼 쓰이는 지를 두고 갈등을 빚어왔다. 택배노조는 지난해 약 170원 가량의 택배비를 인상한 CJ대한통운이 분류인력비용(58원)과 사회보험비용(18원) 등 택배기사 처우개선에 76원만 쓰고 나머지 94원을 자신의 이윤으로 챙겨가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반면 CJ대한통운 측은 지난해 택배비 인상이 140원에 그쳤다고 주장해 왔다. 이 중 50%를 분류인력비용과 사회보험 등에 사용하고, 나머지 50%는 택배기사 배송·집화 수수료로 지급하고 있다는 게 CJ대한통운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달 11일 CJ대한통운이 공개한 ‘2021년 4분기 잠정 실적’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택배평균단가는 1,999원이었다. 그리고 택배비를 인상한 2분기 택배평균단가는 2,132원이다. 이후 3분기엔 2,193원, 4분기엔 2,226원으로 나타났다. 지난 한해 CJ대한통운이 인상한 택배비가 140원보다 훨씬 많은 227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또 이날 공개된 실적에서 CJ대한통운은 분류인력 비용으로 58.1원, 사회보험 비용으로 18.6원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 위원장은 "며칠 전 발표된 CJ대한통운의 4분기 실적에서 택배부문은 사상 최대치인 67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며 "택배요금은 1분기 대비 227원 오른 것으로 나타났는데 CJ대한통운이 주장한 140원은 물론이고, 노동조합이 추정한 170원까지 훌쩍 뛰어넘은 수치"라고 황당해 했다.
이어 진 위원장은 “CJ대한통운은 택배비 인상 후 택배기사에게 140원의 50%인 70원 가량을 수수료로 지급하고 있다고 하는데,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들이 들으면 어이없어 웃음만 나온다”며 “받은 사람은 없는데, 줬다는 사람만 있는 상황”이라고 실소했다.
이와 관련해 또 진 위원장은 “당시 노조와 CJ대한통운의 주장이 서로 달랐던 만큼 그 부분에 대해 검증을 받아보자고 요구했었다. 검증만 약속해도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겠다는 뜻을 밝혔었다”며 “하지만 CJ대한통운은 끝까지 버티며 검증은 물론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진 위원장은 “자본의 탐욕을 누가 말리겠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해도 해도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택배비 인상이 가능했던 배경은 22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로 세상을 떠난 참혹한 현실에 대해 정부가 택배요금 인상분을 권고하고, 대형화주가 이를 수용하고, 국민들이 이 비용이 택배기사 처우개선에 사용될 것이라는 전제로 동의해준 것”이라며 “하지만 아직도 택배 터미널엔 화장실이 없는 곳이 태반이고, 난방기 설치는 꿈도 못 꾼다. CJ로고가 들어간 솜잠바라도 택배기사들에게 지급해 주면 안 되는 것이냐. 사회적 합의에 따라 택배기사 처우개선에 일부만이라도 쓰자는 건데 그게 그렇게 죄냐”고 성토했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 본부 회원들이 11일 서울 CJ대한통운 본사를 점거한 가운데 회원들이 창문에 사측과의 대화를 촉구하는 각종 대자보를 붙이고 있다. 2022.02.11. ⓒ뉴시스
‘당일배송+주5일제’ 담긴 부속합의서... “과로사로 이어지는 첫출발”
독소조항이 포함된 표준계약서 부속합의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진 위원장은 “이번 총파업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 건 표준계약서의 부속합의서였다”면서 “CJ는 표준계약서에 독소조항이 잔뜩 들어 있는 부속합의서를 끼워 넣어 사회적 합의를 정면으로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택배사와 택배 대리점, 택배 기사 등은 사회적 합의 정신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작성하는 표준계약서를 도입했다. 새롭게 제정된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에 따르면 택배사가 택배업을 영위하기 위해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표준계약서로의 계약이 필수다.
진 위원장은 “CJ대한통운이 부속합의서에 넣은 ‘당일배송 원칙’은 그동안 택배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의 핵심 원인 중 하나였다”며 “그런데도 당일배송 원칙을 포함했다는 건 다시 택배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으로 내몬다는 거다. 이는 과로사로 이어지는 첫출발 같은 것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의 과로를 위해 주 60시간이라는 단서조항을 달았다고 얘기한다”며 “당일 도착한 물량을 배송하기 위해 늦게까지 물건을 실었는데, 60시간이 넘었다고 중단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절대 아니다. 아마 대리점 소장들이나 본사에서도 난리 난리를 칠 것이 분명하다. 현실적으론 있으나 마나 한 단서조항”이라고 비판했다.
CJ대한통운이 부속합의서를 통해 ‘주 6일제 원칙’을 명시한 부분도 독소조항으로 지적됐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택배업계 전체가 주 5일제를 향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주 6일제 원칙을 부속합의서에 포함한다는 건 사실상 사회적 합의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진 위원장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국토부가 올해부터 주 5일제 시범사업을 진행한 후 택배산업 전반에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을 진행 중”이라며 “하지만 CJ대한통운은 주 6일제 원칙을 부속합의서에 명시했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진 위원장은 “당연히 노조는 주 5일제가 도입될 수 있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빼자고 반박했다”며 “하지만 CJ대한통운은 전혀 대화에도 나서지 않으며, 뒤에서 언론플레이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열린 CJ대한통운 본사 점거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및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02.10. ⓒ뉴시스
“‘노조 죽이기’ 나선 CJ대한통운... 예고된 파업 장기화”
택배노조는 이번 총파업 투쟁을 CJ대한통운이 의도한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노조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내용을 강요해 파업을 유도하고, 이를 빌미로 공격해 ‘노조 죽이기’에 나섰다는 판단이다.
진 위원장은 “CJ대한통운은 이런 독소조항이 포함된 부속합의서를 내놓고, 지난해 말 회사 내 노무 관련 업무 담당자들을 모두 교체했다”며 “확인된 바로는 새로운 노무팀을 김앤장 출신 변호사와 그 직원들로 꾸리고, 여기에 국민의힘 출신 보좌관까지 데려와 ‘노조 죽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무담당자들이 교체된 후 CJ대한통운과의 대화가 완전히 끊어졌다”며 “그 전만 하더라도 물밑에서 비공식적인 접촉이 이뤄지기도 했는데, 현 노무담당자가 온 뒤로는 언론을 통해 노조 때리기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진 위원장은 “회사가 작정하고 노조를 공격한 만큼 이번 파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했다”면서도 “너무 힘든 마음에 이 싸움은 누가 죽어야 끝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사회적 합의의 주체였던 국토부와 민주당에 대한 비판도 쏟아냈다. 진 위원장은 “국토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사회적 합의 당시 온갖 생색을 다 냈지만, 현재는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라며 “CJ대한통운이 사회적 합의를 위반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전혀 나설 생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 합의의 온전한 이행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에서도 (국토부와 민주당은) 자신들의 입장을 내지 않고 손을 놓고 있는 국면”이라며 “사회적 합의를 주도했던 정부 기관과 여당이 자신들의 역할과 책임을 방기, 포기하는 이런 상황들이 이번 파업을 장기화하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끝으로 그는 “(택배노조는)돈 좀 더 벌겠다고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정말 어렵게 만들어낸 사회적 합의다. 사회적 합의가 이렇게 난도질당하고, 왜곡되고, 자본의 돈놀이에 악용되는 이 현실을 지적하는 노조의 목소리가 국민들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