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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애의 법원삼거리] 법정에서 바라본 시간의 무게

해마다 2월이 되면 딜레마에 빠진다. 재판 일정이 잡히지 않거나 잡혀있던 재판도 일정이 변경되면서 마치 학기 시작을 앞두고 2주간 달콤했던 봄방학을 맞이하는 기분에 잠시 취하다가도, 속절없이 미뤄지는 재판에, 혹은 선고를 앞두고 있다가 다시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일방적인 통지에 등골이 서늘해지곤 한다.

매년 1월 말부터 2월까지 법원 정기인사가 진행된다. 그즈음 포털사이트 뉴스 창에서도 법원 정기인사를 단행한다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2월쯤부터 재판을 진행하러 가면 사건을 맡고 있는 판사님들의 구성이 혹은 판사님이 바뀔지 아닐지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재판을 한번 진행하고 나면 4-5주 후에 다음 재판 일정을 잡게 되는데,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기인사를 앞두고 재판부가 변경예정일 경우에 정기인사를 마친 후인 3월 중에 다음 재판 일정을 잡는 경우가 많다.

대법원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 ⓒ뉴시스

아직 법원 인사이동의 결과와 내가 맡은 사건의 담당 재판부가 바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즈음 재판을 진행하게 되면 다음 재판 일정을 보면서 눈치 게임을 하게 된다. 담당 판사님이 바뀌는 걸까? 바뀌지 않지만 일정을 그냥 그렇게 잡는 걸까? 보통 2년에 한 번씩 소속 재판부와 법원이 바뀌기 때문에 지금 재판을 맡고 있는 판사님(들)이 언제부터 이 법원 이 재판부에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특히나 사건에서 쟁점이 된 사항에 대해 판사님들에게 양측이(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에서는 원고와 피고가, 형사소송에서는 검사와 피고인측이) 필요한 주장과 관련 자료를 다 내고 판결을 통해 판단을 받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12월이나 1월 중에 선고 전 마지막 재판을 진행하게 되면, 그래서 한 달 정도 후에 선고기일이 잡혀야 하는 상황이 되면 더 긴장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법정에서 양쪽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 차례 재판을 진행하면서 기록도 살피고 증인의 이야기도 직접 들으면서 심증을 형성한 담당 판사님(들)이 인사이동으로 다른 법원이나 다른 재판부로 가고, 새로운 판사님(들)이 처음부터 이 사건의 기록들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지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게 된다. 물론 특정 개인의 판단을 받는 절차가 아니라, 법원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판단을 받는 절차가 재판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주장과 증거자료들을 살펴서 판사 개개인의 생각과 판단을 거쳐 판결을 받게 되기에 쌓여있는 기록을 쭉 살펴서 나오는 판단과 짧게는 1년 길게는 수년간 쌓아온 판사와 당사자들의 시간을 거쳐 나오는 판단이 같기를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매년 2월 법원 인사철마다 반복되는 풍경
재판이 장기간 미뤄지거나 거의 끝난 재판이 다시 열리는 사례
이제 재판받는 국민 입장이 충분히 고려되기를


재판부의 구성이 바뀌기 전에 사건을 쭉 살펴온 본인이 판결을 선고하고 가겠다고 하는 판사님이 있는가 하면, 인사이동으로 재판부가 바뀔 것이라고 하면서 다음에 자신의 자리에 올 판사님에게 사건을 넘길 것임을 직접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재판을 마치고 판결 선고기일을 잡았는데, 선고기일의 예정했던 날짜보다 2, 3주 뒤로 바꾸었다가 다시 재판을 열어 진행하겠다고 결정하고 다음에 자신의 자리에 올 판사님에게 사건을 넘기고 가는 경우도 있다. 다시 그 법정에 가더라도, 판결 선고를 미루고 재판을 다시 진행하겠다고 결정한 판사님의 얼굴은 볼 수 없는데 말이다.

법봉과 법전 ⓒpixabay

재판이 진행되고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한 심급(1심 혹은 2심)을 온전히 진행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예측하기 어렵다. 당사자들의 여러 사정이 반영되기도 하고,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해 증거를 확인하고, 법원을 통해 증인의 증언을 듣거나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이제 판결만 선고되면 되겠다, 하고 기다리던 상황에서 당사자의 주장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혹은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기 위해 시기를 불문하고 재판이 다시 열리는 경우도 많다. 재판에 오랜 시간이 걸릴 때, 그 사유는 다양할 수 있다.

다만 매년 법원의 인사이동은 되풀이되는데, 법원의 인사이동을 이유로 재판이 지연되거나 사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다 끝낸 재판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최소한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재판이 살아 숨쉬는 생물처럼 가변적인 절차라고 하더라도, 매년 예측할 수 있는 이런 사정으로 당사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지는 않도록 조금 더 노력할 수는 없을까. 국민 수 대비 법관의 수, 한명의 법관이 맡는 사건의 수, 그리고 과로에 시달리는 법관들의 이야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재판을 받게 되는 국민 대부분이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하는 법원에서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현실 또한 충분히 고려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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