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윤석열 후보가 이겼다. 후보는 승리했지만, 당대표는 졌다. 국민의힘이 내세웠던 ‘정권교체’는 이뤄졌으나, 이 대표가 전략이라며 내세웠던 ‘세대포위론’은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세대포위론은 2030세대의 지지를 이끌어내 60대 이상의 전통적 지지층과 함께 민주당 지지의 핵심인 4050세대를 포위하자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2030세대에서 두 후보의 지지율이 박빙을 이루면서 실패했다. 선거 직후 발표된 출구조사를 보면 20대 이하 투표자 중 47.8%가 이재명 후보를, 45.5%가 윤석열에 투표했고, 30대에서는 46.3%가 이재명, 48.1%가 윤석열에 투표한 것으로 조사됐다.
출구조사 연령대비교 ⓒ민중의소리
지지율은 성별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20대 이하 남성은 이 후보에게 36.3%, 윤 후보에게 58.7%가 투표했고 여성은 이 후보에게 58%, 윤 후보에게 33.8%가 투표한 것으로 조사됐다. 30대 남성은 이 후보에게 42.6%, 윤 후보에게 52.8%를 여성은 이 후보에게 49.7%, 윤 후보에게 43.8%가 투표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의 세대포위 전략은 2030세대를 성별로 갈라치고 혐오정서를 극대화 하는 것이었다. 여성과 외국인을 혐오하고 반중정서에 올라타는 양태로 나타났다. 그의 머릿속에는 ‘선거에서 호명되지 않은 2030 여성층은 투표장으로 오지 않을 것이며 민주당으로 쏠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대표는 선거 직전인 7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의 투표 의향이 남성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며 “저는 그런 (이재명 지지 성향의) 조직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이 온라인에서는 보일 수 있겠으나 실제 투표 성향으로 나타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선거 결과는 그의 예상과 달랐다. 완벽한 역풍을 맞았다. 후보 못지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언론 노출이 많았던 이준석 대표는 정작 선거 당일 출구조사가 발표되는 순간 표정이 굳었고 개표가 이뤄지는 동안 그 어느 방송사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등 당 지도부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개표 상황실에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이날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47.8%,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48.4%로0.6% 초박빙을 나타내고 있다. 2022.3.9 ⓒ뉴스1
‘공정’과 ‘혐오’사이에서
이준석은 국민의힘을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었다. 탄핵과 대선 이후 황교안 체제의 국민의힘은 선거에서 패배하며 휘청거렸다. 변화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망할’ 위기에 몰렸었다.
이준석의 등장은 화려했다. ‘남초 게시판’ 여론을 등에 업고 그들의 대변자로, 그들을 당의 지지자로 만들어내면서 당대표에 올랐다. 한국 정치에서 그 어느 정당도 해내지 못했던 30대 당대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국민의힘은 ’꼰대 정당’에서 ‘젊은층까지 지지하는 정당’으로 변화했고, 이준석은 국민의힘 변화의 상징을 넘어 한국정치 변화의 대표주자로 꼽혔다.
이준석의 정치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공정’을 키워드로 내세운 ‘능력주의’와 ‘이대남’을 키워드로 하는 ‘혐오정치’다. 전자는 2030세대 전반에 흐르는 정서이지만 다른 정치세력과의 차별성을 분명하게 내세우기 힘들다. 반면 후자는 다른 정치세력이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분야이면서도 대중의 반응 역시 즉각적인 측면이 있다. 이준석의 정치는 갈수록 후자로 향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12일 전북 전주역에서 정책 공약을 홍보하는 '열정열차'에 탑승해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 경선 이후 윤석열 후보는 김종인, 김한길 등을 영입하며 중도 확장전략을 세웠다가 이내 돌아섰다. 이준석 대표와는 ‘윤핵관’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했다. 윤 후보가 맞이한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윤 후보와 이 대표는 담판을 통해 극적으로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윤 후보는 이 대표가 주도하는 혐오정치에 올라탔다. 느닷없이 등장한 ‘여성가족부 폐지’가 시작이었다. 이준석의 혐오정치는 윤석열 후보의 입을 통해 확대됐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과 “무고죄 강화”라는 정책으로 이 흐름의 정점을 찍었다.
선거 초반만 해도 이준석의 혐오정치는 승리하는 듯 했다. 커뮤니티 게시판 여론의 즉각적인 반응은 더불어민주당까지 흔들었다. 이재명 후보가 ‘씨리얼’ ‘닷페이스’ 등 유튜브 채널과의 인터뷰 추진했다 중단하면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2030 여성은 선거전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국민의힘은 배제했고 민주당은 외면했다.
혐오에 맞서는 자발적 흐름, 이준석을 누르다
선거 막판 변화가 일었다. 변화는 2030여성 유권자들이 만들어냈다. 2월 말부터 여성 커뮤니티 중심으로 ‘혐오에 맞서자’는 여론이 급격히 일어났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공론화했던 ‘추적단 불꽃’ 출신의 박지현 민주당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의 호소는 이 흐름을 이재명 지지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투표당일 2030 여성들은 눈에 띄게 투표장으로 향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여기서 잠깐, 선거기간 2030 여성층의 여론을 살펴보자. 매주 발표됐던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 첫 주까지 18~29세 여성층에서 윤석열 후보는 20%대 초반에서 후반을 오르락 내리락 했다. 12월 30%선이었던 윤 후보의 지지율은 ’여성가족부 폐지’가 등장한 1월 초반 이후 30%선이 무너졌고 한 번도 30%를 회복하지 못했다.
반면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긴 했지만 40%도 넘지 못했다. 같은 기간 2030 여성층의 지지는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후보가 상당부분 나눠갖고 있었다. 1월 2주 이후 두 후보의 지지율 합은 20%대 후반을 기록했다. 1월 첫주까지 9~11%를 오가던 안 후보의 지지율은 ‘여성가족부 폐지’ 등장 이후 1월 2주 22.4%를 기록하며 뛰어올랐다. 이후 15~19%를 오갔다.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은 안 후보의 지지율이 빠지면서 지속적으로 상승해 15% 전후를 기록했다. 부동층도 15%로 유지됐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런 추세는 이어졌다.
극적인 변화는 결국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이후에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2030 여성층의 결집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던 윤석열-이재명 간 격차를 극적으로 좁혀냈다. 이재명 후보가 1%포인트 보다 낮은 표차까지 추격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2030 여성층의 막판 결집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3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우리 모두를 위해, 성평등 사회로' 유세에서 박지현 중앙선대위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2.03.03. ⓒ뉴시스
혐오 정치에 맞선 연대가 던진 의미
이재명으로 ‘돌아섰던’ 2030 여성 투표 행렬은 한국 정치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일단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를 변화시켰다. 권력형 성범죄 비호정당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민주당은 박지현 부위원장의 활약 이후 이재명 후보가 TV토론에서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직접 사과하는 것으로 시작해 혐오공격으로 오염된 페미니즘의 개념을 바로잡고, 구조적 성차별을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며 관련 공약을 쏟아내게 했다.
주목할 점은 2030여성층이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던 게 아니라, 그를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민주당이 다시 퇴행한다면 언제든 지지는 철회될 것이다.
그 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는 이준석 대표가 정치판에 끌어들이고 20대 대선을 지배했던 ‘혐오정치’가 다른 정치세력이 아닌 2030 여성층에 의해 비토됐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연대가 혐오를 이긴 것”이다. 윤석열 후보는 대선을 이겼지만, 이준석은 처절하게 패배했다.
곧바로 지방선거가 이어진다. 2030 여성층이 ‘방향이 분명한’ 투표층으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이 에너지를 과연 무시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이준석 식의 혐오정치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번 선거가 남긴 중요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