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聾人)과 청인(聽人)이 한 무대에 섰다. 관객도 농인과 청인이 반반이다. 베리어프리(사회 약자를 위해 수어 통역, 자막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연이 아니다. 농인만을 위한 공연도 청인만을 위한 공연도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가 소통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공연일 뿐이다. 눈물 짜는 감동, 약자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은 거름망으로 탈탈 걸러냈다.
무대 위에 등장한 농인 배우 박지영은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이 공연이 배우 박지영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박지영은 농인 아티스트로 구성된 핸드 스피크의 단원이다. 자신이 속한 ‘핸드 스피크’를 소개하고 자신이 참여한 작품을 소개하는 그녀의 모습은 짓궂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다. 청인 배우 이원진은 국립극단 시즌 단원이다. 두 배우는 함께 자신의 언어로 대화하며 공연을 만들어 가야 한다.
어떤 공연이 될지 관객들은 무한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두 사람은 일단 부딪쳐보고 눈짓과 표정, 온몸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백문 백답, 밸런스 게임, 얼굴 그리기, 배드민턴 치기, 빙고, 릴스 찍기 등을 함께 하며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은 계속된다. 이 작품은 수어 통역사는 있지만, 청인 관객을 위한 자막 서비스는 없다. 한국 수어 통역사가 무대 한쪽에 자리하고 있지만, 전체 내용을 통역하지 않는다.
공연에서 농인 관객은 장애인석에 배려받은 수동적인 관객이 아니다. 배우 박지영의 세계를 주도적으로 관람할 수 있다. 청인 관객은 배우 박지영의 수어에 집중해야 한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내려면 말이다. 마치 해외여행에서 그 나라의 연극을 관람하는 느낌이다. ‘과연 이 연극이 잘 끝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를 가질 수도 있다. 걱정은 기우일 뿐이다. 청인과 농인 배우의 무대는 아주 멋지게 마무리된다.
김미란 연출은 우연히 농어 연극을 보게 된 후 두 언어가 함께하는 세상을 무대에 올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연출은 공연을 준비하며 배우 박지영에서 사람 박지영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다고 했다. 그래서 이 공연은 1년 간 작품 개발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게 된다. 제목이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에서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으로 바뀐 이유이기도 하다.
박지영은 농인으로 세상에서 많은 실패를 했다. 대학 입학에 실패했고 청인과 소통에서 번번이 실패했을 것이다. 청인 관객은 박지영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을 수 있다. 두 세계가 만나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실패했을 수 있다. 연출은 실패할 것을 염두에 두고 알고 한 시도였을지 모른다. 관객에게 이 연극은 실패담이기보다 흥미진진한 도전이었다.
동시대를 살고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만, 선뜻 마주하기 어려웠던 세상, 공감이라거나 공존이라거나 명분을 앞세우지 않고도 우리는 애써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 배우들은 대사를 외우고 동선을 확인하며 연기했을지라도, 그렇게까지 해서 두 언어와 두 세상이 힘을 모았다. 이 공연의 감동은 거기에 있었다. ‘창작 공감: 연출’ 첫 번째 작품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은 3월 20일까지 소극장 판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국립극단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 공연날짜 : 2022년 3월 9일 ~ 3월 20일 공연장소 : 국립극단 소극장 판 러닝타임 : 80분 관람연령 : 14세(중학생) 이상 관람가 창작진 : 구성, 연출 김미란/무대 송성원/조명 박유진/음악 이향아/의상 EK/영상 헤즈 킴/인터렉티브 고동욱(EASThug)/음향 김성환 출연진 : 박지영(농인 배우)/이원준(청인 배우)/한국수어통역 김보석, 남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