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이배 비상대책위원은 지난해 12월 이재명 후보를 돕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공정한 경제 생태계’, ‘재벌 개혁’ 등 20여 년간 시민사회 운동과 의정 활동에 있어서 그가 견지한 일관된 방향성, 하지만 미완으로 남은 과제들을 이 후보가 정책 노선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21대 총선에 불출마한 뒤 원외에 ‘싱크탱크’를 만들어 김관영·김성식 전 의원과 진영에 얽매이지 않는 지속가능한 정책을 연구해 온 그는 민주당 선대위 공정시장위원회에 합류한 뒤 ‘진짜 경제민주화’를 제도화 삼기 위해 목소리를 냈다.
이는 비대위에서도 달라지지 않는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정치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표 또한 견고하다.
채 위원은 지난 2020년 지은 책 ‘공정한 경제 생태계 만들기’에 “경제개혁은 아직 갈 길이 멀고 그보다 먼저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고 적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채 위원은 선대위 공정시장위에서도 일했지만, 정치개혁 팀에도 합류해 의견을 개진했었다.
채 위원은 18일 국회 민주당 최고위원실에서 민중의소리와 만나 “제가 20년 넘게 얘기해온 경제민주화를 제도화하려면 결국 입법 과정을 통과해야 하고, 그 과정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결국 정치가 개혁돼 대화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는 정치문화가 돼야 한다. 그런 정치문화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법안을 내고 정책을 얘기해도 수용, 채택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채 위원은 “비대위가 해야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건 지방선거를 잘 치르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치개혁 입법을 해야 한다”고 짚었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던진 ‘정치개혁’ 의제의 불씨를 받아 안았다. 채 위원은 이를 꺼뜨리지 않고 원내·외 정당과 힘을 합쳐 동력을 키우는 게 비대위의 주요 임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채 위원과의 일문일답.
- 민주당이 ‘거대 양당’의 한 축으로서 기득권을 내려놓을 준비가 됐다고 판단하나. “그렇다. 기득권을 지키려고 했던 행위가 위성정당이었고, 그로 인해 국민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의 굉장한 의석을 차지했지만, 막상 득표율로 보면 월등하게 이긴 게 아니었다. 국민은 당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여당에 힘을 실어준 거고, 이런 요인들에 의해서 굉장히 이례적인 선거였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높았다던가, 위성정당에 대해 국민이 수용해준 게 아니다. 특히 그 뒤로 정의당이 그런(위성정당) 부분을 세게 비판하면서, 어떻게 보면 국회에서 파트너로 같이 했던 정의당이 민주당과 멀어지는 상황이 됐다. 이를 골고루 감안했을 때, 민주당은 정치개혁을 하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더 이상 신뢰받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 정치개혁 의제가 대선 막판에 나왔는데, 아쉬움은 없나. “더 일찍 정치개혁 그리고 국민통합에 대한 메시지가 나갔으면 좋았을 거 같다. 이게 굉장히 포지티브한 메시지다. 윤석열 후보가 네거티브 메시지를 많이 내는 상황에서, ‘기득권 내려놓기’ 포지티브를 좀 더 오래, 빨리했다면 훨씬 더 국민의 마음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 민주당은 6월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약속했다. 국민의힘은 ‘대선 때 부랴부랴 해서 진정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대선 기간에 얘기해서 진정성이 없다면, 국민의힘이 내놓은 공약도 다 진정성이 없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폄하하고 있다.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 정치개혁의 가장 큰 모습이다. 민주당은 기득권을 내려놓을 준비가 됐다. 원내·외 구분하지 않고 이에 동의하는 개혁 세력이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그래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국민의힘이 명분을 얻지 못해 결국 정치개혁에 끌려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대선 공약 중 하나가 정치개혁이었는데,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를 한 뒤로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안 후보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됐지만, 좀 아쉽다. 본인이 계속 다당제를 하겠다고, 심지어 단일화를 선언한 날도 다당제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라고 얘기했는데, 그러고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을 합당하겠다 했으니.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다당제가 신념이면 단일화를 하더라도 국민의당은 유지해야 했다. 같이 10년 넘게 정치를 해왔던 사람으로서 굉장히 아쉽다.”
- 중장기적으로는 국회의원·광역의원 비례대표 확대,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등 다당제 현실화 방안에 대해 성과를 내야 하지 않겠나. “다 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다당제를 통해 보다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세력들이 더 많이 늘어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 진짜 필요하다. 민주당을 위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런 큰 틀을 보고 정치를 하면 국민들이 충분히 다 인정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
- 호남에서의 민주당 모습이 영남에서의 국민의힘과 다름없다는 ‘토호 정치’ 비판이 많다. “다당제를 제도적으로 만들어놓으면 호남에서부터 새로운 정당, 제3정당이 점점 영역을 넓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도적인 개선 없이 특정 개인이나 바람에 의해서 되는 건 불안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호남을 싹쓸이했지만, 그건 안철수 대표에 의한 바람이었다. 그게 사라지는 순간 호남은 다시 다 민주당이 돼 버렸다. 제도적인 방식으로 다당제를 만들어야 지역주의도 깨질 수 있다.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도 마찬가지다.”
-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무공천을 검토해야 하는 지역이 있다고 생각하나. “호남만큼 민주당의 기득권이 강한 곳이 없다. ‘민주당이면 막대기만 꽂아도 된다’고 했던 게 호남인데, 그런 면에서 호남만이 과감하게 보여줄 수 있는 혁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천 혁신 방향의 최대치가 무공천이다. 다른 곳은 너무 혁신하다 보면 우리 걸 진짜 다 내놓게 될 수 있지만 호남은 기득권을 내려놓아도 충분히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곳이라고 본다. 민주당이 공천하지 않고 호남 시의회가 구성된다고 해도 그분들은 민주당의 가치를 동의하는 분들일 수밖에 없다. 역으로 그게 민주당의 영역을 넓히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 만약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최종 무산된다면, 민주당이 선제적으로 우세 지역에서 ‘선거구 쪼개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하지 않을까. “민주당이 다수인 지역의회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역의회는 당장 자기의 선거이기 때문에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결국 중앙에서 법을 개정해 기준을 주는 게 지금은 가장 현실성 있다고 본다.”
- 문재인 정부가 사회·경제 정책에서 중도·보수로 기울었다는 지적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공정경제 3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소상공인 손실 보상 지원 관련 내용 등이 거론된다. “민주당은 기존에 공정·개혁·평화 등 가치를 갖고 있었는데, 점점 그런 가치들을 잃었다. 불공정했고, 개혁도 하다 말고 중단됐다. 이런 과정에서 민생에 대한 문제가 많이 불거졌다. 새로운 현상이 나오면 빨리빨리 정부가 또 여당이 호흡을 발맞춰 나가는 게 개혁이다. 세상이 변하는데 제도가 안 바뀌고 못 따라가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본다. 그걸 놓친 부분이 많다.”
-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을 평가한다면. “제가 가장 열심히 재벌개혁을 떠들었던 사람이다. 솔직히 이번 정부에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는데, 아쉬움이 많다. 제도적인 개선이 쭉 이뤄지긴 했는데, 기존에 문제를 발생시키는 재벌의 개선은 안 되면서 오히려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해주고 앞으로 나올 새로운 재벌의 규제를 강화하는 꼴이 돼버렸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서 물러설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전체적인 내용은 ‘기존 재벌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식’이 됐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 문제도 여전히 심각하다. 근본적인 소득 양극화 문제 해결에 있어서 미흡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 인수위 경제 분과 인선안을 토대로,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 방향을 예견한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2017년도 대선 공약이 다 제 손을 거친 것들이었다. 그 공약들이 당시 국민의당에 있던 제가 안철수 후보와 토론하고 동의를 얻어 만든 것이고, 5년 동안 그런 정책적인 내용들이 안 위원장에게서 많이 바뀌지 않았다면 오히려 인수위가 국민의힘이 갖고 있는 수구 보수적인 경제정책으로 흘러가는 걸 막아주는 역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시장·기업 중심 ‘규제 완화’ 일변도 견해에 우려 지점은 없나. “윤 당선인은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겠다는 건데 이렇게 되면 결국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불공정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이 우려된다.”
- ‘야당 민주당’이 해야 하는 역할은. “윤석열 정부의 무리한 공약을 잘 통제하는 것, 협력할 건 협력하지만 싸울 건 싸워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지킬 건 지켜나가야 한다.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등에 대한 부분을 과거로 회귀시킬 수는 없다. 다만 그 안에 있는 부작용이 있다면 그것을 충분히 타협해 개선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완전히 과거로 돌아가는 건 용납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