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분명히 셋 중 하나다. 권력에 미쳤거나, 알랑방귀에 미쳤거나, 아니면 그냥 미쳤거나.
28일 인수위가 “청와대를 개방하면 약 2,000억 원의 경제효과가 있다”고 떠들 때만 해도 나는 이분들이 대충 미친 줄만 알았다. 그런데 30일 한국경제연구원(한경련)이라는 단체가 “청와대 일반 개방이 이뤄질 경우 최대 3조 3,000억 원의 경제효과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자들이 실로 섬세하게 미쳤구나!’라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일단 이 대차게 미친 듯한 주장을 하는 한경련이라는 단체가 어떤 곳인지 알아보자. 이 단체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의 연구기관이다. 그렇다면 전경련이 어디인가? 박근혜-최순실 콤비의 미르재단 및 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한 기금을 회원사에 강요한 곳이다.
또 박근혜 시절 어버이와 아무 상관이 없는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이라는 단체에 몰래 돈을 지원한 단체다. 박근혜 시절 “7대 규제를 없애면 63조 원의 경제 효과와 92만 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는 헛소리를 시전한 곳이기도 하다. 아, 그래서 그렇게 어버이들에게 뒷돈을 주고 관제 데모 아르바이트라는 일자리를 창출해주셨나? 이 단체가 뭐하는 데인지는 그만 알아봐도 되겠다.
아무튼 이런 단체가 하는 헛소리이니 무시할 만도 한데, 요즘 윤석열 당선인에게 누가누가 알랑방귀를 잘 뀌나 경쟁을 하는 듯한 보수 언론이 앞 다퉈 이 사실을 보도하는 바람에 이 미친 소리가 퍼져나가는 데에 가속도가 붙었다.
청와대를 아예 놀이동산으로 바꾸지?
이 미친 소리의 핵심은, 청와대를 개방하면 매년 관광 수입이 1조 8,000억 원 늘어난다는 데 있다. 청와대 주변 상권이 발달하고 관광객도 늘어 이런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다.
자, 이 헛소리가 맞는다고 치자. 그러면 아예 청와대를 놀이동산으로 탈바꿈시키면 어떤가? 이러면 입장료 수입도 챙길 수 있고 주변 상권도 훨~씬 더 발달할 거다. 청와대 어디에 들어가면 갑자기 7시간 동안 행방불명되는 체험 같은 거 만들어 한 5만 원씩 받아라. 장담하는데 관광객들이 물밀듯이 밀려 올 거다.
궁정동 안가에는 박정희가 즐겨 마셨다는 시바스리갈과 로얄살루트를 주로 파는 룸살롱 거리를 조성하면 되겠다(그런데 여기는 입장료를 얼마나 받아야 되는 거냐?). 한경련이나 인수위가 주로 노리는 게 외국인 관광객이던데, 이 정도는 돼야 외국인 관광객들이 관심이나 주지 않겠냐? 그러면 주변 상권이 매우 흥청거릴 거고, 나라꼴도 아주 잘 돌아갈 거다.
더 웃긴 대목이 있다. 한경련에 따르면 관광수입 외에도 청와대를 개방하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 경제성장이 기대된단다. 그래서 얻는 경제 효과가 또 1조 원이 넘는단다.
이거 설마 웃기려고 하는 말이지? 절반이 넘는 국민들이 지금 왜 그 짓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반대하는데, 그걸 하면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고? 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는 최소한 ‘신뢰’가 무슨 뜻인지 국어사전 정도는 찾아보고 사용하는 습관을 기르자. 제발 좀 부탁한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
이 미친 소리를 학문적으로까지 분석해야 하는지조차 의문이지만, 멍멍이소리를 하도 진지하게 하는 자들이 있으니 나도 진지하게 답을 해 본다. 이게 왜 미친 소리냐? 경제학에는 깨진 유리창의 오류(Parable of the broken window)라는 이론이 있다. 프랑스 출신 주류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Frederic Bastiat, 1801~1850)의 이론이다. 바스티아의 이야기는 이렇다.
빵집 자식이 자기 집 유리창을 깼다. 빵집 주인이 자식을 심하게 야단을 치자 이웃이 말리며 이렇게 말한다. “자식이 유리창을 깼으니 손해인 것 같지만, 네가 새 유리창을 사면 유리창집 사장님이 돈을 벌 거야. 유리창집 사장님도 번 돈을 쓸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소비를 유발하겠지. 네 아들이 유리창을 깨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우리 마을의 소득과 고용이 늘었어. 얼마나 다행한 일이야? 그러니 오히려 아들을 칭찬해 줘”라고 말이다.
이 말이 맞을까? 웃기는 소리다. 자녀가 유리창을 깨지 않았다면 빵집 주인은 그 돈으로 다른 것을 살 수 있다. 신상 운동화를 한 켤레 샀다면 운동화 가게 사장님이 돈을 벌고, 그 돈이 마을에 돌아 아까와 마찬가지로 고용과 소비를 유발한다.
자녀가 유리창을 깨서 마을 경제가 활성화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차피 그 돈은 쓸 돈이었기에 신발을 사도 마을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유리창을 깨는 바람에 빵집 주인이 사고 싶었던 신발을 못 사는 손해를 입었을 뿐이다.
청와대를 개방하면 관광수입이 늘고 그래서 경제적 효과가 몇 천억 원이네 몇 조 원이네 하는 이야기가 헛소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와대를 개방하면 거기를 방문하는 사람이 당연히 늘겠지!
그런데, 그 짓을 위해 청와대를 옮기고 국방부도 옮기느라 그 돈을 쓰는 게 합리적인가? 유리창 깨놓고 “새 유리창 만들어서 우리 마을 고용이 늘고 경제가 좋아졌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이야기다.
청와대 이전 비용으로 훨씬 더 좋은 관광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생각 못하나? 그 돈을 다른 곳에 쓰면 한국 경제가 보다 효율적으로 바뀔 거라는 생각은 못하냐고?
이런 문제 때문에 요즘은 “월드컵 개최의 경제적 효과가 얼마”니 “올림픽 개최의 경제적 효과가 얼마”니 하는 이야기도 잘 안 하는 거다. 경기장을 지으면 당연히 경제 효과가 생긴다. 하지만 그 돈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 “올림픽 개최의 경제적 효과가 얼마다”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거다. 그런데 그 생각을 못하는 민물고기(빠가사리라고 쓰려다 참은 거다)들이 모이니까 “청와대를 개방하면 경제 효과가 3조 3,000억 원이다” 이런 헛소리를 하고 자빠진다.
나는 ‘큰 정부’를 지향하는 사람이지만, 정부가 무작정 돈을 푼다고 다 좋다고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다. 돈을 쓰더라도 유리창 수리에 쓰는 게 아니라 꼭 필요한 신발 구입에 쓰도록 유도하는 게 정부의 임무다. 그래야 국민들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돈을 쓸 때에는 4대강 사업 같은 데에다 쓰면 안 된다. 그때 이명박의 논리가 “정부가 돈을 써서 고용이 늘고 건설경기가 활성화됐으니 좋은 것 아니냐?”였는데, 그 돈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다는 게 함정 아닌가?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는 인터넷 인프라를 까는 데 정부예산 47조 원을 썼다. 그 덕에 지금 한국은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의 기반을 닦았다. 정부 예산을 이렇게 써야 진짜로 경제가 활성화되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 국민 절반이 반대하는 청와대 이전을 강행한 다음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높아져? 진짜 작작 좀 웃겨라.
지식인이 지식인인 이유는, 즉 지식인이 힘든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지식을 올바로 다뤄 달라는 민중의 배려 덕분이다. 그래서 지식인은 정직해야 한다. 속된 말로 해골이 깨져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지식인을 배려해준 민중에 대한 유일한 보답의 길이다.
그런데 뭐가 어째? 청와대를 개방하면 경제 효과가 3조 원? 에라 이 곡학아세, 아전인수, 알랑방귀의 전형들아. 아무리 권력이 바뀌어도 그렇게 살고 싶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