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4살의 나이에 파리바게뜨에 입사하고 첫 출근했습니다. 그날의 출근이 오늘과 같은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동안의 시간을 되돌려보면 큰 잘못을 하거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남에게 해를 끼친 기억이 없습니다. … 그런데 왜?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회사가 저를 이 자리로 몰아세웠다는 점입니다. … 오늘부터 우리의 소박하고 정당한 요구인 노조탄압 중단과 약속이행을 위해 단식투쟁을 시작합니다.”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본사 앞에서 단식투쟁에 들어가며 한 말이다. “사람답게 좀 살아보자고, 우리 근무환경 좀 바꿔서 더 좋은 회사 만들어보자고 모인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지, 저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고 앞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단식투쟁은 일상적이지 않은 행위였지만, 그 배경은 너무나도 일상적이었다. 헌법에 명시된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적 합의’에서 약속한 것을 지키라고, 다시 말해 기본을 지키라고. 최근 2030 또래들이 불합리한 상황 때문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회사를 떠나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대단한 걸 요구한 것도 아니고…’
임 지회장은 “물러서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 제빵·카페 직원들이 사람 대우 받으며 행복하게 빵 만들 수 있다면, 까짓 것 뭔들 못하겠습니까.” SPC그룹에 노조탄압 등 부당노동행위를 중단하고 공개 사과하라는 그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임 지회장을 지난 1일 SPC그룹 본사 앞 단식농성장에서 만났다. 5일 기준 임 지회장은 단식 9일차를 맞았다.
파리바게뜨 제빵사들은 SPC그룹 파리크라상(파리바게뜨 본사)의 자회사인 피비파트너즈 소속이다. SPC그룹은 2017년 파리바게뜨 제빵사 5천여 명에 대한 불법파견이 노동부에서 인정되자 수백 억의 과태료를 내는 대신 이듬해 11월 민주노총 화섬노조·한국노총 소속 노조·시민대책위·정의당 등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피비파트너즈를 설립했다. 당시 임 지회장은 불법파견 등 문제를 처음 제기하며 SPC그룹 내 첫 민주노총 노조인 파리바게뜨지회를 설립했다.
사회적 합의로 문제가 해결된 듯 했다. 그러나 노동부 성남지청이 지난 2월 노조파괴 혐의로 피비파트너즈 관리자 등 9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기면서 사회적 합의의 이면이 드러났다. 회사가 복수노조를 이용해 민주노총 조합원을 승진 차별하며 탈퇴를 종용하고, 한국노총 노조에 가입하라고 종용했다는 게 행정기관 판단이다. 사회적 합의를 이끈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이 1년여 만에 750명가량에서 250명가량으로 쪼그라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사 측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 등에 나섰다. 이로 인해 행정기관에서 노조파괴 혐의가 인정됐음에도, 현장에서 달라진 건 여전히 없다고 임 지회장은 말했다. 항소의 항소가 거듭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임 지회장은 그냥 두고만 볼 수 없다고 했다. 단식에 나선 그의 핵심 요구는 “더는 우리 조합원을 괴롭히지 말라! 차별하지 말라!”다.
― 조합원들의 ‘탈퇴 러쉬’가 시작되던 지난해 3월은 어떤 상황이었나?
“보통 월말에 한국노총(전국식품산업노조연맹 피비파트너즈노조)과 탈퇴서를 주고받는다. 새 노조에 가입하면서 이전 노조에 대한 탈퇴서를 같이 낸다. 조합원이 탈퇴서를 쓴 즉시 노조로 들어오지 않는다. 월말까지 (탈퇴서가) 몇 장 들어올지 모른다. 지난해 3월 초부터 조합원들 연락이 심상치 않았다. ‘현장관리자(BMC·Baking Manager Coach)가 자꾸 찾아온다’, ‘탈퇴서를 80장 모았다더라’, 탈퇴서를 모으고 있단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달 말에 125장이 들어왔다. 전에는 많아봤자 3장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 많았고 아는 이름들도 보이니 멘붕이었다. 그 다음달에도 조합원들 연락이 계속됐다. (제빵·카페) 기사들이 모여서 일하는 구조가 아니고 (중간관리자 등이 점포로) 개별 방문 해버리니 (노조 차원의) 대응이 어려웠다. 4개월씩 100여 장이 들어왔다. (회사의 조직적 노조파괴 의혹을 폭로한) 7월 기자회견 이후 조금 줄긴 했지만, 지금도 수십 장씩 들어온다.”
― 회사의 탈퇴 종용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나?
“가장 (영향이) 컸던 건 진급 차별이다. BMC가 현장 기사들을 만나 민주노총 소속이면 진급이 어렵다고 말했다. 4월 초 나왔어야 할 진급자 발표가 5월 말에 나왔다. 두 달가량 진급을 미루면서 탈퇴 작업을 했다. 진술서 중 ‘BMC가 오늘 탈퇴하면 내일 진급해주겠다고 했다’는 내용이 있다. 오늘은 꼭 받아가겠다며 탈퇴서를 써줄 때까지 몇 시간씩 서있기도 하고, 가맹점주 앞에서 큰 소리로 노조 이야기를 하며 공포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가맹점주 한 마디에 기사들이 교체되는데 압박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탈퇴서를 받으면서도 어이없었던 건 육아휴직자, 일반 휴직자, 퇴사자들 그리고 조합원이 아닌 사람들까지 탈퇴서가 들어왔다. 휴직자들은 조합비도 안 내는데 굳이 탈퇴할 이유가 없다. 연락해서 물어보니 ‘BMC가 민주노총에 있으면 복직하기 힘들다고 연락왔다’더라. 퇴사를 앞둔 사람의 탈퇴서가 들어와서 물어보니 ‘BMC가 퇴사하니까 써달라고 요구했다’더라. 우리 판단으로는 실적 보고 때문이라고 본다.”
파리바게뜨지회는 지난해 7월 퇴직한 현장관리자(BMC)의 제보에 힘 입어 이 같은 회사의 노조파괴 행위를 고발했다. 제보자는 “민주노총 조합원 탈퇴서를 받아가면 1인당 최대 5만 원을 줬다. 회사의 목적은 민주노총 조합원 0%다. 회의 때마다 민주노총 조합원 명단을 화면에 띄우고 탈퇴율을 체크한다. 업무하지 말고 민주노총 조합원 매장만 찾아다녀서 탈퇴서를 받으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사 측은 “허위 사실이다. 법적 대응하겠다”고 발끈했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대응 소식은 없었다고 임 지회장은 말했다.
― 탈퇴 러쉬가 파리바게뜨지회 내부 문제라는 반박도 있다. 노조가 근로자지위확인소송·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한 뒤 소송비용을 책임지지 않아 실망한 조합원들이 나갔다는 취지다.
“처음부터 소송 비용은 노조가 감당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도 조합이라서 조합원만 해줄 수 있고 탈퇴한 사람들은 해줄 수 없다고 했다. 탈퇴와 소송 비용은 상관이 없다.”
― 행정기관에서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됐지만, 현장에서 조합원들에 대한 괴롭힘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가 조심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하고 있다. 지금껏 버틴 사람들에겐 ‘민주노총 소속이면 점포 안 내준다’고 했다더라. 기사들 목표는 퇴사해서 점포를 차리는 것이다. 장기근속하면 지원금도 나온다. 또다른 방식의 탈퇴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엔 조합원들에게 동시에 연락이 왔다. 우리 노조에 대한 괴롭힘이 시작될 거라는데 사실이냐고 묻더라. (부당노동행위 판정 이후) 관리자가 탈퇴 종용을 못 하고 진급을 앞둔 기사들에게 시켰다. 조합원이 윗 상사와 통화한 내용을 들어보니 ‘회사에서 올해 안에 노조 와해시키려고 한다. 조합원 수가 많지 않으니 괴롭혀서 퇴사시키려고 한다’고 말하더라. ‘점포 차리려면 오래 다녀야 하는데 노조 때문에 퇴사하면 안 되지 않겠냐’고도 했다. ‘새로 오는 현장관리자가 노조 탈퇴 실적이 좋아서 일부로 이 지역으로 왔다’며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 노동부 수사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보나?
“노동부가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가, 검찰이 재수사하라며 사건을 다시 노동부에 내려보낸 상태다. 좋은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노동부 수사가 미흡했던 건 사실이다. 우리가 자료를 엄청 보냈는데 지노위·중노위 판단 내용만 기소했다. (관리자의) 카카오톡만 압수수색해도 바로 증명되는데 안 했다. 노동부에 압수수색을 촉구하니 회사에서 제출한 자료를 포렌식했다고 하더라. 회사가 바보가 아닌 이상 불리한 자료를 제출했겠나.”
― 단식투쟁까지 결심한 이유가 있었나?
“지노위, 중노위에서 이기니 회사는 행정소송을 하더라. 시간이 지연되면서 현장에선 괴롭힘이 이어졌다. (관리자들의 부당노동행위를) 수사기관에 넘기고 회사에 따로 문제제기를 안 한 상태였는데, 두고 볼 수만은 없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회사에 신고했다. 회사는 복수노조 사업장이니 상대에 대한 비방을 멈추라고 했다. ‘민주노총은 진급 안 된다’는 관리자 녹취도 있었는데, 진급차별이 없었다면 허위사실 유포로 해당 관리자를 징계해야 하지 않나. 회사는 관리자가 허세 부렸다며 징계사유가 아니라고 봤다. 회사가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할 생각이 없다고 느꼈다.”
― 사회적 합의 이행 문제가 노조 파괴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보나?
“회사는 사회적 합의로 (불법파견에 대한) 500억의 과태료를 유예하고 자회사(피비파트너즈)를 만들면서 상황을 끝냈다. 자회사 직원들의 처우를 본사직과 동일하게 맞추는 게 주요 요구였다. 우리는 이행되지 않았다고 보는데, 사 측은 교섭권이 있는 한국노총과 사회적 합의가 끝났다고 선포식을 열었다. 선포식이 열리는 것도 뉴스 보고 알았다. 우리는 (사회적 합의가 이행됐다는) 자료를 요청했지만 엉터리 자료밖에 받지 못했다.”
― 최근 CJ 대한통운 사건과 같이 사회적 합의 이후 이행을 촉구하는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노사문제면 교섭으로 풀면 되는데 사회문제니 사회적 합의를 한 것 아닌가. 사회적 합의 전까진 언론에서 이슈가 크게 불거지니 회사는 일단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뒤에서 복수노조를 만들어 노조를 무력화한다. 사회적 합의를 했다는 기사를 보면 ‘저 분들 또 싸우겠구나’ 생각한다.”
― “그날의 출근이 오늘과 같은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큰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왜 이 자리에 서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회사 피비파트너즈 설립 이전) 협력사 시절 야만적이었다. 뼈가 부러지고 화상을 입고 살이 찢어져도 출근해야 했다. 모성보호도 되지 않아 임산부가 일반 노동자처럼 일하다가 유산된 사례를 여럿 봤다. 왜 급여가 이만큼 나오는지도 몰랐다. 적게 나오면 적게 나오는대로 받았다. 노조 설립 전에 개인적으로 부당노동행위를 겪었다. 본사에 문제 제기했더니 본사 직원이 아니라서 본사와 이야기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그때 ‘이 사람들은 (제빵사들을) 같은 직원이라고 생각도 안 하는구나’ 싶었다.”
― “물러서지 않겠다”, “까짓거 뭔들 못하겠냐”는 마음을 먹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조합원들이 너무 불안해했다. 한 분은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온 가족이 다 불안해했다고 하더라. 최근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해 인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특별근로연장까지 신청하며 빵을 만들고 있다. 쉬지도 못하고 힘들게 일하는데 불안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왜 노조 만들었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고통받아야 하나. 그게 제일 화가 났다.
처음에는 아는 이름을 보며 섭섭한 마음이 컸다. 한편으로 그 사람이 탈퇴서를 쓰기까지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고 괴롭힘을 당했을 상황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기사들이 흩어져 있어서 혼자 불안한 상황을 견뎌야 했다. 일도 힘든데 마음 고생까지 했던 걸 생각하니 미안했다.”
임 지회장은 단식투쟁에 나서며 “눈물을 훔치며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면서 노조를 탈퇴하는 조합원을 볼 때,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회사를 향한 분노가 저를 짓눌렀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제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힘을 쓰려고 한다. 더는 우리 조합원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모든 것을 바치려 한다”고 말했다. 2017년 노조를 만들고 회사를 상대하며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고통”을 받았다던 임 지회장은 막상 개인의 고충을 묻자 “술이 많이 늘었다”고 웃어넘겼다.
― 단식투쟁에 나서며 SPC그룹에 ▲조합원에 대한 불법, 부당노동행위를 중단할 것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를 원상 회복할 것 ▲불법행위자를 강력 처벌할 것 ▲각종 불법행위에 대해 공개 사과할 것 등을 요구했다. 회사의 대응은 어땠나?
“자회사 소속이니 자회사 가서 해결하라고 했다. SPC그룹이 사회적 합의 주체 아닌가.”
― 사 측에서 경제적인 압박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한남동 SPC 건물 앞에서 천막농성할 때 영업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이 일부 인용됐다. 천막을 7일 이내 철거해야 한다고 해서 7일째 철거했더니 사 측이 7일간 있었다는 이유로 저와 최유경 수석부지회장, 파리바게뜨지회와 화섬노조에 강제집행을 걸어 급여와 조합비가 압류되고 있다. 지금 제 급여는 최저생계비인 185만 원만 나온다.”
―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언론에서 노노갈등으로 비추더라. 회사도 노조 간 세다툼이라고 한다. 하지만 SPC그룹의 노조탄압에 노노갈등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