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가 과거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부당한 급여 지급을 승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후보자는 지난 2013년, 징역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당시 최 회장에게 22억원의 급여를 지급하는 SK하이닉스 이사회 안건에 찬성 의견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지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SK하이닉스에 사외이사를 지냈다. 이 후보자는 사외이사 중 감사위원회 위원이었다. 감사위원회는 회사 재무제표 등 자금 흐름과 지급 내역 등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후보자가 SK하이닉스 2년 차 감사위원이었던 지난 2013년 1월, 최태원 회장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 4년 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SK하이닉스 등기임원(대표이사)으로 재직 중이던 최 회장은 수감 상태에서도 직을 유지했다. 최 회장은 등기임원으로 재직하며 SK하이닉스로부터 22억원을 받았다.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2억원의 높은 급여가 쉽게 이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최 회장의 급여는 2013년 SK하이닉스 주주총회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을 통해 확정됐다. 주주총회 안건은 이사회의 승인을 거친다. SK하이닉스 이사회는 주총 30일 전, 최 회장 급여를 포함한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을 의결했다. 당시 감사위원이었던 이창양 후보자는 최 회장의 부당한 급여가 포함된 안건에 대해 ‘찬성’ 의견을 밝혔다.
결국, 최 회장은 법정구속되던 그해 SK하이닉스 22억원을 비롯해 SK이노베이션(112억원), SK(87억원), SK C&C(80억원) 등 다른 계열사를 포함해 총 301억원 규모의 급여를 챙겼다. 이듬해 최 회장이 300억원대 급여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옥중 급여를 받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 후보자가 감사위원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상훈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변호사는 “최 회장이 형사재판으로 구금된 상태에서 보수를 받은 건 적절치 않다”며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의견을 개진해 보수 미지급 등 시정조치를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도 “이 후보자가 기업 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모니터링 책무를 진 감사위원이었다는 점에서 더 적극적으로 문제제기 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 회장은 이듬해 2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자 모든 계열사 등기임원에서 물러나고 2013년 받은 보수 전액을 사회에 환원했다.
SK하이닉스가 미르재단에 68억원을 출연한 2015년에도 이 후보자는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을 지냈다. 미르재단은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의 ‘텃밭’이라 불렸다. SK를 비롯해 삼성, 롯데 등 재벌 그룹이 미르재단에 앞다퉈 자본금을 댔다. 국정농단 특검은 이 자본금에 ‘뇌물 성격’이 있다고 보고 기소했으나, 대법원에선 최종 ‘대가성이 있는 뇌물이라기보단 강요에 의한 금품 제공’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대법원 판단을 두고 법조계에선 여전히 논란이 있다. 이같은 논란의 ‘미르재단 출연금’을 결정한 이사회 멤버가 바로 이창양 후보자였다.
이 후보자는 ‘사외이사는 거수기’라는 세간의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총 세 회사 이사회에서 한 활동을 보면, 그는 총 10년 이상 사외이사 재직 기간 동안 단 1건을 빼고 나머지 모든 이사회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전형적인 로비스트용 사외이사…“다시 기업 안 간다 서약해야”
이 후보자는 산업통상 정책 수장에 오르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는 산업부를 중심으로 15년간 공직 생활을 한 이후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에 TCK 사외이사로 들어갔다. 이후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에서 사외이사로 재직했다. 학계에선 기업이 전직 관료를 사외이사로 영입해 관과 소통창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는점을 우려한다.
이창민 교수는 “특히 기업 입장에서 전관 출신 교수는 사외이사를 거쳐 고위 관료로 돌아갈 경우 추가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어 선호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사외이사를 지낸 인사가 장관으로 임명되는 사례가 반복되면, 기업이 사후 보상을 노리고 보험 성격으로 사외이사를 두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해충돌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당 기간 특정 기업에 적을 둔 인사가 산업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산업부 장관을 맡으면, 정책에 기업 이해관계가 반영될 것이라는 우려다.
이 후보자는 세 회사에서 총 8억여원의 보수를 받았다. 이 후보자가 재직하는 동안 TCK 사외이사 1년 평균 보수는 1,893만~2,400만원이었다. SK하이닉스는 6천만~7,800만원, LG디스플레이는 7,800만~9천만원이었다. 이 후보자도 평균과 비슷한 보수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보고서에 개별 사외이사 보수액이 공시되지는 않지만, 통상적으로 동일 회사가 각 사외이사에 지급하는 보수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는 “산업부가 산업 전반을 관장하는데 사외이사를 지낸 업종을 더 챙긴다거나, 같은 업종 안에서도 사이외사를 지낸 특정 기업을 더 챙긴다는 의혹을 살 수 있다”며 “본인은 공정하게 한다고 주장해도 의혹이 제기되는 것만으로 정책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번 기업에서 일한 관료 출신을 고위직으로 불러들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법으로 모든 경우를 제재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만큼, 관행적으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위관직자가 퇴임 이후 다시 기업으로 갈 여지를 끊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박 교수는 “기업 사외이사를 하다가 장관이 되면, 최소한 청문회에서 향후 장관직을 마친 뒤에는 사외이사나 로펌 자문을 맡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며 “장관을 마치고 다시 기업으로 돌아갈 가능성 때문에 이해상충이 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후보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사외이사와 장관의 역할은 다른 영역으로 엄연히 구별된다”며 “(이해충돌)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