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매니저 K 이번 달에 3천만원이 비는데요, 월말에 저희쪽 35%(마진율)가 찍히면 협의된 대로 가는데 떨어지고 있어서요…
(잠시 정적)
납품업체 A 대표 지금, 부족한 3천만원을 맞춰 달라는 말이죠?
쿠팡 매니저 K 네, 이대로 가면 ‘(마진율)부족한데 어떻게 할 거냐’ (위에서) 이야기 나올 수 있어요.
납품업체 A 대표 ….
지난해 12월, 쿠팡 상품 담당 매니저(BM)와 납품업체 대표 A씨 대화 중 일부다. 민중의소리가 A 대표로부터 제보받은 녹취 파일을 들어보면, 쿠팡은 노골적이었다. 자신이 예상한 마진이 나오지 않았으니, 납품업체가 보충하라고 요구했다. A 대표는 한 달에도 몇차례씩 매니저 K와 비슷한 내용으로 통화한다. A 대표가 납품하는 제품 7개 모두, 쿠팡에 보장해줘야 할 목표 마진율이 정해져 있다.
서울의 한 오피스텔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광고 집행 내역을 보여줬다. 1월에만 500만원짜리 배너 광고 2개를 구매했다. 10건에 100만원을 내야 하는 ‘쿠팡체험단리뷰’도 200개 샀다. 이걸로 쿠팡 마진 3천만원을 보충해줬다. 이번 달도 이렇게 어찌어찌 넘겼다. A대표는 “쿠팡에선 ‘업체가 자발적으로 구매를 신청한 것’이라고 하겠죠”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쿠팡 광고 게재 요구는 불법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9월, 쿠팡의 부당한 광고 구매 요구 등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에 행위에 대해 3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하지만 취재에 응한 납품업체들은 “부당한 광고 요구가 지금도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쿠팡 ‘온라인 최저가 보장’이 갑질로 둔갑하는 프로세스
소비자는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쿠팡 판매는 두 가지가 있다. 상인들이 쿠팡에 온라인스토어를 개설해 직접 판매(오픈마켓)하거나, 판매는 쿠팡이 하고 상인들은 물건만 납품하는 방식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큰 차이는 로켓배송 여부다. 쿠팡에 납품한 물건을 사면 로켓배송으로 다음날 받을 수 있고, 상인들이 직접 판매하면 CJ대한통운 같은 택배사를 이용해 2~3일 뒤 받을 수 있다.
A대표 회사는 로켓배송용 생활가전을 납품한다. 쿠팡에서만 연 매출 수십억원을 올리는 ‘우수’ 납품업체다. 쿠팡은 A대표 회사 물건을 납품받아 소비자에게 판다. 업체가 납품 가격과 판매가격을 제안하면, 쿠팡은 마진율을 따져보고 수용 여부를 결정한다.
문제는 가격에서 발생한다. 쿠팡은 최저가 매칭시스템을 운영중이다. 쿠팡이 파는 A대표 회사 물건과 같은 상품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나 11번가 등 다른 온라인쇼핑몰에서 싸게 팔리면, 쿠팡은 자동으로 가격을 그보다 낮춘다. 애초 업체가 제안한 판매 가격보다 시장 가격이 높아지면 쿠팡 마진은 예상보다 늘어난다.
반대 경우가 문제다. 실제 팔리는 가격이 예상보다 낮아지면 쿠팡 이익이 줄어든다. 만원짜리 물건 1000개를 팔아 매출 1천만원이 나오면 쿠팡은 로켓배송비, 반품 등 소비자 응대 비용을 차감해 마진을 챙긴다. 쿠팡이 마진율을 10%로 예상했다면 수익은 100만원이 돼야 한다.
최저가 매칭시스템을 통해 만원짜리 물건 가격이 9천원으로 낮아졌다고 해보자. 쿠팡 마진은 예상했던 100만원이 아니라 90만원으로 떨어진다. 쿠팡은 예상보다 낮아진 마진 손실분 10만원을 납품업자에게 요구한다. 쿠팡이 부당한 광고를 요구하거나, 체험단 리뷰 프로그램 참가를 종용하는 이유다.
소비자들은 쿠팡이 최저가 보장제로 발생한 손해를 떠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민중의소리 취재 결과 쿠팡은 최저가 판매로 발생하는 손실을 책임지지 않는다. ‘최저가 보장’으로 발생하는 소비자 유입 효과는 쿠팡이 누리고, 가격 하락 리스크는 납품업체에 전가하는 구조다. 명백한 갑질이다.
공정위 조사 결과에도 이런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조사 기간인 2016년부터 2년간, 총 101개 납품업자 상품 360개를 대상으로 최저가 리스크를 전가했다. 관련 매출 규모만 2,125억원에 달한다. 확인되지 않은 사례를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불공정 행위에 30억원 규모 과징금을 부과했다.
A 대표는 “쿠팡 물류·유통 혁신은 인정 한다. 하지만 온라인쇼핑몰 사업자로서 쿠팡은 납품업체에 초대형 갑질 거래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했다.
쿠팡발 인플레이션? 그리고 쥐어짜기
납품업체 말을 종합하면, 쿠팡은 최근 마진율을 꾸준히 끌어올리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쿠팡 마진율은 15~20% 수준이었다는 것이 납품업체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만원짜리 제품을 8천원에 납품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배송과 소비자 응대 비용을 쿠팡이 모두 지불하는 점을 감안하면 납품업체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쿠팡 영향력이 커졌다. 로켓배송 지역이 수도권에서 광역시도로 확대됐다. 로켓배송을 이용하려는 소비자가 급증했다. 쿠팡 매출은 2017년 2조6천억원에서 지난해 22조2천억원으로 753%(8.5배) 폭등했다.
점유율이 올라가자 쿠팡은 마진율도 따라 올렸다. 납품업자들에 따르면 4~5년 전 20%대였던 마진율이 최근에는 40~50%까지 올라갔다. 만원짜리를 8천원에 납품하다 4~5천원에 넘겨야 하는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쿠팡에 생활용품을 납품하는 B사 대표는 지난해 11월, 쿠팡으로부터 기존 30%였던 마진율을 40%로 높여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B사 대표는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자기 마진을 포기하고 납품가를 낮출 수 있었다. 개당 4천원이었던 납품가를 3,600원까지 낮추면 쿠팡이 요구하는 마진율 40%를 맞출 수 있었다. 광고비를 집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납품가를 조정하지 않고 쿠팡 마진율이 40%가 될 때까지 광고비를 입금한다. 앞서 살펴본 A 업체 대표가 선택한 방식이다.
B 업체 대표는 세 번째 방법을 택했다. ‘최저가 매칭시스템’을 운용하는 쿠팡이 상품 가격을 올릴 수 있도록 ‘룸’을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B 업체는 쿠팡 납품업자이면서 동시에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는 온라인셀러다. 같은 물건을 네이버에서도 독자 판매한다. B 업체 대표는 쿠팡이 가격을 올릴 수 있도록 네이버 판매가를 400원 인상했다. B 업체 대표는 쿠팡에 이런 내용을 통보했다. B 업체 대표가 네이버에서 가격을 400원 올리자, 쿠팡 상품 가격이 390원 인상됐다. 납품가는 그대로 두고 쿠팡 판매 가격을 390원 더 올릴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소비자는 같은 물건을 390원 더 비싸게 사야 하는 처지가 됐다. 쿠팡 ‘최저가 매칭시스템’이 도리어 상품 가격을 끌어올리는 ‘쿠팡의 역설’이다.
이득은 쿠팡이 가져갔다. 가격이 오르면서 B 업체 네이버 판매량은 20%가량 줄었다. 쿠팡 판매량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소비자가 지불한 390원은 고스란히 쿠팡 주머니로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쿠팡 영업 방침이 매출 확대에서 수익 증대로 바뀌고 있다고 본다. 미국 주식시장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이 이후 추가 자금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껏 끌어온 적자 경쟁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감지된다. 쿠팡이 최근 2,990원 이었던 회원 가격을 2천원 인상한 것이나, ‘묻지마 반품 수용’ 정책을 수정 중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뜻이다. 쿠팡 수익률 추구는 영세상공인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다.
잔인한 플랫폼, 떠나는 판매자
쿠팡 수익 확대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 업체는 하나둘 이탈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쿠팡 판매를 시작한 C 업체 임원은 “최근 납품을 줄이고 있다. 대신 다른 채널에 힘을 주는 중”이라고 말했다.
생활가구를 판매하는 C 업체는 쿠팡에서 연 10억원대 매출을 올려왔다. 지난해 2월 쿠팡으로부터 “로켓에 납품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쿠팡은 C 업체 상품 중 소비자 반응이 좋은 10개 품목을 콕 짚어 원가 수준의 납품가를 요구했다. C 업체는 일부 품목 이윤을 포기하더라도 매출이 늘어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C 업체 예상은 적중하는 듯했다. 매출이 2배로 늘었다. 이대로 가면 연 매출이 2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4개월 뒤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쿠팡 측으로부터 ‘납품 단가 인하’ 메일이 날아왔다.
민중의소리가 C 업체로부터 제보받은 메일을 보면 10개 품목 전체 납품가를 1~3% 일괄 인하해 달라는 엑셀 파일이 포함돼 있다. C 업체 경영진은 납품가 인하 가능 여부를 검토했다. 베트남 등지에서 받아오는 제품 원가를 감안하면 10개 모두 인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5개 제품은 인하하고 나머지는 기존 납품가를 유지하겠다고 역제안 했다. 쿠팡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 달 뒤, 쿠팡은 납품가 동결에 합의한 나머지 5개 품목도 인하 하라고 요구했다. 쿠팡 측은 “수익성 개선이 필요한 상품들”이라며 “다시 한번 검토를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물류비와 생산 단가가 증가한 사정을 쿠팡도 뻔히 알고 있었다. 한 달 만에 날아온 납품가 재인하 요청에 기가 막혔다. C 업체 임원은 “원가 이하로 납품하라는 말과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민중의소리가 확인한 쿠팡 측 메일에는 ‘쿠팡은 귀사와 상생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하겠다’라고 적혀 있었다.
C 업체는 원가 상승 요인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동결한 일부 품목에 대해 인상을 요구했다. 이때부터 두 달간, 쿠팡과 연락이 끊겼다. 쿠팡 담당자는 원래 통화하기가 어려웠다. 소통은 늘 메일로 했다. 여러 차례 메일을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납품 단가 인상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협의가 중단된 두 달간, 제품 발주는 매주 2회 꼬박꼬박 들어왔다. C 업체 경영진은 고민을 시작했다. 매출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쿠팡 발주를 맞춰줄 것인지, 아니면 납품을 중단할 것인지.
연락이 없던 쿠팡은 두 달 뒤, 모든 품목의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민중의소리와 만난 C 업체 임원은 “‘아, 더 이상 쿠팡에서 판매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고 말했다.
C 업체는 지난해 연말, 납품을 중단했다. 10개 상품 중 9개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머지 1개 상품 역시 발주 물량의 일부만 납품 중이다. 10억원 매출을 2배로 키워보겠다는 C 업체의 사업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불과 10개월 만에 10억원 매출은 1억원대로 1/10 토막 나버렸다.
C업체 임원은 “현재 새로운 상품을 기획 중이다. 하지만 쿠팡에 납품하지는 않을 거다. 스트레스는 지난 1년간 받은 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최재섭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플랫폼이 저가로 상품 공급하고 새벽 배송해서 소비자 편익을 늘리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봐야 한다. 유통플랫폼은 잔인한 시스템을 가지고 확대된다. 소비자 가족, 친지가 일하는 제조·유통업체가 잔인한 시스템 속에서 피폐해지는 결과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쿠팡은 ‘부당한 광고 요구를 했는지’ 등을 묻는 민중의소리 공식 질의에 구체적 답변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온라인 시장에서 가격결정은 소비자가 하는 것”이라며 “어떠한 유통업체도 소비자가 구매하지 않는 제품을 매입할 수 없고, 이는 업계의 공통된 현실”이라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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