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겨냥해 '독선' '서울시민 볼모' 등의 발언을 했다. 연일 이어졌던 그의 발언은 전장연을 이기적인 장애인 단체로 둔갑시켰다. 갈등을 봉합해야 할 정치인이 되레 장애인 단체와 시민을 갈라치기해 혐오와 갈등을 부추긴 것이다.
사실 사각지대로 고립되어 가는 장애인들의 현실은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었다. 장애 아동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장애 아동 엄마들이 다른 시민들을 향해 무릎을 꿇은 일도 있었다. 얼마 전 MBC 보도에서 영화 '복지식당' 공동 연출자 정재익 감독은 "요즘 아이들은 장애인 보면 무서워해요. 주변에 없으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 감독은 장애를 갖고 있다.
세 사례의 공통점은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경계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문턱일 수도 있고, 오해일 수도 있고, 혐오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몸을 가진 우리는 한 공간에서 함께할 순 없을까. 누구도 고립시키지 않고, 탈락시키지 않는 판타지는 존재할 수 없을까.
강보름 연출가는 장애, 비장애, 모두를 위한 배리어프리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국립극단 내 위치한 극장 '소극장판'을 통해서다. 강 연출가는 이 극장에서 진행될 연극 이름을 '소극장판-타지'라고 붙였다. 그는 다종다양한 이유로 이 극장에 끼워 맞춰지지 않는 몸들을 불러, '소극장판'과 '타지' 사이에 존재하는 '-'를 지워나가는 시도를 했다.
그 시도 중 하나는 '비상 상황 시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신속하게 이동하세요'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미 극장 안에는 비·장애인의 세계가 함께 흡수되어 있었다. 비·장애 배우들은 시각장애 관객을 위해 자신의 상태나 의상 등을 설명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안내자들이 어디에 서 있는지 박수로 알려주기도 했다. 수어와 화면 제공도 됐다. 그리고 공연 시작 10분 후까지 극장 문은 훤히 열려 있었다. 누군가의 이동권을 이해하는 작은 행동이 극장 안으로도 전해졌다. 이런 공연은 어디에도 없다.
무대에 선 배우들은 장애·비장애 배우로 구성돼 있었다. 김지우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이성수는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다. 무용수이기도 한 안정우는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고애리 배우는 비장애인으로 지난해 국립극단 시즌 단원이었다.
비·장애 배우들은 자신의 몸에 관한 이야기와 자신의 판타지 등을 이야기했다. 관객 입장에선 다른 몸에 관한 이야기는 타지를 경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비장애 세계만이 전부인 줄 알았던 경험들에 균열을 만들었다. 더 나아가 서로의 몸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것, 그것에 대해 관객 역시 '다가가고픈' 충동을 느끼게 만들었다. 여전히 이곳이 타지 혹은 판타지일지라도 '소극장판'과 '타지' 사이에 존재했던 '-' 작대기가 지워지는 경험을 마주하게 됐다.
'소극장판-타지'는 소극장판이라는 현실 위에 지어진 타지이자 판타지다. 작대기 하나 지우니, 너와 나의 타지가 자유롭게 오간다. 자유롭게 오가니 함께 판타지를 마음껏 꿈꾸게 된다. 그 순간 만큼은 소극장판에서 벌어진 한바탕 난장이 현실 불가능한 판타지가 아님을 알려줬다.
지난 20일 막을 올린 연극 '소극장판-타지'는 오는 5월 1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판에서 볼 수 있다.